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요한 유미, 혹은 구수한 큰 맛”의 아름다움
요절한 천재 고유섭은 ‘무기교의 기교’라는 모순어법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식민지 시기 한국미를 논했던 대표적 학자이다. 그는 동서 미술사적 지식과 미학이론에 대한 풍부한 섭렵을 바탕으로 조선의 예술을 감상함으로써 그 특유의 한국미론을 여러권의 저술에 명제화시켜 놓았다. 필자 김임수 교수는 국내의 거의 유일한 고유섭 전문가로 이미 말투까지 고유섭을 닮아있을 만큼 그에 대한 내재적 접근을 보여준다. 김 교수가 에두를대로 에둘러서 도달한 고유섭의 미학적 비밀은 ‘모순된 자연’이라는 그 폭넓은 공간이다. 그것은 외부로부터 규정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자연의 다양한 품새들을 끌어안아 스스로 고졸하나 나름의 균형을 갖고 미학적 형식을 찾아가는 조선예술의 특이한 형성논리가 깃들여있다는 것이다. / 편집자주
‘한국美’에 대한 논의는 한국인이 추구한 독특한 미적 가치 지향성과 그것이 구체화된 현상적 특색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따라서 그 고유하며 특수한 한국적인 미적 유형을 찾아내 가치분석과 의미해석을 가하기 위해서는, 한국인 특유의 미의식과 그에 따른 미적 체험구조의 특성 규명을 위한 적절한 미학적 시야가 전제되어야 한다.
일제 암흑시대를 살다간 한국 최초의 미학자이자 미술사학자였던 又玄 고유섭(1905~1944)의 학문적 성과 속에서 우리는, 미적 가치이념의 문제를 토대로 해 그것이 구체화된 한국미술의 미적 특색 규명에 이르기까지, 한국미의 특색을 그 ‘현상적 근본’에서 찾고자 했던 그의 미학적 시야를 본다.

한국미의 특질은 제작태도에서 비롯된다
‘조선 고대미술의 특색과 그 전승문제’(‘춘추’, 1941년 7월호)라는 논문은 그의 견해를 집약적으로 잘 보여준다. 우현은 여기서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 ‘민예적인 것’, ‘비정제성’, ‘적조미’, ‘적요한 유모어’, ‘어른 같은 아해’, ‘비균제성’, ‘무관심성’, ‘구수한 큰 맛’ 등의 특색들을 열거하면서, 한국미술의 전통이라 할 만한 ‘성격적 특색’에 관해 논급한다.
우선 ‘무기교의 기교’나 ‘무계획의 계획’은 서구와 같은 독자성, 자율성, 과학성을 획득하지 못했던 한국 전통미술의 제작 태도에서의 특성을 말하는 것이다. “조선에는 개성적 미술, 천재주의적 미술, 기교적 미술이란 것은 발달되지 아니하고, 일반적 생활, 전체적 생활의 미술, 즉 민예란 것이 큰 동맥을 이루고 흘러 나려왔다”라는 것이다. 民藝的이되 신앙과 생활과 미술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그는 보았다.
‘비정제성’이나 ‘비균제성’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완벽한 기술주의가 구사될 수 없었던 제작 태도적 특성으로부터 당연히 예상될 수 있는 것이다. 精緻한 맛이나 깔끔하게 정돈된 맛이 부족한 대신 ‘질박한 맛과 둔후한 맛, 순진한 맛’이 두드러진 점에서 한국미술 특유의 분위기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한국 전통 공예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원형적 정제성을 갖지 못한 왜곡된 破形의 도자기들이 많은 것이 바로 그러한데, 고유섭에 의하면 “형태가 형태로서의 완형을 갖지 않고 음악적 율동성을 띠어, 조선의 예술이 線的이라 한 야나기의 정의는 이 뜻에서 시인”된다.
또한 바로 이와 같은 선적인 점에서 우아로 통하는 ‘纖弱味’와 ‘생동성’이 있고, 여기에 색채적으로 단조로운 것이 곁들여져 ‘적조미’가 구성되는데, 이때 단색조는 ‘사상적 깊이보다도 사상적으로 어느 정도만치의 깊이에 들어갔다가 명랑성으로 화하여 나온’ 그 ‘諦觀的 轉廻’를 통해서 ‘적요와 명랑이라는 두 개의 모순된 성격이 동시에 성립되어’ 적요한 유머와 아울러 ‘어른 같은 아해’의 특성을 나타내 보이게 된다.
‘무관심성’이란 인위적인 기교적 완벽주의를 거부하고 자연적인 환경이나 재료의 자연성을 애호하는 한국미술 특유의 미적취향을 말하는데, 그것은 가끔씩 ‘통일을 위한 중도에 중단이 있고 세부를 위하지 않는 粗疎性이 있어’ 그 결과로 ‘疎大荒雜한 비예술적인 결점’을 낳게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세부에 있어 치밀치 아니한 점이 더 큰 전체에로 포용되어 그곳에 구수한 큰 맛을 이루게 되는 것은 확실히 예술적 특징의 하나’라는 것이다.
‘구수한 큰 맛’이란 중국미술에서 맛볼 수 있는 ‘웅장한 健實味’와는 구별되는 한국미술의 특징적 일면이다. 고유섭은 한국미술에서 항상 하나의 모순을 맛보는 바, 그것은 바로 작은 맛과 큰 맛의 합조로 결국 “작은 맛이란 외부적·자연적·지리적 환경의 소치로서 자연의 제약에서 오는 면이요, 큰맛이란 생활의 면, 생활의 태도에서 오는 면이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특히 우리 고유의 미적 체험방식의 구체적 표출양상과 관련해, 고유섭이 거론하고 있는 ‘무관심성’의 개념은 각별한 주목을 요하는데, 이를테면 건축의 경우 ‘구례 화엄사 각황전’ 같은 데서 그 심한 예를 볼 수 있는 것처럼 목재의 자연적 굴곡이 아무런 정리도 받지 않고 그대로 사용된 점이라든지, 보통 민가에 있어서도 추녀의 飜仰轉起를 형성할 때 곧은 나무를 굴곡지게 기교적으로 계획적으로 깎지 않고 그대로 얹어 만들어 낸다든지 하여 자연에 대한 강압을 거부하면서 원래의 재료가 갖는 자연성이나 이미 주어진 바의 자연적 환경과의 거슬림이 없는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적가공이나 미적관조를 막론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심리로서의 무관심성은 결국 미적가치의 근원으로서의 ‘자연’을 보는 태도를 말한다. 이때 자연은 결코 미적가공을 위한 소재나 재료의 의미에 있어서가 아니라, 미적형성이 지향하는 목적 또는 미적반응의 원천적 원리다. ‘예술’은 자연과의 구별에 있어서가 아니라 당연히 그 결합에 있어서 하나가 된다.
그 결합에 있어서의 미적체험은 객체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주체의 체험은 아니며, 자연은 미적체험의 원리적 근거이며 체험 그 자체로서 이미 미적 체험 속에 포섭되어 ‘자연’과 ‘예술’이 구별될 수 없는 상태로 긴밀하게 얽혀 있음을 말한다.
따라서 ‘자연’에 대한 미적반응의 여러 양상은 자연의 다양한 유기적 조직, 원시적 생명력 같은 미적 형성 이전의 자연의 본래적 질료성이 포괄된다. 또한 외부세계와는 격리된 자체충족적인 규정성이나 고정성 또는 그 내부에 있어서의 상호의존적인 결속력이나 배타성, 밀폐성 같은 것들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들은 외부로 개방돼 있으며 ‘무관심성’은 그들을 어떤 특정한 의미나 욕구의 그물망 속으로 얽으려 하지 않는다.
‘자연’과 ‘예술’은 자유자재로 왕래하면서 서로의 결함을 보완하거나 또는 서로의 생명력을 고양시켜 나가게 되며, 따라서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원리로서의 ‘무관심성’의 미적 태도는, 자연의 원리와 예술의 원리의 결합에 있어서 양자가 하나로 만남으로써 성립되는 미적관조와 형성 과정적 체험의 고양된 일치를 말한다.
따라서 무관심성의 미적관조와 결부된 ‘적조미’ 또는 ‘적요한 유모어’나 ‘구수한 큰맛’등과 같은 미적체험양상의 구조적 특질은 그 逆說的이거나 모순적인 성질이 하나로 결합되어 새로운 종합을 지향하는 가운데 한국미술 특유의 미적 표상방식을 성립시킨다. 이와 같은 변증적 구조 속에서 대상적 자연은 ‘심성적 자연’으로 복귀된다.

‘비정제성’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미술을 통해 나타난 다양한 미적 특질들을 규명함에 있어서, 고유섭이 구사하고 있는 미학적 개념들은 상호간의 치밀한 유기적 관련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애매성과 심지어는 극단적인 모순이 결합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자신의 말대로 그것이 바로 무어라 ‘번역할 수 없는’ 그리하여 ‘두개의 모순된 성격이 동시에 성립되어 있는’ 한국미술의 전통적인 특색의 하나라고 하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는 것이고 보면, 한국미술의 현상적 근원은 바로 그 애매성과 극단적인 모순이 合流되는 심연에 자리 잡고 있다는 고유섭의 미론은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고유섭은 한국미술의 형식미적 특질도 ‘비정제성’이나 ‘비균제성’과 같은 일그러짐에서 찾는다. 문제는 바로 그러한 형식이 미적일 수 있는가, 만약 그러하다면 그러한 형식들이 미적일 수 있는 가능성의 근거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형식미’의 필연적 전제라 할 수 있는 완전성이나 명료성 또는 균제성의 규범에 구애받지 않는 이러한 형식적 특질들은 바로 그 파격적인 양상에 있어서, 오히려 형식적인 제약이나 강요로부터의 탈피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그러한 형식들이 미적일 수 있는 가능의 근거는, 내용으로부터 형식에 이르는 형성고정적 진실과 그 진실이 기존의 형식적 규범에 의해 결코 강요받지 않는 스스로의 필연적 형성력에 기인한다.
형식미적 강요나 예술적 규범의 고정된 틀을 벗어나 형식에의 자유의지로 이어지는 이런 형태는 형성과정적 ‘자연’의 생명력을 획득해, 비록 완전한 형태에 비하면 불완전하고 약해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형태 스스로가 자신의 생명력을 획득해나가는 자발성의 견지에서 보자면, 스스로의 힘에 충만해 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고유섭에 의하면 한국미술에는 “질박, 둔후, 순진이 형태의 파조라는 것을 통하여 ‘어른 같은 아해’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같은 모순의 결합은 ‘미적 관조’나 그 표현에 있어서 ‘자연’의 생성적 신비와 주관의 미적 의도가 ‘자연스러움’으로서의 미적 형성을 통해 하나가 되는 가운데 성립되는 필연적인 귀결이다. 그리고 그 결합은 서로 모순되는 신념간의 무리한 조화라기보다는, ‘자연’과 ‘예술’의 원리적 합일성을 찾는 가운데 소재(또는 재료)와 형식, 의도와 표현, 대상과 주체의 불가분의 결합에서 성립되는 욕구와 좌절, 집념과 체념, 포기와 위로의 화해를 통한 미적 체험의 변증적 양상이다.
고유섭이 본 한국미의 특색은 바로 그 모순의 화해에 있어서 한국미술이 추구한 정신적 가치지향성과 그 미적 가치의 의미해석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따라서 그의 시도는 단지 한국미술의 시각적 표상형식이나 그 체험형식의 특색규명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 고유의 미적 세계관 또는 미적 가치관의 파악과 더불어 그 밑바닥을 이루고 있는 한국적인 미적 직관의 정신적 원리 및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형이상학적 이념의 발견을 통해서 한국미의 정신적 특색을 규명하기 위한 ‘미학적’ 시야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김임수 / 계명대·미학

필자는 홍익대에서 ‘고유섭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고전미학연구’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 ‘한국미술의 미적 특색’, ‘문화산업의 미학적 문제’ 등이 있다.


又玄 고유섭(1905~1944)은 누구인가
한국미학의 이론적 토대 구축


고유섭은 서구미학을 최초로 수용했다는 점과 그것을 기초로 한국미학의 바탕을 일궈놨다는 점에서 ‘한국미론’의 선구자로 꼽힌다. 초기에는 서구미학에 전념했던 그는 이후 이를 한국미술에 접목시키면서 한국미의 특질들을 정립시켰다.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이 이에 해당된다. 그의 농축된 미학적 지식은 ‘한국탑파의 연구’라는 저서에서 잘 드러난다. 1936~41년까지 집필한 탑파연구는 20세기 전반기 미학사조인 양식사, 정신사, 사회사적 측면 등의 관점에서 조명해 서구미학을 한국미술에 구체적으로 적용시킨 최초의 사례로 평가받는다. 이처럼 고유섭은 구체적인 미술품을 대상으로 한국인의 미의식과 미의본질을 추출해내 미학과 미술사의 연결고리를 확립해갔다.
주요 저서로는 ‘松都古蹟’, ‘朝鮮塔婆의 연구’, ‘조선미술사논총’, ‘고려청자’, ‘餞別의 甁’, ‘한국미술사급미술논고’ 등이 있다.
『고유섭전집(전4권)』 고유섭 지음 | 통문관 刊 | 1993 | 400쪽 내외
최초로 한국미를 이론적으로 논했다고 평가되는 책이다. 고유섭 생전의 발표 원고들이 총4권에 걸쳐 대부분 수록돼 있다.
1권은 조선탑파에 대한 연구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에 이르기까지 목조탑과 석탑을 두루 살핀다. 2권은 ‘한국문화사논집’으로 조선의 古美術을 탐구한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공예들을 망라하고 있다. 3권은 ‘한국미술사와 미학론교’다. 조선미술품에 대한 미술사적, 미학적 접근이 모두 드러난다. 4권은 ‘청자’에 대한 연구와 함께 고대미술연구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논했다. 현재 절판된 ‘고유섭전집’은 도서출판 열화당에서 6월경 재출간될 예정이다.


고유섭을 사로잡은 한국의 예술

● 감은사지 동삼층석탑
“구수하다는 것은 순박, 순후한데서 오는 큰맛이요, 銳利, 圭角, 漂冽 이러한 데서는 오지 않는 맛이다. 그것은 심도에 있어 입체적으로 蘊蓄있는 맛이며 속도에 있어 疾速과 반대되는 완만한데서 오는 맛이다. 따라서 얄상굳고 천박하고 경망하고 巧慧로운 점은 없다. 이런 맛은 신라의 모든 미술품에서 현저히 느낄 수 있는 맛이나 조선미술 전반에서 느끼는 맛이다.”
(‘고유섭전집2’, 34쪽)

● 고려자기_靑瓷象嵌辰砂彩葡萄童子文注子 및 承盤
“‘맵자’하다는 것이 있다. 그것은 ‘맵시’에서 온 것인만큼 ‘멋’과 함께 인간의 姿態的인데서 온 것이지만 이것은 얌전스럽고 탐탁하고 짜임있고 조그마한 것에 대한 형용으로 고려자기의 일부로서 일례를 삼을 수 있다.”(‘고유섭전집2’, 35쪽)
● 몽유도원도(부분)
“동양에서 사라지려 하는 北宋北宗화법이 안견의 손에서 이다지 굳세게 보유하고 있었다. 또 일본에서 周文 雪周 등 수묵의 대가들이 나와 각 藝苑의 盛事를 이루었지만 그들도 남종 이후에 속하고 또는 明의 浙派 이후에 속하는 것이다. 안견은 즉 북송북종의 시대적으로 最終殿後에 거하여 그 화법의 최고가를 점하고 있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유섭전집2’, 314~315쪽)

● 구례 화엄사 각황전
“정면 7칸, 측면 5칸의 중층건물로 특히 양단 입주가 諸他 列柱보다 굵음은 희랍건축에서만 그 유례를 볼수 있는 것으로 시착각을 얼마나 주도히 고려했는가 함을 입증하는 유력한 실례이니 이것만으로도 가히 주목할 작품이라 하겠다. 내부의 金柱와 月粱이 섬약함은 재료의 약점이요, 5포 중공작의 권비곡선도 기억할 만한 수법을 남기었다. 옥개의 완만한 경사는 强勁味를 갖고 비례 좋은 중층은 건물 전체에 매우 안정한 맛을 가하였다.”(‘한국건축미술사초고’, 163~164쪽)

● 18세기 백자항아리
“외면적으로는 일견 단순한 白 一色에 불과하지만 여러 가지 요소의 안으로 안으로의 凝集凍結된 특색이니 저 ‘구수’한 맛이란 것이 안팎없이 훈연한 풍미를 이루고 있는 것임에 대하여 이것은 안으로 응집된 풍미이다. 구수한 것은 접함으로써 그 풍도에 서리게 되나 이 ‘고수’한 맛이란 씹어야 나오는 맛이다.”(‘고유섭전집2’,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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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