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체적 인간과 비대상화된 자연의 미시성

 

이 글은 김해심의 최근 개인전(김해심-쾌적한 공포 展, 2006.5.13-6.3, 대안미술공간 소나무)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들 중 필자가 주요하다고 판단하는 몇몇 작품을 선정하여 함께 살펴보는 작품론이자 그것에 담긴 작가정신의 연구를 시도하는 소분량의 작가론이다.

김해심은 근 20년간의 세월을 자연의 힘에 경도하고 그 내재적 질서의 오묘함에 감동한 채 ‘자연미술’의 텃밭을 가꾸어 온 작가이다. ‘야투’ 활동을 중심으로 야외현장미술을 펼쳐온 저력 있는 작가로 때로는 자연의 이름으로 때로는 환경의 이름으로 때로는 참여의 이름으로 그녀의 예술적 노동력을 선보여 왔다. 첼시미술대학원에서 종합매체를 전공하고 졸업한 런던 유학 생활 이후 더욱 심화된 그녀의 자연미술은 작가의 지속적인 삶 저변으로부터 길어 올려진 성찰을 바탕으로 한 자연의 이해는 물론이며 느닷없이 인공적 환경에 개입하고 발언하는 자연의 목소리를 옮기기도 한다는 측면에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계’라는 화두를 끊임없이 쥐고 있다 할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빼앗은 인공적 환경에 기거하는 현대인으로서는 갑갑한 일상적 현실로부터 탈주하고자 하는 근원적 도피처로 자연을 떠올리는 낭만적 인식에 칩거할 수밖에 없다고 할 때, 김해심은 이러한 ‘낭만적 인식에 근거한 자연’을 현대인들에게 충실하게 되돌려주면서도 ‘근원적 자연성’의 의미를 곱씹어 내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것은 자연을 오랜 시간 동안 ‘미적 대상’으로 보아 온 우리들의 시각과 관념을 배신하지 않으면서도 인간 주체로부터 ‘대상화된 자연’의 억울한 지위를 회복시키는 이중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런 면에서 작가 김해심이 마주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항은 그저 인간을 탈주체화시키고 자연의 일부로 환원시키려는 인간의 자연 귀소적 본능에 함몰되어 있는 친자연적 미술행위로만 정의되기에는 부족하다. 늘 자연 안팎에서 ‘자연을 작업’하는 예술적 창조라는 노동을 부여하는 탓이다.

자연을 미적 대상으로 바라보면서도 이를 대상화시키지 않으려는 ‘자기 배반’적 예술태도는 자연미술가들이 간과할 수 없는 ‘화두’이자 그 의미의 미적 실현을 위해서 늘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이다. 자연의 훼손이라는 결과를 유발시키는 것과 같은 자연의 내재적 질서를 거스르는 예술창조적 행위를 자제하고 조율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것이 도대체 가능이나 할까?

김해심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항 속에서 자연미술이 당면한 이중적이고도 자기 배반적인 고민에 진중하지만 가벼운 형식의 대안들을 가지고 있다. 근원적 자연성을 미시적 차원에서 모색하려는 태도, 자연과 인간의 관계항 속에서 개입 혹은 놀이의 차원으로 미술하기를 시도하는 태도, 인공적 환경에 자연을 개입시키는 태도, 자연을 숭고의 차원으로 인식하려는 태도 등이 그것이다.

 

 

 

풀밭에 꿈틀대는 벌레 한 마리, 땅에 드리운 나뭇잎의 그림자, 바람결에 운위하는 하늘의 구름 한 점 등과 같은 미시적 차원의 접근을 통해 자연의 내재적 질서와 본성에 대해서 탐구하려는 그녀의 기본적인 태도들은 이번 전시 외에도 이전의 작업들에서 일관되게 나타난다. 이런 차원은 비교적 큰 스케일의 양상으로 발현되는 대지미술이 당면하게 되는 반자연적, 반환경적 태도를 처음부터 비켜 설 수 있다는 점에서 자연미술이 직면한 창작의 어려움 을 고려할 때 그리 주목할 태도는 아니다. 다수의 자연미술가들이 이러한 차원을 견지하고 있는 탓이다. 그러나 김해심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항에 골몰하고 이에 적은 보폭으로 개입하려는 차원으로 ‘탈주체적 인간과 비대상화된 자연’을 실현하는 자연미술의 유형을 계승하면서도 자연을 체득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미술화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신의 삶의 주변이라는 환경으로 그 체득적 자연을 가지고 와서 자연의 의미를 되새긴다는 점에서부터 출발되어야 할 것이다. 

 

 

놀이라는 개입과 환경으로의 개입

 

김해심의 작업에서 흥미롭게 발견하는 지점은 체득적 자연의 이해를 자신의 삶의 지평인 환경으로 가지고 오는 태도에서 작동되고 있는 ‘개입의 논리’이다. 더욱이 그 개입이 미술 언어로 유의미성을 담보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일관되게 놀이의 차원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의 내재적 질서를 확인하려는 이러한 놀이의 차원은 더러는 해변에서 자갈돌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원의 형태를 그려나가거나 자연의 이미지를 사람의 그림자로 만들어내는 식의 자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놀이 형식도 존재하고 더러는 각 국적의 사람들이 체험하는 영국에서의 햇볕의 의미를 퍼포먼스화시키는 방식으로 ‘인간에 개입한 자연의 의미’를 ‘놀이의 차원’으로 해석한 형식도 존재한다. 그러나 많은 부분 김해심의 놀이의 차원은 떨어진 나뭇잎들을 호수에 흩뿌려놓으며 되돌려주거나, 해변에 그려놓은 드로잉이 밀물에 지워지게끔 하는 식의 되돌림과 소멸의 차원으로 추구된다.

 

 

 

인공적 환경에 자연을 가져오려는 김해심의 태도는 그녀의 자연미술이 타 작가들과 일정부분 변별되는 특성을 우리에게 드러낸다. 런던 중심지에 돌연 등장한 흙덩이 던지기 퍼포먼스와 같은 작품 <흙덩이 드로잉>(2002)이나 실내의 공간에 옮긴 흙덩이는 이러한 인공적 환경에 자연을 개입시키는 작가적 의식을 강하게 드러낸다. 자연의 본성적 측면과 질서를 최대한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자연적인 재료를 통해 소멸성, 되돌림의 미술을 행하는 자연미술가들의 창작노선과 살짝 이탈한 부분인 이러한 ‘자연으로부터 인공환경으로’라는 ‘거꾸로의 개입’은 기실 ‘자연, 환경& 인간’의 대비적 차원을 ‘자연-인간-환경’의 연계적 차원으로 변모시킨 것에 다름 아니다. 자연미술의 결과물은 창작주체의 탈주체화를 드러내면서도 그 과정은 여전히 예술창작이라는 창작자의 주체적 고민이 물씬 풍겨나야 한다는 작가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인 것이다.

인공 환경에 개입시키는 자연, 그것은 작가 김해심이 다큐멘터리적 진술을 토대로 화이트 큐브에 옮겨낸 이번 전시와 무관하지 않다. 많은 관객이 창작자와 함께 자연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그녀가 자연에 ‘개입해서 놀아 온’ 흔적을 시각적 결과물을 통해서 확인할 따름이지만 이번 전시는 그러한 자료전의 성격을 넘어 인공환경에 개입시킨 자연 이미지라는 또 다른 차원의 시각적 진술을 담보해낸다.

 

 

자연을 체험하는 ‘숭고’와 ‘쾌적한 공포’

 

우리는 작가가 야외 현장에서의 오래 동안 진행해 온 자연미술을 간접적이지만 총체적으로 점검해 보면서 작가의 언급대로 자연에 대한 ‘쾌적한 공포’와 같은 인식을 확인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전시명의 타이틀로 삼은 ‘쾌적한 공포’는 영국의 경험주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의 1756년 논문 「숭고와 미에 대한 우리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에서 인용된 것이다. 칸트에게 영향을 준 바 있는 버크의 미적 범주론은 미와 대치되는 숭고에 대한 정의에서 비롯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감정은 두 가지 차원으로 대별되는데, 하나는 고통 또는 위험의 관념과 결부된 인간의 자기보존 감정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사회성에 큰 역할을 감당하는 쾌의 감정이다. 그는 전자에서 숭고를, 후자에서 미의 개념을 도출하고 있다. 현대적 미학의 입장에서는 숭고의 개념이 그저 여러 가지 미적 범주에 귀속되어 있을 따름이지만 당시에는 미의 차원과 궤를 달리하는 매우 독특한 지점이었다. 그런 차원을 상기한다면 버크의 숭고의 개념에서 유래하고 있는 ‘쾌적한 공포’는 김해심 작업의 내밀한 속층을 철학적으로 읽어내는 주요한 키워드가 된다.

김해심은 야외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만났던 자연의 현상들을 비디오카메라로 포착하고 이를 화이트 큐브의 공간 안에 프로젝터로 투사하거나 설치적 어법으로 구현했다. 빗방울에 흔들리는 풀잎의 처연한 움직임을 카메라의 흔들리는 시점으로 극대화시켜 포착한 <몸살>(2005)이라는 비디오 설치 작업이나, 푸른 강물을 배경으로 서 있는 갈대줄기들이 바람에 서로를 부대끼며 스산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장면을 포착한 영상 작업 <감기>(2005), 그리고 얼어있던 시냇물이 해빙하면서 만들어낸 얼음 표면의 틈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의 움직임과 소리를 포착한 영상 작업<얼음장>(2005) 이 그것이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 ‘쾌적한 공포’처럼 이 영상들은 스산함, 위기감, 불안감 등을 기반으로 한 또 다른 쾌(快)의 측면을 우리에게 불러일으킨다.

버크가 언급하듯, 자기보존과 관련된 감정은 고통이나 위험과 관련하면서 그 원인들이 직접 우리에게 작용하지 않을 때 우리는 쾌를 느끼곤 한다. 즉 우리가 고통의 상태에 있지 않으면서 고통과 위험의 표상을 가질 때 우리의 감정은 쾌를 갖는다. 이러한 ‘공포적 쾌, 위험한 쾌’ 의 감정이 유발하는 ‘숭고’는 다른 식으로 표현해서 ‘쾌적한 공포’라 할 것이다. 김해심이 우리에게 유발시키는 ‘쾌적한 공포’는 자연의 현상들로부터 우리들에게 심리적으로 전이시키는 작가의 개입을 통해서 완성된다. 즉 바람에 세차게 흔들리는 갈대를 영상으로 기록한 <감기>나 얼었던 시냇물이 해빙되면서 수면이 드러난 얼음 층 밑으로 흐르는 시냇물을 영상으로 포착한 <얼음장>과 같은 작품은 태풍으로 변모할 수도 있는 바람, 홍수로 변모할 수도 있는 물과 같은 자연의 위험한 본성을 작가가 화면 심층에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포적 쾌’라는 숭고의 감정을 유발시킨다.

또한 작가는 ‘기록’이라는 자연현상에 대한 관조적 개입에 그치지 않고 ‘행위’와 같은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자연의 공포적 자연본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작품<몸살>의 경우처럼 비를 맞고 있는 풀잎을 비디오 카메라를 흔들면서 촬영하는 태도가 그것인데, 마치 지각의 변동을 예고하는 듯한 이러한 작위적 연출은 안정된 땅으로부터 지진에 이르는 자연의 공포적 본성을 일깨운다. 바람, 물, 땅이라는 자연의 미적 본성이 자연의 3대 재해라 일컬어지는 태풍, 홍수, 지진과 같은 공포적 본성으로 변모하는 가능태를 작가는 이번 전시 안에 은유적 기제로 감추어두면서 자연이 본래적으로 품고 있는 ‘공포적 쾌’를 드러내려 한다. 자연을 가운데 두고 작가가 우리들에게 숭고의 미적 체험을 매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관객에게 다분히 심리적 전이로 이어진다. 자연을 인간 존재의 본성과 일원화, 동일화시켜 보이려는 김해심의 심리적 은유의 전략은 기존의 작업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적 사진, 영상이미지에서는 물론이고 몸살, 감기와 같은 제목에서도 상징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신록, 잔잔한 호수, 신선한 공기 등을 대면하는 느끼는 아름다움, 맑음, 생명력, 풍성함, 보기 좋음과 같은 심적 반응이나 미적 체험이 줄곧 자연의 본질일 수 없다. 음습한 추위, 맹렬한 폭우, 땅을 갈라지게 하는 가뭄 속에서 처연함, 불안함, 위기감 등 자연에 대한 또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 이러한 심적 반응이나 미적 체험을 전통적인 미학개념인 ‘숭고’의 차원으로 수용하고 재해석하는 김해심의 이번 전시 ‘쾌적한 공포’는 자연-인간-환경, 오픈 에어-화이트 큐브, 시간-과정-소멸-흔적, 작가-자연-관객, 미-숭고 등의 관계항을 부단히 우리로 하여금 인식하게끔 하면서 자연미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의미 있는 전시로 평가된다.

 

 

결론적 고찰

 

김해심이 자연을 대면하는 방식은 현대인이 지향해야 할 근원적 회귀 지점으로 자연을 바라보기 보다는 자신의 삶이 투영되는 본래적 토양으로 자연을 인식하는데 기초한다. 그것은 인간주체의 본래의 고향을 그리는 과거지향적 삶의 태도가 아니라 인간주체의 삶의 터전으로서의 현재진행형으로 마련된 삶의 태도에 다름 아니다. 김해심의 자연이 인공환경을 떠나 여행지에서 대면하는 자연으로 인식되는 것이기보다는 지금의 인간 환경 속에 거하는 근본적 토대로서의 자연성에 초점이 모여진다는 점에서, 김해심의 자연미술은 우리의 삶의 지평이 뜻하지 않게 한계지운 테두리를 원래의 모습으로 풀어내고 확장시키려 한다. 이른바 삶의 상황 속에서 대면하는 자연성이 그것이다. 따라서 그 자연성은 철학적 담론 속의 추상체이기 보다는 바람 한 점, 풀 한포기와 같은 작가가 체험하는 미시적 자연에 대한 관심으로 표방된다. 이런 차원에서 작가는 이러한 체험에 근거하여, 인공화된 현대의 환경 속에서 탈각되어지는 자연을 다시금 요청하고 그를 통해서 우리들 인공환경의 한계가 총체적 틀거리로 회복되길 바라고 있다.

김해심은 최근의 개인전 이래, 작품 <천천히 가다>(2005)를 상기시키듯이 느린 프로젝트를 최근 계획하고 있다. <잡풀 프로젝트>, <꽃씨 프로젝트>라 밝힌 <자연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관계기관의 협의과정이 필요한 사항이라 아직 구체적인 실행에 접어들지는 못하고 있지만, 보도블럭과 도로 사이에 잡풀을 옮겨 심거나 꽃씨를 심는 방식으로 고안된 이같은 시도는 그녀의 <흙덩이 드로잉>(2002)이나 <그린 테이블>(2005)처럼 도시의 인공 환경에 자연을 가져오려는 노력의 연장선상에 다름 아니다.

한편 작가는 티브이와 같은 대중문화매체에 자신의 실내 개인전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자연의 영상 작업을 짧은 순간이나마 선보여 우리들 대중매체 환경의 삭막함에 자연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던져줄 장기적 비전마저 갖고 있다. 김해심의 자연미술이 그 동안 ‘자연 속으로 개입한 것’이었다고 한다면 최근에는 ‘인공 환경 속으로 개입하는 것’으로 자신의 미술언어를 탈바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견지에서 그가 대면하고 체험하는 자연은 보편적 미적 대상의 허위적 담론으로부터 보다 더 내밀하게 작가 김해심의 것으로 구체화된다. 그래서 보편 인간 주체가 향수나 정화의 체계로 삼으며 미적 감상의 대상으로 객관화시킨 자연관을 거부한다.

 

 

 

자연에 대한 작가 김해심만의 보다 더 내밀한 체험적 인식은 아름다움, 내면의 순화적 질서와 같은 자연의 보편적 감성을 넘어서는 자연의 또 다른 본성, 즉 숭고와 공포의 차원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던 사실을 우리는 앞에서 살펴보았다. 현대인으로서 체험하는 자연 보편인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경험과 더불어 자연미술가로서 체험하는 놀이와 개입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경험이 작가 김해심에게는 유연하게 섞여있다. 숭고와 쾌적한 공포와 같은 차원의 체득적 자연이해는 작가가 끊임없이 자신의 주변의 환경 속에 개입하고 이곳에 자신의 체험적 자연을 끌고 와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그 개입이 한편으로는 심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담담한 놀이의 차원을 드러낸다는 것에서 작가 김해심의 자연미술의 세계를 ‘놀이와 개입으로 드러내는 또 다른 자연의 본성’이라 풀어볼 수 있을 것이다. ●

 

 

출전/

김성호, 2006년 작성, 미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