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미술관이 그가 타계한 지 꼭 100일째 되는 날인 어제(9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의 미술관 터에서 역사적인 기공식을 가졌다. 2001년부터 경기문화재단과 백 선생 사이에 건립기획에 대한 의견이 오갔고, 2003년 국제공모전을 통해 설계자가 선정되면서 미술관 건립이 본격화되어 2007년 10월쯤 완공을 예정하고 있다. 백남준은 생전에 이 미술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최초의 미술관에 대한 기대를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고 표현하였다.
어떻게 해야 백남준이 오래 살 것인가.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 되기 위하여 어떠한 미술관이 되어야 하는가. 백남준 예술의 미술사적 가치를 확인시키고 미디어아트에 대한 미래지향적 비전을 제시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누구나 공감한다. 그러나 그러한 공간이 불후의 생명력을 지니려면 미술관이라는 제도를 넘어서고 백남준을 넘어서는 초극의 의지가 필요하다.
미술관은 전시 대상물을 형식적, 양식적, 매체적 특질로 규범화하고, 미학적 관조를 위해 그것에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특정 대상을 미술품으로 전환시킨다. 이러한 주물화, 신비화의 과정 속에서 미술품은 미학적으로 고립, 우주보편적 가치를 획득한다. 그러나 미술관의 이러한 탈맥락화 기능 속에서 예술의 시공적 특수성이나 창작자의 개인성이 약화, 상실될 수 있다. 예술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회복시키기 위하여는 가능한 한 제도의 벽을 넘어서야 하는데, 이는 유품 컬렉션전보다는 프로젝트형 기획전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 단순한 미술품의 전시에 그치지 않고 워크숍, 심포지엄 등 연구와 이벤트를 함께하는 프로젝트형 전시회는 논쟁을 야기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함으로써 세계미술인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지역민이나 일반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는 쌍방형의 소통구조를 창출함으로써 커뮤니티 속의 미술관이라는 목적을 실천할 수 있다.
백남준을 넘어선다는 것은 백남준의 예술적 업적이나 비디오아트 자체에 천착하기보다는 그가 남긴 사상적, 정신적 유산을 돌이켜 보면서 그것을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한다는 점을 뜻한다. 새로운 예술에 대한 그의 비전은 일체의 이분법을 거역하고 경계에 기거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에게 예술인 것과 예술이 아닌 것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예술과 기술, 예술과 인생을 통합하는 삶의 예술, 동양과 서양뿐 아니라, 전 지구를 연결하는 사방소통의 예술로 그는 자신의 “참여TV” 이상을 실현하였다. 나아가 전통과 새로운 정체성, 로컬과 글로벌, 보편과 특수, 민족주의와 세계주의의 사잇길에서 수행되는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유희를 통해 그는 한국의 백남준이자 세계의 “남준팩”으로 현대미술사를 재편하였다.
백남준을 미술사적 인물로 박제화시키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는 창조자로 활력을 주고 그의 예술에 지역적, 초지역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우리가, 아니 백남준 미술관이 할 일이다. 요컨대 백남준 컬렉션을 전시하며 물질적 자산을 자랑하는 기념비적 미술관보다는 백남준의 정신적 자산을 자부하는 공동체적 미술관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백남준을 넘어서고 미술관을 넘어서는 이러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백남준 미술관은 백남준 개인적으로는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으로 정립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화단의 입장에서는 세계미술을 주도하는 새로운 판짜기의 토대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2006. 5. 10 조선일보 [시론]<<
다시읽기
#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