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는 글


주지하듯, 오늘날 미술관이 ‘비영리와 공공성을 지향하는 문화예술의 생산자’로 정초되고 있음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하지만 이 같은 미술관 개념에 대한 인식의 차원을 넘어서 있는 실제 현장에서는 미술관이 제 기능을 다 하고 있지 못하다는 볼멘소리가 시시각각 들린다. 국공립미술관은 말할 것도 없고 사립미술관에서조차 요구되는 공공성의 기제가 ‘아전인수’ 격의 유권해석으로 흔들리고 있는 탓이다.


‘미술의 민주화’가 이룩한 공공 지향의 특성이 ‘미술의 친()대중화’와 같은 모토로 변질 해석되는 것은 예사가 된 지 오래다. 미술관들이 관객 유치를 통해 막대한 운영 재정을 충당하기 위한 자구책이나 미술관의 위상을 드높이려는 홍보의 목적을 위해 ‘미술의 민주화’라는 명목으로 대중의 기호와 요구를 맞추는 전시들을 양산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상파전이라든가 피카소나 샤갈 등과 같은 유명세를 치루는 작가의 작품들로 꾸려진 블록버스터 쇼 유형의 전시가 물밀듯이 유입되는 것은 물론이고 ‘대중 참여’와 ‘대중 친화’의 이름으로 놀이나 축제와 같은 스펙터클 유형의 전시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기도 하다. 한편, 1995년 광주비엔날레 이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각종 이름의 비엔날레, 트리엔날레와 같은 국제문화예술행사의 번성 또한 괄목할 만하다.


 


본고에서는 블록버스터 쇼, 아트페스티벌, 비엔날레, 트리엔날레와 같은 유형의 예술장르의 다양한 전시복합체(Exibitionary Complex) 형태를 통상 아트이벤트(Art Event)로 통칭하고자 한다. 미술의 장에 국한해서 살펴볼 때, 미술관 내외에서 생성, 만연되고 있는 이들 아트이벤트들이 작금에 ‘미술관의 고유위상과 기능’에 직간접적으로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미쳐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본고는 국제아트이벤트가 권력과 시장 논리에 유착해 있으면서도, 오늘날 미술관 내외에서 미술관의 고유 위상으로 정초된 ‘미술의 민주화’를 어떻게 변형, 확대, 재생산하는 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것의 부정적, 긍정적 역할에 대해서 고찰하고자 한다. 대중의 기호를 충족시킬 뿐 아니라 그들을 교육하고 탈 엘리트적 공공성을 강화시키며 나아가 재정 강화를 추구하는 방식의 블록버스터 쇼의 긍정적 면모 뒤에 순수예술의 대중예술화와 같은 ‘미술의 민주화에 대한 환영’이나 예술의 과도한 마케팅과 같은 ‘상업화’가 내포되어 있는 현상들도 모색될 것이다. 이러한 미술관과 관련한 아트이벤트에 대한 분석들은 이들의 영향으로부터 오늘날 위기에 봉착한 미술관의 현 상황을 진단하고 그에 대한 향방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II. 미술관의 민주화-권력과 시장 사이


《국제박물관협회(ICOM, 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박물관/미술관에 대한 위상과 기능에 대한 정의를 시도하고 있는데, 1954년에는 ‘수집, 보존, 전시’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1968년에는 ‘연구’를, 1969년에는 ‘교육’을 새로이 추가하고 있고 1973년에는 특히 ‘전시’의 차원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에는 ‘공공성과 비영리’라는 위상과 더불어 ‘수집, 보존, 연구, 중재(교육), 전시’등의 기능이 미술관을 풀이하는 주요 키워드가 됨에는 이견이 없어 보임에도 이 또한 다른 개념이 유입되어 확장될 수 있는 여지는 다분하다. 미술관의 개념은 역사적, 사회적 콘텍스트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모하며 전개되어 온 까닭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트이벤트와 관련한 우리의 논의를 위해, 이러한 미술관의 변모 양상을 ‘권력, 미술관, 시장’의 상관성 안에서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종교적 성전이나 왕실, 귀족들의 거처에 소장되었던 ‘권력의 수장고’가 이합집산되어 ‘대중들을 위한 뮤지엄’으로 변모된 계기에는 당시의 혁명 격동기의 유럽의 상황으로부터 촉발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혁명정부의 이상은 ‘대중에게 공개된 뮤지엄’을 통해 ‘문화제의 공공성’을 인식시키려는 미술의 민주화를 촉발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대중을 위한 미술관은 오랫동안 원래의 지향점을 수립해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19세기의 미술관은 당시의 혁명봉기 등 혼란스러운 정치상황으로 인해 ‘권력 이미지를 제한적으로 분배’하거나 다분히 정치적 헤게모니와 권력의 차원에서 생성된 대박람회(Grand Exhibition)는 대중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일삼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통치 권력이 의도하는 ‘대중을 위한 미술관’이란 정작 통치 권력의 위대함을 대중에게 선전하기 위한 목적을 수행하는데 존재할 따름이었다. 1차세계대전 동안, 식민지 정책이 야기한 약탈문화재를 통해 자국민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려는 루브르나 대영박물관의 대중계몽 차원의 뮤지엄 소장정책이 바로 그것이었다.


권력의 위계로부터 탈주하면서 생성된 근대 미술관의 초기역사가 ‘미술의 민주화’를 설정, 지향하면서도 여전히 권력의 논리에 종속되어 있어 민주화의 논리는 지극히 국민주의, 민족주의의 이데올로기 안으로 포섭될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노정하고 말았다. 프랑스의 경우, 시민혁명이 의도한 자유주의가 19c-20c초의 제국주의 시대의 국가권력과 타협한 국민주의, 민족주의 안에 포섭되고 만 경우가 그것이다. 미술관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대중을 위한 뮤지엄의 이상’은 결국 패권주의의 치적을 게시하는 ‘국가권력의 수장고’로 다시 포섭되고 만 것이다.


근대적 미술관의 ‘예술, 미술의 민주화’가 대외적인 국가패권주의와 대내적인 독점자본주의가 만나는 제국주의의 시대에서는 ‘국민주의, 민족주의’로 퇴색되었다고 한다면, 작금의 현대적 미술관의 민주화는 자유민주주의가 표방하는 ‘문화예술 향수의 고른 분배’ 나아가 예술에 대한 엘리트의 경험을 모든 이에게 고루 분배’하고자 하는 ‘미술의 민주화’가 비교적 유효한 모습으로 정착되어 있다 할 것이다.


 


이런 까닭은 미술관의 디스플레이 체계가 소장품에 한정되지 않고 동시대의 미술유형에 관심을 돌리면서 유발된 비소장품으로까지 확장되는 전시 체계에 일정부분 근거하고 있다. 소장품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그 역사적 내러티브가 문맥화된 과시적 디스플레이가 주종을 이루던 미술관의 역할이 현대의 시점에 들어서 동시대에 다발적으로 생산되는 비소장품들의 전시를 시도하면서 그것의 탈문맥화(decontextualization)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미술관 스스로 ‘미술만을 위한 배타적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전시된 작품들로부터 ‘제의적 가치’를 탈각시켜내고 단지 ‘전시적 가치’만이 남는 ‘제시의 정치학’(politics of Presentation)을 실행하게 된 미술관은 ‘화이트 큐브의 내부’(inside the White Cube)를 통해서 그 스스로 특정적 고립과 배타적 성격을 강화시킨다. 화이트 큐브 안에서 관람자는 서로 널찍이 떨어진 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작품들을 천천히 바라볼 수 있는 미적 경험을 독점하면서 스스로 고립된 시각적 소비를 극대화한다. 권력의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 독립된 자율적 개념으로서의 관람자 개념이 태동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족적으로 독립한 화이트 큐브에서는 대중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현대미술작품들이 대부분 전시되게 됨으로써 모더니즘 시대의 미술관은 ‘특정층의 관객에 편중된 기호의 대상’이 되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미술관의 민주화’가 실현되기에는 요원한 지점이라 하겠다. 대중문화와 차별화한 엘리트 미술을 이해시키기 위해 미술관은 잠재적 관객을 개발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는 관객들에게 미술을 이해시키기 위한 다각도의 연구와 교육을 수행하는 수용자 중심의 정책을 활발히 수행해야만 되었다. 민주화를 위한 관객 중심의 노력들이 미술관 내 지향의 ‘미술관 교육’과 미술관 외 지향의 ‘미술관 정책’으로 가시화되며 오늘날에 자리를 잡아온 지는 벌써 오래이다.


 


문제는 오늘날의 미술관들이 수용자 중심의 정책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대중에게 ‘엘리트 미술을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을 일정부분 방기하고 ‘친()대중 지향의 미술’을 생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견 ‘미술관의 민주화’를 극대화하는 지점이지만 동시에 ‘미술관의 대중화’라는 위험에 빠지는 양면성의 지점이기도 하다. 풀어 말하면, 그 지점이란 대중의 기호와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다분히 시장논리에 기승하는 대중문화의 기호체계를 모방하면서 미술관의 비영리와 공공성의 고유 위상을 포기하는 데까지 이르는 상태를 지칭한다.


이제 미술관은 국가주의와 독점자본주의의 권력이 문화재와 예술작품을 통해 대중을 계몽하고 계도하려는 근대적 개념의 미술관으로부터 후기자본주의의 시장이 상품화된 예술을 통해 대중의 소비기호를 촉진하려는 현대적 개념의 미술관으로 변모하였다. 결국, ‘성전으로부터 화이트 큐브로 다시 백화점’으로 이동해 온 미술관의 최근 현장의 실체는 변모된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대중의 기호와 요구에 부응하려는 대중지향성으로 변형된 민주화 논의에 기초하고 있다. 오늘날 변형, 확대 해석된 ‘미술관의 민주화’ 개념이 미술관을 국가와 엘리트를 위한 전시 장소로부터 레저와 소비의 시장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미술관의 역사는 이렇듯 권력과 시장 사이에서 끊임없이 작동해 온 미술관의 민주화에 대한 해석과 그에 대한 실천에 다름 아니다.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말이다.


 


 


 


 


III. 미술관의 위기-‘블록버스터 쇼’와 시장 사이


미술관이 그 동안 추구해온 민주화가 최근 대중주의로 지향, 변질되면서 미술관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특히 미술관으로부터 확장되는 다양한 전시유형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일정한 시간 동안 열렸다가 다시 홀연히 사라지는 전시의 유형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일시적 전시는 이데올로기와 그것의 생산자를 드러내는 사회적 사건으로 변모하고 사회적으로 책무를 지니게 된다." 그런 만큼 생산되고 이내 사라지는 전시의 책무는 막중한데 오늘날, 후기자본주의의 시장, 권력과 결탁하면서 생성되는 전시 유형 들 중에서 통칭 아트이벤트의 유형들은 이러한 사회적 책무를 대중주의로 변질시키고 있다는 비판에 처해 있다. 미술관의 블록버스터 전이나 미술관 안팎의 아트페스티벌, 비엔날레, 트리엔날레와 같은 국제아트이벤트들은 지나친 전시주의에 매몰됨으로써 미술관의 지형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어 ‘수집, 보관, 연구, 교육, 전시’로 대별되는 미술관의 고유 기능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미술관을 문화기업(entreprise culturelle)과 같은 양상으로 전개시켜 나감으로써 시장주의를 강화함으로써 ‘공공성과 비영리’라는 미술관의 고유 위상마저 훼손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장주의는 근본적으로 민주화의 공간이 아니다. 언제나 등가로 교환 체계가 일어나지 않는 불공정성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문화와 예술이 거주할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 우리들 논의가 있다. 시장주의가 미술관의 공공성과 비영리의 위상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시장과 다리를 대고 있는 블록버스터 쇼나 국제아트이벤트에 관련한 우리들의 비판적 논의는 지속된다.


블록버스터 쇼(blockbuster show)를 두고 혹자는 ‘일반적으로 미술관에 가지 않는 이들이 전시 관람을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초대형 대관 전시’라고 정의를 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최대의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막대한 자본을 투여하여 최대의 효율을 꾀하려는 대규모 전시’로 이해된다. 블록버스터란 원래 제2차세계대전 중에 영국이 사용한 4.5톤짜리 폭탄의 이름이다. 이것이 한 구역을 날려버릴 만한 막대한 폭발력을 지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후 ‘대규모 자본 투자를 통해 대규모의 글로벌 흥행을 일으킨 영화’를 일컬어 왔다.


 


미술 현장에서 전시(Shows 혹은 Art Exhibitions)라는 단어와 결합되어 사용되는 블록버스터 쇼는 애초에 미술관의 민주화를 고려한 또 다른 장치로 출발되었지만 그것은 다분히 국가 권력의 장치에 의해서 작동했을 뿐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열강이 자국의 권력을 과시하고 전후 복구의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 자신들이 소장하고 있는 유명 작품들을 해외에 대여하면서부터 블록버스터 형이 되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전후 복구와 강력한 국가건설을 도모하던 파시즘 정권의 이탈리아가 무솔리니의 전폭적 지지 하에 영국 런던 로얄 아카데미 오브 아트에 작품을 무더기로 대여한 1930년의 한 전시, 《이탈리아 예술 1200-1900년》이 그것이다. 이 전시는 54만 명의 관람객을 기록했다.


 


최근에 들어서는 대중으로부터 엘리트주의라는 비판에 직면하곤 했던 현대미술 관련 전시를 시도하던 미술관들이 보다 더 대중과 가까워지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익히 그리고 널리 알려진 유물이나 명작들의 전시를 고려하면서 블록버스터는 계승되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국가권력 과시로부터 문화권력 과시로의 이행이다. 이러한 예를 우리는 또한 이집트로부터 출발, 영국을 순회 전시하고 미국에서 끝을 맺은 《투탕카멘의 보물》전을 예로 들 수 있겠다. 특히 ‘영국에서의 전시’에는 아홉 달이 넘는 기간 동안 169만명이 넘는 수의 관람객이 방문했다고 전해진다.


무수한 대중의 기호를 충족시키는 블록버스터 전은 거대규모의 유물전 외에도 대중과 친숙한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계열의 유명세를 치루는 작가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앙리 마티스 전》(뉴욕현대미술관, 1992-93)이나 《클로드 모네 전》(시카고 아트 인스티튜드, 1995) 등이 그것이다. 두 전시 모두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모네와 같은 20세기 미술사에서 유명세를 치르는 작고작가의 전시는 어디서나 블록버스터 쇼가 된다. 피카소, 샤갈, 달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국내에서도 이러한 이름을 달고 있는 블록버스터 전이 개최되어 흥행을 기록했을 뿐 아니라 내년 역시 이러한 유형의 블록버스터 전 개최가 줄줄이 예정되어 있다.


 


유물전이든, ‘규범적’인 해외유명 작가전이든 미술관의 이러한 블록버스터 쇼는 피상적으로 미술관의 민주화를 수행하듯이 보인다. 엘리트 미술로 대중과 괴리를 둔 전시의 관행을 완화시켜낸다거나 물리적 거리를 이동하지 않고 복제물로만 감상했던 명작의 오리지널리티를 감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와 그를 통해 ‘문화적 자본’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 공공기관으로서의 대중교육의 역할을 감당하는 양상이 그것이다. 게다가 관객동원의 성공을 통해 주최기관에 유명세를 덩달아 안겨줄 뿐만 아니라 재정적 압박에 시달리는 미술관의 재정 구축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블록버스터가 내세우는 민주화란, 실상 해외의 유수한 미술관의 소장품을 막대한 대여금과 보험료를 지불하고 빌려온다는 점에서, 당시 지출분을 만회하고 이를 넘어서 대흥행의 수익 창출을 도모하는 엔터테이먼트적 소통에 국한되기 십상이다. 전시 자체가 대중에게 기호대상인 까닭으로 이를 적극적으로 소통시키기 위한 마케팅 전략에 온통 집중하기 때문이다. ‘세기의 천재’라든가 ‘색채의 마술사’ 혹은 ‘서양미술 400년’과 같은 전시에 대한 화려한 수식어는 물론이고 ‘8개국 프랑스 국립미술관이 참여’라든가 ‘일생에 단 한번뿐인 기회’라는 식의 선동적 언론 홍보와 과대 선전은 ‘관람객 동원’에 사활을 걸고 있는 주체기관의 상업적 목적을 다분히 드러낸다. 심포지엄을 통해 전시를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부대행사들은 뒷전이고 도록이나 다양한 아트상품의 판매를 촉발하는 마케팅이 전면에 나서서 전시의 상품화에 집중되고 마는 일은 허다하다.


이러한 전략들은 관람자로 하여금 본 전시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 무수한 군중들의 군집 탓에 관람객들은 작품 하나하나를 제대로 감상하기조차 힘들다. 게다가 전시작가에 대한 편협한 개인사와 낭만적 예술가상(복잡한 애정관계, 사회 부적응적 태도, 예술에의 집착)에 초점을 맞추어 작가를 신비화하는 전략은 다분히 엔터테이트먼적 대중주의를 생산하고 말 뿐이다. 해외 순회가 이미 진행 중인 전시를 급작스럽게 국내에 가져오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국내의 경우, 인상파 관련 작가 전시를 프랑스가 아닌 일본의 미술관 소장품으로만 옮겨오는 경우조차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블록버스터를 주최하는 미술관이 자체 기획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을 대여하는 해외 미술관의 사정에 따라 기획을 위한 협상이 좌절되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지만, 주제에 부합하는 작품들이 아닌 주변부 작품들로 전시를 구성하기 십상이어서 미술사적 맥락에 위치를 점유하는 작가들의 본질적 의미를 오도하기 쉽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인지도가 있는 유명 작품들은 대여측에서 많은 부분 대여금지 목록으로 정하고 있는 탓도 있지만 설사 협상이 타결된다 할지라도 훨씬 높은 작품의 보험료를 감당할 길이 없어 전시는 알맹이는 빼고 껍질만 가져와 불균형한 작품 선정을 실행하는 경우가 다반사라 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블록버스터를 공동주최한다는 미술관은 실상, 일정부분의 지분만 챙기고 기획에는 전혀 관여를 하지 않는 허수아비거나 아예 장소만 이벤트기획사에 대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한 경우, 이러한 수익 창출에 급급한 이벤트기획사들에게 장소를 대여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미술관이 있기조차 하다. 자체기획은 방기하고 해외미술 소개를 장소대관으로 충당하려는 꼴이 된 셈이다. 이 경우는 대중들의 문화적 향수의 기회를 심각하게 오도할 수 있다. 전시 주최자가 미술품의 미학적, 미술사적 가치를 국내에 향유시키려는 데 목적을 두고 기획하기 보다는 상업적 목적이 일차 순위인 만큼 기획에 있어서는 미학적, 미술사적 가치에 대한 재고가 전무하다 할 것이다. 이들에게는 이미 만들어진 전시를 성공적으로 가져오는 것이 기획일 뿐이다. 또 있다면, 일반 전시장이 아닌 미술관의 대관을 성공시킴으로써 공공성의 위상을 뒤집어쓰고 흥행 보증을 도모하는 따위의 일일 것이다. 공공성을 빌려 상업적 의도를 숨겨두는 이들의 전략은 파렴치하기조차하다.


시장 앞에서 블록버스터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미술관의 위기는 심각하다. 사실, 1950년대 중반 이후 급속한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궁지에 몰린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대규모의 자본을 투자한 제작시스템으로 블록버스터의 물결에 물꼬를 틔우며 제 밥그릇 찾기에 나섰지만 예술사회학적 측면에서는 이러한 영화 산업의 부흥을 텔레비전 방송의 일방적 전달이라는 비민주화된 소통체계에 대한 반기로 해석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상 미술의 장에서, 70년대부터 촉발된 블록버스터 쇼의 물결 역시 당시 미술관의 엘리트적 미술 위주의 비민주화의 전시 시스템에서 소외된 대중들에게 예술 향수의 기회를 진작하려는 민주화의 동인(動因)을 무시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미술관의 민주화 노력은 오늘날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전히 시장의 논리에 종속되고 만다. 미술, 미술관의 민주화가 대중적 엔터테이먼트화된 오늘날 현실은 오늘날 블록버스터 쇼가 초래하는 비판의 문제점들에서 고스란히 읽어볼 수 있다.


문화, 예술적 재화가 풍부한 유럽은 그들의 소장품을 해외에 대여하여 문화 자본의 수출을 통한 수익 창출을 수월하게 담보해낸다. 국가의 통제와 지원이 한 덩어리로 원활히 작동하고 있는 유럽은 그런 탓에 국공립미술관의 수가 엄청나다. 이들은 풍부한 지원으로 인해 다양한 프로그램 창출에 집중할 수 있지만 미국을 위시한 여타 국가들은 사립의 체제가 많아 다분히 민간 기업이나 개인의 후원에 의지해야 하는 고충을 안고 있다. 필립 모리스 같은 담배 회사나 코카콜라와 같은 기업이 예술행사의 후원자로 발 벗고 나서는 후원구조는 자칫 순수한 미술행사를 상업적 이익을 위한 결탁이라는 도마 위에 올려놓기 십상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러한 어려운 현실을 유럽에서 들여온 블록버스터 쇼로 타개해 나가도 비판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그들 역시 워싱턴내셔널갤러리처럼 인상파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거나 구겐하임의 경우처럼 동시대 현대미술을 통해 수출할 블록버스터 급 상품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은 막대한 후원에 등 입은 자본으로 참신하고도 자발적인 기획력으로 이들 블록버스터 쇼를 주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블록버스터 쇼 개최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유발한다.


 


문제는 한국을 위시한 제3세계 지역에서의 블록버스터가 갖는 폐해이다. 국립 1곳과 공립 몇 군데를 제외하면 모두 사재를 털어 일군 사립미술관이 태반인 한국적 현실은 블록버스터 쇼를 바라보는 전문가의 시선이 차가울 따름이다. 블록버스터가 갖는 앞서 언급한 폐해도 심각하지만 국공립이나 일부 기업형 사립미술관이 독주하는 블록버스터 쇼 유치는 여타 사립미술관의 전시 기획에의 욕구를 좌초시키거나 유사한 그 무엇으로 변형시키고 만다. 게다가 언론사나 이벤트 기획사가 미술관과 공동 주최, 주관하는 형식으로 치러지는 블록버스터 쇼의 경우가 대다수여서 이것이 자칫 실패할 경우 미술관이 입는 피해는 막대하다. 국내에서 1997년 열린 《고대이집트문명전》이 흥행에 실패한 이후 유사한 블록버스터 전시는 한 동안 자취를 감추었을 뿐 아니라 향후 미술계에 미치는 파장 역시 지대했다.


최근 국공립미술관이 블록버스터 급 전시를 활발히 개최하는 까닭은 일차적으로 질적 담보가 가능한 서구의 유수 미술관의 소장품을 통해서 국민과 시민에 대한 예술문화에 대한 향수 기회 증진이라는 공공성의 의무를 다하기 위함이다. 한편 공립 미술관 각자의 특성화 전략에 기인한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입장에서는 2006년부터 시행된 ‘책임운영기관’으로서의 운영에 따른 부담을 이러한 블록버스터를 통해서 재정상의 자율을 꾀하고자 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기부문화도 체계적으로 정착되어 있지 못한 국내 현실 속에서, 미술관의 입장으로서는 재정난에 대한 타개책으로 블록버스터에 치중함으로써 미술관이 수행해야 할 또 다른 ‘소장품 수집과 보존 그리고 연구’의 기능들을 방기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블록버스터와 같은 시장이 주도하는 전시 문화 앞에 선 공공미술관의 위기는 결국 미술관의 민주화를 지향하는 고귀한 이상에 늘 싸움을 거는 ‘돈’으로부터 초래된다. 슬픈 현실이지만, 위기 탈출의 해법 중 하나도 그 미운 ‘돈’이 관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