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낙토〉이후(1976-), 한국으로부터-전통의 개성적 현대화
1976년 제 2차 도불 이전까지의 작품들이 주로 1차 도불시 파리에 있거나 귀국 후 한국에 거주하면서 손동진이 새로이 인식하게 된 한국 전통의 문제를 주제의식으로 삼아 실제적으로 경주로부터 발원한 ‘전통’의 면모를 작품화하는데 전념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 이후는 제 2차 도불을 통해 파리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골몰하기 시작하던 ‘전통의 현대화’의 시점이라 할 것이다. 물론 ‘전통의 현대화’에 대한 주제의식이 이 시기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며 전통의 재발견을 모색하던 ‘<낙토> 이전’의 시기에서 함께 싹트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낙토> 이후’의 시기, 즉 1976년 제2차 파리 도불 시점 이후로, 손동진의 회화에서 그 변화가 적극적으로 모색되면서 발현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70년 초에 등장했던 <탈춤>과 같은 전통과 관련한 소재주의를 여전히 함유하면서도 이를 벗어난 또 다른 작품 유형, 즉 전통적 소재의 의고태(擬古態)의 형상과 사각형의 도형들이 혼재된 <적(蹟) vestige> 시리즈의 작품들22)은 <낙토>시리즈의 전조(前兆)가 되는 과도기적 작품들이다. 이들 시리즈가 집중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1970년대에는 이미 ‘전통의 개성적 현대화’에 대한 주제의식이 최근의 작업들과 비교해볼 때 성숙된 화면으로 표출되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것이 암중모색되고 있던 시기라 하겠다.
이 시기에 손동진이 어느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는 <낙토> 이전 시대로부터 성숙되어온 ‘전통과 그 현대화’에 대한 그의 사유의 일단을 접할 수 있다.
“그들(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미란 그들로서 본 이국조(異國調) 바로 그것이다. 오늘 우리가 정치나 경제ㅡ 그 밖의 일반생활에서 현실적으로 겪고 있거나 해야 할 분야의 역할, 그리고 그러한 것을 토대로 한 생활정감과는 동떨어진 한탄 흥미의 대상일 뿐인 것이다. / 그들이 탄복하는 것은 새로운 발견에의 놀라움이요, 또 그것이 그들에게는 확실히 현실적 영양(營養)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동일한 것이 우리의 경우에는 전혀 딴 뜻으로 다루어져야 할 줄 안다. 즉 외국인의 평가에 자기만족을 느끼고 안주하거나 ‘과거만이 참된 것이었다’고 푸념하고 낙심하지는 말자는 것이다.”23)
찬란한 전통의 문화유산을 대하는 오늘날 우리들의 인식에 대한 그의 권고는 결국 자신의 작품 세계에서 ‘전통의 현대적 계승’ 혹은 ‘전통의 현대화’라는 화두를 만나게 한다. 1975년 한 잡지에 기고한 그의 글에는 자신의 작품에 어떤 방식으로 ‘전통의 현대적 계승’을 이루어야 할지를 고민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나는 수년째 스스로 즐겨하는 민속적인 것에 강한 애착을 느끼고 있다. 내 자신의 정열이 솟는 대로 전에 없었던 열의로써 이 작업에 몰두해 왔다. (중략) 그러나 매우 어렵다. 단순한 설명적인 사생이 아니다. 가시적 외게와 인간의 내적 세계와를 조화시킨다는 것은... / 사물의 관계를 하나의 고정관념에서 보는 투시적 공간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기억, 지식, 개념 따위를 한데 묶은 그 ‘하나’를 그리고 싶다.”24)
사실 위의 발언은 당시 창작에 열의를 쏟던 <탈춤> 시리즈에 대한 고민의 일단으로부터 비롯된 내용이지만 당시 탈춤과 같은 작업과는 다른 방식으로 함께 천착해오던 <적(蹟) vestige> 시리즈에 대한 고민의 일면도 살필 수 있다.

본 연구자는 <낙토> 시리즈가 손동진 회화 세계에 있어서, ‘대상에 대한 기억, 지식, 개념을 한데 묶어’ 그리고 싶었던 그 ‘하나’에 근접한 결과를 처음으로 낳았던 작품으로 평가해 본다. <탈> 시리즈 제작시 느끼곤 했던 불만족25)이나 <적(蹟) vestige> 시리즈가 내포하고 있는 ‘전통의 현대적 계승’에 관한 고민의 일단으로부터 비교적 해방되어 주제의 효과적 성취를 보이고 있는 낙토 시리즈는 ‘손동진의 경주에 대한 기억, 한국과 서구유럽에 대한 지식, 한국 전통에 대한 재인식과 현대적 계승의 개념’이 비교적 튼실하게 한데 묶여진 것이다.
손동진에게 있어서 <낙토> 시리즈는 사실 한국 전통에 대한 ‘지식’이나 ‘개념’이 앞서기 보다는 ‘기억’, 즉 경주에서의 성장과정에서 겪은 개인적 체험이 밑바탕이 된 것이었다. 기암괴석과 황토가 어우러진 경주 남산(南山)의 반월성(半月城) 옛터의 구릉을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의 체험이 그것이다. 그곳은 찬란한 역사와 전통이 아로새겨진 천년 고도 경주의 불국토(佛國土)가 아니던가?
〈낙토〉 시리즈에 실제로 등장하는 주홍, 갈색 등의 붉은 빛 화면들은 그가 어린 시절 뛰어놀던 경주 남산의 황토를 상징하고 있다. 여기에 화면 곳곳에 흩어져 있거나 몰려있는 외곽이 깨어진 듯 보이는 비정형 도형들은 경주에서 발굴되던 유물의 파편 같은 이미지를 담고 있다. 녹색, 황색이 어우러진 파편이미지들은 세월의 겹을 입은 유적의 이미지, 녹이 배인 청동 유물의 이미지 혹은 퇴락해진 금빛 유물들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낙토> 시리즈로 명명되지는 않았지만 동시대에 다수 제작되었고 그 형식적 유사성을 다분히 함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구별의 기준이 불명료하고 모호한 〈composition〉 시리즈 역시 이와 같은 고도 경주에 대한 작가의 체험적 ‘기억’ 이미지를 재구성한 것이다.
한편, 경주에서의 개인적 체험 중 경주 남산에서 목도할 수 있는 붉은 흙빛이나 유적, 유물의 이미지가〈낙토〉시리즈를 형성케 한 원천이라면 이 고도 위에 떠오르는 달빛을 만끽하던 어린 시절의 경험들은 〈달빛 환상〉시리즈를 형성케 한 원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어린 시절에의 체험적 ‘기억’이 바탕이 되고 전통에 대한 ‘지식’과 ‘개념’이 어우러져 이러한〈낙토〉시리즈를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점에서 손동진 회화에 있어서 전통의 현대적 계승은 나름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런데 본 연구자가 손동진의 <낙토> 시리즈 연구를 통해서 ‘전통의 현대적 계승’ 혹은 ‘전통의 현대화’ 보다 ‘전통의 개성적 현대화’를 더욱 강조하려는 연유는 어디서부터 근거하는지 살펴보자.
손동진은 여러 글에서 미의식에 의한 혹은 작품 창작을 위한 ‘개성’(個性)이라는 언급을 자주 하고 있다. “작품을 창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 만큼 제각기 개성에 따라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정진할 수도 있다.”26)라는 글이나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에세이에서 “이제부터의 미(美)는 개성미가 더욱 중요시되어 아름다움을 측정하는 기본이 되지 않을까 싶다”27)라는 사유의 일단은 손동진이 지향하는 ‘현대에서의 전통미의 계승’이라는 과제에서 시대적 유행을 떠나 본질적 내면에 침착하는 가운데 태동된 ‘개성’이 주요한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유행만 코에 걸고 다니는 따위 멋은 미의식이 낫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과 같다. 참된 미는 보다 깊은 내면에서 배어나오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28)라는 글이나 ‘70년대 당시 미국일변도의 유행을 질책하는 그의 발언’29)은 미(美)에 관한 한, 어설픈 유행이 아닌 내면으로부터의 개성이 중요하다는 평소의 그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내용들이다.
그는 실제로 한 인터뷰에서 “국제화단에서 인정받으려면 뚜렷한 개성이 있어야 한다.”30)고 주장한 바 있듯이 ‘개성’은 ‘전통의 현대적 모색’과 더불어 그의 회화세계에서 하나의 화두라 할 것이다. 그가 한국에서의 대학교수직31)을 버리고 재차 도불하여 자신의 예술세계의 무대를 옮긴 것은 자신의 예술의 한계와 맞닥뜨리기 위함이었다. 그는 한 일간지의 인터뷰에서 다음처럼 말한다.
“서양미술의 본 고장에서 내 예술의 한계가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깨들은 것은 내가 찾는 것은 유럽에 있지 않고 바로 나를 있게 만든 한국에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타국의 전통 있는 예술을 아무런 혈연도 없는 우리가 표면적으로 추종한댔자 예술에 생명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고전, 즉 낙랑 신라 고구려 백제시대의 찬란한 예술전통의 약동하는 새로운 생명의식 속에서 그들과 대결하지 않으면 예술가로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통절히 느꼈습니다.”32)
그가 프랑스라는 유럽의 물리적 공간에 거하면서 한국의 정신적 공간으로부터 불러오는 예술전통은 결국 죽은 전통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식’이라는 오늘의 시공간에서 부활하는 전통에 다름 아니다. 부활하는 전통을 그의 예술세계에서 발현시키기 위해 그는 ‘새로운 생명의식’에 근간하여 ‘전통의 현대적 계승’, ‘전통의 개성적 현대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손동진에게 있어서, ‘<낙토> 이전 시대’의 ‘전통의 재발견’이 경주로부터 발(發)한 전통에 대한 실증적 관심으로 발현된 체험적 결과였다고 한다면, ‘<낙토> 이후 시대’에 모색된 ‘전통의 개성적 현대화’는 경주 전통의 특수성이 한국성으로 드넓게 확장되며 모색된 것이라 할 것이다.
4.〈낙토〉시리즈의 조형, 추상미와 생명력
<낙토> 시리즈의 작품들을 이전 작품들과 대별하면서 살펴보면 추상의 양상이 압도적으로 화면에 자리를 잡고 있음을 쉬이 간파할 수 있다. 기실 그것은 1960년대 제작되었던 <composition> 시리즈33)의 구상과 추상적 배경이 혼재된 작풍과는 달리 1980-90년대의 <composition> 시리즈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추상적 면모와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작품명만 다를 뿐 외견상 80-90년대의 <composition> 시리즈와 <낙토> 시리즈의 조형의식과 그 양상은 별다른 차이를 구분하기 힘들다.
한편, 1960-70년대 유물이나 유적 등 전통적 소재의 형상을 비구상화와 조합한 형식의 적 <vestige> 시리즈 중에서는 유일하게 <蹟 vestige-황룡사 옛터>34) 라는 작품이 <낙토>의 조형 양상과 매우 유사한 지점을 확보하고 있기도 하다. 즉, 사각형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비정형화된 도형의 색면들이 그 외형의 틀을 일그러뜨리며 조우하는 군집과 배열의 방식이 낙토와 외형상 특징을 구분하기 용이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1989년에 제작된 한 작품 <적(蹟) vestiges>35)은 낙토 시리즈로 그 제명이 정정되어도 될 만큼 특별한 차이점을 내포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황색, 황녹색, 적색, 검은색 등의 색 배열과 표면위에 스크래치하거나 드로잉의 흔적을 남긴 조형방식마저 같은 시리즈 작품으로 오인하게 만들기에 충분해 보인다.
어떤 연유에서 손동진이 80-90년에 이르는 시기 동안 낙토 시리즈와 형식과 조형의식이 흡사한 결과를 낳은 작품들에 <composition> 시리즈나 <적(蹟) vestige> 시리즈로 차별화해서 작품제명을 부기하고 있는지는 한정된 자료로 확인할 길은 없다.
우리의 논의는 1976년 제2차 도불 이후 손동진의 회화가 눈에 띠게 추상화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에 집중된다. 혹자는 당시의 추상화 경향을 두고 평하기를, “그의 예술이 단순히 우리의 전통 이미지를 재현하는 수준에만 머물렀다면 유럽 미술계에서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택한 것이 동, 서양의 보편적 표현양식으로 통하는 추상의 방법이었다.”36)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는 ‘전통의 개성적 현대화’나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손동진의 작업 의식에 대해 단정적으로 평가하는 발언이 된다. 손동진 또한 같은 지면의 인터뷰에서 다음처럼 밝히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는 것은 기교나 기술만 있으면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술은 정신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여태껏 나타나지 않았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이는 세계로 끌어내는 일이죠.”37)
위의 발언에서 우리는 손동진의 작업세계가 ‘눈에 보이는 그대로’라는 정직한 재현 어법을 넘어서 ‘정신의 표현’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이는 세계로 끌어내는’ 추상의지를 의도하고 있음을 십분 가늠해 볼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이 발언에는 우리들의 연구주제와 관련한 또 다른 함의를 지니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그가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는 ‘전통 속에서 약동하는 새로운 생명의식’의 발견과 같은 것이다. 이와 관련한 그의 목소리를 더 들어보자.
“인간의 역사에 따라 규정되어 그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역사가 자신에게 규정되어 그 역사 속에서 살아나는 존재이다. 역사가 자신에게 부여한 위치에서 새로운 생명을 이어나가는 것이 예술가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표현하고자 하는 자기의 위치를 서슴없이 화면에 풍부한 리듬과 맥박 치는 미묘한 세계를 형성하는 것. 그 전통 속에서 우러나오는 새로운 창작의 힘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38)
손동진의 <락토> 시리즈에 있어서 ‘맥박 치듯 드러나는 생명력’이란 단연코 ‘감성어린 색의 발현’으로부터 기인한다. 황토색과 회백색의 전체적인 분위기 속에서 액센트를 주듯이 자리 잡고 있는 적색, 녹색의 싱싱한 색면은 힘 있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식물의 번식처럼 혹은 한창 뜨겁게 달구어진 용광로의 열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태고의 유적이나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유물들처럼 외곽이 이지러지고 떨어져 나간 색면들이 저마다 이합집산하고 있는 화면 구성은 역사와 역사주체인 인간의 형상 그리고 그들의 삶의 터를 연상케 한다. 콜라쥬가 된 듯이 색면들이 조합하는 추상적 평면은 수평, 수직의 격자 속을 자유로이 떠돌며 유영하듯이 만나거나 떨어져 있다. 여기에 프레스크 벽화를 보는 듯한 아스라한 시간의 흔적을 남기려는듯 작가는 색면 곳곳을 스크래치하거나 거친 드로잉의 흔적을 덧붙여내고 있다.
황토색, 황녹색, 회백색 등의 중간색과 녹색, 적색 등의 원색이 조화하고 있는 <낙토>시리즈가 실제 벽화 <낙토(樂土)>39)에 응용되면서 이 ‘감성어린 색’의 발현은 극대화된다. 색면 위에 덧입혀지는 스크래치나 드로잉의 흔적들이 모자이크 재료로 치환되면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건축물 설계와 함께 기획되었던 이 벽화의 실제 제작을 위해 손동진은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입수한 2cm의 정사각형 모자이크 재료 15만개를 벽면에 부착해서 가로11m×세로 3m로 된 3천5백호에 이르는 크기의 벽면을 화려하고 생명력있는 색들의 배열로 가득 채워냈다. 벽화는 우리나라 단청색을 응용하여 6종류의 녹색, 5종류의 붉은 색, 5종류의 청색, 4종류의 백색 등 다양한 색의 파노라마를 펼쳐 보인 것이다.
이 벽화는 1985년 4월에 착수해서 1986년 8월에 완성하기까지 ‘벽화 전문가’40)로서도 일 년이 넘는 기간을 필요로 한 장고(長考)의 작업이었다. 그런 만큼 손동진이 “생의 마지막 작품이란 생각으로 혼신의 힘을 기울여 제작한 것”으로 자평하고 있는 이 벽화 <낙토>의 주제는 ‘평화와 성취를 주제로 한 삶의 환희를 표현’41)한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또 다른 보도에 의하면 ‘화창한 봄날 태양의 축제에서 생의 환희를 노래하는 화려한 구상’42)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경주 달빛에 매료된 어린 시절의 체험을 고스란히 녹인 <달빛 환상> 시리즈를 <낙토> 시리즈와 함께 작업의 큰 줄기로 삼고 있어 ‘태양 문화권에 달빛 정서를 심는’43) 작가로 소개되기도 한 손동진의 작품세계를 이해한다면, 이 벽화가 ‘태양의 축제’로 묘사된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일 수 있다. 그 만큼 벽화 <낙토>는 그 여느 캔버스작품 <낙토>보다 더 화려한 조형양상으로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캔버스작품 <낙토>에서 발견되던 색면 위에 올려진 스크래치나 덧칠, 드로잉의 흔적이 제거된 채 벽화 <낙토>에서는 단지 화려한 색면만이 드러나는 모자이크 재료가 사용된 탓이다.
손동진이 자신의 회화세계에서 추구하는 생명력이란 무엇보다 ‘감성어린 색의 발현’으로부터 기인하고 있지만 이것은 근본적으로는 벽화 <낙토>의 색이기 보다는 캔버스 작업 <낙토>에서 발현되는 색임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는 생동감이기 보다는 비 온 뒤에 청량하게 드러나는 맑은 생동감 내지는 물기를 여전히 머금고 있어 생명의 운기(運氣)가 발아하고 있는 듯한 생동감이라 함이 옳을 것이다.
손동진의 발언을 간접적으로 들려주는 한 비평가의 전언(傳言)은 위와 같은 우리의 인상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억센 소나기가 퍼부은 다음 경주 남산(南山)의 퇴락한 황토의 강한 붉은 빛과 선명한 초록색의 숲의 대비는 생성기(소년시절)의 그의 뇌리 속에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한차례 소나기를 퍼붓고는 먹구름이 사라지면 물기 먹은 남산이 선명하게 다가오는가 싶었는데 햇살이 뜨거워지면서 다시 그 모습이 멀어져가는...... 이러한 눈의 경험과 마음의 기억이 어느날 강렬한 계몽(啓蒙)으로 그의 잠재의식을 후려치고 거기 새로운 해석과 기틀을 마련해 주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왜 미술을 하는가고?”44)
이처럼 미술가의 길에 대한 사색까지 치닫게 한 경주 풍광에서 체득한 어린 시절의 깊은 감흥의 기억에 존재하는 생명력이란 ‘비온 뒤 잔잔함’ 뒤에 꿈틀거리는 ‘은근한 생명력’이다.
손동진의 <낙토> 시리즈의 화면에서 우리는 세월의 흔적과 은근한 자연풍광이 감지되는 회녹색, 황녹색의 색면들의 군집 사이사이로 꿈틀거리는 적, 녹색면의 은근하고 강인한 생명력을 엿본다.
<낙토>에서 드러나는 ‘감성어린 색의 발현’과 ‘은근한 생명력’이 또 다른 측면으로 전개되어 온 것이 이른바 <한지(韓紙), korean paper> 시리즈45)와 <달빛 환상> 시리즈로 불리는 작품들일 것이다. 한지에 유성 잉크를 입힌 목판을 사용해서 탁본 기법으로 찍어내고 여백의 공간을 오방색의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하여 종이 배면으로 깊이 침투시키는 <한지> 시리즈의 작품들은 어린 시절 작가가 경험한 비 온 뒤의 경주 남산과 그 주변 풍광을 우리로 하여금 떠올려보게 만든다. 비 온 뒤에 물기를 머금고 그윽한 생명력을 발현하던 전통 공간의 풍경처럼 이 시리즈의 화면은 종이 깊이 배어있는 물감색의 은은한 발현으로 인해 은근하고 강인한 생명력을 뿜어낸다.
<달빛 환상> 시리즈는 상기의 기법을 <낙토> 시리즈의 형식적 특성으로부터 계승된 이미지 위에 슬며시 올려놓고 있다는 점에서 <낙토>와 <한지> 시리즈에서 보이는 은근하고 강인한 생명력을 공유한다. 따라서 손동진에게 있어서, <낙토> 시리즈는 <달빛> 시리즈의 전형이자 그의 회화세계에 발현된 생명력의 근원이 된다 할 것이다.
결론
손동진은 예술에서의 모데르니테(modérnité, 현대성)를 “멀리 서양에서 찾을 것도 없이 우리의 무열왕릉의 석귀상(石龜像)에서도 그 승화된 표현을 찾을 수 있다”46)고 말한 바 있다. 서구의 고전과 현대성을 접하기 위해 도불했던 작가가 그 곳에서 갑작스레 맞닥뜨린 ‘한국 전통의 재발견’은 기실 작가의 내면 깊숙이 잠재하고 있었던 전통 미의식에 대한 인식이 당시의 순간에 비로소 싹을 틔웠을 뿐이다. 어린 시절 성장의 터가 된 천년의 문화가 찬란한 신라 고도 경주(慶州)에서의 예술, 문화 전통에 대한 체험적 인식이 그의 회화세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경주 남산의 구릉에서 뛰어놀며 체험했던 붉은 대지의 인상, 그 곳의 생동력있는 풍광, 그 곳에서 흔히 접할 수 있었던 문화유산과의 일상적인 만남 등은 오늘날 노년의 화가에게 여전히 강인한 인상으로 남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업에 대한 확신에 찬 발걸음을 지속하게 만드는 동인(動因)들이다.
손동진의 <낙토> 시리즈를 중심으로 살펴본 그의 회화에 나타난 ‘전통의 개성적 현대화’란 프리미티비즘(primitivism)이라는 원시성, 토속성에 대한 고답적 모색이 아니라 ‘오늘날에 당면하고 있는 한국적 원형 정신에 대한 모색’에 다름 아니다. 전통의 소재주의로부터 달음질을 쳐 전통정신과 그것의 현현(顯現)을 오늘날 가늠하는 ‘전통의 현대적 계승’ 혹은 ‘전통의 개성적 현대화’라는 ‘자기 존재 확인’의 치열한 모색인 것이다.
그의 조형세계에서 보편적 추상성의 이념을 생명력 있는 역동성으로 탈바꿈시키는 조형의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같은 시리즈의 이름으로 혹은 <달빛 환상> 등의 다른 시리즈들로 확장, 지속되어 오고 있다.
예술은 안이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작가의 고뇌어린 사유를 통해 우러나오는 것이 참된 예술작품”47)이라고 말하는 손동진의 창작의 세계에서는 ‘이념의 완벽한 구현’을 위한 번민과 고뇌가 늘 끊이질 않는다.
“속성으로 작품을 만들지는 않아요, 그야말로 비바람을 맞고 뿌리를 내리며 오래 지나야 이루어지는 작품입니다. 점하나 선하나 미리 계획되지 않은 것이 없어요, 사인할 자리도 미리 계산해 놓아요. 나중에 아무데나 이름을 써넣으면 전체의 조화가 깨어져 버리니까요.(...) 한 작품을 하기 위해 에스키스만도 수십 장을 그립니다.”48)
그가 1993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대규모의 초대개인전이 결코 회고전이 아니라고 밝히면서 “회고전은 10년 후가 될지 20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필생의 역작이 완성된 후 열릴 것.”이라고 언급했던 것처럼, 아흔을 바라보는 원로의 화가 손동진에게 있어, 에네르기와 상상을 중시하면서 ‘전통 속의 생명력’을 끊임없이 찾아나서는 그의 작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따름이다.
그런 면에서 <낙토>를 중심으로 손동진 회화의 세계를 조명하는 이 글에서, 논의의 전개상 생략되었던 전통, 한국성이라는 정체적 위상에 대한 세세한 작품 분석과 같은 미학적 차원의 심층적 연구는 향후 또 다른 연구자들을 통해 전개되어 나갈 것으로 기대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
(주석 생략)
출전 /
김성호, "손동진 회화에 나타난 전통의 개성적 현대화에 관한 연구-‘낙토’(樂土)시리즈를 중심으로", (손동진 작가론), 『작가 손동진』,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추계학술세미나(2006. 9. 16, 닥터박갤러리) 자료집, 2006. 9, pp.16-30. /『미술평단』, 한국미술평론가협회, 2007, 봄호/82호, pp.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