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단장한 용산 중앙국립박물관이 44일 만에 100만 관람객을 흡인했다는 소식은 우리 관람문화에 새로운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 문화의 대들보이자 사립박물관과 미술관의 맏형인 국립박물관에 생긴 이 놀라운 현상에 큰 기쁨을 느끼면서 동시에 목젖을 밀어 올리는 부러움과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이제 공룡처럼 커진 맏형 앞에서 상대적으로 더 초라해진 사립박물관의 처지가 그 어느 때보다 확연히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박물관이 그 나라의 문화의 키를 가름하는 잣대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우리나라의 박물관은 오랫동안 변방지대에 놓여 있어서 경제규모에 비해 형편없이 왜소한 문화 기형아로 자랐다. 단순히 박물관 수만 보아도 일본 3494개, 미국 1만여 개, 독일 4034개로 377개에 불과한 우리보다 모두 10배 이상 많다. 그중에서도 그 나라의 문화 속살과 같은 사립박물관은 그 수나 수준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열악하다. 현재 국공립.대학.기업이 세운 박물관을 제외한 순수 개인 박물관.미술관은 110개로 100만 점이 넘는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이 확고히 자리 잡은 선진국과 달리 수집부터 박물관 건립 운영까지 모두 관장 한 사람이 해결해야 하는 우리의 사립박물관은 90% 이상이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수입원인 입장료로는 유지비의 10%도 충당하지 못하는, 어디에 내보일 수 없는 부끄러운 문화의 한 자락이다.

핑크빛 꿈을 움켜쥐고 박물관 준비로 뛰어다니던 어느 날, 가까운 친구는 "내가 잘 아는 사람도 희망에 차 박물관을 시작했는데 3년을 못 견디고 온몸에 독촉장만 가득 붙이고 접었어. 그냥 귀한 물건 팔아 쓰면서 편안한 노후를 즐기지 왜 그런 일을 하려고 해"라며 쓴 충고를 해주었다. 그 당시에는 정말 말 같지 않아 자신 있게 밟아 버렸던 그 말이 요즘 자꾸 되새겨진다.

27년 전 아프리카 장신구에서 받은 전율과 감동으로 장신구의 노예가 된 뒤 귀한 유물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목숨이 위태로운 길도 서슴지 않았고 적지 않은 봉변도 당했다. 그래서 소장품 하나하나에는 모두 사연이 깃들어 있고 감동의 진동표가 내장돼 있다. 이렇게 수집한 소장품을 대중과 공유하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었고 그래서 박물관을 세웠다. 대사직을 은퇴한 육십 넘은 남편과 작은딸은 학예사 시험에 동반 합격해 실무에 힘을 실었고, 유럽에서 활동하던 큰 아이는 그곳에서 박물관학 석사를 했다는 죄목(?)으로 두 말도 못하고 불려 들어와 힘을 합쳤다. 이렇게 온 가족이 무보수로 무한정의 시간을 앞뒤 가리지 않고 매달려 지낸다.

국.공립박물관과 달리 한 개인의 열정과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세운 사립박물관은 문화의 구중궁궐처럼, 들여다보면 볼수록 소장품들이 전문적이면서 독특하고 뒷얘기도 많다. 권총을 맞고도 원하는 귀한 물건을 놓치지 않으려고 지구 끝까지 달려간 S관장, 도로도 없는 산간벽지에서 외롭게 문화 등대를 켜고 지역사회를 보듬는 K관장, 폐교를 박물관으로 바꿨지만 기본 공과금도 못 내 붉은 딱지를 맞은 L관장 등 이들을 바라보면 외곬의 열정과 고난의 흔적이 고약처럼 엉겨 붙어 있어 마치 문화 내림굿을 받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들은 오랫동안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찬 짐을 메고 걸어온 외로운 문화 투사들이다. 이들에게 정부 당국의 지원정책 수립, 기업 메세나의 활발한 협조, 국민의 애정 어린 마음이 뿌려진다면 머지않아 사립박물관들로부터도 100만 명 돌파 기념식의 초대장을 듬뿍 받는 날이 올 것이고, 그때 우리의 문화는 또 하나의 자랑스러운 장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일보 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