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상의 톡톡 미술이야기
문화의 속도, 미술의 속도
세계적인 미술시장의 붐이 한국에도 몰아닥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미술은 음악이나 문학과 달리 복제나 출판을 통해서 보다는 아직도 작가가 직접 만든 작품을 중심으로 시장이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좋은 작품의 숫자는 그다지 많지 않은 반면, 그것을 원하는 사람은 많기 때문에 자연히 가격이 높게 형성된다. 이러한 미술품의 희소성은 예를 들어 발터 벤야민 같은 학자에 의해 ‘원본성’이라는 개념으로 규정되면서 예술의 대중화와 민주화를 가로막는 핵심적인 요소로 비판되기도 하였다.
사실 미술작품도 인쇄나 복제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사진작품과 같은 경우는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가격을 무한히 떨어뜨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작품으로서의 사진은 관행적으로 6~8장 이내로만 만든다. 최근 독일 출신의 사진작가인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사진작품이 경매에서 10억 원대에 팔린 것은 사진에도 역시 ‘원본성’의 개념이 중요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여전히 미술시장에서 '원작’의 지위와 높은 가격대가 흔들리지 않고 있는 것은 왜일까?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미술품 수집과 관련된 전문서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중 대표적인 몇몇 서적들이 내리고 있는 결론을 보면 미술품 수집의 의의는 수집가 혹은 소장가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해나가는 과정일 뿐 아니라 고급문화를 향유하는 사회에서 자신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중요한 수단인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사실상 미술품의 소장은 상당한 희생을 각오해야 할 만큼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다. 이것을 일종의 사치나 자기과시욕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서구의 경우 미술품 소장의 전통은 어제 오늘의 것이 아닐 만큼 문화적 행동과 의식의 기저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수집이 완성되었다고 판단되면 대부분의 소장품을 공공에 기부(donate)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게다가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을 내다보았을 때 예술품 수집을 통해 문화재를 형성하는 일은 사실상 문화유산을 남기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간송 전형필, 호암 이병철 등의 선각자들이 앞서 실천한 사적인 미술품 수집이 한국미술의 맥을 잇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미술품의 원작이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실존적 존재방식과 관련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미술품을 모으는 것이다. 여기서 작품들은 대체로 그 개인이 살아가는 시대에 있어 중요하거나 의미 있는 문화적 생산물이라고 판단된 대상들이다. 그러한 미술품들을 모으는 것은 한 개인의 삶의 중요한 의의인 것이다. 대부분의 도록들을 보면 하나의 미술품은 다음과 같은 여섯 개의 정보들로 그것의 정체성을 기술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 제목, 연도, 재료, 크기 그리고 맨 뒤에 적는 소장자다. 소장자는 작품의 일부이자 그것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주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문인화들 가운데 소장자들이 그림에 자신의 서명을 넣었던 것은 어찌 보면 작품의 주체로서의 자신의 지위에 대해 분명한 의식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소장자가 없다면 예술작품도 없다. 예술작품을 알아보고 그것에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는 것이 소장자이기 때문이다. 예술가와 소장자, 이 두 사람이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예술작품의 높은 가격대와 희소성이 모두 납득이 된 것일까? 여전히 다음과 같은 문제가 남는다. 미술작품은 사고 팔 수 있는 물건이기 때문에 부동산처럼 고가의 차익을 남길 수 있는 투기대상이 될 수 있다. 아무리 문화적으로 훌륭한 자산을 모으고 남기겠다는 높은 이상을 품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단 고가의 자산이 거래되는 미술시장에서 그러한 고귀한 의도를 증명할 방법은 없다. 미술품은 언제든지 판매를 통해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상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잡한 고려와 판단이 따르게 된다. 고급 미술시장의 경우에 있어 예술가, 판매상, 수집가로 이루어진 참가자들은 다년간의 창작, 판매, 수집활동을 통해 신뢰를 쌓아나간다. 오로지 단기간에 차익을 남기기 위해 시장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신뢰를 잃고 뛰어난 작품들의 거래에 배제된다. 이러한 과정은 시간을 두고 진행될 뿐 아니라 오랜 경험과 시장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미술시장전문가와 비평가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가치의 조정을 산출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 지속적인 순환구조에서 방관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화예술은 그 자체가 가치의 생산을 목적으로 한다. 시장은 그것을 구체적인 가격으로 표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미술품의 높은 가격과 희소성은 가치의 타당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아무런 기반을 지니지 못한다. 게다가 가치는 변하기 쉬운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이들은 지속적이고 변함없는 가치를 찾아내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가장 안정된 가치를 우리는 ‘고전’이라고 부른다.
문화의 속도는 매우 느리다. 훌륭한 미술품이 나오게 되기까지도 매우 긴 시간이 소요된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종사하고 있으며 일단 비범한 가치가 산출되면 그것의 파급효과는 단순한 계산을 뛰어넘는 어떤 것이 된다. 서구가 문화와 미술의 속도를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오랜 시간과 기다림, 많은 이들의 노력과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잔느나 피카소와 같은 작가들의 대규모 회고전은 약 30년 마다 한번 씩 열리면서 각 세대에 원본들을 한 자리에서 볼 기회와 새로운 연구결과들을 집대성할 계기를 제공한다. 이러한 작가들이 30명이면 매년 엄청난 회고전이 전 세계의 관람객들을 한 자리에 모으게 된다. 프랑스는 이러한 전시를 매년 5-6 개씩 열고 있다. 엄청난 사업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들어 한국에 오는 명화들의 기획전시와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보면서 우리의 미술이 그만한 문화재들을 만들어내기까지 어떤 조건들과 얼마만한 시간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았다. 막연한 생각으론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목적이다. 게다가 작금의 우리나라의 미술을 대하는 일반의 태도에서 보듯 투자대상으로서만 관심을 가져서는 정말 요원한 미래가 아닐 수 없다.
[뉴시스 2007-01-0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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