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에 호주 교과서 얘기를 꺼낸 이유는 예술교육의 수준이 우리와 너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고교 때 고전에서 현대미술까지 폭넓게 섭렵하는 호주 고교생들과 입시과목에만 매달리는 우리 현실은 수평비교가 무리일 정도다. 우리 대학생들의 미술에 대한 교양이 어느 수준일까를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한국의 예술교육은 너무도 뒤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호주 고교생들이 사이 톰블리나 안젤름 키퍼 같은 현대작가들을 안다는 게 부럽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들은 이런 방대한 내용의 교과서를 익히고 실제를 분석한 후 에세이 형식으로 시험을 치른다. 체계적인 이해와 논리적인 사고, 무엇보다 이같은 예술교육을 통해 창의력을 키운다는 현실이 부러운 것이다. 나아가 고교졸업 수준으로 사회에 나와서도 예술 감상이나 취미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꿩 먹고 알 먹는 교육의 효율성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대학을 나와도 미술이 무엇이고 클래식 발레 연극을 제대로 이해하는 관객층이 넓지 못하다. 마흔이 넘도록 전시장, 공연장에 한번도 안가 본 것을 자랑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그 근본 원인이 어려서부터 예술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이해가 어렵고 공짜라고 해도 흥미를 갖지 못하는데 있다. 이런 예술문외한들이 많다보니 전시장이 한산하고 공연장은 객석이 차지 않는다. 지난해 예술계가 고전을 면치 못한 이유는 관객을 감동시킬만한 창조적인 작업이 부족했다는 것이 첫째지만 영화외의 장르에 기본관객이 절대 부족한 탓이 더 크다. 공연관계자에 따르면 인터넷으로 움직이는 고정관객수가 몇 천 명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혼신을 다해 작품을 발표해도 관객이 없어 적자에 허덕이고 의욕마저 잃게 되는 것이 우리의 딱한 현실이다. 21세기에는 문화와 예술을 모르면 생존이 어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 5일 근무제에 따라 휴식시간이 늘고 고령화에 따른 잉여시간을 허송세월로만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술을 즐기거나 체험해야 삶에 생기를 찾을 수 있고, 예술가들 또한 예술소비가 활성화되어야 의욕과 보람을 느끼며 창작에 임할 수 있다.
2006년 벽두에 예술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예술을 이해하고 즐기는 인구가 늘어야 예술 활동이 활성화될 수 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문화시대의 최대 무기인 창의력 배양은 예술교육에서 싹트기 때문이다. 미래의 문화생활은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이 받는 교육에 달려있다. 예술교육은 미래의 수용자 참여도에 대한 가장 확실한 지표의 하나이다.
창조적인 아메리카를 표방한 미국의 21세기 전략은 인문학의 부활과 예술교육의 활성화다. 우리도 창의력으로 세계와 경쟁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예술교육부터 혁신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