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이례적으로 2년마다 열리는 <베니스비엔날레>(6월 10일~11월 21일)와 5년마다 개최되는 <카셀 도큐멘타>(6월 16일~9월23일) 그리고 10년에 한 번씩 열리는 <뮌스터 조각프로젝트07>(6월17일~9월30일)가 한 해에 줄을 이으면서 한 걸음에 세 전시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맞아 현대미술을 신봉하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탈리아와 독일로 이어지고 있다.

6월 중순 개막한 이들 현대미술 축제를 향한 발걸음은 학생들의 방학이 본격화하는 이달 말을 시작으로 절정에 이를듯하다. 이미 이 3개 현대 미술제를 관람하고자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블러그에는 800여명의 회원들이 가입하여 여행정보를 나누면서 날을 기다리고 있으며 미술전공자들을 중심으로 한 여행객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여 올 한해 이들 3개 미술축제에 약 1,000여명이상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로 52회째를 맞이하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1895년 신생통일국가로 등장한 이탈리아가 민족의식을 고양시키고 국제적인 위상을 세우고자 창설되었다. 100년을 훌쩍 넘긴 베니스 비엔날레는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권위 있는 비엔날레중의 비엔날레로 불린다. 후발 비엔날레들이 예술총감독의 기획과 주제로 운영되는 반면 베니스 비엔날레는 전통적으로 국가관을 중심으로 운영되어왔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처음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오스트로 헝가리 제국, 영국, 벨기에, 폴란드, 러시아 등 7개국이 참가하였고 이후 1950년대부터 오늘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후 베니스 비엔날레는 첨단의 예술정신과 현상을 수용해서 극적인 변화를 주도하면서 현대미술을 주도하는 비엔날레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특히 국가관 중심을 보완하는 특별전은 미술사적인 의미와 현재의 미학적 관점을 통해 현대미술의 오늘과 미래를 예견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면서 베니스 비엔날레의 위치를 확실하게 다져놓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는 비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모마(MoMA)에서 큐레이터 일하다 두서너 해전 예일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긴 로버트 스토(R. Storr)가 예술총감독을 맡아 개막전부터 화제가 되었다. 올해 그가 내건 주제는 ‘감각으로 생각하기-정신으로 느끼기 :현재 시제의 미술’로 다소 길지만 모호한 현대미술을 한결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관람을 위해서는 우선 자르디니아에 가서 국가관 중심의 전시들을 보고 중앙의 이탈리아 관에 마련된 특별전을 보는 것이 좋다. 비엔날레나 도큐멘타등 대규모의 전시는 도처에 전시가 열려있어 먼 곳부터 보고 중심으로 이어가는 것이 점점 무거워지는 발을 위해서도 좋다. 특히 공원 내의 국가관들을 표시한 지도를 얻어 동선을 정하고 들른 전시관은 표시를 해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베니스 비엔날레는 카스텔로 공원과 아르스날레라는 구 군함 수선소(Giardini della Biennale, Aresnale)가 있는 두 곳 외에도 도처에 크고 작은 전시들이 숨어있어 큰 지도를 얻어 꼭 볼 전시를 선택해서 다니는 것도 방법이다. 모든 전시를 보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베니스에서 보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베니스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를 들어보면 아르스날레에서 열리고 있는 <아프리카 현대미술>전을 우선 들 수 있다. 르완다 팝이 주류를 이루는 이 전시는 현대미술이라는 매체를 통해 아름답지만 슬픔 그들의 민요처럼 아프리카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어서 중국관을 찾아 나서야 한다. 아르스날레 끝부분에 위치한 중국관은 종래의 규모와 크기로 승부하던 것과는 달리 4명의 여성작가가 섬세한 감성으로 특유의 섬세한 시각을 통해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어 산 마르코 광장을 지나 아카데미아 미술관을 향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팔라쪼 팔룸보 포사티에서 열리는 이우환의 전시는 현대미술의 아우성을 잊게 하는 정적이고 명상적인 전시이다.

이곳을 뒤로 하고 다시 팔라쪼 포튜니를 찾으면 시간 속에 빠져들어 시간이 예술이 되는 현장을 만나게 된다. <아르뗌포>(ARTEMPO)라는 이 전시에는 프란시스 베이컨, 쟈코메티, 제임스 터렐, 파블로 피카소등의 작품과 함께 우리나라의 김수자가 참여하고 있어 피곤한 몸을 조금은 으쓱하게 해 준다.

큐레이터의 시각과 관점이 적절하게 미술과 교차하면서 미술에서 큐레이터의 몫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이 전시도 발품을 팔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이외에도 산 마르코 광장에서 리알토 다리 쪽을 향하다 보면 이내 나오는 산 갈로 교회에서 열리는 빌 비올라의 <해변 없는 바다>전이 있다. 3대의 모니터에 번갈아 가면 나오는 시적인 영상은 물의 도시 베니스와 묘한 접점을 이루면서 서정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베니스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이다. 마리노 마리니의 기마상을 옆에 두고 베니스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이곳에서 열리는 <보이스와 매튜 바니>의 전시도 압권이다.

그러나 베니스의 여운을 담아가려면 구겐하임의 컬렉션의 카페에 앉아 창밖의 조소작품들을 보며 망중한을 보내는 것도 좋은 일이다. 참 이곳에는 14마리의 개 무덤 옆에 또 다른 무덤이 하나 있다. 이 무덤의 주인은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을 설립한 솔로몬 구겐하임이 아니라 그의 조카 페기 구겐하임(1898~1979)의 것이다.

그리고 르네상스기 베니스 화파의 산실이었던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들러 티치아노의 피에타상을 비롯한 베니스화파의 거장들을 만나는 것도 필요하다. 여기에 산 마르코 광장에 위치한 두칼레 궁전에 틴토레토가 그린 어마어마한 벽화 <천국>이나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희귀한 작품들을 보는 것도 베니스의 즐거움중 하나이다.





발길을 돌려 카셀에 도착하면 프레데치아눔을 중심으로 한 카셀도큐멘타가 관객을 맞아준다. 카셀도큐멘타는 1955년 이차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카셀에서 화가이자 교육자였던 아놀드 보데에 의해 창립되었다. 4~5년 주기로 열리던 카셀토큐멘타는 1972년부터 자리를 잡아 5년마다 열리는 미술행사로 현재보다는 미래의 미술 특히 향후 오년간 현대미술의 향방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전시로 자리를 잡아왔다. 카셀시 곳곳에서 100일간 열려 “100일간의 미술관”이라 불리는 이번 카셀도규멘타는 뷔르겔이 전시감독을 맡았다.

실험적인 작품들이 연출하는 어수선한 풍경을 독일인들 특유의 간결함과 공간구성으로 정리해 낸 이번 전시는 미술의 시각으로 본 정의의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하고 있는 듯 했다. 특히 20세기 미술의 중심에 있었지만 무언가 2%가 부족한 서구중심의 모더니즘에 대한 재고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미화된 제 3세계의 착취와 수탈의 역사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모더니즘의 확대라는 서구 중심적 세계화 현장의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렇게 두 얼굴을 가지고 모더니즘이라는 지고 지선한 가치로 포장된 세계화의 결과가 낳은 양극화된 세계화의 과정과 결과가 제 12회 카셀도큐멘타의 화두이다.

아마도 향후 미술뿐 만 아니라 인문학의 중요화두가 될 심각한 문제를 현대미술이라는 실험적 언어를 통해 은유적, 상징적으로 때로는 직접적으로 제기하는 이번 전시는 모더니즘이라는 용어의 문화적인 이면에 담겨있는 세계화의 복잡한 현장을 드러낸다.

모더니즘이라는 근대화의 인문학적인 가치가 세계화 전략으로 차용되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남미의 제 3세계 국가의 문화와 예술을 획일화 할뿐 만 아니라 서구중심의 모더니즘이 문화적 지향점이 되어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하면서 문화의 가장 중요한 독창성과 차별성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개막 첫날부터 정치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무겁고 심각한 주제가 보여 지는 한 가지 방식으로 귀결되는 미술의 매체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카셀의 모더니즘이라는 이름의 세계화가 이끌어낼 결과를 고민하는 새로운 미학적 규범은 향후 현대미술을 이끌어 나가는 강력한 힘이자 주제인 동시에 인문학의 중심에 자리할 것으로 보인다.

어렵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현대미술의 장을 ‘교실’로 만들고자 교육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지만 관객과의 거리를 다시금 확인 하는 모순의 장이 되고 있다. 마치 모더니즘의 세계화가 갖는 양면성처럼 현대미술과 관객과의 소통은 그 폭과 깊이가 깊고 넓기만 한 것처럼 보인다.

다소 무겁고 어려운 주제지만 무제에 너무 메일 필요는 없다. 카셀도큐멘타는 비교적 전시관들이 집중되어 있으나 그 규모가 작지 않아 발품을 팔 각오를 해야 한다. 프레데치아눔과 1992년 세운 타큐멘타 홀을 거쳐 오랑제리 궁전 앞마당의 가건물로 세운 임시 전시장에 이르면 휴식이 필요할 정도이다. 이곳을 거쳐 다시 신 갤러리(Neue Galerie)로 올라가는 것이 요령이다.

특히 이곳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한 빌헬름 회어(Schioss Wilhelmshöhe)는 놓치지 말 것. 3층에 위치한 소피아 쿨릭의 작품을 고전회화 들 속에서 발견하는 재미도 있지만 2층의 아시아 전통미술도 새로운 경험이 되어 줄 것이다. 물론 이곳에서 만나는 카셀도큐멘타도 중요하지만 이곳에 영구소장 되어있는 루벤스와 렘브란트는 카셀 시민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발품을 판 김에 둘러보는것도 하나의 요령이 될 듯하다.

모더니즘의 보편적 세계화의 모순을 지적하고 있는 이번 카셀도큐멘타는 모더니즘의 대체세력처럼 중국을 대거 내세우고 있어 정치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도큐멘타 행사장 도처에서 관객을 맞이하고 있는 아이 웨이웨이의 퍼포먼스 <동화>(Fairytale)의 소도구인 1001개의 중국의자들과 1001명의 중국인들이 200여 명씩 교대로 카셀을 방문해서 펼칠 퍼포먼스가 그것이다. 또 중국의 전통적인 문짝을 쌓아올려 만든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 <형판>(Template)은 명 청대의 문짝을 조합하여 높이가 12미터에 달하는 대작으로 임시전시장 중앙광장에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는 장중하지만 때로는 카셀도큐멘타가 그의 개인전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중국의 해가 아닐까하는 착각이 생기기도 한다.

뉴 갤러리의 제임스 콜맨의 비디오나 프레데치아눔의 트리샤 부라운의 <숲의 마루>(Floor of the Forest)는 아름다운 제목과는 달리 곤혹스런 환경 속에서 행동이 부자유스러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전시장 밖에 설치된 안드레아스 시에크만의 <배타적인. 네 번째 배제의 정치>는 메리 고 라운드의 형식을 빌어 영원한 폭력과 착취의 대상으로 제3 세계의 현재를 보여준다.

그리고 임시전시장의 로무알드 하쥬메의 <꿈>등은 눈에 넣어오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하쥬메는 항해 할 수 없는 물통으로 만든 배와 아름다운 아프리카 베냉의 해변을 대비시켜 아프리카의 참혹한 정치적 현실에서 떠 날 수 없는 사람들의 처지를 보여준다.

뮌스터 조각프로젝트는 원래 카셀도큐멘타에 출품되었던 헨리 무어의 조각을 기증하고자 했지만 시민들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시작되었다. 이 일로 인해 왜 대중들은 좋은 미술품이나 공공조각들을 좋아하지 않을까. 현대미술은 관객들을 향한 일방적인 짝사랑인가를 고민하면서 관객과 자연과 예술작품과 예술작품간의 상생과 조화를 실천하고자 1997년 창설되었다. 이번 전시는 뮌스터의 LWL 미술관을 중심으로 뮌스터 시내 일원에서 열리고 있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했던 것처럼 시내도처에 마치 보물찾기하듯 작품을 찾아내고 이를 다시 감상(?)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 만만치 않은 일이다. 현대미술이라는 이름의 조각 작품들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기 때문이다.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작품 앞에 서서 작품을 찾아야하고 보고도 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작품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보물찾기에 실패했다고 해서 소풍이 즐겁지 않았던 것은 아닌 것처럼 뮌스터의 자연과 호수사이를 거닐면서 보물찾기를 하는 것도 즐거운 일중 하나이다. 또 시내 곳곳에서 역사 깊은 종교건축들과 함께 숨어있는 조각 작품들을 찾으면서 고풍서린 뮌스터를 즐기는 것도 방법이다.

쾰른의 유서 깊은 루드비히 미술관의 카스퍼 쾨닝과 브리지테 프란첸, 카리나 플라츠가 큐레이터를 맡은 이번 프로젝트는 공공미술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접근을 시도하는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눈길을 끄는 작품은 부르스 나우만의 역 파라미드이다. 1977년 아이디어를 냈으나 실현을 못했던 이 작품은 30년 만에 완성되어 개념적이지만 새로운 공간을 경험하게 해 줌으로서 개념미술이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또 아(Ja) 호수 가에 자리한 로즈마리 트로켈의 작품도 무거운 주제와 자연이 만나 매우 상큼한 신선함을 준다. 또 도미니크 곤잘레스 포에스터의 작품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재미있다.





역대 뮌스터 프로젝트에 출품된 작품들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조각공원을 만들어 논 이 작품은 전통적인 미술의 가치에 대한 편견을 여지없이 부숴버리면서 발품을 팔면서 헤매고 작품을 찾아다녔던 관객들을 허탈하지만 재미있게 해준다. 게다가 수잔 필립스의 작품 <잃어버린 반향>(The Lost Reflection)은 시적이면서도 명상적이다. 게다가 그 곡에 맞추어 엄마와 함께 춤을 추던 아이의 모습은 역시 작품의 완성은 작가보다는 관객의 몫이라는 생각을 하게했다.

하지만 뮌스터를 찾는 재미중 하나는 출품작을 찾으려 지도를 들고 돌아다니다가 우연하게 만나는 예전 조각 프로젝트에 출품되었던 도널드 저드나 일리야 카바코프, 리차드 롱, 리차드 세라, 호세 파르도, 댄 그래함 등등의 작품들을 도처에서 만나는 것이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다 보물은 찾지 못했지만 그 대신 동전을 주은 느낌이라할까.

여행. 집 떠나면 고생이라지만 그래도 떠나야만 하는 것이 여행이라면 일상적인 유적지나 관광지 여행보다는 현대미술을 쫒는 여행길이 힘들고 때로는 당혹스러울지 모르지만 훨씬 유용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길을 떠나지만 지나온 길을 다시 답습하는 여행이라면 굳이 떠나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점에서 올여름 현대미술의 순례 길에 오를 것을 권해본다. 다만 한 가지 일정을 잡을 때 가급적 베니스를 먼저 들러 카셀과 뮌스터로 향 할 것을 권한다. ‘너 말고도 올 사람 많다.’고 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잘 생긴 것에 비례하는 무례함이 추억에 길이 남는 여행을 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