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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2
[문화산책]현대 미술계에 華流바람 거세다
지난 주말에 천안의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리는 현대중국미술전을 보았다. 팡리준과 왕두를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중국미술계의 대표작가 9인의 특별전으로, 그들은 현대사회에 대한 예리한 문제의식과 하루가 멀다 하고 뛰는 작품가격으로 서구와 한국 화단에 놀라움과 부러움을 동시에 사고 있는 작가들이다.
중국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나서 필자는 여러 상념에 젖었다. 어려서부터 한문을 배우고 중국고전을 읽는 재미에 일찍이 빠졌기에 대학의 전공으로,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중국철학을 택했다. 대학입학 당시는 마침 김용옥 선생이 하버드에서 귀국하여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책을 통해 동양학 붐을 불러일으키던 때라 중국학을 공부한다는 데에 자부심까지 느끼며 청운의 꿈을 한껏 키웠다.
그러나 이러한 젊은 날의 행복감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당시 80년대 한국 사회의 변혁과정에서 느꼈던 ‘과연 2000년도 넘은 공맹의 가르침으로 이 시대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개인적 좌절과 회의, 졸업직후 일본유학 시절에 영향을 받았던 일본학자들의 은근한 중국 멸시 풍조, 게다가 마치 지금의 동북아공정사태를 예견이나 하듯 중국인 학우들의 극단적인 중화주의 사고 등은 어느새 나의 관심을 중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했다.
앞서 1989년에 일어난 천안문 사태는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서 중국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기대를 걸었던 많은 이들을 나의 경우처럼 중국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했다.
그러나 중국은 우리가 외면을 했고 무관심을 보이는 동안 누구의 말처럼 천지개벽을 거듭했던 것이다. 주로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태어난 중국의 미술작가들은 재앙과도 같았던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등소평의 등장과 개혁개방 등 세계사에서 몇 백 년 거쳐야 겨우 겪을 역사적 풍파를 일생에 겪었다.
극좌 사회주의에서 수백 년 자본주의를 한 서구도 놀라며 일부에서는 ‘시장스탈린주의’라는 비아냥거림도 받는 요즘의 자본주의적 상황까지, 중국작가들의 고민은 그 자체가 글로벌할 수밖에 없으리란 생각까지 든다. 더욱 놀라운 것은 복잡한 문제를 간단하게 표현하여 보여주는 중국작가들의 능력이다. 이것은 한국의 작가들이 단순한 문제의식을 이상하게 복잡하게 만들곤 한다는 지적과는 대조를 이루며, 세계미술계가 중국작가들에게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은 문학과 영화, 애니메이션 등 문화 전반에 걸쳐 전 세계에 붐을 일으켰다.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던 한국은 드라마와 가요 같은 대중문화로 한류를 구가하고 있으나 벌써부터 위기설이 돌고 있다. 중국문화의 새로운 힘, 화류(華流)는 어느새 현대미술과 같은 고급예술에서 시작하고 있다.
- 세계일보 2006. 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