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전문적 그림위조단이 검거되었다. 이들은 공장까지 차려놓고 국내 유명화가들의 작품을 베껴 진짜인 것처럼 그림 시장에 유통시켰다. 주범은 과거 인사동에서 화랑을 운영했던 인물이다. 이들 일당이 팔지 못한 위작들이 전부 매매되었다면 시중가로 1000억원이 넘었을 것이라는 추산이다.
2005년에도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인 이중섭과 박수근의 그림 2000점 이상을 가지고 있다는 고서수집가를 둘러싼 한국미술계 최대의 위작 시비가 있었다. 만약 그 그림들이 진본일 경우 당시 평가로 총 300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 가치를 갖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수집가와 미술품감정협회, 그리고 화가의 유족들까지 얽힌 어지러운 송사가 있었고 샘플로 조사한 58점의 그림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 모두 위작으로 판정되었다. 그러나 그림을 내놓은 수집가와 이중섭의 차남은 수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보다 더 해괴한 사건은 천경자의 대표작 ‘미인도’를 둘러싸고 일어났다.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두고 화가 본인이 진품이 아닌 위작이라고 지적했으나 미술관 측과 전문비평가들은 진짜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천경자 화백은 ‘어떻게 내가 낳은 새끼를 몰라보겠느냐’고 항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상심한 그녀는 한국을 떠나고 말았다.

이런 일화들이 보여주듯 이제 현대 미술도 큰돈이 되는 단계로 우리 사회는 들어가고 있다. 얼마 전 경매에서는 박수근의 작품이 20억원에 팔렸고 이중섭의 그림도 10억원에 거래되었다. 미술품이 본격적인 투자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재력을 지닌 부자들에게 미술품 구입은 투자와 문화교양마인드의 증명이라는 양수겸장의 효과가 있다. 큰 부담이 없는 소품을 사는 시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미술시장의 활성화와 함께 사회적 차원에서 예술적 감수성이 늘어나는 것을 뜻하므로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위작 소동은 예술의 본질과 예술가의 길에 대한 상념을 불가피하게 한다. 현재 가장 비싸게 팔리는 박수근의 경우, 평생 화단에서 인정받지 못한 채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다 사망하였다. 소설가 박완서의 작품 ‘나목’에는 한국전쟁 직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미군 초상화를 단돈 몇 달러에 그려 입에 풀칠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는 박수근의 고독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중섭은 더 극적인 삶을 살았다. 평생을 어렵게 살았고 정신병원을 들락거린 끝에 요절한 그는 말년에 종이와 물감조차 살 돈이 없어 쓰레기통에 버려진 싸구려 담배 은박지로 작업하기도 했으나 오늘날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이는 생전에 완전한 무명화가로 지냈고 자기 귀를 자르는 등의 기행과 함께 정신병원에서 비참하게 삶을 마친 빈센트 반 고흐와 비교된다. 평생 그림을 1점밖에 팔지 못했으며 (그것도 화랑 직원이었던 친동생이 사주었다) 처절한 가난에 시달렸던 그의 그림이 현재는 수백억원에 거래되면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진정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신화이며 거대한 허위의식에 불과하다. 피카소는 20세기를 풍미한 위대한 예술가지만 부와 명예와 세상적인 복을 함께 누렸다. 모두가 피카소가 될 수는 없겠지만 재능 있고 독창적인 예술가가 제대로 대접받는 사회가 바람직하고 인간다운 사회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잇따라 전시회가 열리면서 선풍이 불고 있는 팝아트의 대부 앤디 워홀처럼 ‘돈이 되는 것이 예술이다’고 외치면 본말이 전도된다. 자신의 ‘예술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작품들을 고가에 팔아치운 워홀의 눈부신 상재(商材)가 과연 스스로를 행복하게 했으며 현대 예술의 앞길을 밝힌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예술이 배고파야 한다거나 예술가가 불행해야 한다는 신화는 넘어서야 한다. 그러나 안이하게 배부른 예술이 예술의 진정성을 위협하는 것도 사실이다.
세계일보/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