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에서 이어짐

 

공간과 풍경

반면 구상적 요소와 병행하면서 함축적이고도 상징적인 형태로 단순화되어가는 작가의 90년대의 관계적 추상작업에서부터 우리는 대중의 시지각을 의식하는 차원으로부터 벗어난 순수한 작가정신을 대면하게 된다.

 

구태여 미니멀아트에서 유발되는 ‘관계적 추상’을 그의 작업을 분석하는 틀로 가져온 이유는 재현적 이미지가 잠재된 정대현의 90년대 추상이 연계하는 구조적 관계 탓이다. 추상이지만 구상적 오브제가 결합하거나 구상적 이미지를 유추케 하는 관계 방식은 우리들로 하여금 강한 메시지를 수용케 한다. 특히 이러한 관계적 추상은 그의 작업에서 기독교적 신앙과 같은 양태로 구현되기 시작했다. 가시면류관을 쓴 예수의 상징적 도상화를 이루기 위해 연결 지은 구상 이미지와 추상 이미지의 만남과 같은 <슈퍼스타>(1998)나 객관적인 상징을 가시화하기 위해 대칭의 관계구조와 만남을 드러낸 <천국의 문>(1998)은 대표적인 예이다. 압축 스티로폼으로 작업한 후에 건축외장재인 드라이 비트로 마감처리하고 주어진 환경을 배경으로 기념비의 형태로 우뚝 선 이 작업들은 작가가 세계를 이해하는 혹은 이해하려는 존재의 미학을 드러낸다.

 

일반 환경과 대비되는 직선적 요소와 더불어 깔끔하게 마감된 질감은 주어진 공간인 일상풍경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창조적 공간의 문제를 노정한다. ‘공간과 풍경’, ‘풍경 속의 공간’을 함축하여 드러내는 이러한 류의 작업에서 각 매스가 예수의 눈과 코 혹은 몸체를 상징함으로써 실제적 형태를 유추케 한다던가 천국의 문을 가시화시켜주는 상징체로 구획되는 식으로 실제의 공간과 심리적 공간의 진폭마저 운위한다. 이전의 직접적인 형체나 동세, 이미지로 드러내던 ‘서사적 내러티브’를 견지하던 구상체의 조각을 좀 더 은유의 차원으로 끌어안은 이러한 ‘심리적 내러티브’ 조각은 앞으로 좀 더 근원적인이고도 구조적인 도상으로 응축하게 되면서 특유의 ‘관계구조와 만남’을 더욱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게 된다.

2001년 개인전에서의 작품들은 ‘공간과 풍경’의 주제의식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관계구조와 만남’이라는 형식적 차원의 의미를 돋보이게 하는 것들이었다. 정대현이 텍스트화한 제목들이 <풍경> 혹은 <The Space>이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풍경과 공간과의 관계항을 다루는 작가의 주제의식은 쉽게 간파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전에 등장했던 직접적인 구상형태의 도상 이미지가 근원적인 추상 형태의 도상이미지로 변모되면서도 일관되게 작가가 천착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공간과 풍경’이라는 의미 외에도 이전 작업으로부터의 별리되지 않고 일관되게 드러났던 ‘관계구조와 만남’이라는 차원의 적극적인 전개라 할 것이다.

 

대리석이나 브론즈로 이루어진 이들 작품은 한결 같이 타원이나 원추, 원뿔, 반원, 원기둥과 같은 근본적인 입체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날카롭게 직선으로 거스르는 면들이 대부분 중화된 ‘부드러운 입체’의 외관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결 ‘풍경’의 유기적 양상과 닮아 있게 된다.

  

한편 몇 덩어리의 입체들이 구획되어지고 이들이 한 장소에 모여 만들어내는 ‘관계 구조적 형상’은 마치 건축의 기초적 형식을 흉내 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을 ‘건축적 풍경’으로 바라보게 만들기도 한다. 그 스스로 자연의 나무와 대지, 대기의 구름 등과 같은 부드러운 연상이미지를 유추케 하는 자연풍경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풍경에 직립하는 인간의 의지가 도드라지지 않은 채 순화되어 정초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기의 그의 작품은 자연적 풍경과 건축적 풍경이 조화되는 지점에 서 있는 듯이 보인다. 이전의 구상작업에서 지지대의 양상으로 가늘게 뻗어 나온 인체의 다리가 건축의 기둥과 같은 양상으로 치환되어 보이는 근원적인 도상 이미지들은 세계의 근원적 질서와 같은 무거운 철학적 존재의식을 서정적 미감으로 산뜻하게 처리하기에 적합하고 유효해 보인다. 특히 작품외부로 외부 공간을 남겨둠과 동시에 작품내의 개별적 매스가 다른 매스와 접합하는 형태의 ‘긴장감’은 주목할 부분이다. 향후 두 개 이상의 매스가 통합되면서 보다 근원적인 형태로 환원된 상태에서의 긴장감을 유발하는 차기작들을 미리 진단하게 하는 대목이다.

 

 

 

틈- 공간과 시간

이전 작업에서, 각 매스의 부드러운 형체가 던져주는 서정적 미감이나 그 만남의 관계학이 노정하는 ‘긴장감’이 보다 더 근원적인 형태로 환원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는 최근작에서 가시화된다. 이전 작업에서 서로 구조적 관계를 드러내던 각 매스가 최근작에서는 하나의 매스로 응축된 통합체의 양상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매우 흥미롭게 최근작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구, 원추 등 근원적 입체로 환원된 양상의 미묘한 작가적 변주, 환원 입체의 절단을 통한 표면의 가시적 대비, 환원 입체의 절단을 가시화시켜 보여주는 장치적 기제에 투입된 시간성의 의미, 우주적 운행 원리를 담아내는 조형적 관심.

 

우선 우리는 그의 비교적 최근작에서 드러난 구, 원추 등 환원적 입체의 미묘한 변주를 살펴보고자 한다. 미묘한 변주란 다름 아닌 환원적 입체에 가한 작가의 은근하고도 작위적인 짓눌림이다. 이른바 찌그러진 구, 원추를 떠올려볼 수 있는 이러한 조형장치는 이것에 순차적으로 가한 절단과 같은 기법에서 더욱 더 가시화되는데 작가의 작위적인 짓눌림이 표상하는 의미의 단초를 확인해낼 수 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지점인데, 완전한 구의 형상을 위로부터 균일하게 압력을 가해 변형시킨 듯이 보이는 이미지는 구의 지름을 비동일하게 만들어 내는 수학적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달걀과 유사한 형태를 떠올려봄직한 우리의 기대는 그것이 절단된 면이 함께 드러나면서 극대화되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그 동안 작가가 형식적 외면에 일관되게 투여해 온 작품내의 공간 창조의 의지와 더불어 시간성의 결합의지를 목도하게 된다. 우리가 상상해볼 수 있는 쉬운 방편은 달걀을 몇 조각내면 이전에 하나의 지지점을 갖고 평면 위에 존재하던 달걀이 각 조각들의 지지점을 따로 갖게 되면서 각 조각들이 벌러덩 뒤로 눕게 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한 입체의 중력지점을 여러 개로 분산시켜내면서 분리해낸 각 조각체들의 관계적 구조항에 직면하게 되는 셈이다. 작가는 이러한 상황을 고정화시켜 보여준다. 이전의 작업이 다른 매스의 개체들이 하나의 조형입체 안으로 접합되는 양상이었다면 최근작은 하나의 개체를 절단하여 다른 매스들을 만들어내는 것 같은 모양으로 변이되었다는 것이 주요한 특징이라 할 것이다.

 

작가는 하나의 공간이었던 입체를 절단한 양상으로 만들고 절단으로 생성된 각 매스들의 원래의 형태를 가늠하게끔 근접시켜 놓음으로써 각 매스들 간의 ‘틈’을 통해 공간과 시간의 의미를 탐색한다. 환원 입체의 미묘한 변주 자체도, ‘구’를 예로 든다면, 찌그러진 구를 만들어내면서도 그 형상에 씨앗의 형태나 달걀과 같은 알의 형태는 물론이고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물방울과 같은 상상력 넘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어 심리적 진폭을 강화시키면서도 이를 다시 절단하는 방식으로 구조적 관계의 문제를 유발시킴으로써 시간과 공간이라는 매우 무거운 철학적 주제의식을 작가는 산뜻한 이미지로 변주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예들은 다른 차원의 환원적 입체인 원기둥과 같은 양상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난다.

 

그런 차원에서 작가에 의해서 생성되어 가시화되고 있는 ‘틈’의 존재는 시간을 숨겨두고 공간의 문제를 확장하는 작가의 시공간 탐구라는 주제의식을 여는 단초가 된다. ‘틈을 통한 시간과 공간 탐구’라는 이와 같은 유형의 의미 있는 변주가 그의 평소 환경조형물들에서도 나타나고 있지만 자신의 내적 세계를 드러내는데 집중하는 순수작업들에서 최근 들어 부쩍 발현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그의 작가적 정신과 작품성 추구에 대한 인식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브론즈의 원래 매질의 상태를 드러내기도 하면서 선명한 색의 투입을 통해 재료 자체의 물성을 배반시켜내기도 하는 것은 환원적 입체에 투여된 시간성의 인식과 더불어 구조와 관계를 노정하는 공간성의 인식을 더욱 명징하게 드러내기 위한 일련의 제스처가 되기도 한다. 작가는 최근 준비하는 개인전에서 3미터가 족히 넘는 원추와 원뿔의 환원적 입체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외부 환경을 고스란히 드러내도록 마감 처리된 반영체의 스테인리스 스틸 매체를 통해 모색하는 공간의 문제는 작품내외부의 문제를 예민하게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자의 시지각적 인식의 문제 또한 개입하게 만든다.

 

더욱이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높이와 폭이 2미터에 근접하는 큰 스테인리스 스틸 구조물에서 우리는 우주의 생성원리나 운행법칙과 같은 근원적 질서의 체계를 탐구하는 작가의 최근 작업태도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에는 환원적 입체인 원뿔 두 개가 결합된 팽이와 같은 입체 두 작품이 등장한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의 원리를 가늠하게 하도록 연상시키는 두 입체는 마치 그들의 운행할 궤도를 상징이나 하는 듯이 커다란 원형의 까만 색 돌 좌대 위에 올려져 있게 된다.

 

작가는 맷돌이라는 고유한 우리들 전통에서 순환의 움직임을 가시화시키는 이번 작업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작가의 세심한 진술 속에서 우리가 놀랍게 간파하는 것은 하나의 축을 형성시키고 이 실제의 작품을 운행시켰을 때 원을 그리는 식의 하나의 궤도를 지속적으로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는 지구의 자전적 궤도가 비딱한 축을 중심으로 변주되면서 이루어지고 있듯이 작품 역시 비딱한 축을 중심으로 변주된 운행의 궤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의 상태를 더욱 더 가시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작가는 작품 아래 쐐기 모양의 좌대를 첨가하기도 했다. 시간성의 의미를 강조하고 극대화하기 위해서 ‘공간 사이의 틈’의 문제를 반복적으로 거론하고 있는 셈이다.

 

 

나오는 말

기하학적인 구조와 수학적인 관계방식을 보여주는 치밀한 조각가 정대현의 최근 작업은 환원적인 입체의 미묘한 변주를 통해 작가만의 독특한 조형적 미감을 획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에 부가하는 시간과정의 투입 양상을 가시화하여 조각의 오랜 주제의식인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새로운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최근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천착했던 구상과 추상의 부단한 조형적 실험 모색이 낳은 결실인 ‘환원적 입체의 구조적 관계’, ‘틈을 통한 시간과 공간 탐구’라는 의미 있는 주제의식은 그의 작업을 읽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창작방법에 관한 한, 새로운 차원이 나올 게 다 나온 오늘날 시점에서 타 작가와 별리된 독창적인 자신만의 미술언어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 모두는 인식한다. 특히 물질을 다루는 조각의 경우는 창작방법에 관한 새로운 모색이 이제 재료나 형식의 차원이 아니라 창작태도와 조형의 철학적 언어로부터 유발된다는 점에서 정대현 작업의 최근 철학적 언어를 곱씹어 볼만하다. 그것이 삭막한 수학적 논리로부터 도출된 좌표적 지침이나 구조적 공학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고 시간과 공간이라는 근원적이고 오래된 주제의식을 탐구하는 작가의 진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산뜻하게 가벼운 ‘대면 의식’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무거운 공간 사이에 사뿐히 숨통을 틔우고 있는 그의 조형언어 ‘틈’처럼 말이다. ●

 

 

 

조각가 정대현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10회의 개인전 및 다수의 국내외 초대 그룹전에 출품했다. 1984년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서울시립대학교 환경조각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석 생략)

 

출전/

김성호, "틈에 끼여 있는 시간과 그로부터 확장되는 공간", (정대현 작가론), 『미술평단』, 한국미술평론가협회, 2006, 봄호/no.80, pp.4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