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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
미술계 봄은 왔지만…
미술계의 ‘봄 맞이’가 한창이다. 그 어느 때보다 기획전, 대관전 등 전시회가 많다. 미술시장 호황 조짐도 곳곳에 보인다. 자본력과 규모를 갖춘 대형화랑, 경매사들은 지난 ‘잃어버린 10년’의 불황을 털어내고 활황에 대한 기대도 높인다.
일부 계층, ‘큰손’에 머물던 소장가층이 ‘개미’들로 확대된다고 한다. 이달 초 ‘마니프’(MANIF)에는 관람객이 줄을 이었고, ‘100만원 전’ 등 기획전에도 작품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5월에 있을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의 경제적 성공을 점치기도 한다. 중국 미술시장을 축으로 국제 미술시장도 들썩인다. 단기간에 수십배의 수익을 올린 컬렉터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술작품은 이제 투자대상으로 여겨진다. ‘아트테크’란 말이 낯설지 않다. ‘블루칩 작가’ ‘작전’ ‘펀더멘털’ ‘거품’ 등 주식시장에서 통용되던 말들이 화단에서도 흔히 쓰인다.
미술계의 봄, 호황은 반길 만하다. 무엇보다 창작열정을 지닌 작가들의 작품활동 환경이 나아질 수 있다. 작가와 소장층이 두꺼워지면서 보다 나은 작품이 나오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감동을 얻는 것은 바람직하다. 사회의 예술적 감수성을 키우고, 문화적 안목을 높이는 뜻깊은 일이기도 하다. ‘예술은 배고파야 한다’는 말의 진정성은 변치 않지만, 나은 창작환경도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지금 미술계의 봄은, 과연 건강한 것인지 물어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외형적 빛에 가려 그림자는 더 짙어진다. 미술계의 추한 자화상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진흙 속에 묻힌 작가를 발굴·육성해야 할 화랑들은 미래에 투자를 얼마나 하는가. 그저 시장에 불을 지피면서 눈앞의 이익에만 매달리지는 않는가. ‘돈이 된다’는 중국 작가의 작품 확보를 위해 “주말이면 돈보따리를 싸들고 온다”는 중국의 한 딜러 말이 생각난다. 소수의 인기작가에게는 “메뚜기도 한철”이라며 작품 ‘생산’을 강요한다.
컬렉터들도 마찬가지다. 작품을 오로지 상품으로, 투자가 아닌 투기의 자세로 접근하는 일부 모습은 미술계 발전을 왜곡시킬 뿐이다. 전시회에 들러 “전시작을 몽땅 사겠다”는 싹쓸이 컬렉터가 지금도 있다. 아직도 ‘물방울 작가’ 김창열의 작품가를 “화면 속의 물방울 수로 계산하려는” 컬렉터가 존재하는 현실이다. 일부 언론은 “빨리 사서 대박을 노려라” “지금 사지 않으면 손해”라고 부추긴다. 이런 화랑, 컬렉터에 편승해 텅빈 캔버스를 선금에 팔아넘기는 작가도 문제다. 우리를 지배하려는 물질만능주의에 저항하고, 황폐해지는 인간성을 질타하는 게 작가와 작품의 존재이유 아닌가.
봄맞이가 한창인 올 봄 미술계의 또다른 면들이다. 모두가 봄을 이야기할 뿐 추운 겨울을 견뎌낼 뿌리의 강건함은 말하지 않는다. 진정한 봄은 ‘그들’만이 아니라 더 많은 모두가 미술을 즐겨야 한다. 물감값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대관료가 없어 전시회를 갖지 못하는 작가가 줄어들어야 한다. 창작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할 만큼 컬렉터의 눈이 밝아지는 게 건강한 봄이다. 조만간 미술계는 이중섭 위작논란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검찰의 입을 쳐다봐야 한다. 스스로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게 한국화단의 수준이다. 자화상이다. 더이상 부끄럽지 않은 미술계 자화상을 어떻게 그려갈까 고민할 때가 이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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