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수 새 국립현대미술관장
김윤수(金潤洙·67) 국립현대 미술관장은 14일 오전 11시 오래되어 약간 낡은 듯한 서류가방을 들고 취임 기자회견을 하러 서울 덕수궁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으로 들어왔다. ‘민중미술의 정신적 지주’라는 꼬리표를 늘 달고 다녔고, 더구나 전 민예총 이사장이었던 김관장의 첫 인상은 자그마한 키와 작은 목소리, 내려쓴 안경과 허연 머리 때문인지 ‘국립’ 자가 들어가는 기구의 장이라기보다는 그저 ‘책상물림’ 같은 모습이었다. “지난달 8일 임명장은 받았지만, 되자마자 붕 띄우는 실속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업무파악을 좀 한 뒤에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는 김관장은 직접 준비한 ‘기자회견 요지’를 배포해 한줄씩 읽어 내려가며 하나씩 세세하게 설명을 붙였다. 그리고 자신이 느낀 국립현대미술관의 문제점을 짚어 나갔다. ‘주례사’ 같은 취임 기자회견과는 사뭇 다른 첫인사였다. “일반 국민들과 미술인들이 즐겨 찾고, 대중 속에 살아 숨쉬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되어야 하지만, 현재까지는 그럴 여건이 별로 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우선 미술관 학예직이 제대로 된 전시회를 하기에는 너무 적다는 점을 지적했다. 행정직 89명에 비해 겨우 14명인 학예직의 인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일반인이 찾아가기에는 위치가 좋지 않기 때문에 서울 중심부로 옮겨야 하며, 자료수집이나 데이터 베이스화도 제대로 안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더구나 전시도 너무 회화와 조각 등 메이저 아트에 집중되었고, 작품 구입과 컬렉션도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가장 우선적으로 신경써야 할 것은 학예직 인원을 늘리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서울 사간동 기무사 자리나 용산 미군부대 자리 등 서울의 중심부로 미술관을 이전하는 계획을 추진할 겁니다. 디자인처럼 소외되었던 미술분야에도 눈을 돌려야 하고, ‘찾아가는 미술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편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E-미술마을’을 개설해 시민과 함께 숨쉬는 미술관을 만들 것입니다” 또한 김관장은 2005년 해방 60주년을 기념하고 한국현대미술을 정리·평가하는 대대적 전시회, 그리고 우리 현대미술품의 해외 유명미술관 순회 전시회도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김철호 국립국악원장과 함께 민예총 출신이 대거 발탁된 문화계의 ‘코드 인사’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 김관장은 “무조건 양분법으로 나눠놓고 일방적 매도를 할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일하는 것을 지켜본 후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민중미술 운동을 하러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일하기 위해 왔기 때문에 특정분야의 미술을 우대할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김관장은 과거 대학에서 강의하던 때와 민주화 운동, 민중미술 운동 시절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1973년 유신직후 ‘개헌청원 선명운동’을 하던 장준하 선생이 불러서 가보니, 당국에서 장선생의 명동 사무실 문에 대못을 박아놓고 폐쇄했더군요. 그때 장선생은 내게 ‘사무실이 본부가 아니라 내게 서명해준 사람들이 본부’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때의 감동으로 민주화운동에 ‘데뷔’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미학과 56학번인 김관장은 모교와 이화여대 영남대 교수를 거치며 두차례 시국과 관련해 학교를 떠났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영남대 미대 학장 시절 운동권 학생들이 지저분하게 붙여놓은 벽보들을 ‘겁없이’ 떼어내며 “게시판에 붙여라”고 일갈했던 일로 ‘교장 선생님’이란 별명까지 붙었을 정도로 원칙주의적인 면모도 있다. 2급이기 때문에 관용차가 나오지 않는 김관장은 “지하철 타고 1시간30분 걸려 과천으로 출근할 때마다 ‘일반인들이 여기 오려면 정말 멀겠다’는 생각을 한다”면서 미술관 이전을 할 때까지 중요전시는 덕수궁 분관에서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 경향신문 2003년 10월 15일 <사람과 사람>

글 이무경기자 lmk@kyunghyang.com
사진 이상훈기자 doolee@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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