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숨었나 6조원대 도난예술품
551점의 피카소 작품, 43점의 반 고흐, 174점의 렘브란트, 209점의 르누아르 ‘대작’ 사라져

지난 8월 22일 노르웨이 오슬로 소재 뭉크 미술관에서 에드바르트 뭉크의 두 작품 ‘절규(The Scream)’와 ‘마돈나(Madonna)’가 대낮에 강탈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그림의 행방이나 범인의 윤곽은 완전히 미궁에 빠졌다. 오슬로 경찰은 아직 이렇다할 수사의 단서를 잡지 못했고, 범인들로부터는 그림 반환을 위한 가격 흥정 제의도 전혀 없다.
미술관 감시 카메라에는 복면을 한 2명의 범인이 권총과 칼을 휘둘러 여성 감시원 1명을 간단하게 제압한 뒤, 다른 관람객들이 보는 앞에서 그림 프레임을 벽에 고정한 강철 와이어를 끊어내는 장면이 찍혔다. 범인들은 그림을 떼어내는 과정에서 손을 베어 피가 흐르거나 지문이 남는 것을 막기 위해서 보호 장갑을 꼈다. 경찰은 수시간 뒤 도주 차량이 몇 ㎞ 떨어진 곳에 버려진 것을 발견했지만, 범인들이 증거 인멸을 노리고 차 내부에 스프레이를 잔뜩 뿌린 탓에 아직껏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범인들이 미술관 마당에 미리 대기시켜 놓은 차량에 그림을 옮기는 모습이 멀리서 한 관람객의 카메라에 찍힌 정도다.
뭉크의 ‘절규’는 모두 3점으로, 1994년 2월에도 릴레함메르 올림픽 개막식 때 오슬로 국립미술관에서 또 다른 ‘절규’가 도난됐다가 미술관 측이 석 달 만에 범인과의 협상 끝에 되찾은 적이 있다.
뭉크 미술관은 지난 9월 6일 “경보 체계를 강화하고 다른 보안 장치를 설치하기 위해 3주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가 촉발한 흥미 탓에, 미술품 강탈 사건 이래 첫 열흘 동안 뭉크 미술관에는 되레 4000여명의 관람객이 더 몰렸다.
도난된 뭉크의 두 작품은 앞으로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17만점이 넘는 ‘예술품 도난 목록(Art Loss Register)’에 일단 합류했다. 영국의 이 목록에 등록된 작품들의 총가치만도 약 30억파운드(약 6조1843억원). 도난된 ‘절규’도 정상적인 경매를 거치면 7000만달러(약 805억원)를 호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도난 예술품 절반 가량이 회화

‘예술품 도난 목록’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걸작 유화 ‘성모와 실패(Madonna with the Yarnwinder)’,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467점, 마르크 샤갈의 작품 289점, 영국의 낭만주의 수채화 작가 J.M.W. 터너의 작품 등이 포함된다. 또 1990년 미국 보스턴의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에서 없어진 요하넷 베르메르(Vermer)의 ‘콘서트(Concert)’를 비롯해 약 3억달러어치의 작품도 포함돼 있다. 베르메르는 ‘빛의 화가’ 렘브란트와 더불어 네덜란드 바로크를 대표하는 화가다.
또 최근 런던의 작가 에드워드 돌닉(Dolnick)이 작성한 ‘실종된 미술관’에는 551점의 피카소 작품과 43점의 반 고흐, 174점의 렘브란트, 209점의 르누아르 작품이 열거돼 있다.
인터폴(Interpol·국제형사경찰기구)이 이와는 별도로 작성한 약 2만점의 예술품 도난 목록에서도 절반 가량이 회화(繪畵)다. 인터폴은 예술품 절도를 마약 거래, 돈세탁, 무기 밀매에 이어 네 번째 규모의 범죄 행위로 본다.
절도 또는 강탈 방식도 가지가지다. 그러나 영화에 나오듯이 범인들이 신출귀몰한 수법으로 첨단 보안 장치를 뚫고 미술품을 훔쳐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1911년 프랑스 루브르 미술관에선 전직(前職) 미술관 직원이 경비원과 방문객들이 없는 시간대를 틈타 모나리자가 걸려 있는 전시실에서 프레임을 벽에 고정한 나사를 풀고, 계단에서 그림의 프레임을 떼어내 그림을 둘둘 말아서 빠져 나갔다. 모나리자는 이후 2년 뒤 범인으로부터 작품을 구입하려던 측이 경찰에 신고해 다시 회수됐다. 도둑인 이탈리아인 빈센조 페루기아는 나중에 ‘국민적 영웅’이 됐다.
1990년의 미국 보스턴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 강탈 사건은 한밤중에 경찰을 가장한 강도들의 “문을 열라”는 요구에 경비원들이 어쩔 수 없이 응했다가 범인들에게 제압당한 경우. 범인들은 이 미술관이 소장한 3점의 렘브란트 작품과 마네(Manet), 베르메르 작품 등 3억달러어치를 털어 사라졌다. 이후 범인들과 미술관 사이에 일부 미술품 반환을 위한 협상이 있었으나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여전히 이들 작품은 실종 상태다.
1964년 미국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에서 발생한 보석 절도 사건은 박물관이나 미술관 측의 보안 상태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준 ‘코미디’ 같은 사례다. 당시 박물관 측은 ‘인도의 별’이라는 563캐럿짜리 사파이어를 비롯해 여러 보석들을 전시 중이었다. 도둑들은 건물 밖으로 통할 수 있는 화장실 유리창을 낮에 열어 놨다가 밤에 들어왔다. 박물관 측은 ‘인도의 별’ 사파이어에만 경보 장치를 설치했는데, 공교롭게도 배터리가 죽어 있었다. 범인들은 보석들을 왕창 수거해 화장실 유리창으로 도로 나갔고, 나중에 범인들이 잡혔지만 이미 대형 보석들은 작은 보석으로 쪼개져 팔려 영원히 사라져 버린 뒤였다.
영국 옥스퍼드에선 1999년 12월 1일 밀레니엄을 경축하기 위해 사람들이 혼잡하게 몰린 틈을 타서, 500만달러의 가치가 있는 폴 세잔의 오베르(Aubers-sur-Oise)가 사라졌다. 이 작품은 아직까지도 실종된 상태다.
폴 세잔의 오베르, 아직 못찾아
그러나 도난된 미술품의 절대 대부분은 암(暗)시장에서조차 거래가 되기 힘들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도난품에 대한 목록이 작성돼 있어 미술상이나 경찰이 도난 작품이 거래되면 바로 알 수 있는 데다가, 개인 소장가라 할지라도 남 앞에 공개할 수 없는 작품을 구입하지는 않기 때문. 인터폴의 예술품 도난 전문 수사관인 칼 하인츠 킨트는 “영화 ‘토머스 크라운 어페어(The Thomas Crown Affair)’에서처럼 개인이 꼭꼭 감춰두고 혼자만이 즐기려고, 도둑맞은 미술품을 구입하는 일은 현실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간의 심성에는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 결국 범인들은 미술관 측에 장물을 되사라는 흥정을 하게 된다. 1994년 오슬로 국립미술관에서 ‘절규’를 훔친 범인들이 끝내 실(實)구매자를 찾지 못하고 노르웨이 정부에 100만달러를 요구하다가 결국 석 달 만에 모두 잡힌 것이 그 예다.
범인들은 훔친 예술품의 가치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는다. 2002년 프랑스에선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화려한 색채로 묘사한 프랑스 로코코 미술의 거장인 장 앙투안 와토(Jean Antoine Watteau)의 작품 등 모두 14억달러어치의 미술품을 훔친 범인이 붙잡히자, 그 어머니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이들 작품을 모두 잘게 썰어 운하에 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그렇다면 팔지도 못할 미술품을 왜 훔치는 것일까. 이번에 없어진 뭉크 작품의 절도 동기도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노르웨이 경찰 당국은 ▲제3자의 청부에 의한 절도 ▲그림 값을 노린 범행 ▲유명세를 타기 위한 범행 등으로 갈피를 잡고 있지만, 실제로는 ‘절규’나 ‘마돈나’와 같은 작품을 시중에서 파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유명세를 노린 범행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일부 전문가들은 뭉크의 작품 도난 사건이 발생한 8월 22일이 1911년 파리에서 ‘모나리자’가 도난당한 날과 일치하는 점을 들어, 미술품 절도범들만의 세계에서 범인들이 일종의 ‘실력 과시’를 통해 인정 받으려는 심리가 작용한 것 아닌가 본다.
거듭된 도난 사고에도 불구하고, 미술관들의 강·절도 대비 상태는 의외로 허술하다. 뭉크 박물관의 경우 도난 방지경보기가 작동하지도 않았고, 경비원들은 전혀 손도 쓰지 못하고 범인들에게 당했다. 이런 보안 체제상의 허점은 전세계 미술관·박물관이 겪는 공통적인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다만 미국의 미술관이 9·11테러 이후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안에 보다 신경 쓰는 정도다.
이 미술관들은 관람객들에게 미술품의 예술적 가치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도록 하면서, 동시에 보안을 강화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딜레마를 호소한다. 스웨덴 국립미술관의 보안 책임자인 얀 비르켄호른은 “감시카메라에 둘러싸여 미술품을 두꺼운 방탄 유리 속에 놓는 것은 관람객들이 그 작품을 직접 보는 경험을 잃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작품에 대한 보안 조치를 강화할수록 일반 관람객들과의 거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도 박물관 측의 보안 강화를 망설이게 한다.
무장 경비원들을 곳곳에 배치하는 것도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수네 노르드그렌 오슬로 국립박물관장은 “박물관에 무장 요원을 배치하면 강도들의 무장을 한층 강화하는 결과만 초래한다”고 말했다. 또 좁은 전시실에서 총격전 등의 충돌이 발생하면 경비원들이나 관람객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판단에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다. 스웨덴 현대박물관의 보안 책임자 매츠 로스월도 “인간의 생명보다 값진 예술작품은 없으며, 경비원들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드는 조치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해 무장 경비원 배치에 반대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미술관 관장은 “총기를 휴대한 경비원이 지키는 미술관 입구를 지나는 것은 관람객에게 즐거운 경험이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미술관들이 강·절도에 완전히 속수무책인 것은 아니다. 스페인의 주요 미술관들은 사설 무장 경비원들이 무전으로 각 전시실 상황을 점검하고, 입구에 금속탐지기가 설치돼 있다. 작품과 전시실마다 서로 다른 감시 체제를 도입하고 있는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한 대변인은 “작품 모나리자에는 습기 및 도난 방지를 위한 특별 보안 유리가 설치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작품들에 이런 보안 조치가 취해진 것은 아니다”는 것.
대작, 보험료 너무 비싸
르누아르, 세잔, 반 고흐의 작품이 특히 많은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의 니콜 리시 대변인은 “보안상 다 밝힐 수는 없어도, 경비원과 금속 탐지기 외에 매우 광범위하고 비밀적인 보안 장치를 갖췄다”고 밝혔다. 하지만 “무장 갱단이 기관총을 갖고 난입할 경우 미술관 측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고 실토했다. 2001년 스웨덴의 국립 미술관에선 무장 갱단이 무장 경비원들을 압도하고, 강철 와이어로 벽에 걸려 있던 렘브란트와 르누아르의 두 작품을 강탈해 갔다.
유럽의 미술관들은 막대한 양과 가격의 소장품에도 불구하고, 강·절도 대비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는다. 거장들의 작품일수록 보험료가 너무 비싸 예산상 보험에 들 수 없기 때문. 약 1000점의 그림과 3000점의 데생, 1만8000점의 판화를 소장하고 있는 뭉크 미술관의 경우 이들 미술품이 불이나 물로 피해를 입을 경우에 대비해 약 5억크로네(825억원 가량)의 보험에 들어있지만, 뭉크의 작품들이 ‘값으로는 따질 수 없는’ 고가품(高價品)이라는 이유로 절도에 대비한 보험료는 너무 비싸 보험에 들지 않았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미술품 보호 목적의 ‘아트워치(Artwatch)’라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제임스 벡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 또는 보관돼 있는 모든 미술품들을 보라. 이들 작품에 보험료를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계속 감시하는 일뿐”이라고 말했다.

- 주간조선 2004. 9.30
- 이철민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chulm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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