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미술, 길 위의 오아시스?
최태만/국민대교수 본집편집위원 사진/박원우, 김민곤
밖으로 나가자. 도시를 활보하자.
숨 막히는 빌딩들 사이로 우리의 눈길을 잡는 것들이 있다.
잠깐 다가서서 보면, 힘찬 동세가 일품인 동상이 있는가 하면,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나선형의 철이 있고,
쉬었다 갈 수 있는 빈 터의 꾸불거리는 조형이 있다.
그 안에서 잠시 미술에 기대어 하늘을 열어 보자.
왼쪽 페이지 홍대앞 어느 카페 입구에 그려진 벽화 ⓒ박원우
이른바 시테크란 게 있다. 말하자면 시간이 곧 돈이다. 하루를 분 또는 초 단위로쪼개 살아야 하는 도시에서의 삶은 그만큼 건조해질 수밖에 없다. 하긴 우리의 삶이 건조한 것 이상으로 도시자체가 건조하다. 한국의 도시들은 대부분 녹지공간이 절대부족인 상태이며, 밀집한 빌딩이나 아파트단지와 같은 집단주거시설이숲을 이루고 있다.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길 위에서 예술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한경쟁을 재촉하는 사회는 행인이 거리에 머물러 있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학생은 학생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뛰면서도 생각하고, 결정하고, 추진해야 한다. 이럴 경우 길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연결시키는 기능 이상의 것을 수행하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이 기계의 부속이 아닌 한 여가와 휴식을 통한 재충전은 꼭 필요하다. 그래서 콘크리트로 무장한 도시를 문화가 흐르는 삶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는 시민의 후생복지증진만큼 중요한 문제로 부각하고 있는 것이다.
1%의 예술, 환경미술을 설치하다 현대사회의 행정가, 도시공학자, 문화생산자 등의 전문가들이 공연장이나 미술관과 같은 문화시설의 확충 못지않게 거리의 예술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각박한 생존의 각축장을 살 맛 나는 장소로 바꾸기 위한 여러 대안 중 하나로 제시된 것이 이른바 환경예술이다. 물론 환경예술의 역사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한때 신전의 부속물로, 정치적 지배자나 영웅을 칭송하고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던 기념조형물과는 다른 맥락에서 주변환경을 부드럽고 미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에 따라 나타난 것이 바로 환경미술이다. 이 범주에는 비단 조각과 같은 덩어리를 지닌 예술품뿐만 아니라 벽화, 스트리트 퍼니쳐 뿐만 아니라 거리공연 등과 같은 자발적인 문화활동도 포함된다.
이런 환경미술을 법제화한 대표적인 나라가 프랑스이며, 프랑스는 이미 오래전에 1%법이란 것으로 도시환경미화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84년에 ‘건축물 장식’의 맥락에서 1%법을 도입했다. 그 내용은 어느 규모의 연면적을 지닌 건축물을 새로 건립할 때 총건축비의 1%를 환경조형물로 장식해야 한다는 것인데, 지난 아이엠에프(IMF)를 거치면서 이 조항은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고 건축주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0.7%로 완화되었다. 이 조항에 따라 80년대 이후, 특히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전후하여 서울을 포함한 국내의 여러 도시마다 많은 환경조형물이 설치되었다. 이러한 환경조형물이 모두 거리를 걷고 있는 시민들에게 사색과 휴식의 공간과 여유를 제공해 준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나마 살벌한 도시환경의 개선에 긍정적 역할을 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게 볼 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예술품이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 미술과 나는 무관하다는 선입견으로 이들을 애써 외면하거나 무관심했는지도 모른다.
왼쪽 서울올림픽 조각공원 ⓒ김민곤
오른쪽 수원시 월드컵 경기장 앞 환경조각 (류훈, 도약을 위한 몸짓) ⓒ박원우
기왕에 우리의 공적인 공간을 점유하고 있고 더러 우리의 세금이 투입된 작품이라면 당연히 우리는 그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 빠른 기간에 많은 환경조형물이 설치된 까닭에 논란과 시비도 많았지만 그중에서 우리의 건조한 일상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을 나의 삶 외곽으로 추방할 것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좋은 일이다.
서울올림픽 조각공원 입구에 세워진 탈조형물 (이승택) ⓒ김민곤
거리의 미술, 길 위의 쉼표 우리는 에펠탑을 단순히 관광명소로만 생각할 수 있으나 이것이야말로 대표적인 환경조형물 중의 하나이다.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만국박람회 때 완공된 에펠탑에 대해 많은 파리 시민들은 이 기괴한 철 구조물이 파리의 경관을 헤친다는 이유로 비판했으며, 만국박람회의 상징물인 에펠탑의 골조가 점점 높아지는 것을 보며 소설가 모파상은 “이 괴물이 꼴 보기 싫어 파리를 떠나야 겠다”고 푸념했다고 한다. 모파상은 건조하고 기계적으로 보이는 이 철탑 때문에 대리석의 도시, 벽돌과 청동으로 만들어진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의 우아하고 고풍스런 미관이 훼손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오늘날 파리시민이든 이 도시를 방문하는 관광객이든 에펠탑이 보기 싫어 파리를 떠나겠다고 투덜대지는 않을 것이다.
에펠탑이 축조된 지 30여 년 뒤에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자 혁명이념을 고취하고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세계만방에 과시할 목적으로 블라디미르 타틀린은 모스크바의 네바 강을 가로지르며 세워질 거대한 기념비의 설계에 착수했다. 에펠탑이 프랑스혁명 100주년이란 상징적 의미를 지닌 것이라면, 이 탑은 제3차 국제노동자동맹(코민테른)의 결성을 기념하는 것이었는데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이나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전인 지구라트, 에펠탑을 참조하면서도 타틀린은 혁명의 역동성과 사회주의의 발전된 미래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70도로 기울어진 거대한 철골구조물이 나선형의 골조에 의해 상승하는 형태로 설계했다. 에펠탑이 지상에서 수직적으로 상승하는 완벽한 대칭을 보여준다면 마치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져 있는 이 기념탑은 그런 만큼 훨씬 강렬한 역동성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혁명과 삼 년에 걸친 내전으로 국가경제가 위기에 처해있던 소비에트연방으로서는 이런 기념물을 위해 그 어마어마한 강철을 허비할 수 없었으며 게다가 레닌조차 이런 계획을 예술가들의 터무니없는 환상으로 치부했기 때문에 축소모형만 전시하는 것으로 끝나버렸으나 계획대로 이 탑이 세워졌더라면 소련으로서는 1931년에 완공된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보다 무려 25미터나 더 높은 현대적 구조물을 미국보다 먼저 가질 수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오른쪽페이지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만국 박람회때 완공된 에펠탑(기술자 A.G.에펠의 이름에서 유래. 프랑스 파리)
1964년부터 1%법을 시행한 이후의 프랑스는 특히 1980년에 미테랑의 사회주의 정권의 주도로 공공미술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졌다.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자크 랑은 의욕적으로 문화부 예산의 증액은 물론 공공 컬렉션의 확충과 함께 도시공간을 문화적으로 만들 수 있는 공공조형물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한편 ‘현대미술지역기금’를 설립했다. 당시 프랑스의 미술계 인사들은 “대중을 미술관이나 전시회 안으로 이끄는 대신, 공공미술로 확대하여 미술을 움직여 대중과 만나게 한다”는 계획을 실천하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파리의 중심부인 루브르미술관 앞에 있는 팔레 로얄의 안뜰에 1985년에 착수하여 그 이듬해 완공된 다니엘 뷔랭의 <두 개의 지평>인데 필자는 파리를 방문할 때 가끔 이 작품을 보기 위해서라도 그 장소를 찾는다. 그것에서 고전과 현대의 조화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퐁피두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퐁피두센터 옆의 분수조각은 장 팅겔리와 니키 드 생팔이 제작한 것으로서 작품 자체로서도 대중친화적인 까닭에 관광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공공조형물의 설치는 해당 공간을 생동감 넘치게 만들기도 한다. 이를테면 1984년 미국 텍사스의 윌리엄 광장에 이 지역의 특산물인 조랑말 무스탕을 모델로 만든 조각은 격자형의 기하학적이고 기능적인 건축물이 지닌 차갑고 비인격적인 분위기를 완화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본다. 아울러 신도시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환경조형물 설치계획을 수립, 현대적인 건축과 함께 52개에 이르는 조형물을 세운 파리 외곽 라 데팡스의 경우가 거리의 미술, 길 위의 쉼표로서 공공미술의 모범적 사례로 연구해야 할 대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홍대앞 시장골목, 일명 피카소 거리에 있는 벽화 (박원우)
왼쪽수원 올림픽공원(오의석,문) 수원나혜석거리(김도근 나혜석상) 박원우
생동하는 도시환경을 위하여 그럼 우리나라에는 이런 사례가 없는가? 한국 경제성장의 상징이자 현대서울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63빌딩 앞에 설치된 리차드 리폴드의 <한국의 정신>은 유리커튼으로 된 현대건축물과 잘 어울리는 움직이는 조각(Kinetic Sculpture)으로서 비록 길 위의 조각이 아니라 건축물 앞의 조각이기는 하지만 주변공간을 활성화시키는 특징이 있다. 미국의 프랭크 스텔라가 만든 <아마벨>도 한때는 흉물스럽다, 행인의 동선을 차단하고 보행을 방해 한다 등등의 이유를 들어 철거시비에 휘말리기는 했지만 나름대로는 거리로 나온 미술로서 의미를 지닌 것임에 분명하다. 우리나라 작가들이 제작한 환경조형물 중에서도 좋은 사례는 많다. 주변공간과 조화를 이루면서 보행인들에게 만남과 짧은 휴식의 장소가 되는 작품은 건조한 도시 속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것이다.
수원올림픽공원(김광우, 자연+인간+우연)박원우
우리는 지난 2002서울월드컵대회을 치루면서 수많은 청년들이 광화문으로 몰려나와 흥분한 청중들이 이순신 장군 동상위에 올라가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을 목격한 바 있다. 시각에 따라 민족의 영웅을 기념하는 동상에 올라가는 행위 자체를 신성한 것에 대한 불경으로 지탄받을 수 있겠으나 시민들은 정작 저 높은 곳에 계신 위대한 존재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경이 아니라 이 기념조형물이 시민과 함께 있다는 동질성의 확인이다. 기념조형물이 시위장소로 이용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경계를 구획해 놓고 그것을 침범할 경우 금기의 위반에 대한 제재나 처벌보다 시민들이 누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길 위의 쉼표로서의 조각은 바로 그런 것에서 존립의 근거를 지니기 때문이다.
- 기전 문화예술 2004년 5,6월호 28-33쪽 /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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