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핍함'에서 발현된 선의 미학...'정신의 가시화' 분석
에블린 맥킨은 한일합방이 이뤄지던 시기 평양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만주, 시베리아, 중국 등을 여행하며 동북아시아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축적했고,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의 폭을 넓혔다.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극동문제에 대해 강의를 하던 즈음 남편 맥킨이 연희전문의 교수로 일하게 돼 한국으로 돌아와 함께 한국문화연구소 활동을 했다. 맥킨의 동양에 대한 역사적인 이해와 한국에서의 경험은 한국미의 특성을 정치적인 시선으로 파악하는 바탕이 됐다. 일제강점기와 미군정, 한국전쟁기 한국민의 가난과 외부세계에 의한 전통의 변화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貧者의 미에 대한 경의
맥킨은 ‘線과 形’에서 한국미의 특성을 찾았다. 한국의 예술가들이 생산한 미술품은 이웃의 영향관계 아래서보다는 가난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드는 ‘물질’에 의한 것이 아닌 선과 형태의 미에 의지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가 한국 미를 선과 형태의 미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 많이 주저했음은 많은 발굴과 그동안의 연구?축적된 자료들을 토대로 관찰한 결과라는 첨언에서 드러난다. 일본인 학자의 견해를 무조건 수용한 것이 아님을 천명하고 있음에도, 맥킨의 한국미론은 경제적인 용어인 ‘궁핍’과 조형언어인 ‘선’을 연계시킴으로서 외형적으로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논의를 따른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동양문화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지녔으며 일본인보다 객관적 입장을 견지할 수 있었던 그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한국 미에 대한 정리는 일본인 학자의 설과는 다른 각도에서 파악할 여지가 보인다.
맥킨이 파악한 한국미의 특성인 선과 형은 외적인 요소인 주변국의 영향보다는 내적인 요인인 ‘궁핍함’에 의해 형성된 것이었다. 그 ‘궁핍함’이란 물질적 가난이나 정신적 황폐를 의미하기보다는 실로 동양의 미덕인 ‘貧者’에 대한 경의와 맞닿아 있다. “가난함이란 선비의 일상이요, 죽음은 사람의 마지막이니 일상에 처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무어 그리 근심거리인가”라는 공자의 말은 선비의 일상생활이자 조선시대를 이끄는 계층의 철학이었다. 맥킨은 문인의 활동을 기반으로 조선왕조를 15세기-신왕조, 16세기-문인의 세기, 17세기-변화와 은둔의 세기, 18세기-평화와 안정의 세기, 19세기-몰락의 세기로 파악할 정도로 선비, 지배계층 위주의 문화사관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궁핍함’은 선비계층의 정신적 자유로움을 위한 필연적인 요소로 파악했고, 비록 정확한 용어를 짚어내지는 못했지만 바로 ‘安貧樂道’를 한국미술의 창조적 배경으로 이해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미술의 특성을 조선조 미술에서 찾아냈기 때문에 그는 書畵에서 한국미술의 특성을 파악했다. 회화관에서 얻은 결론을 한국미술 전반에 확대적용시킴으로써 주류미술로서 서화와 비주류미술로서 건축이나 공예가 시대적 보편성으로 이해되지 못하는 한계를 내포하게 됐다. 그럼에도 꾸준히 중국, 일본과 의 ‘차이’에 주목해 한국미를 발견해 감으로써, 보편성 추구에 따라 매몰될 여지가 많은 한국의 미술을 중국의 변방미술로부터 특수한 양식의 미술로 독립시켜 이해했다.
선비문화의 힘과 정직성
그가 발견한 한국미의 발원처인 ‘궁핍’은 ‘내핍’에 적용되어 조선문화의 특징으로 확대됐다. 내핍할 수밖에 없는 삶을 기꺼이 인내할 수 있도록 강화하는 몇 가지 방안이 한국문화의 특성이라고 봤던 것이다. 그것은 첫째, 한국적인 보수주의와 변화에 대한 극단적 저항-그러나 이 저항은 한국사회로 하여금 사회적, 정치적 안정을 누리게 한 저항이다. 둘째, 자연에 대해 그리고 문밖생활을 좋아하는 것, 셋째,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잃지 않고 외국문화에 적응하도록 하는 대응방식, 넷째, 한국인종을 예외적으로 특별히 가르칠만한 종자로 만드는 배움에 대한 높은 관심, 다섯째 더 적절한 용어가 없어 ‘결점예찬(a cult of weakness)’이라 할 수밖에 없는 이론과 실제의 발전은 강성한 이웃나라의 침탈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미묘한 소통수단의 기술 즉 언어와 미술에서 침묵의 이용 등이다.
맥킨은 “한국미술이 정치적인 안정기에는 우아하고 세련되었고 전쟁기에는 조잡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양상을 보인다”라고 했다. 한국미술의 세련과 조잡함의 양극단에서조차도 ‘힘과 마음을 끄는 정직성’을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이러한 점이 일본과 중국에서 존경을 받았던 점이고, 특히 일본이 찬탄하고 모방하려고 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힘과 마음을 끄는 정직성이란 바로 가난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조차 이를 지탱하는 힘인 내핍으로 보는 시각이다. 즉 선비문화의 힘과 이를 지탱하는 정직성 내지 도덕성이 한국미술의 주요한 특성으로 발현된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조선 선비들의 사상과 생활태도에 대한 관찰에서 추출한 ‘힘과 마음을 끄는 정직성’ 조차 일본의 시선을 통해 정당화되는 것은 일본인학자들의 사관에 의지하지 않았다는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그 스스로 타자로서 한국미술을 인식했음을 증명한다. 심지어 “옛 미술 상징과 전통으로부터 파생된 만족감은 유용하기는 하지만 이방인이 배우거나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어서 일본인과 같은 극동인조차도 그것을 가려내고 정의하기란 어렵다”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인, 일본인, 서양인으로서 자신에 대한 인식은 여성 미술사학자로서 신사임당을 주목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선과 형, 양식인가 정신의 문제인가
“한국의 미술가들은 가장 중요한 주제는 윤곽이나 측면관으로 나타내고, 자신의 생각은 세부나 색채를 통해 강화시켰다”라고 보았다. 회화의 기법을 바탕으로 하여 동양미술의 제작기법에 주목함으로써 장식이 부차적인 문제임을 간파했던 것이다. 기법에 대한 관심은 도자기의 태토와 유약, 건축에서 짜맞춤 등의 세부기법의 특성을 통해 재료가 되는 비단, 종이, 목재, 청동, 칠기 등이 단순한 사치나 장식의 욕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엄격히 예술적이며 기능적인 가능성에 맞추어 사용되었음 또한 찾아냈다.
이러한 발견 결과들을 종합해 한국인들이 화려하거나 과장하는 취향을 기르지 않은 것도 궁핍에서 발원한 윤곽과 선을 지향한 성향 때문이었다고 단정하게 됐다. 그리하여 심지어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조차 화강암바위의 질감이나 괴체성보다는 “굉장한 윤곽선”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스스로 가설에 집착한 한계를 표출하고 있다.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이 “모든 한국미술 중에서 가장 아름답게 조각된 형상 중 하나”인 이유 또한 매우 세장하고 귀족적인 외형의 부조여서일 것이다. 고인돌과 미륵을 형태의 유사성으로 접근한 점도 바로 수직의 선에 착안한 것이었다. 일찍이 장대함에 있어 중국과 겨룰 수 없음을 파악하고 있던 한국의 미술가들은 “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기술로, 단순한 재료로서 사랑스러운 것을 자랑스레 창조”했고, 그 결과 한국의 예술가들은 재기발랄함보다는 ‘표현의 힘’을 지향하게 되었다고 했지만, 그 표현의 힘이란 한국미술을 논할 때마다 곱씹던 ‘선과 형의 미’에 밀려 진정한 안빈낙도에서 우러난 풍요로운 것으로 인식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극동에 대한 확고한 지식체계는 한국역사의 기원을 단군신화에 두고 홍익인간 이념까지 소개하지만 정작 미술의 역사는 중국의 낙랑에 연계함으로써 진정한 한국미의 특성에 접근하기 어려운 한계를 내포하게 만들었다. 맥킨의 단군을 비롯한 한국 신화에 대한 관심은 1951년 미국에서 한국전래동화 ‘호랑이를 탄 김서방’을 쓰고 그림까지 그려 뉴욕에서 출판한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소박한 이야기의 내면에 자리한 사상과 생활의 진실을 직시했지만, 그가 경험한 한국의 시대는 약자였다.
국가경제 재건을 목표로 상업화돼가는 예술 속에서 한국의 문화유산만이 과거의 찬란한 역사를 증명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한국의 정세 속에서 쓰여진 ‘한국의 미술’은 당시 한국인들에게 “구미인들의 한국미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조선미술도사', 한국일보, 1963년 5월 30일.) “선과 형태의 미”, “세련과 조잡의 두 극단 모두에서 힘과 마음을 끄는 정직성”을 느낄 수 있다는 한국미에 대한 정리는, 주변국에 비해 가난한 삶을 내핍을 통해 의연하게 대처하는 삶의 모습으로 이해될 것이다.
오늘날 맥킨의 한국미론이 ‘선’이나 ‘형태’가 양식적 특성이라든가, 일본인 학자가 강조했던 운명적인 ‘가난’이라는 용어에 잠식되어 오도된 경향이 있다. 궁핍을 당연히 여기던 선비의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한국미의 특성을 추출한 맥킨의 시각은 정신의 가시화라는 방식으로 한국미술을 분석하여본 것이었다. 지나치게 비대한 야나기의 그림자에 의해 ‘선’이라는 수사적인 용어마저 정치성으로 파악되는 것이 한국미론의 현주소다. 맥킨의 한국미론은 바로 이러한 벗어날 수 없는 식민사관에서 깨어나는 데 효과적인 일침을 가하고 있다.
조은정 / 한남대 겸임교수 미술사
필자는 이화여대에서 ‘1공화국의 국가권력과 미술’로 박사논문을 준비중이다. 저서로 ‘한국조각미의 발견’, ‘비평으로 본 한국미술’, ‘1950년대 한국미술에서 타자읽기’ 등이 있다.
에블린 맥킨
평양에서 태어났고,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했던 그녀에 대해 현재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한국 땅에서 보내면서 간접적이나마 식민지 수탈을 몸소 체험했고, 한국인의 생활과 문화가 얼마나 급변하는지, 전통이 얼마나 빨리 무너지고 교란되는지를 직접 목격하면서 한국 미술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가 한국미술에 보여준 식견은 특히 식민사관이나 서양학자의 정보미흡과는 거리가 먼, 매우 뛰어난 감식안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저서로는 현재 ‘The Arts of Korea’(1962)와 ‘The Inner Art: Korean Screens’(1983) 외에 ‘The arts of Korea: An illustrated history’(1967), ‘Kim rides the tiger’(1951) 등이 있다.
1948년 이후 미국에 거주하며 한국전쟁 때 UNKRA의 인사로 참여해 한국 원조정책에 관여했고, 한국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문화와 역사, 정치 등에 대한 연구를 해온 그녀는 현재 생존해 있다.
맥킨을 사로잡은 한국의 예술
●사임당의 ‘초충도’, 16세기.
“신사임당의 흑색과 백색 연구에서 잘 드러나듯이, 그녀의 감수성은 선과 색의 조화를 분명히 나타냈다. 오이는 부드러운 자줏빛으로 표현되었고, 흰색으로 화질을 높였다; 멀구슬나무의 오렌지빛 붉은색은 민들레의 부드러운 녹색과 대조된다; 흰색으로 표현된 國花는 새, 나비, 곤충등과 어우러져 극적으로 표현됐다. 그녀가 가하는 일격의 붓놀림은 매우 다양하다: 섬세한 선에서 하이비스커스 꽃잎의 허약함을 묘사하는 등, 간결함과 날카로운 관찰법으로 여유있는 표현을 구사한다. 이런 점으로 미뤄볼 때, 사임당의 작품들은 다른 그림들을 답습한 것이 아닌, 삶으로부터 기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The Arts of Korea, 245쪽)
●용주사 대웅보전, 18세기
“용주사는 다소 아담한 상자모양과 비슷하고, 세부적인 장식이나 디자인은 모두 과장된 표현법으로 이뤄졌다. 색깔은 조선조 시대 불교건물의 전형적인 것이다. 용머리 장식은 매우 화려한 것으로, 당시 건축장식에서 흔히 나타난 것의 대표적 사례다.” (The Arts of Korea, 286쪽)
●글자그림, 각폭, 118.5×40.6㎝, 장지.
“조선왕조가 주자학의 정치이념에 바탕을 두고 새로 세워지면서 처음의 왕들은 이 이념을 널리 퍼뜨려야 했다. 금지된 불교의 상징 대신에 유교교리를 그림으로 나타내는 일이 필요했다. 무엇을 해야 했던가…유학자들은 책과 한자를 가졌다. 그들은 유학에서 군자의 큰 덕을 나타내는 뜻글자를 골라서 큰 크기의 우아한 붓글씨로 현판에 쓰듯 썼으며 모든 집에서 병풍으로 꾸며서 집안에 갖추었다. 이 그림글씨 병풍은 1419년부터 1544년 사이에 이룩된 것으로 보이며 이들은 도덕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비롯된 것 같다.” (한국의 병풍, 21~22쪽)
●작자미상.
“객사와 대청 사이에 있는 대청 사이에 있는 빈 터에 시내가 흘러서 왜관 경내에 물을 대주고 있다. 그곳에는 기생들이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 호위병의 깃발이 가벼운 바람에 나부끼고 왜인 파수는 다리 아래의 살이 보이게 그려졌는데 한국 사람들의 우스개의 멋이 들어 있다.” (한국의 병풍, 39쪽)
●김홍도의 책가문방도 외 책거리들.
“책거리그림에서 이같이 작은 장식품이 특히 18세기에 중요한 요소로 되어 갔을 때 한국의 독특한 성격이 이룩되었는데, 자기, 십장생, 길조의 상징 및 색깔의 새로운 배합 등에서 그러하였다…책거리그림의 짜임새는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으로 가장 한국사람이 좋아하는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데 외국 것과 한국 것의 모든 요소를 합해 놓은 것이라 하겠다. 한 일본인 평론가는 19세기 병풍은 한국 예술의 바탕이라고 말하였다.” (한국의 병풍, 52~54쪽)
●金製帶鉤, 9.4cm, 13세기.
“버클은 한국의 여타 최상의 출토품들과 마찬가지로 수수께끼같은 것이다. 한국 예술품 중에서 마치 그리스의 은세공과 같은 線條세공과 微粒의 테크닉을 보여준 드문 작품이다.“ (The Arts of Korea, 43쪽)
교수신문 2005년 4월 11일 조은정 한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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