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화 / 스터디로서의 회화

회화란 일정한 평면에 눈속임(환영)을 불러일으키는 일련의 장치를 말한다. 세계와 내가 관계 맺는 매개로서 호화는 여전히 의미있는 그 무엇이다. 90년대 들어와 우리 미술계에 포스트모더니즘과 대중문화 등에 대한 담론이 활성화되고 이에 걸맞는 첨단 매체들이 조명을 받기 시작할 때, 성급한 사람들은 회화가 고급한 예술이라는 죄목으로 그리고 보수적인 매체라는 이유로 회화는 죽었다고 떠들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새삼 미술의 위기를 말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달라져야할 미술의 개념에 대한 논의의 촉발이 더욱 요구되었어야 했다. 지나치게 서구미술에 의존하면서 그곳에서 논의되는 것들이 순식간에 우리의 문제 인냥 호들갑스럽게 받아들이고 그에 뒤쳐져서는 안된다고 악을 써대는 모습이 조금은 희화적이고 더러 슬프다. 회화의 위상과 문화환경이 변하고 세상은 변했지만 한국적인 상황에서 제대로 파헤쳐져 본 적이 없는 회화에 관한 문제는 사실 여전히 미완의 장이다. 좀 거칠게 말해본다면 우리에게 회화는 기껏 서구 재현회화의 외피만 흉내낸 어정쩡한 구상회화 내지 서구형식주의미술의 ‘짝퉁’에 불과한 추상미술 등이 존재했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올 한해 나로서는 흥미로운 회화작업을 비교적 많이 접한 편이다. 젊은 작가들 중 회화에 관한 흥미로운 작업들 역시 자주 눈에 띈다는 생각이다. 현재 진행되는 그 회화들의 특성은 오늘날 급변하는 문화환경 속에서 회화의 향방과 화가의 위상을 질문하는 기류를 은연중 반영한다. 따라서 그것은 그림에 대한 그림, 일종의 메타-그림의 성격을 띄고 이루어진다. 그런데 개념적인 성격을 지니면서도 철저히 개념적인 차원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이며 감정을 자극하는 회화의 오랜 전통 또한 밑자락에 깔고 있다. 아울러 그림 그리는 자신의 자의식과 여전히 그림이 무엇이며, 무엇일 수 있는가를 질문해 보는 작업들이 두드러져 보이는 한편 이전과는 무척 다른 독특한 회화의 양상들을 전개해나간다. 나로서는 이러한 그리기의 정체성과 가능성을 타진하는 회화들이 ‘스터디로서의 회화’로 이해된다. 올 한해 그런 작업들이 눈에 띄었다. 민정기의 ‘먼길을 걸어가듯이’전, 김경인의 ‘소나무’그림, 정주영의 ‘경계위의 산’, 박주욱의 네가티브 필름 이미지를 사용한 그림, 그리고 공성훈의 ‘벽제의 밤’과 임안나의 밤풍경, 김을과 김태헌, 문성식의 드로잉작업, 김지원의 ‘맨드라미’연작과 함명수의 ‘정물’. 김보중의 ‘숲-생태풍경’, 그리고 윤정선의 흐릿한 정물과 풍경그림(최근 영국회화의 한 경향들이 엿보이긴 하지만), 한순자의 근원적인 추상회화 등등이 올 한해 기억에 남고 의미 있는 회화전시였다.

박영택│경기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