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2,000억~3,000억원 밖에 안 되는 국내 미술시장에서 경매사와 화랑간 영역싸움이 대단하다. 화랑들은 화랑들대로 경매회사들은 경매회사대로 자기자리 지키기에 눈 돌릴 틈이 없다. 사실 미술품경매를 생각하면 지체 없이 떠올려지는 단어가 있다. 바로 윤리성과 공정성이다. 경매장에 가보면 간혹 경매사가 낙찰을 선언하며 망치를 ‘땅땅땅’내리침과 거의 동시에 응찰자가 번호판을 들 때가 있다. 이 경우 경매사는 ‘비딩 위드 어 해머’라고 외치며 이미 내리 친 망치를 스스로 파기하고, 응찰을 다시 독려한다. 그러면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사실은 경매사 스스로 경매규정을 위반한, 잘못된 행위다.
경매 역사가 260년이 넘는 서양에선 경매진행 규율이 매우 엄격하다. 경매를 관장하는 경매사(자격을 엄격히 따진다)는 회사 소속이라 할지라도 객관적으로 경매를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회사의 지시나 감독을 받지 않도록 되어 있다.
뉴욕에서 한국미술품 경매만 열리면 늘 고민하던 일이 있었다. 한국 골동품이 출품되면 골동품 상인들이 뉴욕에 거의 모이곤 했다. 경매 전날 그들은 한데 모여 의논을 한다. ‘너는 빠지고, 너도 응찰하지 말고, 내가 입찰할 거니까’라는 식의 논의가 꼬리를 문다. 결국 고객으로부터 얼마 가격까지 매입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상인은 어쩔 수 없이 입찰을 포기하고 만다. 대신 치열한 경쟁 없이 얼마 안주고 낙찰을 받는 사람이 발생한다. 그날 저녁 호텔로 돌아오면 응찰을 하지 못한 상인은 분을 삭이지 못한다. 왜일까? 서울도 아니고 뉴욕까지 와서 응찰을 못하다니... 바로 다름아닌 입찰자들의 담합 때문이다. 여기에서 최대 피해를 보는 쪽은 물품위탁자고, 경매회사다.
<15년 전 일이다. 한국작가의 유화를 올리기 위해 뉴욕 소더비가 작가선정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퍼졌다. 몇몇 화랑에서 압력전화가 왔다. 이 작가와 저 작가는 빼달라는 요청이었다. 모 유명작가도 직접 전화를 걸어 왔다. ‘내 그림은 빼달라’는 주문이었다. 경락가격의 노출로 이미 형성된 시장가격에 피해가 있을까 봐서다. 또 다른 담합의 일종이다.
어느날 본사에서 자정이 넘은 시간에 급전을 받았다. 내일을 기해 입찰 매입수수료가 입찰가의 10%에서 15%포인트로 인상되니 고객을 만나면 잘 설명하라는 지시였다. 수수료 5%는 사실 만만찮은 액수다. 당시 나는 봉급쟁이였으니까 본사에서 하라는 대로 했지만 고객들은 꽤 많이 인상된 수수료를 내게 됐다. 당시 왜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수수료를 인상했을까. 수수료에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업에, 전 세계에 퍼져있는 지사 운영과 수천명의 봉급을 감당해야 하고, 무엇보다 주주들에게 배당을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불공정행위로 간주돼 소더비, 크리스티 양사 모두 엄청난 곤혹을 치르게 된다. “수수료 인상에 따른 응찰률 저하로 수수료 수익이 줄고, 결국 소액주주의 피해로 귀결됐다”며 몇몇 소액주주가 미 법무부에 반 독점법 소송을 내는 바람에 법무부가 직접 수사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오랜 수사 끝에 (법무부로부터 면책을 받는 전제로) 크리스티 회장이 담합을 시인하면서 유죄평결을 받게 되어 소더비 회장과 사장이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경영권도 내놓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양대 경매회사는 경영의 큰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여기에서 매입자, 위탁자, 경매회사 모두 담합의 피해자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미술시장에서는 훌륭한 그림은 화랑에서 발견하고, 저가의 그림은 경매시장에서 찾는다. 급히 팔고자 할 때는 화랑으로 가서 거래를 하고, 높은 가격을 원할 때는 반년(통상 하이라이트격인 메이저세일은 연 2회 열린다)을 기다리더라도 경매회사로 가는 것이 정석이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아주 훌륭한 작품들은 공개적인 판매를 꺼린다. 보편타당한 경매시장과 화랑의 순기능을 살펴보자. 화랑은 작가를 키우고, 시장을 리드할 의무가 있다. 경매시장보다 빼어난 작품을 취급할 여건을 갖고 있다. 이유는 화랑은 작가와 직접 거래를 할 수 있으며 수준있는 컬렉터들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준있는 컬렉터들을 지키지 못하는 화랑은 무언가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컬렉터에게 좋은 작품을 소개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대신 경매회사는 불특정 다수의 응찰자들을 상대로 시장을 열어 최고의 가격을 호가한 측에 매입의 기회를 만들어 주는, 단 하나의 기능 밖에 없다. 이 단순한 기능 역시 대단한 결과를 수반한다. 기대하지 않던 작품들을 위탁받고 분류, 감정하는 과정에서 미술품 순환의 시장기능을 맡게 되는 것이다. 무척 재미있는 사업이다. 다만 경매회사는 전적으로 ‘위탁물품에 의한 경매’만을 원칙으로 한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화랑과 경매사간 경계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경매사가 아무 물건이나 경매에 올릴 경우 공정성을 잃기 쉽다. 확대해석을 하면 공정거래 위반이 되는 것이다. 경매사는 어디까지나 위탁자가 낸 물품만 경매에 올리는 게 불문률이다. 만약 내 물건을 내놓고, 내가 낙찰 받는다면 엄청난 물의가 빚어지는 건 당연지사다.
한편 화랑들이 경매사에게 ‘경매회수를 조절하고, 10년 이하 된 작가는 취급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도 공정한 요구가 아니다. 경매시장의 순기능을 무시하는 요구다. 모두의 만족을 위한다면 화랑계는 화랑계대로 작가를 키우고 지원하며, 오히려 경매회사의 경매장을 잘 이용해 판매와 매입을 통해 결과를 챙길 수 있어야 한다. 경매회사는 경매회사의 보편타당한 의무조항인 공정성의 규율을 지켜야 하는 것이 시장의 룰이다. 경매회사는 경매만 하면 되고 화랑은 화랑의 기능만 영위하면 된다.
- 2006.7.19 인터넷 헤럴드경제 생생뉴스 '긴급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