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헌사의 쟁점―⑺복원품을 보는 눈] ‘엉터리 복원’ 우수문화재 망신

유물 1100여점이 출품된 초대형 전시 ‘중국문화대전’. 진시황 동마차 등 대다수 유물은 진품이 아니라 진짜를 모방한 가짜였다. 진품을 모방한 복제품. 국보급 문화재를 무시로 해외에 전시하는 우리와 달리 외국에서는 복제품이나 진품 없이 연구를 토대로 만들어내는 복원품의 전시가 일상화돼있다.
잦은 전란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유독 유물 손실이 많았다. 고대 문헌으로 남아있는 것은 죽간(竹簡·대나무를 얇고 길게 깎아 문자 등을 새겨넣을 수 있도록 만든 것)과 목간(木簡) 몇 점이 전부. 그나마 죽간은 낱개로 엮여 있지 않고 목간도 화물표(물건에 붙이는 이름표)에 해당하는 단편적인 내용이다. 초기 유물 중 문헌학적으로 의미있는 물건을 찾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종이 문헌이 등장한 이후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두루말이,호접장,포배장 등 다양한 장정의 종이 문헌이 등장했지만 실물이 남아있는 건 많지 않다. 우리가 문화재의 복원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특히 문헌사 분야에서 복원은 절실하다.
◇복원 문화재,무엇이 문제인가
복원품의 수요는 많지만 아직 국내에서 복원은 활발하지 않다. 문헌 관련 유물 중 복원이 이뤄진 것은 목판 6종,목판본 2종,활자 21종,활자본 2종 등 모두 31종에 불과하다. 수량이 적은데다 전체를 복원한 게 4종에 불과해 미흡한 수준. 그나마 복원 과정이 제각각인데다 관리도 허술해 정식 복원품이라고 평가할만한 건 손에 꼽을 정도다.
지난 2001년 청주시가 중요무형문화재에게 의뢰해 복원한 목판본 ‘직지심체요절’ 상권은 첫 눈에 너무 초라하고 무성의하다. 책의 크기도 21.4×15.7cm로 일반적인 고려본보다 왜소하다. 얇은 종이를 사용해 두께도 고려본의 보통 두께인 10mm에 못미치는 6mm. 표지에 흔한 능화문(표지에 연꽃무늬 등 문양을 넣는 기법)도 없고 색상도 우아하지 못한데다 책장을 펼치면 종이는 너무 하얗고 섬유를 기계로 갈아서 고본의 분위기가 전혀 안난다. 자연 표백에 일일이 손으로 작업한 고려지의 품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수준이라면 거금을 들여 복원품은 왜 만드는가.
활자 복원 역시 현대적 기술을 이용해 편법으로 만든 게 대부분이다. 언뜻 겉모습은 비슷해 보이지만 해체하면 문제점은 바로 드러난다. 이를테면 밀랍 주조법으로 고려 활자를 복원하면서 치과주조용 석고계 매몰재를 사용하는 건 말이 안된다. 고려시대에 누가 석고를 사용했겠나. 2001년 청주시 발주로 제작된 활자본 ‘직지심체요절’ 상권 역시 활자를 진공법(주형 속을 진공상태로 만들어서 금속 용액이 진공의 힘으로 빨려들어가도록 하는 방법)으로 제작했다. 현대적인 기계를 사용해야 하는 진공법을 고려 시대에 썼을 리 만무하니 역시 엉터리 복원이다.
96년에 복원된 ‘직지’ 하권은 활자의 배열 상태가 원본과 너무 똑같아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현재 ‘직지’ 원본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고 우리 정부는 연구를 위해 원본을 복사하는 방식으로 복제본을 만들어 각 대학 도서관 등에 보급했다. 따라서 ‘직지’를 복원한다는 의미는 활자를 만들어 조판한 뒤 또 다른 ‘직지’를 찍어낸다는 뜻인데 아무리 장인의 기술이 뛰어나도 새로 조판해 찍은 책이 원본과 똑같을 수는 없다. 활자간 거리,각도,먹색의 농담 등은 달라야 마땅하다. 복원 과정을 공개해 ‘원본을 복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풀어야 한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청주 고인쇄박물관의 조선 초기 활자판 복원품이다. 활자판을 복원하면서 제작 과정이 복잡하다는 이유로 활자를 한자씩 만들어 조판하지 않고 한줄씩 조판했다. 여러차례 이를 문제 삼자 활자판을 뜯어내 하나씩 잘랐는데 이 과정에서 활자가 마모돼 아귀가 맞지 않게 됐다.
◇지금이라도 고치자
왜 엉터리 복원이 횡행하는 것일까. 우선 부족한 정부 지원 때문이다. 중요무형문화재 대부분이 생계도 어려운 상황이다. 적절한 지원 없이 옛 기술을 자긍심만으로 유지하는 건 힘들다. 부실한 관리 책임 역시 면할 수 없다. 중요무형문화재의 선정 과정부터 인맥과 편법이 작용해 엉뚱한 이가 무형문화재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기능이 떨어지는 이가 선정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실제 복원 작업은 하청업체가 맡아 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옛 방법을 그대로 재현한,치밀한 복원은 불가능해진다. 결과만 그럴싸하게 비슷해선 공예품은 될 수 있을 망정 복원품은 아니다.
정부는 우선 중요무형문화재 선정 과정을 투명하게 바꿔야 한다. 객관적 검증 절차를 만들어 최고 수준의 기능인을 가려내는 게 급선무다. 또 선정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관리,감독해야 한다. 복원 절차는 공개하고 복원품은 끊임없이 검증해야 한다. 충분히 지원하되 결과물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그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엉터리 복원품은 중요무형문화재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적 자존심의 문제다. 독일의 구텐베르크박물관과 일본 돗반인쇄박물관에 ‘직지’ 하권의 복원품이 전시돼 있다. 이외에도 전세계에 우리 문헌 관련 복원품이 다수 나가 있다. 혹 외국 전문가가 불성실한 복원품을 찾아내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엉터리 복원품을 다시 가져가라고 항의라도 받으면 무슨 망신인가. 어물쩍 넘어가려다 문화적 후진국으로 지탄받지 말고 잘못된 복원품은 수거해 다시 만들어야 한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아야 한다.
- 국민일보 6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