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돈] ② 출판 : 논픽션이 돌파구다
10년 뒤 '성장 엔진' 찾아라
학습지 포함하면 8조…단행본은 1조원 불과

산업으로서 출판시장은 '도깨비 시장'이다. 영화나 무용.음악.미술 같은 인접 장르에 비해 외형은 상대적으로 커서 당당한 맏형이면서도 구조는 취약하다는 이중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연매출액 기준으로 1000억원을 크게 밑도는 무대예술 장르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영화에 비해서도 갑절 이상이다. 하지만 이 '골리앗 출판시장'에서 돈이 움직이는 모습은 이 영역의 가능성과 허술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문화관광부 집계에 따르면 2002년 출판업의 연매출액은 23억달러(약 2조7000억원대)내외로 세계 7위권. 신간 발행종수(3만6185종)로도 세계 8위다. 하지만 학습지(2조원).수험서(1조원).잡지(1조원)시장을 포함하고, 통계에 잡히지 않은 시장을 포괄한다면 출판 외형은 8조원대라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이런 허우대에도 체질은 약하다는 데 출판산업의 고민이 있다. 학습지.수험서.잡지 등을 제외한 '출판의 꽃' 단행본만을 들여다 보자. 만화.아동서 영역을 제외한 순수 단행본은 1조원에 훨씬 못 미친다. 만화(31%).아동서(20%)는 단행본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구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지식산업으로서 출판'은 여전히 취약하다. 다행인 것은 최근 10년 사이에 역동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말 책 안 팔린다'는 소리도 들리지만, 그건 엄살이다. 연2% 내외의 착실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내수시장만 그런 게 아니다. 출판시장이 동북아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거두는 열매도 짭짤하다.
최인호의 '상도'가 중국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게 지난해. 공식 판매부수는 200만부다. 일본 NHK출판에서 펴낸 '겨울연가'는 현재 100만부 돌파를 눈앞에 뒀다.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말라'도 몇해 전 일본에서 80만권이 팔렸다. 출판계에 저작권 수출이라는 '다른 주머니'가 생긴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출판환경 변화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저작권이 확립됐다. 그 게 97년 이후의 일이다. 일부에서나마 '규모의 경제'도 가능해졌다. '랜덤하우스중앙.민음사.김영사.넥서스 등 연매출액 200억원를 넘어선 대형사들이 규모의 경제라는 목표에 근접했다.' 북 플래너 정병규씨의 말이다. 그러나 군소 출판사들이 난립한 구조에는 변함이 없다. 2003년 현재 등록 출판사는 무려 1만9135곳. 하지만 90% 이상이 한해에 책을 한권도 못 낸다. 이런 구조 때문에 등록사의 7.8%가 3만6186종을 펴내 출판물량을 독과점한다. 베스트셀러도 여기서 나온다. 2002년 베스트셀러 500위 중 상위 5개 출판사가 248종을 점유한 것이다.
왜 이런 양상이 빚어질까? 소자본 창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장 몇만원이면 출판사 등록이 가능하고, 제작비 1000만원이면 책 한 권을 만든다. 하지만 필자 관리를 포함한 의외로 높은 진입장벽에 걸려 책 몇권 펴낸 뒤 이내 좌초한다.
때문에 소규모 회사들이 출판물의 다양성을 담보해 주고, 메이저급 회사들은 규모의 경제로 나가는 역할분담.공생(共生)의 전략이 필요하다. 메이저 출판사들이 어떻게 지식산업을 능동적으로 끌고갈 것인가가 문제인데, 논픽션 시장은 유력한 미개척지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역시 기획력이 관건이다. 출판 에디터십을 정착시켜 우리 사회의 어젠다를 제대로, 정확히 짚어내는 일이다.

[문화와 돈] 2. 왜 논픽션인가
'발로 쓰는 창작' 소재 무궁무진
이웃 일본에서 부동의 연매출액 1위 출판사는 고단샤(講談社). 지난해 우리 돈으로 1조7000억원 매출이라는 성과를 올렸다. 물론 상당부분 만화단행본 매출인데다 출판의 파생상품인 캐릭터 매출실적까지 포함한 규모지만, 무시못할 수치임에는 틀림없다. 일본 출판시장 전체 규모는 한국의 10배 정도다. 이런 수치는 그만큼 한국출판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말도 된다. 어떻게 5년, 10년 뒤의 출판의 성장엔진을 찾아내 국내 시장 전체를 키워낼 것인가가 과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상식으로는 문학 장르가 살아나야 출판 시장이 좋아진다는 말을 하곤 하지만 우리 시대 문학은 어차피 영향력과 시장 지배력에서 하강곡선을 긋고 있다. 팬터지 소설을 포함한 다양한 장르문학의 분발도 중요하지만, 정말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장르는 '논픽션'이다. 그게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한다.
미국에는 '픽션 작가는 파티장에서 환영을 받지만, 논픽션 작가는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는 말도 있다. 이를테면 몇해 전 미국을 강타한 베스트셀러 '패스트푸드의 제국'(에릭 슐로서)이나 '보보스'(데이비드 부룩스)가 그 전형적인 논픽션물이다. 싱싱한 현장감, 발로 뛰며 건져올린 리얼리티,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적 식견이 어우러져 성공한 논픽션물들을 낳았다.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는 반면 문학적인 '허구'세계는 점차 초라해지고 있다. 우리 주변에 논픽션 소재들이 무수하게 널려 있다는 점도 가능성을 예고한다.
탐사보도에 가까운 논픽션도 있지만, 인물평전이나 전기물 등도 훌륭한 논픽션의 영역으로 지목된다. 최근 창간된 출판 정보계간지 '북페뎀'이 기획의 주제를 논픽션으로 정하고 특집을 꾸민 것도 그런 맥락이다.

/ 중앙일보 5월 11일자, 조우석 기자 (wowow@joongang.co.kr)

※ 첨부파일 : 출판사 수와 도서발행종수 (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