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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8403

〔미술작가론〕김성기 / 형상조각-조각의 근원적 원형에 대한 미래적 모색

김성호 2006. 07. 11.

 

 

형상-재현과 탈재현

 

김성기의 개인전 ‘내 안에 숨은 그림자’에서는 그 주제가 상기시키듯이, 갈등하는 인간 실존에 대한 고민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그것이 작가의 입장에서는 현실과 예술의 두 영역 사이에서 번뇌하는 다분히 ‘예술가 위상’에 대한 문제의식일 터이지만, 이를 관람하는 관객 입장에서는 ‘자아 투사의 반영 이미지’를 확인해내는 계기가 된다. 관객으로 하여금 심정적 동화감(同化感)을 촉발시키는 감정이입을 자연스레 꾀하게 되는 연유는 그의 작품이 무엇보다 구체적인 형상성을 확보하는 탓이다.

미술 훈련에 학습되지 않은 관객조차 김성기의 작업을 대면하면서 느끼게 되는 자연스러움은 바로 이러한 피규레이션(figuration)이라는 형상성으로부터 기인하게 되는데, 그것이 다분히 탈묘사적(post-representative)이라는 것에 우리의 논의는 시작된다. 그의 작업은 일견 묘사에 충실한 ‘구상 인체 조각’으로 분류될 수도 있을 터이지만 이런 형식적 차원의 ‘장르주의’적 접근은 그의 작업의 본질을 간과하게 될 우려를 필연적으로 내포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작업은 인체 외형 이미지를 재현해 내는 것에 관심의 초점이 집중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 김성기가 추구하는 형상조각(形象彫刻, figurative sculpture)은 재현을 근본전략으로 삼고 있는 구상조각(具象彫刻, representational sculpture)과는 차별화되는 개념이다. 형상성이란 재현을 수용하되 그것을 근본으로 삼지 않고 비유와 상징의 측면에 관심을 갖는다는 점에서 구상과 차별화되는 것이다. 형상성이란 이른바 컨피규레이션(configurationism)이라는 ‘형태 심리학’의 차원을 동반하는 것이다. 즉, 닮아 있지만 유사성에 자족할 뿐이고 외관의 흡사함을 지향하지 않는 가운데 그 형상의 내면으로 잠입하려는 태도가 김성기의 작업에는 줄곧 나타난다. 달리 언급하면, 그의 작업은 닮아 있으되 일루전이라는 환영을 제공하는 여타의 재현적이고 묘사적인 작풍을 벗어나는 탈재현의 작업을 지향한다. 탈재현이 외형적 추상을 의미함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것은 오히려 껍데기 안의 알맹이를 주목하는 형식에 다름 아니다.

 

 

심리- 인체조각과 인간조각

 

김성기의〈자신의 입장을 말하는 남자〉는 한손을 들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제스처를 포착, 형상화한 작품이다. 비교적 어눌한 비정치(非精緻)적 방식의 표현어법, 즉 정교함과 치밀함이 고의적으로 결여되어 디테일의 양상이 탈각된 묘사 방식은 관자의 시선을 조각 표면에 집중하게 만들기 보다는 그 표면 건너의 ‘무엇’을 바라보게 만든다. 인물 조각체의 껍데기가 아닌 그 안의 알맹이를 주시케 하는 것이다.

5등신 비례의 인체 구조나 단순한 묘사 상태는 이러한 3차원 이미지의 표면이 아닌 내면으로 관객이 잠입하는 것을 쉬이 허락한다. 관객은 ‘자신을 대변하는 인체조각의 특정 이미지’를 바라보면서 스스로를 그 안에 투영시키고 잠입시켜서 ‘인체조각의 발언’을 귀 기울여 경청하려 시도한다. 관객들은, 작가에 의해 형상화된 조각이 마치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친구, 가족, 혹은 이웃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이미지에 잠입해 들어간다.

관객의 이런 태도가 가능한 까닭은 김성기의 인체조각이 서구적 재현 전통에 따르지 않은 축소, 변형, 왜곡과 같은 상징주의적 표현 방식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체비례와 상관없는 인체조각이며 이미지 혹은 껍데기의 현실성을 의도적으로 결여시킨 인체조각일 뿐이다. 허구의 존재성, 익명의 존재성을 담보해내면서도 이중적으로 동화 속에 등장하는 우리의 이웃과 같은 친밀함을 동시에 확보해내는 것이다.

이러한 인체조각은 따라서 인간조각을 지향한다. 조각으로 형상화된 인물이 결여한 인체비례의 정합성이나 상실된 실제적 현실감은 조각체 너머의 작가의 존재론적 성찰과 같은 작업태도를 더욱 강화시키면서 그의 인체조각을 인간조각이게 하고 만다. 외형이 아닌 심리의 차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전통-한국성과 정체성 사이의 조각의 근원적 원형

 

김성기의 조각이 추구하는 인체비례의 비정합성, 실제적 현실감의 탈각과 같은 작업 전략은 그의 작업을 한국전통의 조각 유형인 솟대, 장승 혹은 목인(木人)과 같은 이른바 고졸미(古拙美) 가득한 우리 전통의 근원적 미학과 맞물리게 한다. 그의 목조 표면에서 볼 수 있는 거친 끌질의 최종 마감이라든가 오방색에 근간한 색채의 덧입힘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작품을 한국 전통의 제의적이고 토속적인 장식 조각들과 비교 분석케 하기에 충분하다. 마치 그것은 성황당(城隍堂)의 성황지신(城隍之神)의 현현(顯現)이 실현된 것처럼 엄숙하고도 제의적인 아우라로 둘러싸여 있다.

참죽나무, 대추나무, 배나무, 밤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다양한 재료의 목질을 자르고, 더러는 끌로 더러는 대패질로 더러는 사포질로 마감하는 작가의 손길은 날렵한 장인(匠人)의 기술에 근접하기 보다는 생활인의 솜씨에 고의적으로 거주함으로써 한국적 전통의 자연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윤효중(1917-67)의 목조각들을 연상케 하는 표면의 거친 마티에르는 한국의 미학자 고유섭(1905-1944)이 우리의 미를 정의하면서 묘사한 ‘구수한 큰 맛’의 감성들과 얼추 맞물려 있다. 이러한 귀결점은 고유섭이 또 다른 용어로 표현한 ‘비정형성, 비균제성, 무기교의 기교’와 같은 형식적 특성을 김성기의 작업에서 일정부분 확인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의 작업이 한국전통의 근원적 원형에 뿌리를 반쯤은 내리고 있는 셈이다.

목재의 옹이가 그대로 생생하게 남아서 눈 또는 팔꿈치가 되거나 참죽나무, 대추나무의 각기 다른 목질과 그 자연색을 최대한 이용해서 인체 피부의 색으로 구현해내거나 옷의 무늬로 탈바꿈해내는 그의 스킬의 면모는 자연의 본원적 성질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주의 안에서 최대한 운위된다.

한국적 인체, 한국적 인간상을 구현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보고자 하는 김성기의 작품들은 ‘한국적 정체성 찾기’와 ‘조각의 전통적 매체 탐구’가 양자의 근원성에 기반을 두는 하나의 폭넓은 사유의 장(場) 안에서 만나면서 성과를 일구어낸 것이라 하겠다.

 

 

전통의 미래 -전통의 개성적 현대화

 

한국적 정체성, 조각매체의 근원적 모색이 한데 어우러진 김성기의 작품들은 개별적 인체조각, 인간조각이 서로 만나면서 만들어진 시추에이션의 등장으로 인해 상황조각의 국면을 극명히 드러낸다. 이른바 조각이 그 중심에 있는 ‘조각적 설치’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커다란 밤나무의 반을 세로로 절단해 만든 배 위에 하나 가득 실어 설치한 인간 군상들은 아주 대표적인 예이다. 혹은 커다란 물고기와 인간의 만남과 같은 동화적 소재를 작업으로 끌어들인 시추에이션 설정의 제스처도 눈여겨 볼만하다.

인체조각이 취하는 포즈들은 서로에게 상호 전이시키는 내러티브를 담고 있어서 그의 고졸미 가득한 인체형상들은 얼핏 고답(高踏)적으로 보이거나 식상해 보일 수 있다. 여타 현대조각들이 전통의 모색이란 이름으로 추구하고 있는 작업의 유형들과 여러 가지 특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독창적인 면모가 퇴색해 보일 수도 있는 그의 작업은 특이한 탈전통적 신화 혹은 아프리카 조각에서 드러나는 탈동양적 애니미즘, 고대 라틴 아메리카 예술품들에서 드러나는 설화적인 상징성과 같은 이국적 면모를 전통적 양상과 섞어놓으면서부터 그만의 오리지널리티를 확보해낸다.

이러한 작가만의 독특한 신화적인 상상력에 덧붙여 팔 따로 머리 따로 식으로 제작해서 하나의 인체형상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전통에 대한 현대적 모색의 일환으로 보기에 무리가 없다. 게다가 그 둘의 관계를 경첩과 같은 인공의 산업 오브제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연결하는 도발적 면모는 전통적 근원성에 근간한 김성기의 작업을 매우 현대적인 어법으로 풀어가게 만든다. 여기에 부가되는 조명 설치, 실제 물의 순환과 같은 ‘로우 테크놀로지’의 고려 방식은 그의 작업이 앞으로도 고답적인 전통의 틀에 안착하지 않고 현대적이고 독창적인 어법으로 진일보할 수 있다는 신뢰를 우리에게 부여한다. 가히 전통의 개성적 현대화, 혹은 전통의 미래적 모색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실험이 극단적이거나 모험적인 아방가르드의 측면으로부터 별리하는 조용한 반란에 멈추고 있듯이 재료를 다루는 형식적 탐구가 ‘장식용 실험’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작금에 횡단하는 현대적 트렌드에 대한 부단한 관심과 비판적 접근 그리고 이를 통해 실제 자신의 작업에 적용시키는 ‘아방가르드적 실험에 대한 추진력’ 역시 필요하다 할 것이다. (2006. 10. 14)●

 

 

출전/

김성호, "김성기의 형상조각-조각의 근원적 원형에 대한 미래적 모색", (김성기 작가론), 『경기북부 젊은 예술활동 비평 모음집』, 경기문화재단, 2006. 12. pp.4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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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미술평론가, 성신여대 조소과 초빙교수

미술평론가 김성호(b.1966)는 파리1대학 미학 전공 미학예술학 박사를 취득했고, 유니스트 박사후연구원, 2014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전시총감독, 2015바다미술제 전시감독, 2016순천만국제자연환경미술제 총감독, 2018다카르비엔날레 한국특별전 예술감독, 2020창원조각비엔날레 총감독, 2021강원국제트리엔날레 예술감독, APAP7 예술감독으로 일했다. 현재 성신여대 초빙교수, 미술평론가.                            인명사전 바로가기 : www.daljin.com/author/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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