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 - 6.3 파리 유럽 사진의 집
피슐리와 웨이스만큼이나 유머감각이 있는 또 다른 듀엣 아티스트들의 전시가 유럽 사진의 집에서도 열리고 있다. ≪ 쓰레기 ≫ 작업은 15년 전쯤 한 사회학 교수가 소비현상과 그에 따른 소비자의 사회학적 행동 유형을 이해하기 위해 쓰레기통을 분석한 자신의 연구를 <르 몽드>지에 발표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두 프랑스 예술가들은 브리짓 바르도, 르 펜, 노아, 드파르디유 등 프랑스의 영화배우나 정치인들을 거쳐 말론 브란도, 잭 니콜슨, 마돈나, 샤론 스톤, 마이클 잭슨 그리고 로날드 레이건의 쓰레기통까지 뒤져 건져낸 유명인사들의 쓰레기로 ‘쓰레기 타블로’를 만들고 그것을 사진 찍는다. 마치 스타를 쫓는 파파라치처럼 이들이 체계적으로 분류한 쓰레기 목록은 그 소비자의 은밀한 사생활의 흔적이자 그들이 벗어낸 허물이다. 매스 미디어, 인기 스타, 소비,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경계, 관음적 충동 등 윤리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이슈들이 쓰레기라는 하찮은 소재로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에두아르 드 파지의 <메멘토 모리>
3.14 - 6.3 파리 유럽 사진의 집
무롱과 로스탱이 현대 사회의 소비문화와 물질문화가 남긴 삶의 흔적이자 폐허, 그리고 죽음이란 테마를 쓰레기를 통해 직설적이고 다소 현학적인 방식으로 다뤘다면, 파지의 흑백 사진들은 보다 상징적이고 시적인 시각으로 죽음에 접근한다. 삶의 한복판에 언제나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죽음의 현존이, 오랫동안 서양 미술사에서 전통적인 도상이었던 두개골이나 꽃 그리고 흐린 영상과 차가운 빛에 의해 재현된다. 흑과 백 사이 섬세하고 미묘한 톤이 그려내는 흐림의 미학은 서서히 생명을 흡수하는 죽음을 환기시킨다. 따라서 사진 속의 각각의 대상은 특히 그것이 꽃이나 여자의 얼굴처럼 살아있는 것일 때, 죽음 그 자체를 흔들림 없이 선명하게 드러내는 해골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의 메멘토 모리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심연 속으로 천천히 빨려 들어가듯 그것이 생명체이기에 더욱 밀도 높은 긴장감을 함축한다. 존재는 부재와 공존하고 거기 있는 것이 이미 사라진 것이기도 하며 찰나의 덫 없는 한 순간은 또한 영원이기도 하다.

피슐리와 웨이스의 <꽃과 의문>
2.22 - 5.13 파리 시립 근대 미술관
<꽃과 의문>은 1979년부터 공동작업을 해오고 있는 스위스 출신의 피터 피슐리와 데이비드 웨이스가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갖는 회고전이다. 설치, 조각, 사진, 필름과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평범함’과 ‘일상성’이라는, 현대미술이 유행처럼 다루고 있는 개념을 장난기 넘치면서도 실험적인 방식으로 접근한다. 다다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평가 받고 있는 이들의 작업 속에는 유머와 기이함이 조롱과 심오함과 혼재하고 있다. 이렇게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상반되는 태도와 시각이 역사적인 사건들과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는 하찮은 사건들을 하나의 초점에 맞추는 것이다. 예쁘고 섬세한 꽃 사진이 바로 옆에 걸린 차가운 금속성의 공항 사진으로 인해 그 순진함을 가장한 ‘키치’의 아름다움을 이내 해체시키는 것처럼... 하지만 명확한 것은 하나도 없다. ≪ 꽃과 의문들 ≫이라는 모호한 전시 타이틀이 암시하듯 꽃은 보이는 것처럼 그저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피슐리와 웨이스는 현실을 엉뚱하면서도 시적인 차원으로 살짝 비틀거나 뒤집어서 사회와 거리를 둔 시선을 투사한다. 그리고 관객에게서 의례 예상되는 반응을 뒤엎고,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요소들을 동일한 높이에 위치시킴으로써 예술이라는 관례에 의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