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기획]6인의 평론가가 본 2004 예술계-③미술
[제도 개혁 속에 ‘공공성’ 화두로: 중진 작가 돋보여]
▲ 50만이 넘는 인파가 몰린 <색채의 마술사 샤갈>전.
본지는 2004 예술계의 이슈나 주목할 만한 활동들을 각 장르별 평론가의 시각으로 정리한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매년 연말마다 각종 매체의 기획들이 한해를 정리하지만 학습노트마냥 정리가 잘된 기사들 속에 등 푸른 생선처럼 펄떡거리는 예술의 생동감을 모두 담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이에 본지는 필진 개개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2004년 예술계 연재를 통해 각 장르 예술판에서 이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을 기대합니다. 연재는 음악, 영화, 무용, 미술, 연극 문학 등 각 장르별 6회에 걸쳐 진행될 예정입니다. 독자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편집자
임산. 시각문화연구, 미술비평 cennini@naver.com
2004년 한해 미술계의 주목할 만한 특징 몇 가지를 간추려 보려한다.
우선, 미술인 대부분은 연초부터 벌어진 어느 온라인 게시판에서의 뜨거운 논쟁을 기억할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니 그 사건은 2004년 미술계의 주된 흐름을 예고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문예진흥기금 미술분야 지원심의의 공정성 문제로 불거진 그 사건은 논쟁 당사자들의 주장의 방법과 진의를 떠나 미술계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전반에 걸쳐 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래서 올 한해 행해진 생산적 논의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일정 정도 긍정의 의미를 가진다. 그 후 문화예술진흥원을 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하는 문제에 관한 구체적 논의의 장이 미술계 내부에서 마련되었고, 문화관광부의 ‘새예술정책’의 시각예술부문 역시 미술인들에게는 중요한 이슈였다. 또한 4월에 출범한 기초예술연대에 미술계에서도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여름에는 정부의 국립현대미술관 책임운영기관 지정과 관련하여 많은 이의 제기가 있기도 했다.
미술인들은 2003년에 ‘미술인회의’라는 이른바 동업자 조직을 꾸린 후 현실 환경에 개입하는 권력과 관리에 순발력 있게 대응해 왔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제도와 정책으로 자신의 문화적 권리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 것이다. 특히 창조․교육의 분야에서 국가의 의무를 강제해 내면서도 스스로의 전문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자율적 조직의 구축과 연대에 힘을 써 왔다는 사실은 미술계의 앞날을 밝게 해 준다. 이렇게 2004년은 다양한 제도의 실험과 개혁에 분주한 해였다.
반면, 올해 미술 시장은 우리의 역사와 환경에 맞도록 작품을 전시하고 선전하고 유통하고 판매하는 시스템을 제대로 꾸리지 못한 채 여전히 불투명하고 편중된 시장모델을 운용했다. 일부 국내 작가의 작품이 한류 덕택에 해외 경매시장에서 고가에 낙찰되었다느니, 부자 컬렉터들이 작품을 기증했다는 사실 등이 일간지에 자랑스럽게 보도된 바 있다. 국내 대표격인 상업 갤러리 몇몇이 해외 아트페어에서 선전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렇지만 현장의 많은 작가와 비평가에게 그런 변화는 그렇게 반가운 뉴스만은 아니다. 왜일까. 매년 개최하는 대규모 아트페어, 고위 공무원들의 작품 구매 이벤트, 능수능란한 해외마케팅에도 불구하고 미술인들은 자신들이 시장의 주체로서 자리하지 못하고 있음을 느끼는 실정이다. 도대체 미술시장의 진정한 모습은 어디에서부터 만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이런 와중에 굴지의 미술관들은 수백억을 들인 블록버스터 전시회를 수입해서 입장객 수십만 명 기록 세우기에 열을 올렸다. 실제로 그들은 그동안 미술작품의 승인과 걸작 규범의 형성에 매번 막대한 영향을 행사해왔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권력을 누려왔다. 올 한해 그 힘은 창작자와 비평가, 그리고 일반 관객들 앞에서 매스미디어와 레저 산업의 ‘큰 손’의 권위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런가 하면 규모 있는 ‘기획전’ 대부분이 국공립미술관에 의해서 준비됨으로써 독립기획자와 젊은 작가군의 잠재력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급격하게 줄어들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유심히 들여다보자. 아마도 미술계에서 흘러가는 자본의 출발점과 종착지 사이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사상누각의 ‘기초예술’에서 울려 퍼지는 승전고쯤으로 여기는 미술인들이 많지 않을까 여겨진다. 미술인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이런 사실이 누적될수록 작품을 통해 지적인 역사를 만들고, 미적인 체험을 누리고, 생계를 꾸려나가는 미술 시장(市場)의 게임은 공정할 수 없을뿐더러 결국 룰을 만들 기회도, 룰 자체도 없이 그저 힘센 아이 말이 곧 룰이 되어버리는 골목 축구의 꼴이 될지도 모른다.
미술과 경제가 전혀 딴 세상이 아니라는 말에 굳이 동의를 구하지 않더라도, 국가의 재정 지원과 교육 정책 뿐만 아니라 노동의 산물로서의 작품과 그것의 유통구조에 관계하는 모든 구성항들이 함께 고민해야할 문제가 바로 시장의 문제가 아닌 가 싶다. 그것은 우리 미술의 질적인 성장과도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록 2004년은 작품의 실질적인 유통과 소비 시스템 구축에서 자생성의 진전을 보이지 못한 해였지만, 필자는 내년 이맘때 미술계 결산에서 ‘시장’을 성공 사례의 키워드로 평가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한편 작품과 전시 생산의 측면에서는 중진 작가(혹은 ‘문제적’ 작가)의 작품을 ‘재조명’하는 전시가 관객의 주목을 끌었다. 김정헌, 주명덕, 홍명섭, 정현, 민정기, 서용선, 박생광 등이 그들이다. 무려 3개나 되는 비엔날레가 거대한 덩치로 광주와 부산과 서울에서 화려한 테크놀로지와 인파의 팡파레를 올리는 와중에 이들의 작품은 차분한, 그러면서도 격심한 감성을 관객들에게서 다시 끌어냈다. 상대적으로 올해 열렸던 2-30대 작가들의 개인전과 기획전이 전시개념의 구성과 완성도 측면에서 다소 빈약해졌다는 평가도 없지 않다. 덩치 큰 개념을 우리 것으로 정직하게 소화하지 못하거나, 혹은 일상의 시공간에 선정적으로 집착하곤 하는 ‘쿨’한 전시들에 비해 그들 중진의 전시에서 켜켜이 쌓아 올린 사유의 층은 뉴미디어 시대에 서있는 젊은 관객들에게는 색다른 의미로 다가갔을 것이다. 중진들의 여유와 치열함이 여운으로 남는 해가 2004년 아니었나 싶다.
아울러 ‘뉴장르 공공미술’에서의 공공성 문제를 둘러싼 예술적 실천과 담론생성(미술장식품 제도, 공교육 현장미술 교육, 소수자의 사회적 발언 등)활동 역시 올 한해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믹스라이스, 플라잉시티, 반지하, 산길프로젝트, 밀머리미술학교 스톤앤워터, 성미산 대안학교 등의 사례들을 통해 우리 미술계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공간과 미술, 공동체와 사회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공공미술의 영역에 좀더 진정한 모습으로 다가서고 있음을 느낀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미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본격적으로 찾아 나선 2004년 한 쪽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텍스트의 생산을 둘러보자. 올해에는 영국 파이돈 출판사의 ‘Art & Idea’ 시리즈가 한길아트를 통해 2차분 6권이 번역 소개되었다. 그 밖에 다니엘 부어스틴의 《이미지와 환상》, 앙드레 말로의 《상상의 박물관》, 존 A. 워커의 《비주얼 컬처》,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 폴 비릴리오의 《소멸의 미학》, 디자인미술관 총서 《디자인 앤솔러지》 등의 번역서 등이, 국내 연구서로는 최열의 《화전》과 노성두의 《성화의 미소》 등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불황 속에서도 동․서양의 명화를 소개하며 문학적 필치로 대중에게 어필한 몇몇 테마 에세이, 예술 이야기류의 책들이 그나마 미술서 출판계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물론 이런 분위기는 1990년 중반 이후부터 계속되어온 현상이기도 하지만, 전문이론서 출판을 기피하는 출판계와 고상한 소재와 쉬운 글쓰기로 지적인 쾌를 공유하려는 독자가 의기투합함으로써 미술대중서 전성시대를 이어가고 있는 것도 올해의 특징 중 하나이다.
2004년에는 밝은 전망을 내온 부지런한 토론과 실천이 있었는가 하면, 여전한 구태의연함과 탐욕으로 현실의 의미를 왜곡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물론 어느 시대 어느 예술계에서도 그러했으리라. 하지만 그 모든 긍정과 부정이 충돌하여 만들어낸 2004년이 있어서 내년 우리 미술계는 좀더 진보한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믿는다.
(부언: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사 이동석 선생, 작가 박이소 선생의 타계 소식은 올 한해 우리 미술계의 큰 슬픔이었다. 명복을 빈다.)
[ATHⓒ컬처뉴스] 2004-12-22 오후 6:5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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