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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6
[헤럴드포럼] 미술투자 열기와 화랑
요즘 미술시장이 활기를 띠자 “화랑을 열까 하는데 어떻겠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실제로 전국 각지에 새로운 화랑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좋은 작가를 찾아내 대중에 소개하는 화랑이 는다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니 말이다.
그러나 화랑 경영은 겉으로 보기엔 근사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막연하게 덤볐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미술시장이 활황세라고 하나 시장에서 잘 팔리는 작가는 불과 100여명 안쪽이니 말이다.
따라서 유망작가를 발굴해내는 전문성과 남다른 기획력, 마케팅력을 고루 갖춰야 한다. 여기에 일반 공산품을 파는 것과는 다른, ‘문화사업을 한다’는 자세와 윤리의식도 필요하다. 작가의 성장과 발전을 진중하게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과 이를 뒷받침할 자본력도 필수항목이다. 그러나 미술시장이 커지면서 남 생각은 안 한 채 “나만 잘 벌면 그만”이라며 덤벼드는 이들도 있어 입맛이 씁쓸하곤 하다.
지난 6월 13일은 열심히 화랑을 경영해온 화랑주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가 가해진 날이다. 그날 필자는 인사동에서 화랑을 꾸려가는 12명의 화랑주와 함께 젊은 작가를 집중적으로 선보이는 ‘1회 인사미술제’를 개최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냈다. 지친 몸으로 집에 와 TV를 켰더니 ‘추적 60분’에서 미술계의 믿기지 않는 추문을 방영하고 있었다. 병상의 노화가를 쥐 잡듯 몰아대는 내용은 참으로 섬뜩했다. 가슴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나 일부 파행적 사태를 질타하는 게 목적이었다지만 작가들과 수년, 수십년씩 동고동락해온 화랑주들에겐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을 안긴 방송이었다. 방송 직후 많은 화랑이 “미술계가 그토록 이전투구판인 줄 몰랐다”는 질타 아닌 질타를 받아야 했다. 미술 대중화를 위해 나름대로 팔을 걷어붙이고 한길을 걸어온 화랑주들을 너무 간단하게 매도한 것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미술문화의 밑거름이 된다’는 자부심으로 IMF 같은 험난한 파고까지 견뎌가며 1년 365일, 주말(우리는 주말에 더 바쁘다)마저 반납한 채 바삐 뛰었던 그간의 노력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상실감을 느낀 건 필자뿐이 아니었으리라. 적어도 필자가 아는 화랑주들은 화랑 경영으로 큰 돈을 벌기보다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애호가들에게 좀 더 널리 선보이고 싶다는 열망이 더 큰 이들이다. 그림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전업작가들의 살 길을 어떻게든 터주고자 언제 팔릴지 몰라도 그림을 사주며 함께 고민하는 이들이 화랑주인 것이다. 이는 목돈을 잘 굴려 단기차익을 내려는 행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가.
특히 가능성이 보이는 작가를 세계 미술계에 널리 소개하겠다는 일념하에 적지 않은 경비를 써가며 해외 아트페어에 소개하는 것도 화랑이다. 요즘 들어 한국 미술이 세계적으로 널리 뻗어나가는 것도 화랑들이 주춧돌을 하나둘 놓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에도 한국의 유수 화랑들이 세계 굴지의 화랑들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며 우리 작가들의 역량을 알렸다는 보도도 나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특급 아트페어인 바젤 아트페어에 한국 화랑이 이름을 올리기까지 우리 화랑주들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는지 아는 이들은 드물다. “다음에 다시 지원하라”는 낙방 통보를 수없이 듣고도 포기하지 않았기에 오늘 당당히 ‘코리아’의 기치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바젤 같은 아트페어는 경비만도 부스 값을 포함해 수천만원씩 들지만 화랑들은 장기적인 관점 아래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21세기에는 그야말로 문화가 경제의 새로운 동력이다. 최근 한국 현대미술이 세계에서 이름을 드날리고 미술품을 수집하려는 인구가 느는 것을 볼 때 우리도 문화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고 있음을 실감한다. 따라서 우리 미술이 세계 속에서 도약할 수 있도록 아스팔트를 깔아주는 화랑들이 한층 분발해야 할 때다. 무대 뒤에서 묵묵히 노력하는 화랑들을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화랑들의 노력은 더욱 배가될 것이다.
- 헤럴드경제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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