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프랑스어에 이런 유행어가 있다. ‘책임은 있는, 그러나 유죄(有罪)는 아닌!’ 고전에서 유래된 격언이나 속담이 아니다. 책임 소재가 애매하거나 줄거리가 복잡하게 얽힌 스캔들이 터졌을 때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관련 인사를 꼬집으며 쓰는 말이다. 발음대로 옮기면 ‘레스퐁사블, 메 농 쿠파블’(responsable, mais non coupable)이다.

최근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베스트 셀러가 대리 번역의 혐의를 벗었다. 서울중앙지검 조사부가 ‘무혐의 처분’을 했다는 것이다. 대리 번역의 부도덕성에 분노했던 독자들은 다소 황당하겠지만 그것이 우리 검찰의 최종 판단이라니 할 말은 없다. 이 책은 작년 가을부터 대리 번역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오히려 수십만 부가 더 팔려나가는 기현상을 보였다. 이제는 ‘셀픽션’(selfiction·우화형 자기 계발서)이라는 새로운 출판 영역의 성공사례로 자리매김까지 하게 됐다. 어떻게 보면 기묘한 일이다. 100만 독자들이 속았고, 번역자로 이름을 올렸던 아나운서도, 출판사도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는데, 모두가 무죄가 됐다.

90년대 초 소설 ‘즐거운 사라’의 음란성 시비로 마광수 연세대 교수가 법정에 섰을 때 그는 문화 예술인들의 동정을 받았다. 그를 정식으로 옹호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았다. 작가에게 부여된 표현의 자유는 그 어떤 제약 아래에 놓여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번엔 그가 제자의 시를 도용한 것으로 드러나 엊그제 정직 2개월의 징계를 학교 당국으로부터 받았다. 그는 “과오를 벌충하고 명예 회복을 할 겸 시집과 문화비평집을 출판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그 역시 ‘책임’을 통감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유죄’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얼마 전 출판계의 ‘마이더스 손’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R씨가 편집한 책이 표지를 도용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공식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물론 출판사는 스캔들이 터진 다음에 찍어내는 책부터 표지를 신속하게 바꾸기는 했다. 그러나 독자들은 표지 도용에 대해 어떤 똑 부러진 답변도 듣지 못하고 있다. R씨는 자신의 책을 구입해준 수십만 독자들에게 ‘레스퐁사블’하지만 ‘쿠파블’하지는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한때나마 우리나라의 교육을 책임졌던 부총리도, 그리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학을 책임졌던 총장도 표절 시비로 중간에 낙마했다. 물론 그들은 할 말이 많았다. 언론을 원망하거나 또는 “억울하다, 뭔가 오해했다, 관행이었다”고 하소연했다.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수없이 목격해온 이런 모습은 근본적으로 ‘레스퐁사블, 농 쿠파블’의 자세다.

상식을 가진 일반인들, 평범한 시민들은 오히려 ‘책임’과 ‘유죄’를 거의 같은 의미로 받아들인다. 하다못해 가벼운 접촉사고나 교통법규 위반으로 적발되어도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따지고 있고, 그 책임 소재에 따라서 유·무죄 여부가 확정된다.

프랑스 중앙혈액은행이 공급한 혈액에서 에이즈 바이러스가 검출되는 오염사건이 일어났을 때 중앙혈액은행 총재도, 그를 지휘 감독할 총리도 한결같이 법망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피해자들에게 인간적인, 도덕적인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튿날 신문들이 보도했다. ‘레스퐁사블, 메 농 쿠파블?’

우리 문화 예술인들, 지식인들, 정치적 지도자들, 사회의 유력 인사들도 점차 이런 태도를 당연하게 여기는 듯하다. 모든 과오는 시스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사과를 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직책일 뿐이라는 듯이.
조선일보-2007.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