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화 / 새로운 조형방식 추구와 모색
한국화가 처한 질곡의 상황이 올해라고 해서 특별히 개선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매년 느끼게 되는 부진의 악순환이 여전한 셈이다. 물론 물리적인 전시 빈도의 증가나 한국화를 추구하는 작가군의 증가는 여전하지만 전반적인 느낌은 방향 상실의 무기력함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답답하고 침체된 양상 그 자체이다. 특별한 이슈나 흐름조차도 찾아보기 어려운 오늘의 한국화 상항은 이제 부진, 혹은 불황의 정도를 넘어 무관심에 까지 이르고 있다 할 것이다. 이는 새로운 환경에서의 한국화에 대한 올바른 가치 확인과 방향 설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단순한 형식 답습에 흐르거나, 편의적인 절충주의, 혹은 방만한 실험의 무분별한 수용 결과 그 정체성마저 모호해진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과연 “한국화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이 새삼 절실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사실 오늘날 한국화의 외연은 이미 전통적인 기준이나 시각으로는 수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확대되어 있다. 한국화에 대한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정의와 구분은 오늘의 한국화가 처한 모호한 미망의 상황을 타개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조건일 것이다. 이는 한국화가 지니고 있는 독특한 조형 체계와 심미 습관, 그리고 감상 방식에 대한 인정과 학습을 통해서 가능해 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조건이 선행되지 못한다면 한국화에 대한 논의 자체는 별반 구체적인 성과를 확보하기 어려울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보수적인 입장에서 지난 한 해의 한국화를 조망해 본다면 몇 가지 특징적인 내용들을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실경 산수의 양적 팽창이 두드러진다. 관념 산수의 자리를 대신한 실경 산수는 이제 산수의 대명사로 정착되고 있다. 우리 자연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대자연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그 기운을 획득하고 이를 통하여 본래의 산수 정신을 회복코자함이 실경 산수의 궁극적인 취지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실경 산수는 풍경화의 투시법과 원근법을 차용하여 이를 수묵과 담채로 표현해 내는 절충적인 모양에 머물고 있음은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근자에 들어 독특한 시각과 해석력을 바탕으로 실경은 물론 도시 풍경이나 일상적인 내용들을 새롭게 해석해 보고자하는 일단의 청년 작가들이 등장하고 있음은 주목해 볼 가치가 있는 의미 있는 현상이라 할 것이다.
천연 염료와 옻칠기법, 한지 기법, 벽화 기법 등 새로운 조형방식의 추구와 모색 역시 경직된 채색화의 폐단을 보완해 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경향들은 상대적으로 온건하며 안정적이라는 특징이 있는 것들로 그 성과와 가능성은 관심 있게 지켜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상철│공평아트센터 관장
■ 서양화 / 스터디로서의 회화
회화란 일정한 평면에 눈속임(환영)을 불러일으키는 일련의 장치를 말한다. 세계와 내가 관계 맺는 매개로서 호화는 여전히 의미있는 그 무엇이다. 90년대 들어와 우리 미술계에 포스트모더니즘과 대중문화 등에 대한 담론이 활성화되고 이에 걸맞는 첨단 매체들이 조명을 받기 시작할 때, 성급한 사람들은 회화가 고급한 예술이라는 죄목으로 그리고 보수적인 매체라는 이유로 회화는 죽었다고 떠들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새삼 미술의 위기를 말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달라져야할 미술의 개념에 대한 논의의 촉발이 더욱 요구되었어야 했다. 지나치게 서구미술에 의존하면서 그곳에서 논의되는 것들이 순식간에 우리의 문제 인냥 호들갑스럽게 받아들이고 그에 뒤쳐져서는 안된다고 악을 써대는 모습이 조금은 희화적이고 더러 슬프다. 회화의 위상과 문화환경이 변하고 세상은 변했지만 한국적인 상황에서 제대로 파헤쳐져 본 적이 없는 회화에 관한 문제는 사실 여전히 미완의 장이다. 좀 거칠게 말해본다면 우리에게 회화는 기껏 서구 재현회화의 외피만 흉내낸 어정쩡한 구상회화 내지 서구형식주의미술의 ‘짝퉁’에 불과한 추상미술 등이 존재했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올 한해 나로서는 흥미로운 회화작업을 비교적 많이 접한 편이다. 젊은 작가들 중 회화에 관한 흥미로운 작업들 역시 자주 눈에 띈다는 생각이다. 현재 진행되는 그 회화들의 특성은 오늘날 급변하는 문화환경 속에서 회화의 향방과 화가의 위상을 질문하는 기류를 은연중 반영한다. 따라서 그것은 그림에 대한 그림, 일종의 '메타-그림'의 성격을 띄고 이루어진다. 그런데 개념적인 성격을 지니면서도 철저히 개념적인 차원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이며 감정을 자극하는 회화의 오랜 전통 또한 밑자락에 깔고 있다. 아울러 그림 그리는 자신의 자의식과 여전히 그림이 무엇이며, 무엇일 수 있는가를 질문해 보는 작업들이 두드러져 보이는 한편 이전과는 무척 다른 독특한 회화의 양상들을 전개해나간다. 나로서는 이러한 그리기의 정체성과 가능성을 타진하는 회화들이 ‘스터디로서의 회화’로 이해된다. 올 한해 그런 작업들이 눈에 띄었다. 민정기의 ‘먼길을 걸어가듯이’전, 김경인의 ‘소나무’그림, 정주영의 ‘경계위의 산’, 박주욱의 네가티브 필름 이미지를 사용한 그림, 그리고 공성훈의 ‘벽제의 밤’과 임안나의 밤풍경, 김을과 김태헌, 문성식의 드로잉작업, 김지원의 ‘맨드라미’연작과 함명수의 ‘정물’. 김보중의 ‘숲-생태풍경’, 그리고 윤정선의 흐릿한 정물과 풍경그림(최근 영국회화의 한 경향들이 엿보이긴 하지만), 한순자의 근원적인 추상회화 등등이 올 한해 기억에 남고 의미 있는 회화전시였다.
박영택│경기대교수
■ 조각 / 괄목할 만한 전시들
올해는 조소예술 분야에서 주목할만한 개인전이 많이 열린 해로 기억된다. 물론 여기에 기록하지 못한 우수한 전시도 많았지만 비교적 많은 관심을 끌었던 전시로 류인5주기 추모전(2.18~3.7, 모란갤러리), 안규철(3.5~4.25, 로댕갤러리), 이원경(3.10~3.16, 인사아트센터), 홍명섭(3.26~4.25, 마로니에미술관), 박소영(4.2~4.16, 가갤러리), 박충흠(5.7~6.27, 환기미술관), 김주호(5.7~5.20, 학고재), 김인경(5.19~6.2, 모란갤러리), 정현(6.4~7.2, 김종영미술관), 박원주(6.6~7.16,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이상길(7.9~7.18, 갤러리 인), 김주현(8.25~8.31, 갤러리 피쉬), 함진(8.28~9.21, pkm갤러리), 김세일(9.1~9.12, 선아트센터), 이기칠(9.3~9.30, 김종영미술관), 최태훈(9.8~9.20, 갤러리아트사이드), 최인수(10.2~10.13, 금산갤러리), 김석(11.2~11.12, 갤러리우덕), 이용덕(12.15~2005.1.4, 표갤러리), 황지선(12.3~12.17, 갤러리인), 구본주 1주기전(12.8~12.28, 사비나미술관, 덕원갤러리, 인사아트센터), 신현중(12.15~12.25, 스페이스 셀) 등을 들 수 있다. 영상설치작업이면서 조각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는 이한수(3.26~4.6, 덕원갤러리), 육태진(4.14~5.4, 덕원갤러리), 홍성민(5.8~5.29, 대안공간 루프), 전준호(7.8~7.29, 포스코미술관) 등의 전시도 기록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대안공간의 활발한 활동 속에 올해 새로 문을 연 스페이스 셀이 홍장오, 백주연, 최수앙, 최수정, 김미경, 노준, 나점수, 김연희, 이형욱, 신현중 등의 신인과 중견작가를 포괄하는 개인전을 통해 특징 있는 전시공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도 특기할만한 일이다.
외국작가의 전시로는 안토니 카로(1.9~2.29, 서울시립미술관), 귄터 위커전(3.4~3.31, 갤러리현대) 등이 기억되지만 이미 평가가 완료되거나 자기세계가 확립된 작가의 소개란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 올해 여름 최일이 일본의 오이타에서 열린 조각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내의 조각상과 공모전 수상작가로서 김세중조각상 김인겸, 김세중청년조각상 유영호, 제6회 모란조각대상 김상균, 제8회 김종영조각상 김승환이 있다. 복권기금으로 조성된 ‘올해의 예술상’ 미술분야에 김인경, 박충흠이 우수상으로 선정된 것은 그만큼 조각분야의 전시가 괄목할만한 것이었음을 반증하는 자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상의 제정으로부터 온라인공모, 추천, 심사에 이르는 과정이 지나치게 짧을 뿐만 아니라 거액의 상금이 기초예술육성에 얼마나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급속하게 추진된 문제를 남겼다. 덧붙여 이 글이 제한된 지면으로 전시만을 거론하는 까닭에 미처 다루지 못했지만 내년에는 공공미술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실천을 위한 논의가 조각계에도 폭넓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최태만│국민대교수
■ 공예 / 열악한 공예 문화 진흥
올해 공예계는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기획전의 현저한 약화와 대관 개인전의 범람을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전적으로 공예전문화랑이나 공예미술관의 부재에 기인한다. 이른바 공예진흥의 한 축을 감당하여야 할 공예문화진흥원은 무엇 때문에 설립되었으며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공예를 진흥하겠다고 하는 정부산하기관이 장소임대인 대관으로 그나마 열악한 처지의 공예가들의 개인, 그룹전을 연중 끝없이 채워나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역행적인 공공기관의 역할 상실 속에서 ‘치우금속공예관’이 개관한 것은 공예계의 새로운 희망이자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금속공예가인 유리지 교수가 사재를 털어 공예관을 개관하고 첫 개관전으로 <제안전>과 세미나를 개최한 것은 향후 그 활동과 더불어 그 의의가 자못 크다 하겠다. 이 금속공예분야의 쾌거와 더불어 섬유, 도자분야에서 주목을 요하는 이벤트가 있었다. 그것은 대구광역시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섬유, 패션산업의 육성책으로 대구전시컨벤션센타에서 개최한 <2004대구텍스타일아트도큐멘타전>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올해의 작가-김익영, 윤광조전>이었다. ‘혼성의 정원’이라는 주제로 열린 본 전시에는 국내섬유예술가 65인, 조안 리빙스톤 등 외국의 저명한 작가 4인이 초대되어 섬유예술계의 유례없는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올해의 작가-김익영, 윤광조전>은 주로 회화, 조각중심으로 연례적으로 기획되었던 것에서 탈피하여 한국 도예계의 대표적 작가인 김익영과 윤광조를 전격적으로 부상시킨 것이었다. 이 회고전 형식으로 구성된 두 작가의 전시회는 현대도예의 예술성, 전통의 현대적 구현에 관한 일반 대중의 인식을 한 차원 격상시킨 것으로 현대공예사의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될만하다. 올해 열린 섬유공예분야 개인전으로는 <이성순전(갤러리 목금토, 현우디자인)>, <김정식 종이조형전(종로갤러리)>, <김영순전(조선화랑, 코엑스, 백송화랑)>이 돋보였다. 도예분야의 그룹전으로는 <그릇의 조형전(갤러리 우덕)>, <천년의 색-레드전(가나아트갤러리)>이, 개인전으로는 <이헌정전(아트사이드넷 갤러리), <임미강 도예전(가나아트스페이스)>을 꼽을만하다. 목칠분야는 분야의 성격상 개인전과 그룹전을 막론하고 참신한 기획성을 엿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인데, 이 와중에서
장동광│독립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