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이냐 전시관 이냐
글/ 오광수(미술비평,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미술관 고유의 기능과 자격
전시를 하는 공간이란 단순한 기능면에선 미술관이나 전시관이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미술관의 고유한 기능인 연구, 조사, 보존, 전시, 교육 등의 학예기능면에서 보면 미술관과 전시관은 엄격히 구분된다. 전시관은 이런 미술관의 고유한 기능을 지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관이 학예의 기능을 보완해 나간다면 미술관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하게 된다. 반면에 미술관이 미술관 고유의 학예기능을 포기해갈 경우는 미술관으로서의 자격이 박탈된다. 몇몇 미술관이 미술관으로 출범못할 채 스스로 전시관으로 탈락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미술관은 연구, 조사, 전시의 학예기능에 따른 기획전만을 추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체전시가 아닌 대여 전시장으로 공간을 메우는가 하면 아예 대여 신청을 받는 경우까지 있다. 이쯤되면 이유야 어떻든 미술관으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화랑가의 기형적 현상
화랑도 마찬가지다. 작가를 발굴하고 전속제를 실시하고 꾸준한 기획전을 열어나가는 화랑이야말로 본격적인 화랑이라고 할 수 있지 단순한 대여 업무만을 하는 화랑은 엄격한 의미의 화랑이라고 할 수 없다. 이 역시 전시장일 뿐이다. 화랑 자체의 기획전으로는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자체기획과 대여를 적당히 배분할 수밖에 없다는 화랑측의 변명은 그 나름의 이유는 되겠지만 화랑 고유의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으로 화랑가 전체에 미치는 영햐이 결코 적지 않다. 화랑가가 제대로 형성되어 있는 지여에선 찾아 볼 수 없는 기형적 현상임이 분명하다.
한때 일본의 비평가가 대여화랑을 없애야만 신인의 발굴이나 전시의 기능이 제대로 살아날 수 있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대여료만 지불하면 누구나가 전시를 할 수 있는 현실에선 그만큼 신인등용의 엄격성이 없어지고 발표의 신중성이 해이해진다는 지적이었다. 이 같은 지적은 일본의 미술계 현실을 비판한 것이지만 사정은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시켜도 무방할 것 같다.
예견된 혼란
상업화랑이 등장하던 70년대 초부터 덩달아 대여화랑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동안 이런 유형의 화랑들이 버젓이 미술관이란 이름을 달고 있었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발효되면서 대여전시장은 미술관이란 명칭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그나마 어느 정도 질서가 잡혔다. 제대로 된 미술관이나 화랑이 없었고 그것들이 지닌 고유한 역할 기능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시대였으니까 그러한 혼란도 예견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엄격한 심의에 의해 미술관이 인가되는 시절이고 상업화랑의 활동도 궤도에 오른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관과 화랑 그리고 단순 전시장이 구분되지 않고 그 고유한 기능을 스스로 폐기하는 사례는 지금까지의 발전 양상에 찬물을 끼얹는 일에 진배없다

당황하는 미술관
70년대까지만 해도 국전과 같은 대규모전은 덕수궁미술관이나 경복궁미술관에서 열렸다. 국립미술관이 등장하지 않았던 시절 덕수궁미술관이나 경복궁미술관이란 단순한 전시관에 지나지 않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생겨나서 국전과 같은 국가주도의 전시가 자연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치러지게 된 것이다. 미술관 기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절에 국립미술관에 국전이 열린다는 것이 아무런 저항감도 없이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미술관이 과천의 신축 건물로 이전하면서 점차 미술관 고유한 업무를 가다듬게 되자 단순대여에 지나지 않았던 미술대전 같은 대형의 대여전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미술관은 자체 기획전들을 전시한다는 미술관 고유의 기능에 위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대전의 주관처는 기득권을 주장하면서 지속적인 대관을 주장하였다. 미술대전뿐 아니라 동아미술제를 비롯하여 대형의 공모전이 현대미술관에 몰리면서 미술관은 더욱 고유한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자연적으로 미술관측과 대여자간에 알력이 생겨날 수밖에 없게된 것이다
내가 미술관 관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무렵 이의 시정을 위한 연구와 실행이 가장 뜨거운 감자였음을 새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미술관을 신축할 때 우리 미술의 현실을 감안해서 제7전시장이 특별히 대여 전시장으로 설계되었다. 상설을 제외한 전시장이 제1, 2, 7전시장인데 제1,2전시장은 미술관 자체기획전으로 사용하고 제7전시장만을 한시적으로 대여전시관으로 구분한 것이었다. 그런데 사정이 어떻게 되었는지 미술대전과 같은 대규모 공모전이 제1,2전시장까지 침식해 들어와 미술대전이 열리는 시즌엔 미술관 자체의 기획전이 제대로 열리지 못하는 기형적인 사태가 벌어지곤 하였다. 미술대전뿐만 아니라 이에 준하는 대규모 공모전 역시 기획전시장을 침범하는 것이 예사였다. 많은 외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대여전시는 제7전시장으로 국한하는 용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후 미술관 자체기획전이 제대로 열릴 수 있었다. 대여 신청처에 미술관 사정을 누누이 설명하고 미술관 본연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를 당부하였다. 그러나 미술관의 입장은 이해가 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하다는 항의성 반응이 이어졌고 급기야는 항의 방문, 시위사태까지 이어졌다. 대규모 전시장이 없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이들에겐 야속한 처사로밖에 비치지 않아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이 어느 특정한 단체나 기관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한국미술 전체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에 입각할 때 미술관 본연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은 무엇보다 절실한 일이었다.

시대의 흐름에 발 맞추는 미술계로
세계 어느 나라를 보아도 국립미술관이 대여전시장으로 활용되는 곳은 찾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특수성이라면 특수성일 수 있다. 미술관의 대관전시는 여기에 참가한 작가들이 한결같이 국립미술관에서 주최한 전시에 출품한 것으로 오해되는 이력서를 작성함으로써 더욱 혼란을 야기한 것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밖에서 보면 국립미술관의 기획전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립미술관이라는 권위에 편승하려는 얄팍한 심리가 정작 미술관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일이 되는 처사이다.
우리와 입장이 비슷한 일본은 동경의 우에노 공원 안에 동경도미술관이란 대형의 전시관이 있어 사철 대형의 전시들이 줄을 잇고 있다. 동경국립근대미술관이나 동경도현대미술관에선 대여전이란 없다. 우리도 대규모의 대여전시장이 만들어져서 모든 대규모의 전시가 동경도미술관처럼 여기에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유사한 규모의 전시장을 찾는다면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굳이 국립미술관을 고집할 일이 아니다. 덧붙여 이야기 한다면 오늘날도 여전히 대규모 공모전이란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숙고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인 등용문으로서의 미술대전이 과연 오늘과 같은 시대에 얼마만큼의 메리트를 지니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때란 것이다. 신문의 1면을 화려하게 장식하던 과거 국전의 보도와 현재 짧은 2단 기사로밖에 취급되지 않는 미술대전 발표와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공모전의 형식도 새롭게 탈바꿈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시대의 흐름은 급속히 진행되는데 아직도 옛 영광에 연연해 한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 격월간 KOREA ART 2004 5.6월 오광수의 아포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