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과 미술사를 통해 본 2002년 한국미술
Ⅰ. 머리말
2002년에도 많은 논문들이 쓰여졌다. 그리고 많은 크고 작은 전시와 그것들에 대한 비평문들이 있었다. 각 학회는 학술대회만이 아니라 심포지움을 개최하여 한 주제에 대해 심도있는 접근을 하려고 노력하였다.
국내외에서 미술사와 미술학을 공부한 소장학자들이 늘어가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점이다. 그러나 미술이론 분야에 국내에 학사제도가 있는 대학교가 소수이고, 반면에 대학원 과정이 전국에서 우후죽순식으로 늘어나 엄격한 입학시험과 졸업시험도 없이 만들어진 대학원 미술이론과에서 석사과정만 수료하거나 졸업한 후 전문적으로 검증이 되지 않은 채 현장에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난 것은 우려되는 바이다. 이에 따라 평론에서 “싸잡아서”와 같은 구어체의 단어들이 흔히 등장하는 점, 또는 작품이 필자의 지식을 열거하는 매개가 되거나, 비평이 그것의 전시장이 되는 글들이 눈에 띄고, 그와는 반대로 여전히 ‘인상비평’적인 글들이 쓰여지는 점들은 개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에 미술사에 대한 지식에 앞서 외국어 능력을 평가하는 엄격한 검증체계가 설립되는 것이 대단히 시급하고 중요하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면 잡지들에서 ‘젊은 작가 발굴’이나 소위 ‘떠오르는 작가’들을 선정할 때 미술사적, 미학적으로 검증하기보다는 유행에 맞는 점을 작가 선정기준으로 선택하는 일이 적어질 것이다.
미술사 논문에 있어서는 평론보다 그 질의 편차가 훨씬 컸다. 적극적으로 도서목록을 최신화시켜서 최신테제를 제안함으로써, 그것들이 한글로 쓰여져 국제적으로 피드백되지 못하는 점이 아쉬운 점이 있는 논문들이 있는가 하면, 강의록인지 논문인지 구별이 안가고, 2002년에 쓰여진 것인지 아니면 1980년대에 집필된 것인지 알 수 없도록 이미 ‘낡은’ 주장을 한 논문들도 있었다. 이러한 점들은 논문저술에서 가장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요소들이다.
Ⅱ. 평론 분야
2002년에도 대규모 국제전들이 있었다. 국내에서는 「광주•부산비엔날레」와 「미디어시티_서울 2002」가 그리고 해외에서는 일본의 「후쿠오카 트리엔날레」, 중국의 「창두비엔날레」, 그리고 독일에서만도 카셀의 「도큐멘타(documenta)」와 프랑크푸르트의 「마니에스타(Maniesta)」와 같은 전시들이 국내 미술잡지들을 장식했다.
이러한 국제전이 아니더라도 지난해 여름의 축구열기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들이 상당히 ‘국제화’되었고, 한국이 이제 세계의 중심 가운데 하나가 된 듯한 생각을 잠시동안이나마 하도록 했다. 외국의 대규모 정기전들에 대한 보고들에서 세계 미술에 대한 놀라움이 사라진 지는 오래다. 그러면서도 그 보고들에서는 국내비엔날레의 평에서와는 달리 수동적인 느낌이 들어 있었고, 여전히 원색도판 중심의 리뷰이자 구체적인 대안제시가 부족한 아쉬움을 주었다. 그러나 지난 해에 중국미술의 소개와 중국미술전 비평, 그리고 「광주비엔날레」의 <프로젝트 2 : There : Sites of Korean Diaspora>가 촉발한 외국에서 작업하는 한국 미술가들의 소개에서는 다른 외국 미술이나 국제전 소개와는 달리 놀라움과 긴장감과 적극성 등이 눈에 띄었다.
2002년에는 중국 미술전시가 여러차례 있었다. 6월에 예술의전당의 <한•중 회화-2002 새로운 표정전>과 광주시립미술관의 <붉은 대륙 중화>전, 10월 모란미술관의 <몽골 현대미술>전이 있었고, 광주와 부산의 비엔날레에서도 중국 미술을 볼 수 있었다. 중국 현대미술 소개는 1월부터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그 전해 11월에 있었던 중국미술전과 한•중•일 미술전에 이은 「월간미술」의 특집을 통해서이다. 여기에서는 ‘중국 현대미술의 오늘’이라는 제목하에 <1990년대 현대미술의 다원적 경향>(리 시엔팅), <사회로의 회귀, 중국 현대미술에 대한 내적 비판>(피 리)과 <중국 아방가르드 미술과 중국 현대미술>(윤재갑)이라는 중국과 한국 평론가의 글, 중국 비엔날레 전 총감독들과의 인터뷰와 <제1회 청두비엔날레 취재기>(류동현)가 함께 소개되어 중국 현대미술의 다양한 흐름을 볼 수 있었다. 특히 1989년 톈안민 사태 이후 최근까지의 중국 미술을 ‘물체의 공간과 재료 등의 순수한 실험을 강조한 경향’ ‘환경을 작품 요소로 구성하는 요소로 만드는 경향’ ‘행위예술’ ‘키치스타일’ ‘염속(艶俗)예술’ ‘새로운 매체 실험’ 등 5개의 경향으로 나누어 국서양 미술사와 연결시켜 중국 현대미술 10년사를 기술한 리 시엔팅의 글은 중국 미술에 대한 객관적이고 대단히 풍부한 정보였다. “사실 1990년대 이래로 영국 작가 데미안 허스트 등은 먼저 동물과 폭력화된 언어를 사용하여 세계에 하나의 문제를 제기한다. 예술은 아직 무엇을 더할 수 있는가? 영국 작가들은 금기를 깨고 동물시체를 사용했고 중국 청년작가들은 사람시체를 사용했다”라는 그의 글귀는 서양미술과의 관계에서 중국의 젊은 미술가들이 우리나라의 젊은 미술가들이 그것에 대해 반응하는 방식과 유사한 관계를 취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2002년에는 특히 미술기획자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전시들이 눈에 띄었다. 그것들 가운데 ‘젊은’ 미술가들을 보여주었고 또 9명의 학예연구원들이 각각 한명의 미술가들을 선정하였다는 점에서 호암갤러리에서 있었던 기존의 전시들과는 전혀 다른 <아트 스펙트럼(Art Spectrum) 2001>은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평론가들의 입에 가장 많이 회자된 전시일 것이다. 이 전시를 리뷰한 두명의 평론가의 전혀 상이한 접근은 이러한 사실을 증거한다.
「월간미술」에는 심상용이, 「아트」에는 이영준이 썼다. 우선 심상용은 “이번 전시는 호암갤러리의 변화의지를 발전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면서 그 이유를 다른 것과 함께 “추천된 작가가 모두 30, 40대의 젊은 작가라는 점, 그리고 최근 과열된 전시문화 증후군, 예컨대 유행하는 담론이나 기호의 조급하고 무비판적인 차용과 남용을 경계하려 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그러나 그의 글에서는 이 ‘스펙트럼’을 “외부로부터 이식된 우리미술의 스펙트럼”으로 설명하면서 특히 이들 9명 가운데 6명이 서울대 출신이고, 이들이 뉴욕 소재의 대학에서, 그리고 1명이 런던에서 계속 수학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 스펙트럼에서 가장 주파수가 높은 파장의 출처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고(조금 넓게는 영미권이고) 서울이 아니라 뉴욕이다!… 지금 우리가 혹 맨해튼에 거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서울로 이주한 미국의 한 지사의 지점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개탄하고 있다.
반면 이영준은 대체적으로 우호적이다. 그는 이 전시를 기획자의 역할이 부각된 다른 전시 <한국미술의 눈>전(성곡미술관)과 비교하면서 기획자가 그가 선정한 미술가의 작업과 전시연출에 부분적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 점 즉, 그의 용어로 표현하면, “기획자의 창의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작품 선정상에는 비교적 후한 점수를 준다. 그는 호암갤러리가 ‘비디오, 사진, 설치 등의 매체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점’을 ‘자기반성적인 반응’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그는 ‘메이킹 아트’적인 것은 개념적인 것으로 덜 신선하게 여긴다. 요즘 젊은 작가들이 조각이나 회화, 심지어는 판화와 같은 전통적 장르를 ‘구식’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지고, 또 1990년대 후반 국내에서 석사과정만을 거치고, 따라서 짧은 기간 내에 미술사와 미술이론을 ‘마스터’하고 현장에 뛰어든 젊은 ‘큐레이터’들의 기획전들이 늘어나면서 그러한 전시들에서 ‘비디오, 사진, 설치’ 등이 주로 선정되고 이에 따라 이들이 잡지들의 화려한 도판을 장식하게 되는 시점에서 호암갤러리가 위와 같은 ‘큐레이터’들과 유사한 행보를 취하는 것은, 꼭 심상용식으로 ‘족보’를 거론하는 방식을 통해서는 아니더라도,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아트」지의 경우 젊은 미술가들과 평론가를 발굴하려는 취지로 젊은 미술가들을 소개하고(‘이머징 아티스트’) 미술평론을 공모하여 당선작을 싣기도 하였다. 더나아가 ‘이 작가를 다시 본다’를 통해서는 이름이 비교적 덜 알려진 작가들을 재조명하여 부각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평론 당선작의 경우 주제에 대한 심도있는 접근보다는 기존 저널의 문화비평에서 회자되는 담론의 주 저자들의 이론을 표피적으로 열거한 경향이 강했다. 이에 따라 이것이 젊고 신선한 비평가의 출현보다는 담론적 비평가를 더 늘리는 게 아닌가, 다시 말해서 바로 위에서 언급한 경향의 젊은 ‘큐레이터’ 한명을 더 늘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또한 한 평론가가 한 작가를 ‘재발굴’하려는 난에서는 다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작가의 개인적 측면이 부각된 점이 강하고, 평론가들의 주장에서는 해당작가를 재평가해야 하는 미술사적 타당성의 규명이 전체적으로 약했다. 그러나 같은 잡지에서 오광수가 고정난을 통해 비교적 홀대받고 있는 장르인 전통회화 전시의 리뷰를 꾸준히 해나가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월간미술」은 중견작가는 ‘작가탐구’를 통해서, 그리고 젊은 작가는 ‘젊은작가구역’이나 ‘아티스트릴레이’난을 통해서 소개하였다. ‘작가탐구’의 경우 그 난에 소개된 작가들이 현재 한창 작업 중인 이들이기 때문에 작품들을 매개로 평론가의 지식으로 나열한 비평보다는 작품 탄생의 배경과 작품 내용을 설명하는 방식을 취한 평론이 독자가 각 작가와 작품에 다음 단계로 접근하는 데 있어 훨씬 더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편 미술평론가들의 계간 발행 학회지인 「미술평단」에는 각종 기구로부터 ‘연구비’ 보조를 받아 저술된 글들도 여럿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논문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에세이식의 글들이 대부분이었고, 내용상으로 비평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보고문이나 자료정리 성격의 글, 또는 근대미술을 다룬 미술사적인 글들이 있었다. 「미술평단」은 1년에 4회 발간되는 점을 장점으로 살리고 주제상으로나 형식상으로 그 성격이 명확한 회지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동안 많은 학회들이 등장하여 1년에 학회에서 발표되고 학회지를 통해 출간되는 논문 수가 많아진 것은 대단히 바람직하다. 그러나 양적 팽창에 비해서 질적 향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점은 모든 미술비평과 미술사 관련 학회가 반성하고 개진해야 할 기본적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Ⅲ. 미술사 분야
서양미술사학회에서는 2002년부터 1년에 세차례의 학술발표회와 한차례의 심포지움을 개최하였는데, 1회의 학술발표와 심포지움은 3개로 나뉜 분과가 각각 주최하였다. 이에 따라 지난 해 네번째 학회행사로 열린 학술발표에서는 ‘미디어아트’라는 주제로 3개의 논문이 소개되었다. 여기에서는 논문은 강의와는 달리 분명한 테제 제시가 있어야 한다는 논문작성의 기본명제가 비교적 적게 감안된 논문들이 있었다. 심포지움은 ‘초상화’를 주제로 르네상스에서 18세기까지 5개의 논문으로 이루어졌다. 주제가 시대적으로는 적절히 분배되었으나, 그 내용은 미술사적 중요도에 있어서는 미흡하게 느껴졌다.
심포지움의 논문들 가운데 박성은의 「15세기 플랑들르 제단화에 나타난 봉헌자 초상화」는 대부분 구간인 참고문헌을 토대로 이루어졌으며, 부분적으로는 그러한 이유 때문에 새로운 테제 제시가 부족하였다. 유사한 미비함은 송혜영의 「나폴레옹(1769- 1821)의 선전 초상화」에서도 드러났다. 한편 학술대회 논문들 가운데 정무정의 「데이비드 스미스 조각에 보이는 ‘프리미티비즘’. 오스트레일리아 원시미술과 에른스트 크리스의 정신분석」의 주내용은 이미 1984년의 MoMA전시 <20세기 미술 속의 원시주의> 도록에 나온 논문에서 보여졌고, 유사한 테제에서 출발한 연구는 국내의 석사학위논문에서도 이미 더 전문화, 세부화되어 보여져 그 집필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곧바로 1985년 가을에 할 포스터(Hal Foster)같은 「옥토버」지 비평가가 루빈(William Rubin)이 제시했던 프리미티비즘 테제가 문화제국주의적 시각이라고 설득력있게 비판한 터에 1991년 간인 한편의 책을 제외하고는 모두 1950~1980년대에 나온 문헌으로 프리미티비즘에 관해서 전후 미국 모더니스트들이 추상표현주의를 설명한 관점으로 논문을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스미스 조각의 프리미티비즘적 요소 가운데 ‘공동 창조’의 측면을 그의 미술연구에서 보여진 새로운 측면으로 설명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원시미술이 기능을 강조한 것인 사실과 서양의 미술이 개인 미술이자 순수미술이라는 사실의 차이를 간과한 서구모더니스트 미술이론가의 오해이고, 그 점을 이미 포스터가 주목했었던 것이다. 이 점은 놀데가 한국 장승을 아프리카 탈이나 민예품들과 대등하게 보고 한 화면 속에 그릴 때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과 동일한 것이다.
반면 김영나의 논문 「워싱톤 DC 내셔널 몰의 한국전 참전용사기념물과 전쟁의 의미」는 외국에서 서양미술사를 공부한 우리나라 학자들이 서구인들의 ‘오리엔탈리즘’ 시각을 재고하면서 발구해서 연구해야 할 한 사례를 보여준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필자가 미국인들에게는 ‘잊혀진 전쟁’이자 ‘경찰 행위’에 지나지 않는 한국전의 기념물에서 ‘한국의 문학과 미술에서 발견되는 전쟁의 고통이 없고 한국 관객은 염두에 두어지지 않았으며 따라서 한국전에 대해 기억하는 양국인들의 경험에 큰 차이가 있다’라는 지적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한경순의 「시스틴 소성당 미켈란젤로 벽화의 보존학적 비평」은 그 보수 작업과정을 요약한 보고문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한 아쉬움은 ‘미디어아트’ 개론이라 할 수 있는 송미숙의 「미디어아트와 문화」와 칼스루에(Karlsruhe)의 미디어아트 미술관 소개라 할 수 있는 송남실의 「미술관을 통해 살펴본 미디어아트의 소통의식 : 독일 카를스루에 미디어아트 미술관(ZKM)을 중심으로」에서도 나타났다.
현대미술학회 논문집에는 5개의 동아시아 비엔날레에 관한 논문들을 포함한 10개의 논문이 실렸다. 이 논문집에는 말레비치의 작품을 모더니즘적으로 해석한 논문과 포스트모더니즘적으로 재고한 논문이 함께 실리고, 국내의 비엔날레를 포함한 대규모 국제전들의 관료적, 이데올로기적 측면에 대해 비판하는 논문들과 소위 제3세계의 신생 비엔날레들의 긍정적 의미를 주장하는 논문들이 함께 실려, 적어도 테제상으로는 긴장감이 발견되었다. 이를테면 4회는 물론 지난 3회 광주비엔날레를 비판적으로 조명한 김영호는 「동아시아의 문화정체성과 광주비엔날레」에서 4회의 그것이 ‘한국의 정체성’과 ‘동아시아적인 것’을 동시에 다루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 출발부터가 이율배반적이라고 설명하였다. 부산비엔날레를 조명한 심상용은 「비엔날레, 미술의 관료화 또는 관료주의 미술의 온상」에서 대규모의 국제전들과 대규모의 기업만 살아남고 거대기업이 지리적 국경을 넘나들며 지배하는 후기 자본주의 경제 구조의 문화적 번안으로 해석하면서 비엔날레의 역기능을 분석하였다. 반면 김홍희는 「90년대 비서구권 신생 비엔날레 사례 연구 : 아사아퍼시픽 트리엔날레와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에서 비엔날레를 “현대미술의 용기, 국제미술의 현장”으로 해석하면서 그곳에서 ‘탈장르를 경험하고 후기구조주의적, 후기식민주의적 주제를 목도하며 지역성과 국제성이 교차하는 문화적 혼성을 경험’하는 ‘국제교류의 학습장’으로, 심지어는 ‘비주류미술’ 등을 옹호하고 제도화시킨다면서 비엔날레의 기능적 측면을 강조하였다. 이 시각은 글로벌리즘이라는 이름하에 문화적 ‘제국주의’ 국가들의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새로운 형태의 문화식민지화가 진행된 시점에서 너무 낙관적으로 보인다.
김정희는 「말레비치의 <검은 정사각형>(1915)에 대한 재고」에서 검은 정사각형을 전형적인 주지주의적 태도의 상징이자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대한 당시의 희망의 표명으로 해석하는 동시에, 그 사각형이 입체파의 꼴라주의 결과물임을 작가의 글들과 당대 미술경향과 연결시켜 규명하였다. 더나아가서 자신의 테제를 <검은 정사각형>을 여성주의적•구조주의적 입장에서 연장으로 해석한 1990년대 독일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강화시켰다. 반면 조광석은 「말레비치와 동시대성」에서 작가의 절대주의가 혁명을 원하던 시대의 ‘새로운 현실을 위한 급진적인 제안’으로 설명하면서 이 점을 신조형주의, 구성주의, 다다와 같은 동시대 아방가르드의 것과 동일시하면서 그것이 모더니즘에 끼친 영향을 강조하였다.
현대미술사학회 논문집인 「현대미술사연구」에는 심포지움을 통해 발표되었던 세편의 사진에 관한 논문들을 포함하여 9편의 논문이 실렸다. 논문들 가운데 통과된 석사논문들의 일부이거나 그것이 요약된 것들은 급조된 듯한 인상을 주는 몇 논문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탄탄하고 성실한 논리전개가 발견되었다. 이들 가운데 신채기의 「올랑(Orlan)의 ‘카널 아트’(carnal art) : 포스트휴먼 바디아트로서의 몸」은 1990년 이후 지금까지 9차례의 수술로 진행되고 있는 <성 올랑의 환생>이라는 명칭의 프로젝트인 오를랑의 성형수술퍼포먼스를 여성주의, 라깡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행위미술, 바디아트, 그리고 비디오아트와 같은 미술사적 맥락에서 다층적으로 분석한 논문이다. 신채기는 “스스로를 사랑하기보다는 자신을 소격시키기 위해서 수술을 한다”는 작가의 말을 빌어서 자신의 이미지에 빠지는 거울단계(라깡)를 넘어서는 ‘새로운 거울 단계’로 설명한다. 더나아가 올랑이 수술에서부터 찍혀지는 과정까지 그녀가 자신의 몸의 주체가 됨으로써 그녀의 작업에서 여성의 몸이 ‘남성적 담론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유순한 몸’이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올랑의 작업이 남성의 관음증 시선을 전복시키는 효과는 있으나 결국 ‘남성적’ 과학에 의해서 여성(적)의 몸이 변한다(비고정성)는 기존의 남성중심적 논리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는 측면이 있음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미술사학보」제17집(2002년 봄호)에는 박물관과 미술관에 대한 논문 두 점, 독일 미술에 대한 논문 두 점, 조선시대 회화에 관한 논문 두 점, 송나라미술에 관한 논문과 정신분석학과 미술사에 관한 논문 각각 한 점 등 시공간적으로, 그리고 방법론상으로도 다양한 논문이 실렸다. 윤난지는 「성전과 백화점 사이 :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미술관」에서 모더니즘 미술관 ‘화이트큐브’의 금욕성과 ‘레저와 소비의 장소’로 되어 가는 포스트모던적 미술관의 세속성을 상세하게 대조, 분석하였다. 이 논문의 장점이자 여기에서 논의된 상당수의 논문과 대조되는 점은 주제분야에 대해 최근에 연구된 업적들을 주장의 근거들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강민기의 논문 「‘박물관’이란 용어의 성립과정과 제도의 한국 도입」은 이보다 조금 늦게, 즉 2002년 상반기에 발행된 「미술사논단」에 실린 이인범의 「한국 박물관제도의 기원과 성격-국민국가주의에서 그 너머에로」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 전자는 2001년 5월12일에 발표된 것이므로 후자에 앞섰으나 후자는 그것을 몰랐던 듯하다. 이인범은 육수현의 석사논문(2000)의 주장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박물관’이라는 용어가 1881년 박지원에 의해서 최초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강민기는 이러한 주장을 뒤엎고 1876년 김기수의 견문기에서 더 먼저 발견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 논문은 ‘박물관’ 용어의 설립과정과 그 과정의 한,일 비교, ‘박물’ 개념의 설명, 더나아가서는 박물관 제도의 한국 도입과정을 상세하게 고증하고 있다. 이러한 논문은 일차적 자료로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이인범의 논문은 내용상 신선도가 떨어지는데, 그것은 연구방법과 집필사의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하겠다. 「미술사논단」14호에는 「동아시아 박물관에 대하여」라는 특집으로 3편의 논문을 포함하여 한•중•일 학자들이 쓴 10편의 논문들이 실렸다. 새로 쓴 논문들도 있었으나 외국인의 것들 가운데 기존의 논문들을 저자의 양해하에 재수록된 것이 있었다. 이 가운데 앞서 언급한 이인범의 우리나라 박물관 관련논문은 우리나라 박물관의 출현 과정부터 1990년대의 박물관법 변화까지 개괄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 박물관의 시작이 일제하에 서구의 예를 모델로 한 일본의 예를 답습한 「이왕직 박물관」을 통해서라고 하더라도 그 “건립이 주체적인가, 종속적인가 하는 차원을 넘어서 봉건성과 근대성, 근대성과 식민성 등, 다양한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한국 박물관 초기역사에 관해서 1990년대에 선행되었던 연구들을 비판 없이 열거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집필보다 몇 개월 수정된 기록들조차 참고하지 않음으로써 논문 집필의 첫걸음인 선행자료 수집에 있어서의 미흡함을 드러내고 있다.
- 필자 : 김정희 미술사가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
※ 출처 : <2003 문예연감> 평론ㆍ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