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창고
#5506
아트페어와 특성화
오광수의 아포리즘 / 아트페어와 특성화
6월 22일부터 제3회 한국국제아트페어가 열리고 있다. 14개국 125개 화랑이 참여한 이번 아트페어의 규모는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세계적인 화랑의 참가 부족과 작품의 높은 가격은 아직 한국 아트페어의 미진함을 드러내고 있다. 세계적인 아트페어로의 성장을 위한 조건 정비가 필요하다.
국제 아트페어, 과대평가는 아직 금물
지난 6월 22일 서울 코엑스에서 3회 한국국제아트페어가 열렸다. 올해는 한국을 포함해서 14개국 125개 화랑이 참여했다. 첫 해와 두 번째에 비해 장족의 발전을 엿볼 수 있는 내역이다. 국내 화랑 83에 비해 외국화랑이 42개란 것도 일천한 역사를 참작할 때 놀랄 만한 성과다. 그만큼 한국 국제아트페어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이야기다. 대개가 타진을 위한 조심스런 참여의 인상을 주곤 있긴 하지만 한국미술시장에 대한 기대심리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얼마 전까지 일본국제아트페어가 의욕적인 출발에 비해서 무참한 실패를 보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국도 그렇거니와 중국도 최근 국제 아트 페어를 연달아 출범시키고 있어 다소 의외로운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국제 아트페어가 실패한 주요 요인은 오랜 경제적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 있다. 일본의 미술계가 완전히 얼어붙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외국 참여 화랑들의 작품이 팔리지 않기 때문에 자연 외국화랑들로부터 외면당한 데서 그 주요 요인을 짚어 볼 수 있다. 한국이나 중국이 이런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란 기대는 성급하다. 우선 우리의 경우, 국내 미술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 얼어붙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 이후 최악이라는 어두운 경제 사정은 미술시장에도 무거운 구름장을 드리우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이 상하이, 베이징에 잇달아 아트페어를 출범시키고 있지만 시장경제체제의 경험이 일천한 수준에서 얼마큼의 발전을 기해 나갈지는 역시 미지수다.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있는 상황을 과대평가해서도 안 된다.
좋은 작품이 있는 곳에 고객이 모이기 마련
아트페어는 미술견본 시장이다. 예술적 논리보다 마케팅의 논리가 앞서는 곳이다. 이 점에선 일반 국제전(비엔날레, 트리엔날레 형식의)과는 차별화된다. 일반 국제전은 작품을 거래하는 마당이 아니라 일종의 실험의 무대라 할 수 있다. 비유컨대, 일반 국제전은 원자재를 그대로 제시하는 곳이라면, 아트페어는 원자재를 가공해서 상품화한 것을 시장에 내다놓는 곳이다. 전자가 일종의 도매상이라면, 후자는 소매상이다. 전자는 생산 공장에 원자재를 공급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개개인의 소비자에게 가공된 물품을 공급하는 곳이다. 양자가 다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전자는 아직 가공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거칠고 생경하기 짝이 없는 경우가 많은 반면, 후자는 잘 가공된 상태이기 때문에 접근하기도 용이하고 소유욕을 일으키기도 한다. 보는 사람들은 전자의 열기에 취할 수도 있고 후자의 안락함에 빠질 수도 있다. 미술 애호가들에겐 그만큼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일반 국제전이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내일의 전망을 가늠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라면, 아트페어는 화랑이 주축이 되기 때문에 각국 화랑들 간의 교류와 정보교환 등 실제적인 마케팅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세계화 열풍은 미술시장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쳐 국제적 네트워크의 구축이 절실히 요청되어지고 있다. 미술시장이 개방되어 외국의 화랑들이 몰려오고 한국의 화랑들이 세계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해외 아트페어에 참가하는 한국의 화랑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그만큼 성과도 적지 않다는 소문이다. 우리가 파는 것만큼 우리도 사주어야 한다. 밖에 것은 사주지 않고 우리 것만 팔겠다는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그것은 고립을 자초할 뿐이다. 비단 미술에만 적용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외국 작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 않은 실정에서 외국 작품의 구매력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가가 커다란 과제이다. 외국작가나 작품의 경우, 어느 정도 지명도를 지니지 않으면 보려고도 하지 않는 점을 감안한다면 구매심리를 자극할 수 있는 작품들이 공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한국국제 아트페어를 본 어떤 인사가 규모는 세계 어디에도 빠지지 않지만 지명도가 높은 작가나 작품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이 흠이라고 지적하였다. 고가의 명품이 군데군데 끼어 있어 전체적인 수준을 높혀야 된다는 주문이다. 그러자면 국제적으로 명성이 있는 화랑들이 참여하여야 한다. 현재 국제적으로 인기 있는 아트페어로서 바젤이나 마이아미 또는 쾌른 등에는 세계적인 화랑들이 앞 다투어 참가하려고 한다. 아트페어가 시들해지는 요인은 주요 화랑들이 빠져나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이 있는 곳에 뛰어난 고객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이 균형이 허물어질 때 행사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국 아트페어의 문제점
아트페어가 단순한 시장기능 만으로 만족되는 차원을 넘어 미술의 인프라 구축에 주요한 역할을 수해한다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계속 밖에서 북치고 노래하는데 방안에 틀어 박혀 있을 사람은 없다. 구경꾼을 모은다는 것은 시장을 형성하는 데 전제적인 조건이다. 물건을 사던 사지 않던 관계없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야 시장의 분위기가 조성된다. 설렁한 장판에서 사고 싶은 충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굳이 구입하지 않아도 장터는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신나게 마련이다. 그런 분위기에 젖어들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구매충동에 이끌리게 된다. 미술 인프라는 잠재적인 미술 인구를 더욱 확대하고 그들로 하여금 분명한 미술애호가가 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데 그 진정한 목표를 두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 우리 실정에 아트페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한국 국제 아트페어를 비롯해서 마니프 서울 국제아트 페어, 아트 서울전, 현대미술제, 서화 아트 페어, 서울 마스터피스 아트 포럼, 웨이브 아트페어 등 열 개 가까이 된다. 우리 시장 규모에 이렇게 많은 아트페어가 과연 적절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단순히 외양만 보아서는 대단히 활기 있는 미술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 많은 아트페어가 얼마만한 실적을 올리고 있는지는 모르나 비슷한 유형의 과다현상은 곧 포화상태를 유도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떤 것이 잘 된다 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몰려들어 종내는 전체를 망하게 하는 포화상태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목격해 왔는가.
미술견본 시장이란 다양한 작품들이 선뵈고 가격도 천차만별이어야 한다. 고가가 있는가 하면 누구나가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저가의 작품까지 가격의 폭이 넓어야 한다. 대체로 한국의 작품가격은 이 점에서 문제가 많다. 전반적으로 한국의 작품가격이 높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가격이 높은 것이 있는가 하면 낮은 것도 있어 균형을 유지해주어야 한다. 일방적으로 고가에 치우쳐 있으니까 한국의 작품 가격이 비싸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특히 해외 아트페어에 참여하는 화랑들의 이야기를 경청해보면 외국인들이 호기심을 갖으면서도 막상 가격을 물어보고는 발길을 돌린다는 것이다. 가격이 조금만 하향 조정되어도 많이 소화할 수 있을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아시아 미술 시장의 성공 가능성
서두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미술견본 시장은 각국의 많은 화랑들이 참여하여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세계화에 따른 인적, 물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마당이어야 한다. 미술시장이 더욱 활성화되기 위해선 이 같은 기본적인 조건들이 성숙되어야 하는 전제가 있다. 아시아 시장의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것이 한국이나 중국의 아트페어가 노리는 목표일 것이다. 그러자면 아시아 미술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과 세계화의 모델로서의 여러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주어야 한다. 서구의 화랑들이 또는 서구의 캐릭터가 아시아미술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흥미로운 볼거리와 놀라운 구매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아트페어가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선 적지 않은 문제들이 쌓여 있다.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타개해 나갈 것인가가 성공을 여는 첫 걸음일 것이다.
- 격월간 코리아아트 2004. 7,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