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미술관의 위기-‘국제아트이벤트’와 스펙터클 사이


블록버스터가 주로 미술관 내부에서 작동하고 귀결되는 이벤트의 유형이라면 아트페스티벌, 비엔날레, 트리엔날레와 같은 국제미술제는 미술관 내외에서 복합미술축제의 유형으로 작동하는 ‘국제아트이벤트’라 할 것이다. 물론 비엔날레가 블록버스터가 될 수 있지만 일시적 단일 전시가 아니라 정기적으로 치러지는 행사라는 점에서 구분될 수 있겠다. 우리 논의에서는, 이들 모두 대중에게 보이고자 하는 목적을 분명히 하는 전시지향의 미술행사라는 점에서 미술관과의 전시, 나아가 ‘미술관의 민주화’의 노력들과 서로 주고받은 영향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주요한 것은, 앞장에서 ‘미술관의 민주화’라는 우리의 논의를 블록버스터가 추구하는 시장주의와의 관계항에서 살펴보았다고 한다면 여기서 우리는 그것을 국제아트이벤트가 도모하는 스펙터클의 현상과 관련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아울러 국제아트이벤트들이 주도하는 미술전시의 범람 속에서 미술관이 감당할 공공기관으로서의 윤리의식에 기반한 전시문화는 어떠한 방향성을 지향해야 될지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주지하듯이, 1895년 베니스에서 최초의 비엔날레가 생성된 지 어언 1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흐름 속에 야심에 찬 포부를 안고 출발하였던《파리비엔날레》(1959~1985)나 《도쿄비엔날레》(1952~1988)가 짧은 생을 마감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지 오래지만 그 실패가 각인시킨 교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생하다. 최근까지 그 예전의 명성을 지키고자 노쇠한 몸을 이끌고 부단히 애를 쓰고 있는 베니스나 상파울루, 휘트니 비엔날레는 물론이거니와 1980년 이후로 각 나라에서 우후죽순처럼 무수히 생겨난 신생 비엔날레들의 끝까지 살아남기 전략은 치열하다 못해 눈물겹다. 비엔날레와 이름을 달리하는 마니페스타, 트리엔날레, 도큐멘타, 프로젝트 등의 무수한 아트이벤트까지 합치면 오늘날 그 생존 경쟁에 가세하고 있는 ‘국제아트이벤트’는 120여개가 족히 넘는다.


블록버스터 쇼의 출발이 국가권력의 헤게모니적 다툼을 문화권력의 양상으로 표출한 것이라 할 때, 이들 국제아트이벤트의 출발 역시 다를 바 없다.


 


주지하듯, 서구는 오랫동안 문화 권력의 중심이기를 자처해 왔다. 서구 국제아트이벤트의 역사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들의 문화중심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패권주의의 연속이었다. 최초의 국제아트이벤트인 《베니스비엔날레》가 이탈리아 국왕의 결혼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출발되었다는 사실은 ‘패권주의에 관한 첫 과시’에 다름 아니었다. 더욱이 베니스비엔날레라는 것이 이탈리아의 관광수입을 순수미술 행사와 연계하고자 기업인들이 예술가들을 끌어안으면서 시작하였다든가 그 운영방식이 당시의 ‘만국박람회’를 흉내 내었다는 것은 우리들 논의와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초기의 베니스비엔날레나 《카셀도큐멘타 》등이 유럽의 세력 규합에 집중하고 있었던 점은 문화중심을 고수하려는 패권주의에서 기인한다.


 


1970년대 연이은 호주의 《시드니비엔날레》, 미국의 《휘트니비엔날레》, 독일의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당시의 유럽과 미국의 위상을 강화하는 기제로 사용되어 왔다. 지금은 사라진 파리비엔날레 역시 미국으로 빼앗긴 문화예술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화권력은 중심으로부터 나온다. 문화는 이상적으로는 다원화를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중심과 주변을 가르는 보이지 않는 권력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들 그 중심에 서고파 한다. 그래서 서구 중심의 문화구조를 극복하려는 야망과 함께 문화중심의 지위를 차지하고자 1951년 이른 시기에 출발 시동을 걸었던 브라질의 《상파울루비엔날레》나 이를 이어 1968년에 출발선에 자리를 잡았던 《인도트리엔날레》는 내내 우리들에게 회자되는 제3국의 모델이다. 그러나 전자는 다분히 유럽의 모더니즘 미술을 남아메리카 지역에 소개하는 창구 역할에 매몰되었거나 후자는 별다른 이슈를 생산하지 못한 채 지나치게 인도의 지역적 정신성에 탐닉하려는 태도를 보여 왔다는 비판을 벗을 길이 없어 보인다. 물론 오랜 역사만큼이나 시행착오를 거친 상파울루비엔날레는 1990년대 이후로 브라질의 역사적 문맥 위에서 비엔날레를 운영, 서구 중심의 문화구조를 극복하고 있다고 평가받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주변으로 몰려 있던 이른바 제3국인 아시아 태평양지대와 아프리카 지역의 ‘중심에 잠입하고픈 욕망’은 1980년대 이르러 신생 국제아트이벤트의 확산에 주도적 역할을 감당하기 시작한다. 3국의 경제적 부상과 서구 지배이데올로기의 퇴조 현상이 맞물려 이들의 문화적 탈중심화 노력들이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이다. 다분히 정치 전략적 취지로 잉태한 《방글라데시비엔날레》(1981~ )나 쿠바의 《아바나비엔날레》(1984~ )의 생성은 서구가 주도하는 문화권력을 탈중심화하기 시작하는 일련의 시도로서 간주되었다. 또한 자신의 색을 찾아가는 《상파울루비엔날레》의 최근 변모와 더불어 1990년대 이래 등장한 아시아 지역의 《광주비엔날레》,《상하이비엔날레》,《타이뻬이비엔날레》나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의 기치를 비엔날레에 녹인 《요하네스버그비엔날레》의 약진은 괄목한 것이었다. 《요코하마트리엔날레》, 《후쿠오카트리엔날레》는 역시 차별성을 강조하는 국제아트이벤트로 거듭나기를 시도하고 있다.


 


3세계 국가의 입장에서는, 후기자본주의 시대의 문화권력이란 다분히 문화를 통해 식민 상황을 재인식하고 이를 새로운 담론으로 창출하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확장’이 화두였다. 오랜 역사동안 동양, 남미, 아프리카 등의 세계는 서구에게는 동반자적 존재이기 보다는 제3의 지대로서 인식되어서 문화전략적인 차원에서 이따금 수용되어 오는 정도일 따름이었다. ‘한번 잘 봐주기’ 식으로 끌어들인 국제 문화정치 차원에서의 배려가 고작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최근, 아프리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위상은 그 경제적 성장에 버금가게 상승하여 위에 언급한 일련의 비엔날레들을 형성하며 문화 권력의 지형도를 변모시켜 나가고 있다. 서구로부터 더 이상 문화중심을 빼앗길 수 없다는 자각이 서구의 구식 비엔날레 모델을 거부하고 자국의 문화로부터 출발하는 새로운 전시 유형들을 정초함으로써 문화의 탈중심주의 이상을 실현해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비서구의 문화 탈중심주의는 더 나아가 문화 권력의 ‘서구 중심 패권주의’로부터 탈주하여 모두가 중심이 될 수 있음을 드러내는 문화 권력의 ‘다중심 패권주의’를 정초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서구, 비서구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전지구적 다중심 패권주의’의 궤도에 올라 서 있는 것이다.


 


우리의 다중심 패권주의는 초기의 탈문화중심주의처럼 그저 문화의 중심을 대책 없이 와해시키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문화중심주의를 빼앗아 오는데 급급하기 보다는 모든 곳에 문화의 중심을 세우는 노력이 주요해진다. 3국이 애초에 시도했던 탈문화중심주의는 서구의 문화 권력지대를 자신들에게로 귀속시키기 위한 세계화의 일환으로 문화 다원주의 혹은 혼성주의를 표방했었다. 마치 서구가 자신의 권력지대에서 자선을 베풀듯이 제3세계의 문화를 초대하여 보여주었던 것처럼 똑같은 양상으로 서구의 문화를 제3국의 문화지대 안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이었다. 그것은 비엔날레를 여전히 미술올림픽의 양상으로만 바라보는 서구의 시선을 제3국이 고스란히 물려받은 데서 기인한다. 국내 규모를 국제적 양상으로 덩치를 키워나가며 패권주의를 도모했던 베니스, 휘트니, 리용 비엔날레의 외양적 변모가 단지 제3국이 추구해야 할 모델로 간주될 따름이었다. 개최지의 지명을 그대로 쓰는 비엔날레의 허위적 위상에 경도되어서 자국과 자국의 도시를 권력형 문화지대로 등재하고 서구와 같은 등급이 되기를 지향하며 한바탕 벌이는 문화다원주의는 결국 또 다른 동질화의 재탕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결과를 자초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은 90년대 중반에 이르러 시도된 로컬에의 관심으로부터 일정 부분 극복되기 시작한다. 한 국가 안에서 다중심으로 분권화되는 일련의 문화적 결과물들, 즉 지방 도시 중심의 《광주비엔날레》, 《상하이 비엔날레》나 《후쿠오카 트리엔날레》,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등의 국제미술행사는 각 나라의 수도권 중심의 문화 위상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로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것은 물론 서구에 대한 비서구 혹은 제3국이라는 로컬의 위상마저 정초하기 시작했다.


 


위와 같은 복잡다단한 세계 구조 속에서 이제, 국내에도 엑스포, 아트페스티벌, 비엔날레 혹은 트리엔날레의 이름으로 수많은 국제아트이벤트가 생성, 소멸되거나 지속되고 있다. 95광주비엔날레》로부터 자극받아 촉발된 국내의 무수한 국제아트이벤트는 이제 ‘다중심 패권주의’ 속에서 저마다 전략적 실행과 그에 따른 평가를 지속하고 있다.


 


우리의 논의는 최근 부쩍 생성되고 있는 국내외의 수많은 국제아트이벤트가 미술관의 위상과 기능에 지대하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에 집중된다. 이것은 전시의 커뮤니케이션과 미술관의 커뮤니케이션, 즉 문화적 커뮤니케이션과 제도적 커뮤니케이션(entre communication culturelle et communication institutionnelle) 논의의 구분 자체를 와해시킴으로써 미술관의 공공 장소(un espace public)으로서의 위상을 심각하게 위태롭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공공지향의 미술관의 커뮤니케이션을 비주얼 차원의 전시의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미술관 전시의 확장이면서 이와 차별화하는 국제아트이벤트의 전시전략이 지극히 대중 지향의 축제 성향을 담보한다는 점에서 미술관 전시와 차별되게 스펙터클(spectacle)에 과도하게 집중되는 것에 있다. 결국 국제아트이벤트의 이러한 스펙터클의 외연적 양상을 미술관이 따라가게 만들어버리는 오늘날 현실적 문제가 비판이 대상이 되는 것이다.


 


비엔날레와 같은 미술이벤트라 할지라도 미술에 근간한 복합예술축제의 양상으로 전개될 뿐 아니라 문화, 관광, 경제, 정치, 외교 등의 복잡한 영역을 넘겨다보는 전방위적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 형식이나 내용이 스펙터클의 양상을 띨 수밖에 없는 태생적 구조를 가진다. 탈중심이나 다중심 패권주의 같은 태도가 형식이 된 셈이다. 회화, 조각, 사진, 건축, 설치, 영상과 같은 다양한 장르의 포섭 보다는 이러한 작품들에 대한 선정과 더불어 이를 주제에 맞게 구현하려는 시도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전시 유형은 의도적으로 화이트큐브의 미술관 전시를 의도적으로 탈피하고자 반복적 실험이 모색되었다.


이벤트들이 추구하는 전시는 늘 한정된 공간을 넘어서려는 위압적인 스펙터클을 시도한다. 전시의 규모도 규모인 만큼 기획자들은 출품 작가들에게 이러한 작품들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스펙터클이란 언제나 정형화된 스타일로 고착되기 마련이다.


 


기 드보르(Guy Debord)는『구경거리 사회(La société du spectacle)』에서 이미지의 스펙터클에 대해서 언급한다. “현대적 생산조건들이 지배하는 모든 사회들에서 삶 전체는 스펙터클의 거대한 축적물로 나타난다”는 언급이나 "스펙터클은 하나의 이미지가 될 정도로 축적된 자본이다"라는 진술은 오늘 우리의 문화현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복합미술제의 전시 유형을 떠올리게 한다. 마치 다양한 전시를 하나의 전시 안에 부리는 국제아트이벤트 유형이나 다양한 상품들의 전시를 일괄적으로 통제하는 백화점의 공간이 늘 다양성을 하나의 이미지로 도식화시켜 고착하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우리들의 견해를 생산하고 조절하는 이미지들의 통합적인 장치는 스펙터클의 사회에서는 교환과 참여의 열려진 장이라는 공공영역(the public sphere)을 파괴함과 동시에 도식적인 획일성을 부여하고 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아서 단토의 지적처럼 오늘의 비엔날레가 점차 관광상품처럼 도식화되고 메뉴의 차별성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비판을 되뇌게 한다. 나아가 ’탈중심‘, ‘다중심 패권주의’를 통해 서구와 차별화의 전략을 펴고 있는 국내의 여타 국제아트이벤트들이 서구와 다를 바 없는 유형을 재생산하고 마는 현실마저 상기시킨다. 그런 까닭은, 국내의 국제아트비엔날레 유형이 여전히 ‘로컬에서 글로벌로 집중’되는 과정 속에서 논의되면서 중심의 재권력화를 생성시키는 것들이었기 때문인데, ‘글로벌 속의 로컬’의 위상은 다중심이 아닌 단지 탈중심의 다원주의 안에서 뒤섞여 버리기 십상이다.


 


하나의 이미지로 재편되는 국제아트이벤트의 스타일 양식이 미술관 현장의 전시문화에 악영향을 끼치는 사례들은 무수하다.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베니스비엔날레 등 일부 비엔날레가 고수하고 있고 광주비엔날레도 폐기했다 다시 부활시킨 ‘수상제도’이다. 1964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다분히 정치적 전략에 의해 라우젠버그가 대상을 받기도 했지만 오늘날 존속되는 이러한 수상제도는 미술현장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수상제도를 통해 이벤트 자체를 권위의 표상으로 격상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수상자는 쉽게 주요 미술관의 컬렉션 대상으로 등극된다. 이와 연계된 미술시장에서는 수상자의 작품가격이 급상승하게 되는 물론이다.


 


이른바 이러한 스타시스템을 작동시키는 것은 수상제도만이 아니다. 감독제를 통해 이벤트의 디렉팅을 유능한 국제적 독립 큐레이터에게 위임하게 되면서 몇몇 국제아트이벤트에서 능력을 보여 온 하랄트 제만과 같은 저명한 큐레이터가 세계의 많은 이벤트를 독점하다시피 참여해 전시를 획일화시켜 놓는 따위의 일이 그것이다. 그는 1997 4회 리용비엔날레 총감독과 같은 해 2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 일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다른 주제임에도 5명의 동일 작가를 중복 출연시켰을 뿐 아니라 이어지는 1999, 2001년의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연속적으로 감독을 맡았다. 국외의 큐레이터가 제한된 정보를 통해서 충분한 분석을 할 여력 없이 자신이 선호하는 작가들을 중복 출연시키면서 만들어지는 스타시스템에 비()비엔날레 작가가 동조되는 것은 자명하다. 비엔날레에 단골로 등장하는 작가의 작품유형을 모방하는 유사 비엔날레 형 작가들이 부쩍 생산되고 마는 것이다. 게다가 작가들이 큐레이터의 기획전 방식에 길들여지는 폐해가 속출한다. 명작 위주의 블록버스터가 낭만적인 회고지향적 문화향수를 관객들에게 고취시킨다면 국제아트이벤트는 관객들에게 패션산업이나 오락문화와 같은 가벼운 트렌드를 소비시킨다 할 것이다.


 


전시기획을 주업무를 하는 큐레이터가 다수 등장해서 동시대 미술현장에 대한 재맥락화(re-contextualization)를 폭압적으로 시도하는 상황은 이를 바라보는 국내의 큐레이터를 주눅 들게 하기 십상이다. 이들로부터 영향 받은 작가들은 물론 미술관의 전시기획자들 역시 스펙터클한 비엔날레 형식과 유사한 전시문화를 흉내 내게 하거나 비엔날레 형() 작가들을 찾아 나서게 하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게 만들기도 한다.


블록버스터의 ‘흥행 지향성’과 국제아트이벤트의 ‘축제와 스펙터클’ 형식을 한데 모아 볼거리 가득하고 즐거운 동참을 요청하는 미술관 기획전을 우리들은 최근 많이 발견한다. 이른바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고 관객과의 열려진 소통을 도모한다는 ‘관객 참여형 전시’가 그것이다. 이러한 전시는 ‘입장료만이 유일한 수입원천인 사립미술관의 수익 구조나 재정적 어려움을 단기적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풀어보려는 바람직한 시도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도 가능하지만 놀이와 유희와 같은 대중의 기호에 초점을 맞춘 대중주의에 매몰될 위험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놀이의 매력은 놀이 그 자체가 놀이주체 위에 군림한다는 것이다. 놀이의 주체는 놀이하는 이들이 아니라 놀이 그 자체인 것이다.”라는 진술을 곱씹는다면 놀이적 인터랙티비티와 같은 감상의 극대치를 도모하는 이벤트성 전시가 결코 전시기획의 바람직한 방향은 아님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의 체화, 예술 관람에 있어서 몰입을 위한 작품과 관객의 거리가 긴장을 갖출 때 미적 경험의 바람직한 구도가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술관에 잠입하는 스펙터클의 유혹 앞에서 주요한 것은, 스케일이나 이미지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전시형식을 통한 엘리트 경험에의 성찰과 촉구가 절실하다는 차원이다.


 


 


 


V. 나오는 글


우리들 논의의 지속적인 주제인 ‘미술관의 민주화’에 대한 당면한 과제는 블록버스터나 국제아트이벤트와 같은 권력, 시장, 스펙터클 앞에 발가벗겨진 채 놓여 있다. 공공성, 비영리를 업보처럼 안고 있는 공공미술관은 이들 앞에서 나약하지만 권리이자 의무인 ‘민주화’에의 열망이 미술관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미술관의 민주화’의 관건은 엘리트적 경험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비롯된다. 민주화는 대중화와 달리 결코 엘리트적 경험을 희생시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미술관의 민주화는 대중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높은 엘리트의 이상을 보는 것이다.


 


미술관은 권력, 시장, 스펙터클 앞에서 때로는 그 안에서 새로운 형식을 통해 끊임없이 엘리트의 경험을 촉구해야만 하는 버거움을 안고 있다. 블록버스터나 국제아트이벤트의 폐해에 저항하면서도 앞서 우리가 살펴본 그들의 긍정적 면모는 수용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가진 셈이다. 그럼에도 피상적으로 미술관은 여유롭다. 전시의 유형에 사활을 걸고 집중해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어야 하는 압박감이 있는 블록버스터 쇼나 국제아트이벤트와 달리 미술관은 ‘수집, 소장, 연구, 교육, 전시’ 등의 일상적 일들을 수행하면서 대중을 위한 공공성과 비영리의 자존심만 지켜내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쉬워 보이는 그 일이 무척 어렵다는 이유 탓에 지금까지의 우리의 지난한 논의는 존재하고 있다. 특히 시장 앞에서 늘 겁먹어야 하는 미술관으로서는 후기자본주의의 시대에 이른 오늘날 시장 안에 한 발을 슬며시 올려놓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일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혼자이기 보다는 적극적인 어깨동무가 필요하다.


 


네트워킹을 실험하는 가능성들의 집합체로 존재해야만 한다. 연계와 연대라는 이름의 공동 협의체로서의 움직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라는 돈 없는 끼리끼리의 연대도 중요하지만 공공성을 위해 모든 미술관들의 가능한 연대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술현장의 전시를 이끌어가는 블록버스터나 국제아트이벤트 주최자인 특정 미술관이나 미술관 외 세력에 적대하기 보다는 그들로부터 공공성의 기제를 훌륭히 수행할 수 있으면서도 대중주의가 아닌 모델을 찾아오는 것도 중요하다. 전시기획에 한정해서, 선별적 아웃소싱을 통해 개방된 체제의 기획전을 활성화하는 것도 좋은 예이다.


모든 미술관이 퐁피두센터처럼 실현가능한 ‘미술관의 민주화’ 체제를 갖출 수는 없다. 모두 가능하리라 기대되는 복합체의 덩치를 선호하고 이를 지향하기 보다는 차별화된 정책을 설정하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제3세계 국제아트이벤트들이 도모하는 ‘글로벌 로컬리제이션(Global localization), 즉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의 차별화 전략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전세계화, 전지구화를 지향하는 문화구도 속에서 하나의 스펙터클로 포획되는 ‘눈 먼 바보’의 길로 가기 보다는 차별화된 자신만의 섹터에서 ‘질()’이란 단어에 방점이 찍힌 ‘질적 글로컬리제이션’을 실행해야만 할 것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진정한 ‘미술관의 민주화’는 영민한 엘리트적 경험을 성찰하고 실행하는 가운데서 생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과의 ‘공공적 접촉지대’(public contact zone)라는 인식을 끝내 저버리지 않으면서 말이다.


 


 

(주석 생략)

 


출전 /


김성호, "미술관의 민주화와 국제아트이벤트", 『패러다임 전환기에 있어서 미술관 경영의 과제와 전망』 ,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창립 50주념 기념 아시아비평포럼 (2006. 10. 28, 경기도미술관) 자료집, 2006, pp. 87-100, 같은 글은 다음에도 실렸다. 김성호, "미술관의 민주화와 국제아트이벤트",『미술평단』, 한국미술평론가협회, 2006. 겨울호/83, pp.4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