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읽기
#615
[문화산책]문화재청이 문화재를 지킨다?
몇 년 전 국도극장이 사라졌고 얼마 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된 박목월 선생 생가가 며느리와 아들에 의해 팔린 후 바로 철거됐다. 옛 증권거래소와 스카라극장도 소유주에 의해 철거됐다. 그리고 이에 대한 악몽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문화재청이 지난 3월22일 근대문화재로 등록 예고한 경북 영천의 격납고가 이틀 만에 소유주에 의해 완전히 파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 4월18일 문화재청이 등록을 예고한 돌담길 중 경북 군위의 한밤마을은 주민들이 재산상 피해를 내세우며 돌담길의 문화재 등록을 반대하고 있다. 1970년대 ‘새벽종’이 울리며 우리의 생활문화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지금은 새마을의 아류인 ‘뉴타운’으로 인해 켜켜이 녹아있는 생활문화의 파괴가 진행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등록에 앞서 근대문화재 등록 제도에 대한 제도 개선과 함께 소유주에게 충분한 이해를 구해야 했으나 무리하게 등록 조치를 취함으로 분란만 가중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은평구 진관내동에 있는 ‘한양주택’은 집단주거시설로서의 건축적, 토목적 가치와 냉전시대의 산물로서의 정치사적, 역사적 가치를 고려할 때 보존가치가 충분한 곳이며, 도심 공동체의 문화를 간직한 곳으로 근대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공동체마을이다. 사상 처음으로 주민들이 직접 ‘한양주택’에 대한 근대문화재 등록 신청을 했다. 이에 문화재청은 근대건축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현장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보존해야 한다”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서울시의 눈치를 보는 문화재청은 사안이 민감하다는 구실을 대며 근대건축 전문가가 아닌 근대 정치사, 관광유적 전공자, 과학기구 전공자로 다시 구성해 반대의견을 듣기에 혈안이 돼 있었다.
이것이 문화재를 보존하자는 문화재청의 임무인지 묻고 싶다. 그리고 지난 4월6일 근대문화재위원회는 한양주택의 등록문화재 신청을 부결시켜 버렸다. 14명 중 1차 현장조사자인 근대건축전문가와 3명이 빠진 상태에서 나머지 위원들은 한양주택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전혀 인식을 하지 못했고, 문화재청도 관련 자료를 충분히 위원들에게 제출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회의 전에 찬성과 반대자들에게 입장을 설명할 시간을 요청했으나 이것도 묵살됐다. 또한 심의 연기 요청도 거부됐다. 모든 것이 문화재청이나 서울시의 입맛에 맞게 회의는 진행됐다. 이런 분위기에 근대문화재위원들은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못하고 하라는 대로 하는 허수아비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결국 문화재청이나 근대문화재위원회는 최근 사라지는 근대문화재의 훼손을 가속화하는 역할만 하고 있다. 이들에게 우리의 근대문화 유산을 맡겨 놓아야 한다는 것이 슬프기만 하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
- 세계일보 2006.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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