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진설명 : 충남 부여 왕흥사터에서 찾아낸 백제 사리 장엄구 일습. 맨 오른쪽 금동(청동) 사리함에 은으로 만든 사리병(가운데)이 들어 있고, 은 사리병 안에 맨 왼쪽 금 사리병이 들어 있는 삼중 구조다. / 문화재청 제공
충남 백마강변 왕흥사터 목탑지에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백제시대 사리 장엄구가 발견됐다. 백제 사리기 일습이 완벽한 형태로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김용민)는 24일 연구소에서 금동사리함과 은병·금병 등 삼중으로 된 사리 장엄구를 공개했다.
겉 부분에 해당하는 금동사리함(높이 10.3cm)은 왕흥사터 목탑의 심초석 남쪽에 있는 구멍 안에 화강암 뚜껑에 덮인 채 발견됐다. 사리함은 원통형 동체에 보주형 손잡이가 달린 볼록한 뚜껑을 덮었다. 함 속에는 다시 은제 사리병(외병)이 들었고, 이 은병 안에 다시 금제 사리병(내병)이 들어 있었다. 사리는 나오지 않았다.
사리함 몸통에는 ‘정유년 2월15일 백제왕 창이 죽은 왕자를 위하여 절을 세우고 본디 사리 두 매를 묻었을 때 신의 조화로 셋이 되었다’는 뜻으로 한자(丁酉年 二月十五日 百濟王昌 爲亡王子 立刹 本舍利二枚 葬時 神化爲三)로 음각돼 있다. 이 기록으로 왕흥사를 실제로 세운 연대가 <삼국사기> 기록인 600년(법왕 2년)보다 23년이 앞선 577년(위덕왕 24년)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또 위덕왕에게 597년 일본에 사신으로 보낸 아좌태자 말고 또다른 아들이 있었다는 것도 확인됐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전형적인 남북조 시대 육조형인 금병·은병이 뚜껑까지 완벽하게 확인된 것은 한·중·일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라며 “수준 높은 백제 공예의 우수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밖에 왕흥사터 심초석 주변에서는 함께 매장한 목걸이·찌·비녀·금제귀고리 등 장신구와 각종 구슬, 옥비녀, 관모 장식과 북제에서 사용된 상평오수전 등 많은 유물이 확인됐으며, 백마강변과 왕흥사를 잇는 남북 길이 62m, 동서 너비 13m에 이르는 고깃길(어도)도 확인됐다.
- 한겨레 10.25
- 임종업 선임기자 blirz@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