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2 하부 주제
〔평론일반〕한국 실험예술의 주제에 관한 연구 - 퍼포먼스 혹은 행위예술에 기초하여 (3)
필자가 고려한 상부 주제인 〈아방가르와 실험〉 그리고 〈소통과 참여-놀이, 인터랙션〉은 뒤에서 언급되는 하부 주제와 서로의 역할을 뒤바꿀
수도 있음을 언급해 두고 논의를 지속해야 될 필요성에 직면한다. 해석과 평가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전제 하에 우리가 조금은 작위적이고 거칠게 〈아방가르드와 실험〉이라는 주제 아래 1.친자연, 환경, 반문명, 2.현실저항과 반미학, 3.총체성과 탈장르 등의 하부 주제를 엮어
볼 수 있겠다. 한편 〈소통과 참여-놀이, 인터랙션〉에는 4. 상징, 은유, 5. 몸, 성, 페미니즘, 6. 자생성, 제의, 신명, 해학, 7. 현장성, 동시성, 일회성, 우연성 등을 엮어 본다.
하지만 둘로 나누어 살피고자 하는 시도는 주제를 이해하기 위한 논의의 편의상
기획된 것일 뿐 두 영역이 객관적으로 명징하게 구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작위적 방식은 필자
개인의 연구에 의한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에 기인한 것임을 재론하고 구체적으로 그 개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아방가르드와 실험〉이라는 주제 아래 하부 주제들에 대해 고찰해 본다.
II-2-1. 친자연, 환경, 반문명
행위적 실험예술의 장르적 특성상 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이 전시장소가 되는 만큼
제한된 화이트 큐브의 공간을 넘어서려는 노력은 기존의 보수적 장르에 반발하는 의지와 맞물려 야외의 공간으로 뛰쳐나가기를 시도한다. 게다가 80년대부터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지역을 중심으로 한 예술제
등의 발흥은 자연스럽게 이러한 자연과 환경에 대한 주제를 갖고 작업하는 이들의 결집을 가속화시키게 한다.
특히 충청권 지역에서 80년대
벽두부터 발흥한 그룹 〈야투〉는 “자연과의 신선한 접촉을 통하여 야외미술을 연구한다”는 창립취지에 부합되게 자연을 대상으로 예술행위를 도모하게
된다. 작업 자체가 부단한 자연의 질서와 체계를 거스르지 않는 시간의 과정을 부각시키기 위해 자연스럽게
도모되었던 행위적 실험이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초기의 행위적 실험예술은 〈야투>가 점차 《금강국제자연미술제》로 나아가《 금강자연비엔날레》로 덩치를 키우며 확장되면서부터는 최근에 이르러
행위적 과정에 의미를 두기 보다는 시각적 결과물을 생산해내는 것으로 초점이 모아지는 결과를 도래하게 되었다. 《대성리전》으로
출발한 《바깥미술전》 역시 유사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이다. 한편,
1990년 수원화성의 전통적 문화배경 아래서 수원에서 발족되었던 〈컴아트 그룹>은
친환경과 반문명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제를 주도하기도 했다.
개별 작가로는 앞서의 그룹에서 활동해 온 일부 자연미술가들 외에도 자연과
문명 그리고 생명과 반생명에 대한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작업해 온 김석환, 동양철학에 기초한 한국적
퍼포먼스를 통해 자연에 대한 명상적인 태도를 보여줘 온 박병욱, 동양의 선(禪) 사상에 기반해서 자연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하는 소녕철, 자연에 대한 상징적 해석으로 인간과 자연의 문제를 초현실주의적 상황연출로 드러내는 신용구, 바람, 공기, 물 등
자연의 비물질성을 드러내는 실험을 거듭해 온 이승택 등이 친자연, 환경, 반문명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해오고 있다.
II-2-2. 현실저항과 반미학
한국에 반미학과 실험의 기치로 최초 해프닝을 시도한 <무동인>을 미술사 속에서
먼저 꼽아볼 수 있겠다. 한국정치문화의 혼란기인 1960-70년대에
반미학과 새로움의 모토를 실현하기 위해 결성된 그룹 <A.G> 그리고 그룹 <S.T>의 일부작가들은 공개세미나나 지속적 스터디 모임을 마련한 그룹의 분위기를 통해 이론적 무장을 하며 행위적
실험예술에 참가한다. 새로운 실험정신을 마련하려는 대다수의 행위미술 작가들이 모두 이 범위에 포함되겠지만
특히 이러한 주제를 심도있게 천착해 온 대표적인 작가로는 스스로 반골기질에 의해서 작업을 해 왔다는 이승택이나 개념과 유희적 놀이의 방식을 통해
현실과 예술의 위상에 대한 끊임없이 반문해 온 성능경을 대표적으로 거론할 수 있겠다. 젊은 작가 층으로는
현실저항의 네트워크 결성을 목적으로 도발적인 정치적 함의를 행위예술의 주제로 삼는 김강, 김윤환이나
〈들숨과 날숨>과 같은 작업에서 볼 수 있듯이 개념적이고 미학적인 감수성을 바탕으로 현실에 대한
인식을 시도하는 박이창식 등의 작가가 손꼽힌다.
한편 최근 ‘행동주의 미술’로 명명하는 일련의 정치적 퍼포먼스도 포함될 수
있겠다.
이 주제는 사실 행위의 형식으로부터 도출되는 내용으로 앞서 상부주제를 논하는
장에서 거론된 실험정신과 깊이 개입하는 주제이다. 우선 하부 주제로 꼽기에 이 총체성이라는 개념은 미술과
타 장르의 예술의 결합, 예술과 비예술의 결합과 같은 형식적 특성들로부터 연유되는 주제가 된다. 그러나 이것이 실험정신이라는 주제와 함께 결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에 관한 논의는 실제로 심도 있는 논의를
필요로 한다. 행위예술 자체에 내재하고 있는 탈장르와 장르간 연계의 특성 뿐 아니라 오늘날 행위예술
혹은 퍼포먼스를 실험예술로 정초화시키려는 움직임도 이러한 총체성을 동기화시킨 결과에서 유래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요한 주제인 까닭이다. 여기서는 대다수의 퍼포머들이 천착하는 주제일 뿐 아니라 앞서 실험정신을 기술하는 대목에서 행한 논의의 중복을
피한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움직임만 거론하기로 한다.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여러 장르간의 자유로운 예술소통과 교감을 통해 한국
실험예술의 교두보를 마련”하려는 취지로 창립된 코파스(KoPAS)는 기존의 행위예술 혹은 퍼포먼스 그룹이
미술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로 구성되어 있던 것과는 달리 장르간 전문가의 통합과 네트워크를 시도한다. 즉, 퍼포먼스, 춤, 마임, 연극, 미술, 전통과
현대음악, 랜드 아트, 멀티미디어 아트 등 다양한 장르의
실험성 강한 작가들로 인적 구성이 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은
2002년부터 매년 국제적인 《한국실험예술제》와 매월 《하우스예술파티》를 자체적으로 기획, 개최하면서
퍼포먼스를 근간으로 하는 일상과 예술이 통합되는 실험예술의 정신으로 무장하는 새로운 예술유형을 정초하려는데 매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창작 주체가 늘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면, 실험정신이
하나의 유형화되는 결과를 지향하게 될 때 실험정신의 근본은 쉬이 사라지기 쉽다는 일반적 통념이 실현될 수 있는 불가피한 가능성이다. 한편 다영역화된 복합장르를 표방하는 이들 창작유형을 실험예술로 정초하는 가능성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 또한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상부 주제로 거론한 〈소통과 참여-놀이, 인터랙션〉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매우 다양한 하부 주제를
살펴본다. 이들을 다음처럼 4번부터 시작하는 네 개의 카테고리로
묶어본다.
4..상징, 은유 / 5.몸, 성, 페미니즘 / 6.자생성, 제의, 신명, 해학 / 7. 현장성, 동시성, 일회성, 우연성, /
'상징’이란 “어떤 사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암시, 연상 따위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은유’란
“사물을 비유 또는 설명하는 데에, 본뜻은 숨기고 겉으로는 다만 비유하는 형상만 내놓음”이란 서술로
풀이된다. 상징의 ‘암시성’이나 은유의 ‘비유의 형상’이라는 체계가 대별되지만 둘은 직접적 표현을 회피한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닮은꼴이다.
행위가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로 발현된다는 점에서 그 어떤 퍼포먼스 혹은 행위예술이라도
이러한 상징이나 은유와 같은 주제의식을 벗어날 수는 없다. 행위가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이미지란 텍스트의
지시성을 애초부터 갖고 있지 않는 까닭에 늘 해석을 필요로 하는 다의성(多義性)을 내포하고 있다. 행위로부터 근간한 이미지는 따라서 텍스트의 정확성을
가늠할 수는 없지만 그로부터 잉태하는 상징이나 은유의 제스처를 통해 소통과 참여를 모색할 수 있게 된다. 혹자는
“하나의 예술작품은 은유적 상징”이라 정의하고 있듯이 행위로부터 기인하는 이미지들은 텍스트의 개입 없이도 이러한 은유와 상징 작용에 의해 관객들에게
이해되며 상호작용한다.
행위자와 관객 사이에 벌어지는 인터랙션은 그 어떤 예술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행위예술, 퍼포먼스의 장에서는 다른 장르보다 더 활성화된 주제의식이 된다. 따라서 상징이나 은유를 주테마로 삼는 특정 퍼포머가 있기는 하지만 모든 퍼포머들이 이 주제의식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이로부터 벗어나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모든 퍼포머들이 구사하는 기본적인 전략이 된다.
기어가기, 느리게 걷기, 달리기, 뛰기, 멈춤, 웅크림, 소리 지름, 버둥거림
등의 행위요소가 상징이나 은유를 표상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행위의 연속적 내러티브 속에서 창출되는 것으로 관객이 시간을 투여하고 참여함으로써
인식되는 경우가 대다수라 할 것이다. 반면에 행위자가 소품이나 도구로 사용하는 오브제들이 다분히 상징이나
은유의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가 대다수라 할 것이다. 권력을 은유하고 사회적 위계를 상징하는 높은 의자, 익명성을 강조하는 복면, 굴레를 표상하는 끈, 자연을 드러내는 황토빛 분장,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물, 자아반영을 상징하는 거울, 표현의 직접적 서술을 의미하는 물감, 존재 혹은 기원을 상징하는 촛불과 같은 여러 소도구는 행위를 뒷받침하는 부요소로서 등장함에도 이러한 상징과
은유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기제가 된다.
기본적으로 퍼포먼스, 행위의 근간은
몸이다. 애초의 출발부터 의미의 표출처인 몸은 생명의 근거지, 발언의
근거지로서 행위예술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주제의식이 된다.
욕망과 본능의 억압과 이의 해방이라는 의식 속에서 성과 페미니즘의 주제의식이 80-90년대 이래 왕성하게 모색된 적이 있다. 이러한 몸, 신체의 실존론적 상황을 가장 첨예하게 드러내는 요소는 불필요한 요소들을 다 던져버린 ‘누드로서의 행위’라 할
것이다. 자연성과 존재성을 드러내는 이러한 누드 퍼포먼스는 행위 자체를 이슈화하는 경우가 대다수여서
자칫 행위의 근원적 성찰을 이벤트화하는 위험에 봉착하기 십상인 점은 경계할 점이라 하겠다. 해서 요청되는
또 다른 방식의 누드는 색을 입히는 행위이다. 흰색, 살색
등의 단일한 색상으로 인체를 꾸미는 행위는 누드로서의 행위를 이미테이션하면서도 동시에 이러한 누드로서의 행위를 근본적으로 표상하게 된다.
몸, 신체에 부가하는 행위들은
몸을 상처내거나 억압하면서 본능에 대한 의미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배설행위나 그 상징들을 도구화해서
몸의 연장으로 살피는 퍼포먼스들 역시 많이 행해졌다. 몸은 행위의 주요 주제이자 도구가 되는 셈이다.
몸의 욕망이나 본능을 강조하게 되면서 촉발되는 주제의식은 다분히 섹슈얼리티의
면모를 심화시키기도 한다. 성에 대한 주제의식을 지향하는 행위예술의 주요한 출발점은 성을 은밀한 사생활의
영역으로부터 공론의 장으로 옮겨놓고자 하는 데서 나타나는 것이 대다수이다.
한편 부계적 질서에 대한 억압과 굴레를 전복하게 되면서 때로는 축제의 형태로
때로는 반란과 저항의 형태로 페미니즘의 주제의식을 펼치는 행위들이 등장하게 된다. 여성이 갖는 불평등성을
제도와 남성성에 대별시키고 어머니, 아내, 딸과 같은 여성의
제도적 정체성에 대한 모색 속에서 결혼과 가사노동 등에 대한 사적인 발언들을 내세우기도 한다.
이들 행위예술은 많은 부분 저항의 기치를 강화하기 위해 집단적 움직임으로
퍼포먼스를 구축하기도 한다.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관습과 그로부터 구축된 여성성에 대한 전복이나 반란은
굳이 저항적 페미니즘에서만 추구되는 주제의식이 아니라 모든 페미니즘이 근간하는 요소라 할 것이다.
서구로부터 유입된 현대미술의 장에서 퍼포먼스 역시 그 예술적 근원을 동양적
정신사상, 한국적 전통으로부터 찾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80년대
들어 부쩍 생성되었다. 당시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촉발된 이러한 양상들은 다양한 예술
유형의 근원성을 되묻는 뿌리 찾기의 과정으로 확장되기도 했다. 자생성에 근간한 주제의식은 다분히 굿과
같은 제의적 측면이 주요한 실험과 모색의 대상이 되었다. 굿의 유형이나 조상과 친족의 죽은 영혼을 달래주는
망제(望祭)의 유형은 산자에게는 재앙과 화를 멀리하는 축귀(逐鬼)와 복을 바라는 기복(祈福)의 기능이 한데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소통의 체계를 도모하는 행위예술에서 적극적으로 모색된 주제의식이라 할 것이다.
퍼포먼스 혹은 행위예술이 문화예술행사의 부대 행사로 이루어져 온 많은 사례들에서
고찰되듯이 행사의 스펙터클을 강화하는 기제로 사용된 제의는 대중 참여의 기회를 모색하는 전통놀이를 승계하는 축제의 유형과 맞물리는 것이 통상이다. 다수의 참여를 통해 창작 주체의 행위가 확장되면서 신명과 해학의 요소들이 한마당 축제의 장에서 확산되어 온
것이다.
소통과 참여-놀이와 인터랙션의
근원적 고찰을 이러한 한국의 고전적 전통으로부터 살피려는 자생성에 대한 모색은 퍼포먼스의 장을 우리의 것으로 정초하려는 일련의 시도로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최근 이러한 자생성, 제의, 신명, 해학의 주제의식은 우리의 것이라는 국수적 태도를 벗어나 퍼포먼스의
다양한 양상을 모색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 장에서 언급되는 현장성이란 체계적 계획을 의도적으로 방기한 채 현장의
상황들을 적극적으로 맞닥뜨리면서 퍼포먼스의 일부로 유입하는 특성을 지칭한다. 현장의 시설을 행위의 일부로
가져오는 식으로 행위의 장(場)을 적극적으로 이해, 응용하는 태도이다. 이럴 경우 애초에 계획되었던 프로그램이나 내러티브가
현장에 맞게 재구성되는 경우가 태반인데, 일견 무계획적인 퍼포먼스의 특성상 이는 현장에서의 즉흥적 태도를
통해 퍼포먼스의 의미를 보다 더 고양시키는 적극적인 상황이 발생되기도 한다.
오늘날, 퍼포먼스 혹은 행위예술은
플럭서스(Fluxus)의 도발적 행위나 해프닝(Happening)의
그것과 달리 이미 내러티브의 구조를 체계적으로 가지고 출발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특히 내러티브를 심화시키기
위해서는 현장성에 대한 즉흥적 판단을 유보하고 사전에 프로그램을 계획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할 것이다. 즉
행위 이전에 미리 현장을 탐방하고 창작에 적용하는 예들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구체적 계획이나 예정성을 탈피한 게릴라적 퍼포먼스들이 존재한다. 퍼포먼스의 도발성, 실험성 등은 이러한 주어지지 않은 시공간에 개입하는
게릴라적 퍼포먼스들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일상의 공간에 침입하여 다수의 대중을 관객으로 급작스레
몰아넣는 경우, 일상을 예술의 장으로 변모시키는 상황 등이 그것이다.
특히 시위의 양상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류의 행위미술은 즉흥성과 현장성을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아방가르드적 도발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동시성, 일회성, 우연성과 같은 기제는 퍼포먼스의 형식적 특성이 내재시키는 주제의식이라 할 것이다. 하나의 시공간에 행위자와 관객이 교류하는 동시적 특성, 당시의 현장을
되살릴 수 없는 일회성, 그리고 행위 중에 발생하고 개입되는 우연성과 같은 주제들은 행위예술의 근간을
이루는 있는 주제의식들 중 하나로 오랫동안 기능해 왔다. 퍼포머들마다 이러한 세부주제를 활용하는 방식들은
‘소통, 참여- 놀이와 인터랙션’이라는 상부주제와 연관되면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할 것이다.
나오는 말
이상으로 논의한 실험예술, 즉
‘행위적 실험예술’에 대한 ‘주제 고찰’을 아방가르드와 실험에 기초한 소통과 참여의 내용으로 구체화해 보았다.
실상 본고에서는 생략된 ‘형식에 대한 고찰’이 함께 심도 있게 거론되었더라면
논의의 평형감각을 보다 더 명쾌하게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제와 형식을 분류하거나
한데 묶어 살피려 하지 않았던 이유는 형식 분석에 대한 관심을 의도적으로 배제해서 주제에 대한 심화된 논의를 전개하기 위함이었다. 필자의 연구 결과, 상부 주제 〈아방가르드와 실험〉이나 〈소통과
참여-놀이, 인터랙션〉은 다양한 하부 주제를 효율적으로 검토하기
위한 하나의 얼개로 구성되었는데 퍼포먼스 혹은 행위예술의 초기의 실험정신을 계승하고 총체성을 발전시켜 ‘실험예술’이라는 용어로 정초화하려는 최근
노력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검증해 보고자 한 시도의 일환이기도 했다.
독자에 따라서는 논의의 초점이 흐려져 과도하게 부가적 논의를 집중시키거나
정작 필요한 논의를 방기한 결과를 발견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연구자들의 질정을 바란다. ●
(2006. 7. 29)
(주석 생략)
출전 /
김성호, "실험예술의 주제와 형식 연구-퍼포먼스
혹은 행위예술에 기초하여",『실험예술, 어떻게 볼
것인가』, 2006 한국실험예술제 세미나(2006. 8. 4, 하스라아트월드) 자료집, KoPAS, 2006, pp.9-25. & 김성호, "실험예술의 주제와 형식 연구-퍼포먼스 혹은 행위예술에
기초하여",『실험예술, 어떻게 볼 것인가』, 다빈치기프트, 2007, pp.4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