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 없는 나라]동남아에선<하>泰·베트남 기록보존소
빼어난 보존술…열대기후 극복 '기록 선진국'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답게 철저한 기록물 관리 정책에다 분산보존 형태의 유럽식 전통을 조합한 독특한 기록 시스템을 운영중이었다. 태국도 왕조시대 희귀자료인 유리로 된 ‘사진 건판(乾板)’ 자료를 다수 보존하는 등 일찍부터 국가기록 관리에 공을 들여 왔다. 취재팀과 동행한 국가기록원 남성운 박사는 “더운 지방이어서 기록관리에 허점이 많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체계적인 기록관리 제도를 운영해 왔다”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동·서양의 조화, 베트남=보존서고 3곳에 국가기록을 각각 분산 보존하고 있다. 과거 프랑스 지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베트남 기록물 관리의 가장 큰 특징이다.
제1보존서고(National archives center No.1)와 제3보존서고(National archives center No.3)는 수도 하노이에 있다. 제1보존서고는 1945년 이전 봉건시대와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역사기록을 보존하고 있으며, 제3보존서고는 중앙 행정기관을 비롯해 베트남 북부지역 기관이 생산한 기록을 관리하고 있다. 이중 제3보존서고는 국방부와 외교부, 공안부의 중요 문서들을 이관받아 이를 보존하는 핵심서고다. 호치민(옛 사이공)에 있는 제2보존서고(National archives center No.2)는 75년 이전의 월남과 통일후 남부지역 기관에서 생산한 기록물을 보존하고 있다.
이밖에 61개의 지방기록보존소(Archives Center)가 ‘성과 현’ 단위 지방 행정기관의 기록을 자체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중앙과 지방이 역할분담을 통해 국가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셈이다. 여기에다 사회주의 국가답게 베트남 국가기록보존소(The State Records and Archives Department of Vietnam) 산하에 6개의 본부 집행부서와 10개의 소속기관을 두고 있다. 이들 기관의 정식 직원만 300명에 이르렀다. 총책임자인 주석(Director General)은 우리나라의 차관급에 해당하는 고위직 관료가 맡고 있다. 행정자치부 산하에 2급 국장이 책임자로 있고 정식 직원이 136명밖에 되지 않는 우리나라와는 위상면에서 차이가 컸다.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태국=‘왕족들의 생활상을 담은 사진 건판 10만장’, ‘총 기록보존량 27 등 태국이 자랑하는 기록의 전통이다.
하지만 현재 태국 국가기록보존소(National archives of Thailand)의 최우선 정책은 보존기술의 개발과 향상이다. 이는 고온다습한 열대국가의 특성상 문서의 훼손과 멸실이 심한 때문이다. 따라서 싱가포르나 네덜란드, 일본 등 보존기술 선진국과의 기술교류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곳에서 기록물 관리 전문가를 초청, 기록관리 프로그램을 개선하는가 하면 외국에서 열리는 각종 세미나와 워크숍 등에 직원을 파견해 전통을 현대에 접목하고 있다.
태국 국가기록보존소는 문화부 산하 문화예술부 소속으로 최고책임자는 우리나라의 국장 급이다. 하지만 규모면에서는 훨씬 방대하다. 산하에 4개의 본부 지원부서와 1개의 영화필름 보존소를 비롯해 9개의 지방지소를 두고 있으며, 정식 직원만도 170명으로 우리보다 많다.
특히 2곳의 수상 기록보존소를 별도 운영하고 있어 아직까지 역대 대통령 기록물 전시관 하나 없는 우리나라보다 발전된 조직이라 할 수 있다.
◆한국 관련기록은=베트남에는 월남전 당시 한국군 파병협정 체결문서 등 관련기록이 상당수 남아 있다. 베트남 제2보존서고 관계자는 “서고에 한국 관련기록이 많이 보관돼 있지만 체계적인 정리를 하지 못한 상태”라며 “한국 정부의 공식 요청이 있다면 기록공개 여부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양국 교류 가능성을 시사했다. 베트남 정도는 아니지만 태국에도 한국 관련기록이 있다. 이들 기록은 한국전 파병 승인서와 태국 군인들이 작성했던 한국 동향보고서, 당시 외신기사 등이다.
베트남기록보존소 드엉 총책임자
“잘못된 정책에 대한 기록일지라도 폐기하지 않고 보존해 후세에 교훈이 되도록 하는 것이 국가기록보존소의 역할입니다.”
지난 5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난 국가기록보존소 드엉 반 캄 박사는 베트남의 기록관리 정신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국가기록보존소 총책임자(차관급)이면서 동남아시아 기록보존협의회(SARBICA) 의장직을 맡고 있다.
드엉 박사는 “잘못된 정책을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고 단지 부족한 정책이라고 보고 관련기록을 남기면 다음에는 이를 보충해서 더 좋은 정책을 만들 수 있다”면서 “이런 측면에서 기록 보존이 갖는 의미는 크다”고 언급했다.”
그는 “베트남에서는 문서를 생산하는 각 국가기관의 역할과 임무, 중요도에 따라 문서보존 기간을 각기 따로 정해 관리한다”며 “이에 따라 국방부와 외교부, 공안의 경우 30년, 중앙 행정기관은 10년, 지방은 5년이 지나면 기록보존소로 기록을 이관한다”고 밝혔다.
문서 폐기와 관련해 드엉 박사는 “임의폐기는 법으로 금지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단 각 국가기관에서 문서폐기 리스트를 작성해 보고하면 국가기록보존소가 이를 분석, 검토한 뒤 폐기를 결정한다”면서 은연중 베트남 국가기록보존소의 위상을 자랑했다.
드엉 박사는 “호치민시의 제2보존서고에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관련 기록이 많다”며 “앞으로 한국과의 교류협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록보존량 27㎣… 대부분 문서 공개
泰기록보존소 꼬라삔 책임자
“150년전 라마 5세 등 당시 왕족들의 생활상을 담은 ‘사진 건판’ 10만장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20년동안 태국 국가기록보존소에서 보존분야 책임자로 근무중인 꼬라삔 따웨따(45·여)는 “더운 지방에서 온전히 기록물을 보관하기란 쉽지 않지만 현재 기록보존량은 27나 된다”며 태국의 오랜 기록관리 전통을 자랑했다. 꼬라삔은 기록보존 정책에 대해 “각 국가기관에서 생산된 문서가 기록보존소로 이관되면 이를 영구보존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있는지를 평가한다”면서 “상태가 좋지 않은 문서를 우선 마이크로필름에 담아 보존하고 이후 열람토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각급 행정기관은 자체 생산한 문서를 25년이 경과하면 기록보존소로 이관하지만 의무조항이 아니다”라며 “국방부와 외교부의 경우 자체 보존시설을 갖춰 문서를 이관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또 기록 폐기와 관련해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법으로 임의 폐기를 금지하고 있다.
꼬라삔은 “각 행정기관이 폐기물 문서목록을 작성해 기록보존소로 보내면 기록보존소는 폐기 여부를 심의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2005년 태국에서 새로운 기록물관리법이 국회에 상정되는데, 이 법은 각 기관의 생산문서 보유 현황을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하는 규정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꼬라삔은 또 “국경 문제와 관련된 외교문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록을 공개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 세계일보 7월 15일자
특별기획취재팀=채희창·박병진·주춘렬·김형구·이우승기자
(specia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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