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헌사의 쟁점] 문헌유산의 보존과제…‘희귀본’구입 정부도 지갑 열어야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초 출처를 알 수 없는 초조대장경이 두차례 대량으로 고서점가에 등장해 학계를 들뜨게 했다. 몽골제국의 침입으로 사라진 초조대장경의 인쇄본으로 국내에는 한 권도 남아 있지 않은 희귀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들썩였던 학계와 달리 정부는 조용했다. 국립중앙도서관도,국립중앙박물관도 전적 구입에 나섰다는 소문은 들리지 않았다. 그들이 적어도 관심을 가졌다는 흔적조차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100축 정도의 초조대장경 중 77축은 사립인 호림박물관측에서,나머지는 일부 기관과 개인 소장가가 수집해갔다. 고전적에 대한 정부의 인식 수준에 실망한 사건이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고전적들
고려시대에는 대장경을 두 차례,속장경을 한차례 판각했다. 현재 남아있는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몽골의 칩입으로 초조대장경이 사라진 뒤 다시 새긴 재조대장경이다. 다행히 재조대장경은 경판까지 완벽하게 해인사에 보관돼있다. 하지만 경판이 파괴된 초조대장경은 인쇄본조차 국내에 한 권도 남아있는 게 없다. 적어도 80년대 후반 고서점가에 초조대장경이 대량으로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당시 연구자들은 초조대장경을 보기 위해 이웃 일본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초조대장경의 출현에 학계가 흥분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대장경이 어떤 책인가. 고려인들의 문화적 자긍심을 드러내는 척도이자 고려시대 정치,경제,사상 등 문화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책이다. 따라서 초조대장경 정도의 국가적,민족적 유산이라면 정부가 나서서 입수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마땅하다.
물론 고전적은 워낙 값이 비싸다. 국립중앙도서관 등 적은 예산을 가진 기관에서 고가의 고전적을 구입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예산 부족은 타당한 변명이 될 수 없다. 만약 초조대장경 정도의 물건이 나왔다면 특별예산을 편성해서라도,그게 아니라면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수집에 나섰어야 했다. 당시 정부의 대응은 예산 부족 때문이 아니라 무관심의 소치이거나 게으름 때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고전적에 관한한 우리 정부에는 수집과 보존에 대한 의식도,의지도 없다.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의 고문헌은 거의 전적으로 개인에 의해 수집,보관돼왔다. 가난한 연구자들이 생활비를 쪼개고,부유한 수집가들이 사재를 털어 하나둘 사모은 고전적은 사후에 국가에 기증됐다. 국가가 나서 수집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모아 국가에 바치는 방식인 것이다. 이 역시 결국 국가가 갖게 되는 것이니 수집한 것과 진배없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 소장가가 모은 전적 중 상당수는 중간에 파손되거나 유실되고 사후에 흩어져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무관심 속에 사라진 고전적은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다. 이웃 타이완의 경우에는 시중에 고서점이 아예 없다. 이미 국가 차원에서 고문헌을 수집,정리했기 때문이다. 고서점을 텅 비게 할만큼의 열정을 우리 정부에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개 대학이 기울인 노력만큼은 해야하지 않을까. 지난 68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은 한국학 연구를 위해 인사동 고서점가에까지 와서 고서를 수집해갔다.
◇해외로 빠져나간 고전적들

문화관광부는 지난 92년부터 해외 소재 전적문화재를 조사해 오고 있다. 이미 10년이 넘었으니 조사된 양도 적지 않다. 그러나 조사결과를 목록으로만 발행할 뿐 홍보하지 않아서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적극적으로 홍보하면 유력자의 힘도 모으고,연구자들에게 정보도 제공할 수 있을텐데 안타깝다.
현재까지 알려진 해외 소재 한국 전적은 10만권 정도로 추산된다. 일본에 약 7만권 정도가 여러 도서관,문고 등에 산재해있다. 미국의 의회도서관에 409종 2856권,컬럼비아 대학에 622종 2235권,버클리대학에 840종,하버드 대학에 약 3000권,기타 하와이 등과 유럽 지역에도 적지 않은 우리의 고전적이 있다.
소재 파악만큼이나 내력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해외로 유출될 때 정상적인 방법으로 나간 것인지,불법이 동원된 것인지를 규명하면 돌아올 수 있는 길도 열리기 때문이다. 만약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약탈된 것이라면 회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의 외규장각 도서와 일본이 임진왜란과 강점기에 빼내간 조선본들이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외규장각 도서는 1866년 병인양요 때 군대의 침탈로 나간만큼 그 유출 경로가 명백해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회수할 가능성이 높다. 다구나 미테랑 대통령이 반환하겠다고 약속까지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아직까지 세부협상에서 진전이 없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일본의 경우는 한일협정 조인 결과,극히 일부가 반환문화재로 돌아오긴 했지만 협상 과정에 전적 전문가가 참여하지 못해 거의 이용가치가 없는 것들만 돌아왔다. 남을 탓할 필요도 없이 우리 위정자의 협상력이 한심할 따름이다.
◇도서관에서 자고 있는 고전적들
수집돼 도서관에 쌓인 책이라고 다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전문 연구자들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를 잘 알 수 없다면 그 고서적은 집 잃은 미아나 다름 없다. 현재 우리 도서관 고전적의 가장 큰 문제는 각기 다른 분류와 편목의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일한 판본이더라도 이를 설명하는 정보가 기록돼있지 않아 실물을 봐야 확인이 가능한 경우가 태반이다. 이건 제대로된 편목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래 가지고는 고서목록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문헌유산이 아무리 가치있고 중요하다 해도,그것을 오늘날 이용할 수 없으면 가치는 반감된다. 옛 책을 수집하고 보존하려는 노력과 함께 잘 정리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끝>

- 국민일보 7월 6일, 조형진(강남대 인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