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계가 혼란스럽다. 또 사람들은 나라가 방향을 잃고 표류한다는 느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문제나 경제정책에 있어서의 정부의 무능력, 북 핵실험 이후의 불안 또 그와 관련하여 흔들리고 있는 듯한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이러 저러한 요인들이 중첩하여 이러한 느낌이 생겨날 것이다.

조금 크게 보면, 혼란의 느낌이나 불안감은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큰 목표가 흐려지고 있다는 사실에 관계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나라가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여 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 것은, 그것에 동의하든 아니하든, 경제 성장이나 민주화, 선진화, 통일의 희망과 같은 큰 목표들이었다. 어느 나라에나 국가를 하나로 묶어 내고 이끌어 가는 큰 목표들이 있다고 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그것은 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목표상실 흔들리는 한국-

민족적 위기와 집단적 삶에 대한 위협이 그치지 않았던 현대사에서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또 그것은 역사의 난국을 헤쳐 나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거기에서 연역되어 나오는 정치관-정치는 큰 명분과 큰 행동 그리고 큰 계획으로 움직인다는 정치관의 함축은 단순하게만은 평가할 수 없는 면을 가지고 있다. 정치가 큰 차원으로부터 작은 차원으로 옮겨가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할 때, 그렇다.

캐나다의 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서구 민주주의의 역사적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된 몇 가지 이념을 열거하면서 일상적 삶에 대한 존중을 그 하나로 든 일이 있다. 이것은 사람의 삶에 경제가 중요해지게 된 변화의 일부를 이룬다. 장사가 ‘점잖은’ 일이 되면서 동시에, “노동, 그리고 삶의 필수품을 만들고, 결혼이나 가족을 포함한 성과 관련된 인간생활, 생산과 출산의 삶 일체,” 즉 “일상적 삶”이 존중되어야 할 만한 것으로 생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는 전통적으로 귀족이나 무사들의 소관사로 서민들의 일상적 생활영역을 넘어가는 높은 인간행동의 영역이었다. 거기에서 투쟁의 대상이 되는 것은 명예 또는, 조금 더 넓게 생각하면, 명분이지 먹고 사는 누항(陋巷)의 번세사 (煩細事)가 아니었다. 이 이외에 높은 삶의 영역으로 간주된 것은 교회의 성직자들이 대표하는 정신적 가치의 세계였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대두는 이러한 인간행동 영역의 차등화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정치가 높은 행동영역에 속한다는 생각은 다른 전통에서도 이상한 생각이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고의 습관은 근대 이후에도 오래 남아 있었다. 중국의 현대사 연구에는 역사를 영웅들의 각축장으로 보는 삼국지나 수호지 또는 다른 역사서가, 장개석이나 모택동을 포함한 중국 현대사의 지도자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쳤는가를 밝히고자 한 것들이 있지만, 우리의 근대사에서도 비슷한 영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정치를 영웅적 행동의 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한다고 하여 그것을 반드시 개인적인 의미에서 그렇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를, 일상성에 결부되는 것이 아닌, 높은 집단적 명분과 도덕적 이상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나 사회의 전면적 개조를 표방하는 혁명 사상도 일종의 영웅적 징치관 또는 큰 정치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다시 그러한 명분과 이상의 담당자를 영웅적인 인물이 되게 한다.

민주주의가 현대적 정치 이상이라고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인간 행동에 있어서의 영웅적 차원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유감스러운 일일 것이다. 위기에 있어서 그것은, 앞에서 비친 바와 같이, 수행하는 역할이 있다. 정치의 세계가 높은 명예와 명분의 세계 또는 영웅적 세계라는 생각이 없어진다면, 직업으로서의 정치의 매력은 상당 부분 사라지게 될 것이고 인간 사회는 중요한 가치 영역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헤겔은 역사를 이성 또는 절대정신의 자아 실현의 과정이라고 보면서도, 이성적 질서의 확충과 더불어 사람의 삶에서 영웅적 행동의 가능성이 없어지게 되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시대착오적 정치 비극적 결과-

서양의 근대문학이나 철학은 삶의 세말적인 이해에 전전긍긍하는 부르주아적 삶의 속물성에 대한 경멸과 규탄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생각들을 떠나서도 영웅적 또는 높은 정신적 가치의 쇠퇴는 민주적 일상성 자체를 위태롭게 할는지 모른다. 작은 것은 큰 것에 뒷받침되어 비로소 살아남는 수가 많다. 위에서 말한 바 일상성의 긍정이 가능했던 것은, 테일러의 생각으로는, 높은 정신적 가치가 성실한 노동의 삶-즉 보통사람의 삶에서 구현된다는 종교개혁 이후의 프로테스탄트 사상의 매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우연한 역사의 우회를 나타내는 일이 아니라 정신적 정당성에 대한 사람의 요구가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예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려는 것은 물론 이러한 사상사의 문제가 아니고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정치적 혼란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오늘의 혼란은, 가장 큰 테두리에서 보면, 시대의 정치가 영웅적인 차원으로부터 보통사람의 일상적 삶으로 이행하고 있는 것에 관계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우리 정책 당국자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맞지 않는 정치관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옳고 그르고 하는 것과는 별도로 시대착오적인 또는 현실착오적인 정치행위는 희극적인 또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는다. 이 정부는 불분명한 대로 큰 명분과 상징과 계획 속에 움직여 왔다 할 수 있다. 정부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과거사 바로 잡기로 그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확립하는 일이었다. 계속 발표되는 신도시 개발 또는 국토의 총제적 개조를 목표로 하는 계획들은 처음부터 최근까지 정책 담당자들의 강박관념이 되어 왔다. 분배나 복지나 부동산 정책에서도 섬세한 조절을 통한 현실 개조의 노력보다는 명분에서 나오는 추상적 거대 계획을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보통사람에게 ‘복원’의미는?-

이러한 정치 스타일을 집약하여 보여주는 것이 최근의 역사와 건축을 아우르는 광화문 복원 계획이다. 광화문을 14.5m 앞으로 내고 콘크리트 부분을 목조로 바꾸고, 기타 여러 모로 옛 모습에 가깝게 새로 짓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러한 개축에 의하여 역사가 참으로 복원되는 것일까? 새로 헐어 지은 광화문은 그 건립 연대가 2009년이 아니라 1395년이나 1867년이 되는 것일까? 개축 전의 역사는 비역사가 되는 것일까? 금년 여름에 내가 방문한 벨기에 겐트 시의 시청은 고딕, 바로크 고전 여러 양식을 뒤범벅 해놓은, 정통주의자의 눈에는 극히 기이하게 보일 건물이었다. 그때 그때의 필요에 따라 덧붙여 지어 나간 결과가 그런 것이다.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 사원은 불에 타고 수리되고 하면서도 1,500년 이상을 그 자리에 버티어 있으면서 정교회의 성당으로, 이슬람의 모스크로 전용되었고 이제는 박물관이 되어 있다.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어떤 역사 원리주의인가? 원형으로 남아 있는 것만이 역사이지 변화, 변형되는 것은 역사가 아니란 것일까?

가장 큰 질문은 무엇이 역사인가 하는 것보다도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갈 광화문 ‘복원’이 보통사람의 일상적 삶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답변이 무엇이 되든지 간에, 복원된 광화문이 이 정부의 정치 스타일을 상징적으로 집약한 마지막 기념비가 될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경향신문 12.7 [시대의 흐름에 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