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사회의 새로운 문화코드를 찾아서-7>
문화혁명의 시대 왔다

⑦ 위험사회 한국의 문화적 리모델링

1. 문화적 위험사회화
지난 50여년간 우리는 권력의 고삐 아래 쉴 틈 없이 경제성장에 매진해 왔다. 그 결과 최단시간에 1만불 시대에 도달했지만 그 대가는 전국민의 육체·감성·인성·상상력·창의력의 탕진이었다. 최근 10년간 성장이 지체되고 있는 것도 진정한 성장동력인 국민의 문화적 역량 자체가 거의 소진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한 국가의 경쟁력이란 낮에 공장에서 생산한 자원의 가시적 총량(A)만이 아니라 밤에 공장 밖에서 개개인이 문화적 역량을 재충전한 비가시적 결과(B)를 합한 것이다. 최근 세계은행 발표에 의하면 한국은 A에서는 세계 11위에 달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49위라고 한다. 나아가 삶의 질과 문화적 역량은 더 형편없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렇게 A·B간의 괴리가 커질 경우 사회적 붕괴의 위험이 커진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환경오염과 지하철 참사 같은 물리적 위험만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사회문화적 위험들이다. 학교폭력과 ‘왕따’, 가출과 원조교제 및 외설문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전도, 정치적 부패와 모럴 해저드 만연 등이 그것이다.
2002년 월드컵 광장문화에서 촉발된 다양한 촛불시위와 최근의 탄핵반대 시위 등은 이런 ‘문화적 위험사회화’에 대한 국민 다수의 자연발생적 저항이자 창조적 대응이었다. 그러나 이 힘을 바탕으로 등장한 ‘참여정부’마저 성장제일주의에 종속되고 있어, 정부와 국민적 요구 사이의 간극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2. 국정과 사회의 문화적 리모델링
위험사회화를 방치해온 그간의 국정운영을 ‘문화적으로 리모델링’하기 위해서는 ‘문화영향평가(문화적 악영향에 대한 실태조사와 치유책 및 창조적 대안 제시와 정책 수정을 요구하는 총괄 평가제도)’를 실시해야 한다.
특히 교육정책의 문화적 리모델링이 시급하다. 현재 청소년들은 입시위주교육으로 감성과 인성의 황폐화와 신체적 불균형에 시달리고 있다. 만일 학교와 사회가 이를 치유할 수 없다면 미래 세대는 생존경쟁형 ‘인지 기계’로 변질될 것이다.
21세기 지식사회란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홍수’로 진통하는 사회다. 때문에 지식의 ‘양’이 아니라 ‘가치’를 판별하고 창조하는 판단력과 창의성에 역점을 둔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다. 지성만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역능을 키우려는 ‘문화교육’이 그것인 바, 사회문화적 위험사회화를 극복하고 사회적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새로운 주체형성을 위한 교육 패러다임이다. 이때 전제될 것은 ‘문화’ 개념의 ‘재구성’이다. 현재 지배적인 것은 엘리트주의, 경제주의에 찌든 상품소비문화이지 국민 다수의 문화적 역능을 증진하는 생명력 넘친 문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3. 문화 개념의 재구성
문화 개념을 ‘문화적 역능’ 중심으로 재구성하려는 것은 문화를 작품이나 문화상품 같은 ‘명사형’이 아니라 창의적인 능동적 활동이라는 의미의 ‘동사형’으로 이해하려는 것이다. 이런 동사형 문화 개념은 정신문화, 물질문화 같은 명사가 지닌 ‘대상화되고 고정적인’ 의미와는 달리 대상-주체, 환경-주체, 주체-주체 사이의 긴밀한 상호작용에 의한 상생적이고 역동적인 의미를 함축한다. 또 지식만이 아니라 감성·인성·상상력·창의력·신체적 건강 등 다양한 능력들의 복합적 균형이라는 의미를 지닌 ‘문화적 역능’ 개념은 주체를 단일한 실체가 아닌 이질적 능력들의 역동적 결합이라는 과정적 개념으로 이해하게 해준다.
현재 정치·경제적 민주주의를 넘어 문화민주주의가 주요한 사회적 의제로 부상되고 있는 것은 국민 다수가 그간 억압당해온 자신의 다양한 문화적 역능을 사용할 권리를 자각하기 때문이다. ‘문화적 역능’ 개념은 이렇게 사회가 강제해온 ‘반(半)인간 수준’에 대한 자각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혁명적 함의를 지닌다. 20세기가 정치혁명의 시대라면 21세기가 문화혁명의 시대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문화일보 6월 9일자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문화연대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