'국립','현대','미술관' 이라는 유토피즘
미술관에 있어서 30년 역사는 사실 역사랄 것도 없다. 그렇지만 요지부동할 것 같은 돌집에서 시작한 국립현대미술관이 1969년 설립된 이래 겪은 변화는 결코 적지 않다. 아니, 얼토당토않게 말썽많던《국전》개최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던 애초의 꼴과 지금의 모습의 판이함은 격세지감마저 불러일으킨다. 일제에 의해 기획된《선전》의 내용과 형식을 고스란히 계승했던《국전》, 그리고 최근 이를 민간 이양이라는 이름 아래 이어 온《대한민국미술대전》을 둘러싼 문예진흥기금 지원의 적절성 논란을 보노라면 더더욱 그렇다.
온전한 미술관의 존재여부는 한 사회의 건강성을 확인시켜주는 징표임에 틀림없다. 알다시피 미술관을 이룩해내고 거기에서 함께 누리며 확인했던 시민들의 공통감각이나 인륜성이야말로 시민사회 형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새로운 형식의 소통 장소인 전람회장에 몰려들어, 관심과 꿈을 나누며 두 눈을 통해 새로운 세계의 계시를 실증적으로 체험하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 미술관제도는 지난 2, 3백년 동안 강고하게 뿌리내려 왔다. 그런 점에서‘미의 성전’, ‘눈의 신전’이 단순한 수사만은 아니다.
우리 경우도 다르지 않다. 매년 국가 행사로 열리던《국전》이나 각종 박람회는 어떤 의미에서이든 새로운 세계를 향한 욕망이 분출하는 장소였다. 이인성,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유영국 같은 예술가들의 신화도 이러한 눈의 시대, 관람의 시대의 총아인 미술관의 산물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세계를 향한 민중들 열망이라는 시대정신을 간과하고 물산공진회나 조선미술전람회에 몰려들었던 수십만 수백만의 관람인파를 단지 일제의 간교한 통치술이나 강제동원으로 이해하는 것도 어쩌면 민중 자체를 지나치게 비주체화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제 어떠한 새로움도 설레임도 안겨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fine arts’의 번역어‘미술’에는, 이렇듯 서구화를 통한 새 시대를 향한 꿈과 욕망이 실려 있다. 그리고 음각으로든 양각으로든 그것을 기획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서구를 모델로 한 근대화와 민족국가주의를 정권 이데올로기로 전유해 가던 박정희 정권 때 설립되었다는 점에서 발생론적으로 그러하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정체는 흔들리게 마련이다. 세월이 빚어내는 무상성과 대결하며 영원성을 그 이념으로 내장하고 있는 미술관들도 덧없음을 피해갈 길은 없다. 세계 구석구석의 미술관들이 관람객이나 공공지원의 급격한 감소로 고통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순식간에 수 만건의 접속이 이루어지는 웹 공간, 조만간 관객 1,000만 시대를 돌파하리란 영화‘실미도’소식은 디지털시대, 기술복제시대의‘예술’의 위상 변화로나 보아야 할 한가로운 이야기 거리가 아니다. 그러니 미술관제도 자체의 이념이나 현실적 조건마저도 면밀히 따져 볼 여지가 있다.
문제는 이제‘미술’도‘국가’도 그 자체로 지당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숱한 아방가르드주의자들의 공격 속에 근대적인‘미술’개념도, ‘국가’개념도 전복을 거듭한 지 이미 오래이다. ‘국가’, ‘현대’, ‘미술’이라고 하는 유토피즘이 아슬아슬하게 교차되는 문맥에서 미술관이 그 당위성을 말하던 시절은 갔다. 아니 그 이름 아닌 이름조차도 힘겹고 버거운 것인지 모른다.
이제 다시 국립현대미술관도 자신의 존립근거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통해 스스로의 역할을 재정의할 때가 된 것이다.

/ 필자 : 이인범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수석연구원)
/ 수록 : <미술관소식> 2004년 01_02호 (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