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의 지나온 발자취와 새 박물관
조국광복이 되던 해인 1945년 12월 3일 국립중앙박물관은 경복궁에서 역사적인 개관을 하게 되었다. 개관 후 처음으로 광복 1주년을 기념하여 <중요출토유물 특별전>이 열렸다.
그로부터 해마다 <고구려 고분벽화 특별전>, <고구려 유물 특별전>, <옥새 조약문서 특별전> 등이 열려 우리 문화를 풍성하게 하는데 기여하였다. ’46년에는 우리 손에 의한 최초의 발굴이 진행되었는데 그 것은 고구려 광개토대왕 호우가 출토되어 호우총으로 명명된 경주지역의 고분발굴이었다.
한 때 6.25 한국전쟁 동안 박물관은 북한의 점령 하에 들어 문화재의 북송위기를 맞기도 하였다. 9.28 서울 수복 후에도 2만여 점의 소장품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해야 하는 수난의 날을 보내기도 하였다.
1953년 서울로 돌아온 국립박물관은 그해 10월 남산으로 이전하였다. 이곳은 1950년 12월 국립박물관으로 흡수 통합된 민족학박물관이 있던 곳이었다. 혼란의 뒤 끝으로 이 곳에서는 <한국 현대 회화 특별전>, (54년)이 개최된 외에 이렇다 할 사업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였다.
국립박물관의 남산 생활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55년 6월 23일 남산을 뒤로하고 덕수궁 석조전을 수리하여 다시 이전하였다. ’72년 경복궁으로 이전하기까지 17년 동안 터를 잡았다. 이곳에서 <수정으로 본 동방미술>(’56년)을 비롯하여 <구라파 전시 고미술 귀국 보고전>(’62년), <백제 무녕왕릉 유물 특별전>(’71년) 등 40여 차례의 특별전을 개최하여 민족문화의 전당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한편으로는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국외 전시도 물꼬를 트기 시작하였다. 당시 미국(’57~’59년), 유럽(’61~’63년)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여 열린 <한국 고대 문화전>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이 오랜 전통을 가진 문화국가임을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발굴, 조사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어 ’90년대 들어 각지의 많은 발굴 조사 기관들이 그 역할 대신하기까지 국립박물관은 발굴조사 연구의 중추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였다. 연차적으로 진행된 지석묘 조사를 비롯하여 각 지의 선사유적 및 고분 조사, 강진·부안 등지의 도요지 조사 등 중요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역사의 중요한 하나는 ’69년 5월 성격이 비슷한 국립박물관과 덕수궁미술관이 하나로 통합·개편된 것이었다. 이 미술관은 1908년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황실박물관, 이왕가 박물관으로 이어져 온 한국 최고 컬렉션의 하나이자 최초의 근대적 박물관이었다.
1972년 국립박물관은 7월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개편되었고, 8월 25일 지금의 민속박물관 자리에서 세 번째 이전 개관하였다. 이 시기를 맞아 국립박물관이 양적 질적으로 발전을 거듭하였다. 주목되는 하나는 국립 지방박물관의 건립이었다. ’77년 신안 앞바다 중국 원대의 난파선 발견을 기회로 78년 광주에 국립박물관이 건립되기에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지방 출토 문화재의 현지관리와 지역문화의 창달을 위하여 지방의 중요 도시에 국립 지방박물관이 지속적으로 건립되기 시작하여 2002년 춘천박물관을 마지막으로 1 시·도 1 박물관 체제가 마무리 되었다.
다시 경복궁으로 돌아온 지 14년, ’86년 8월 21일 국립중앙박물관은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던 중앙청 건물을 개수하여 네 번째 이전하였다. 박물관 규모는 연 건평 18,000여 평, 22개 전시실에 전시 유물수량 6,000여점으로 크게 확장 되었다. 여기에는 한국유물 뿐 만 아니라, 중국, 일본, 중앙아시아 등 외국유물까지 전시되어 국제적인 박물관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1994년 한 해 동안 1,762,000여명의 관람객이 찾아오는 등 박물관의 면모 또한 크게 일신되었다.
그러나 중앙청 건물은 일제의 상징인 조선총독부 건물이라는 태생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 정부의 조선총독부 건물철거를 철거 방침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은 다시 서울 용산 가족공원으로 이전키로 결정되었다(’93년). 이에 따라 ’96년 당시의 사회교육관 건물을 증개축하여 용산 이전 전까지 이곳을 박물관으로 사용케 되었다. 중앙박물관은 이 곳에서 외적인 축소와는 관계없이 조사, 연구, 전시, 교육 등의 분야에서 더욱 확대된 박물관 사명을 활발히 수행함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용산 새 박물관 개관을 위한 준비를 차질 없이 추진하게 되었다.
이제 국립중앙박물관은 경복궁을 마무리하고 2005년 10월 개관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새 박물관은 부지면적 93,000여 평, 연건평 41,000여 평, 8,100여 평의 전시면적을 지닌 세계 6대 박물관으로서 동북아시아 중심 박물관으로 거듭나게 된다.
기존의 고고·미술·기증관 전시실 이외에 새로이 역사관과 동양관, 어린이 박물관 등이 신설되어 7개관 51개 전시실에 12,000여점의 유물이 전시된다. 또한 첨단 전시시설과 함께, 다양한 교육·문화 시설과 편의시설에서 단순히 보는 박물관이 아니라 보고, 듣고, 체험하고, 또 휴식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 곳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은 새 장을 넘겨 박물관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될 것이다.
- 필자 : 이귀영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 수록 : 박물관신문 399호 2004.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