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자마자 소멸하고 소멸하자마자 환생하는 것이 시간이다. 시간은 한시도 우리 곁에 머물지 않고 흘러간다. 2004년 우리 사회를 빛내던 별들이 하나둘 사라져 갔다. 사진을 찍어 시간의 한 조각을 붙들 듯, 올해 우리 곁을 떠난 인물들을 짚어보며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되돌아보자.
편집자주
[국내]
<정-관계>
이민우 前신민당총재·이한빈 前부총리
▲이민우(89세·12월9일)=전 신민당 총재. 1958년 4대 민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6선을 거쳐 1987년 정계를 은퇴할 때까지 한국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85년 2·12 12대 총선에서 김영삼·김대중 양김씨가 창당한 신민당의 총재를 맡으며 야당 돌풍을 일으켰다. 1987년 신민당 총재 시절 내각제 수용을 담은 ‘이민우 구상’으로 신민당이 분당사태로 치닫자 정계를 떠났다.
▲김동조(86세·12월9일)=전 외무장관. 10여년 동안 한국 외교사의 주요 현장을 지킨 ‘외교사의 산증인’으로 격동의 세월 한국 외교의 최일선에서 뛰었다. 1965년 한일협정과 베트남 파병, 박동선 로비파동 등 주요 사건의 중심에서 한국 외교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예준(81세·8월14일)=전 건설·상공·동자부 장관. 1967년 농림부 차관, 68년 경제기획원 차관 등을 거친 뒤 72년 제9대 건설장관, 73년 제25대 상공장관, 78년 초대 동력자원장관 등을 역임하는 등 경제 관련 장관 등을 두루 거치면서 60∼80년대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견인했다.
▲전철환(65세·6월18일)=전 한국은행 총재. 1963년부터 경제기획원과 교통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76년부터 충남대에서 교수로 활동했다. 외환위기 발생 후인 98년 3월 한은 총재에 임명돼 재직 4년간 중앙은행 총재로서 외환위기 수습에 일익을 담당했다.
▲홍성철(78세·5월2일)=전 대통령 비서실장. 1962년 해병대 대령으로 예편한 뒤 주미 대사관에서 근무했고 66년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맡으면서 관직의 길에 들어섰다. 70년대 내무·보건사회부 장관, 80년대 평통 수석부의장 등을 지낸 데 이어 6공화국 출범 후에는 청와대 비서실장과 국토통일원 장관을 잇달아 역임했다.
▲이한빈(78세·1월21일)=전 부총리. 경제기획원 예산국장 등을 거쳐 아주공대 학장 시절인 1979년 12월 ‘10·26사건’ 직후의 정치불안과 ‘제2의 오일쇼크’ 등 최악의 상황에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았다. 5·18 민주화운동 직후인 80년 5월21일 “스스로 책임을 물어 내각이 총사퇴하자”고 제안, 취임 6개월 만에 내각 총사퇴를 이끌었다.
<재계>
대한전선 설원량·조양상선 박남규
▲설원량(62세·3월18일)=대한전선 회장. 대한산업그룹 창업주인 고 설경동 회장의 셋째아들로, 1972년 대한전선 사장에 취임한 뒤 30여년간 대한전선을 중견그룹으로 키워냈다. 근검절약한 생활로 유명하다. 유족들이 국내 사상 최다인 1335억원의 상속세를 자진 신고해 화제가 됐다. 지난 3월 뇌출혈로 쓰러졌다.
▲장기하(72세·9월29일)=전 진로그룹 회장. 1958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국방대학원 교수 등으로 일하다가 84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뒤 이듬해 진로 고문으로 추대됐다. 이후 진로그룹 부회장, 진로주류식음료부문 회장, 대한사격연맹 부회장 등을 지내다 91년 회장 자리에 올랐다.
▲박남규(83세·2월26일)=전 조양상선그룹 회장. 1961년 그룹 모체인 조양상사를 세운 뒤 삼익선박, 제일생명 등 중견기업들을 잇달아 인수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2001년 조양상선이 자금 압박으로 파산선고를 받은 뒤 사실상 해체된 그룹의 재기를 보지 못한 채 지난 2월26일 눈을 감았다.
▲강석환(58·5월2일)=울트라건설 회장.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중소기업 울트라콘을 설립, 17년 만에 자산가치 1300만달러의 중견기업으로 키워냈다. 2000년 법정관리 상태인 유원건설을 인수해 회사 이름을 울트라건설로 바꾸고 구조조정을 벌여 지난해 매출 1500억원, 수주잔액 7500억원의 견실한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학계>
사학자 이기백… 한글학자 허웅·한갑수
▲허웅(86세·1월26일)=주시경, 최현배를 잇는 대표적 국어학자였다. 국내 최초로 음운학의 공시적·통시적 체계를 세운 ‘국어음운론’(1958), 최초의 언어학 개론서인 ‘언어학개론’(1963), 15세기 국어문법을 서술한 ‘우리옛말본’(1975) 등 수십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한글전용론을 주장하고 한글날 공휴일 폐지반대 운동을 펼치는 등 평생을 한글 연구와 보급에 힘썼다.
▲김진균(67세·2월14일)=진보사회과학계의 ‘맏형’이었다. 1982년 그가 문을 연 개인 연구실인 ‘상도연구실’은 산업사회연구회(현 산업사회학회)로 성장하며 당시 진보학술운동의 모태가 됐으며, 80년대 후반 이후 진보적 교수 운동과 학술 운동의 큰 틀로 자리잡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와 ‘학술단체협의회’도 그의 고민과 발품의 산물이다.
▲고병익(80세·5월19일)=1세대 동양사학자의 대표주자였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전통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서양학계의 연구방법론을 한국 역사학에 접목,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시아의 역사상’(1969), ‘동아시아의 전통과 근대사’(1984) 등의 저술 활동과 함께 서울대 총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 문화재위원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이기백(80세·6월2일)=한국사학계 1세대로서 ‘실증주의사학’의 태두로 평가된다. 1960∼70년대 일제의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데 앞장섰으며, 1980년대 이후에는 ‘한국사 시민강좌’ 등을 통해 국사 대중화에도 힘썼다.
‘한국사신론’(1967) ‘한국사학의 방향’(1978) ‘한국사학논집’(1996) 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이화여대 서강대 한림대 교수 등을 지냈다.
▲한갑수(91세·11월21일)=한글재단 이사장과 한글기계화연구소 이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한글 현대화와 보급에 힘쓴 한글학자였다. 특히 KBS 라디오 ‘바른말 고운말’ 코너에 30여년 넘게 출연했다.
<문화예술계>
구상·김춘수 시인… '빨간마후라' 황문평
▲구상(85세·5월11일)=연작시 ‘초토의 시’(1956)로 전쟁을 소재로 하나 고통을 초월해 구원의 세계에 이르는 과정을 견고한 시어로 잘 표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 시인이자 언론인이다.
기독교적 존재론을 기반으로 미의식을 추구하는 한편 전통사상, 선불교적 명상, 노장사상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정신세계를 수용해 인간 존재와 우주의 의미를 탐구하는 구도적 경향이 짙다.
▲어효선(79세·5월15일)=‘파란마음 하얀마음’ ‘과꽃’ ‘꽃밭에서’ 등 동시·동요 350편을 남긴 아동문학가이다. 새싹회 창립 동인으로 한국동요동인회 회장, 소천아동문학상 운영위원장 등을 지낸 그는 ‘한국 전래동요를 찾아서’와 ‘다시 쓴 한국 전래동화’ 등 한국의 아동문학사를 새롭게 정리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
▲김상옥(84세·10월31일)=시조시인. ‘조춘’ ‘백자부’ ‘다보탑’ 등으로 친숙한 그는 문화재 등 전통적 제재를 취한 회고적 작품이 주류를 이루며 섬세한 언어 구사를 통해 관념과 사실을 잘 융합시켜 민족 고유의 예술미와 정서를 형상화한 작품이 많다.
▲김춘수(82세·11월29일)=우리나라 시인들이 가장 애송하는 시로 알려진 ‘꽃’을 남긴 모더니즘 계열의 거목이다. 초기의 경향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영향을 받았으나, 1950년대 들어서면서 사실을 분명히 지시하는 산문 성격의 시를 써왔다. 그는 사물의 이면에 내재하는 본질을 파악하는 시를 써 ‘인식의 시인’으로도 일컬어진다.
▲황문평(84세·3월13일)=작곡가. ‘빨간 마후라’ ‘꽃중의 꽃’ ‘호반의 벤치’ 등 영화·드라마 주제가, 뮤지컬곡 등 900여곡을 작곡했다. 문화평론가로 한국 대중음악사를 정리한 저서들이 있다.
▲정은임(36세·8월4일)=MBC 아나운서. 1992년 입사해 95년 4월까지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을 진행하며 영화팬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여름 교통사고로 젊은 생을 마감했다. ‘행복한 책읽기’ ‘우리말 나들이’ 등 다수의 교양 프로그램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현재까지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종교계>
한국불교 세계화 숭산스님… 조용술목사
▲석주(95세·11월14일)=서울 칠보사 조실.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포교원장, 동국역경원장 이사장 역임. 평생을 역경불사에 바쳤으며, 한글대장경이라는 귀중한 한글 경전의 출현에 기여했다
▲숭산(77세·11월30일)=서울 화계사 조실. 한국불교 세계화의 주역으로 켄터키대 교수 출신의 대봉, 하버드대 출신 현각 스님 등 해외 30여개국에 5만여명의 서구 지식인 제자를 배출했다.
▲조용술(84세·11월15일)=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회장을 지냈다.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상임고문 등을 맡으며 복음 전파와 통일 운동의 선구적 삶을 살았다.
▲서돈각(84세·8월24일)=대한불교진흥원 이사장. 일생을 상법학 체계 구축과 불교 대중화에 바쳤다. 서울대법과대학장·동국대 총장과 학술원 회장 등을 역임했다.
[국제]
냉전종식기여 로널드 레이건
화장품업계 여왕 에스티 로더
아라파트 '팔'자치정부 수반
▲로널드 레이건(93세·6월5일)=전 미국 대통령. 영화배우에서 제40대 대통령에 올랐다. 1981년부터 8년간 풍부한 유머감각과 겸손함으로 미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퇴임 후에는 알츠하이머병으로 힘겨운 투병생활을 했다. 공급경제학 ‘레이거노믹스’를 추진해 경제호황의 발판을 마련했고, 우주에서 미사일을 요격하는 ‘스타워스’를 구상해 냉전 종식에 기여했다.
▲야세르 아라파트(75세·11월11일)=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35년간 팔레스타인 독립투쟁을 이끌었다. 1959년 무장단체 ‘파타운동’을 설립했다. 67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 96년 자치정부 수반이 됐다. 테러와 평화협상을 병행하면서 오슬로 평화협정으로 94년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말년에는 부패와 개인축재 등의 의혹에 시달렸다.
▲자크 데리다(74세·10월9일)=프랑스의 철학자. 플라톤 이후 수천년간 서구 철학을 지배해온 형이상학에 반기를 든 혁신적인 사유방식 ‘해체론’을 열었다. 텍스트는 불변의 의미를 지닌다는 기존의 사고를 뒤엎고 다극적 의미를 갖는다고 설파했다. 체코의 반정부 지식인을 지원하다 구금됐고, 동성애자 차별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말론 브랜도(80세·7월1일)= 배우.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 ‘대부’ ‘지옥의 묵시록’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등에서 열연했다. 1960년대 이후 북미 인디언의 권익 보호 운동에 매진했다. 73년 아카데미상을 거부하고 시상식에 인디언 출신 여배우를 보내기도 했다. 선 굵은 연기가 인상적인 그는 숨지기 전까지 영화 주연을 준비해 ‘영원한 영화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프랜시스 크릭(88세·7월28일)=과학자. 1953년 생명체의 유전 정보가 담긴 디옥시리보핵산(DNA)의 이중나선구조를 세계 최초로 발견, 62년 노벨상을 탔다. 생명공학산업의 기초를 일궈 다윈과 멘델에 견줄 만한 과학자로 평가된다. 그의 연구를 토대로 의사들은 유전자 치료법을 연구했고 경찰은 범죄수사에 DNA 증거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레이 찰스(73세·6월12일)=가수. 노래로 미국 내 흑백 통합을 이룬 흑인 솔 음악의 거장이다. 7세 때 시력을 잃고 15세 때 고아가 됐으나 천부적인 자질로 13차례나 그래미상을 받은 천부적인 가수이자 작곡자였고, 연주자이자 프로듀서였다. 히트송 ‘아이 캔트 스톱 러빙 유’는 한국에서도 유명하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96세·8월3일)=사진작가. 1930년대 초부터 카메라를 들고 스페인 내전, 중국의 공산혁명, 마하트마 간디 암살 등 20세기 주요 역사 현장을 누비며 기록으로 남겨 다큐멘터리 사진의 전형을 제공했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또 다른 거장 로버트 카파 등과 사진 전문 통신사 매그넘의 창립을 주도하며 포토저널리즘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74세·7월6일)=독일의 전설적 지휘자. 베를린 필하모닉 등 특급 악단의 영입 제안도 거절하고 음악적 자유인으로 살았다. 그가 지휘한 ‘브람스 교향곡 4번’ ‘베토벤 교향곡 5, 7번’이 걸작으로 꼽힌다. 음악인들이 가장 협연하기를 원하는 지휘자였으나 연주와 녹음에 만전을 기하는 완벽주의자여서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았다.
▲천성선(陳省身)(93세·12월3일)=중국 출신의 세계적 수학자. 25세에 독일 함부르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프린스턴을 비롯한 미국 주요 대학에서 기하학 등을 강의하며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그가 창안한 가우스·보넷 공식을 증명하는 데 사용한 ‘전이(transgression)’라는 새로운 개념은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힌다. 중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수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울프상을 받았다.
▲폴 스위지(93세·2월28일)=학자·언론인. 미국 사회주의 이론지 ‘먼슬리 리뷰’의 편집장. ‘자본주의 발전의 이론’ ‘독점자본’ 등 20여권의 저서와 100여편의 논문을 남겼다. 1949년 ‘먼슬리 리뷰’를 창간하면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기고문 ‘왜 사회주의인가’를 실은 것을 비롯해 사르트르, 체 게바라 등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글을 실어 주목을 받았다.
▲프랑수아즈 사강(69세·9월24일)=소설가·극작가. 소르본대 학생이던 19세 때인 1954년 발표한 베스트셀러 소설 ‘슬픔이여 안녕’은 2차대전 직후 허무와 고독이 지배하던 상황에서 ‘10대 반항’을 상징했다. ‘어떤 미소’ ‘뜨거운 연애’ 등은 남녀의 미묘한 심리를 담담한 필치로 묘사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말년에는 마약 복용 혐의로 두 차례 기소되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리브(52세·10월10일)=배우. 1978년 ‘슈퍼맨’의 주인공으로 발탁돼 83년까지 3차례 시리즈에 출연하며 사랑을 받았다. 95년 승마대회에서 낙마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됐으나 좌절하지 않고 휠체어를 타고 영화에 출연하고 정상인 못지않게 사회활동도 펼쳤다. 미국 정부의 줄기세포 연구 지원 중단을 규탄하며 황우석 박사팀의 연구를 지지하기도 했다.
▲에스티 로더(97세·4월24일)=화장품 브랜드 ‘에스티 로더’의 창업자. 미 화장품업계의 여왕으로 꼽히는 그가 창안한 ‘공짜 샘플’과 ‘고급매장’ 전략은 20세기 모든 마케팅의 표본이 됐다. 뉴욕에 본사를 두고 현재 세계 130여개국에서 50억달러어치의 화장품을 판다. 1998년 타임이 발표한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 천재 경영자 20명’에 여성으로서는 유일하게 선정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