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정부가 최근 미국의 명문대 예일 대학에 100년 전 이 대학 고고학자였던 하이람 빙엄 3세가 빌려간 마추픽추 유물들을 돌려달라고 요구해 양국이 티격태격하고 있다. 이처럼 2차대전시 독·소 전리 예술품 반환, 한일 약탈문화재 반환 논쟁 등 문화유산 반환 문제는 세계적으로 ‘문화전쟁’의 가장 뜨거운 이슈다.

2005년 현재 외국 소장 한국 문화재는 7만여점에 달한다. 정부 수립 이래 돌려받은 문화재는 5000여점에 불과하다. 약탈품으로 그득한 영국박물관이나 루브르에서 보듯 어느 나라나 일단 소유한 미술품·유물은 내놓지 않는 데다 한국 정부의 소극적 태도도 원인이었다. 김영삼 정부 때 고속전철 TGV 매입 대신 프랑스로부터 환수하려던 조선왕조 의궤 문제가 그후 흐지부지된 건 대표적 경우다.

특히 개인 소장 문화재 환수는 재산권 침해, 선의의 취득자 보상 문제 때문에 자발적 기증 없인 불가능하다. 그런데 일제 시대 추사 김정희 연구에 몰두했던 일본인 동양철학자 후지즈카 지카시(1948년 사망)의 아들 후지즈카 아키나오 옹이 가문에 소장해 온 추사 유작과 친필 서한 등 2800점의 자료를 과천시에 기증했다. 추사 글씨는 국내 골동가에도 많이 나돌고 다작에 위작 시비까지 심심찮게 불거지지만, 정작 고증학자로서 추사의 생애와 업적, 학문 내용을 전문적으로 연구할 보존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작품 위주로 평가, 정리해온 미술사계의 관습 때문이다.

중국에 머물면서 청나라 고증학 연구에 몰두하던 후지즈카는 청나라 자료를 보면서 조선의 박제가가 중국 유학자들과 교유한 사실을 알게 됐고 그 제자였던 추사의 비석학 연구 업적에 깊은 관심을 갖게 돼 자료를 모았다고 한다. 추사가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 등 서간 700여통, 추사와 함께 진흥왕순수비를 발견한 조인영의 ‘해동금석존고’와 추사 스승인 청나라 옹방강의 유일본 전집 등 엄청난 사료들이 반환되면서 개인수장고 대신 과천시와 추사연구회의 손에 맡겨진 것도 경하할 일이다. 추사 연구와 금석학의 새 지평이 열리길 기대한다.

세계일보 2006.2.4 [설왕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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