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읽기
#911
[삶과 문화] 예술에서의 이름값
독일 뒤셀도르프 근교에 '인젤 홈브로이히'(Insel Hombroich)라 부르는 미술관이 있다. 구겐하임처럼 도시적이고 화려한 건축미를 자랑한다거나 세계인의 이목을 끄는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하는 미술관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으로 아트 투어를 갈 때 적극 권장되는 코스의 하나로 손꼽힌다.
여의도 공원보다 큰 넓은 부지와 잘 보전된 자연환경, 소박하나마 조각가에 의해 작품으로 설계된 건물들, 짜임새 있는 디스플레이 등이 자연과 예술, 인간의 조화로운 이상을 실현하고 있다. 물론 결과는 보는 이들에게 기대 이상의 만족으로 보답한다.
● 작가를 안 밝힌 작품 감상하기
그곳을 돌아본 사람들에게 던져지는 중요한 화두가 하나 있다. 작품을 감상할 때 '예술가가 누구인가'와 같은 정보들이 그렇게 중요한가 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 미술관에는 슈비터스나 칼더, 요셉 보이스 등의 20세기 거장의 작품들이 많지만, 어느 한 군데서도 이렇다 할 정보나 안내가 없다.
처음에는 답답해 하다가 점점 관람이 진행되어 가면서 경험 내용은 '의존적 경험'에서 '순수한 경험'으로 바뀌어 간다. 그야말로 아무런 전제와 편견 없이 작품과 만나 교감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관람자들은 예술의 본질에 대해 깊은 성찰과 교훈을 얻고 돌아가게 된다.
요즘 과열되어 있는 미술시장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 어느 때보다 이름값이 좌우하는 우려스러운 장세의 연속이다. 작가의 이름값보다는 작품 자체를 인격적으로 즐기고, 아울러 작품의 가치를 깊은 안목으로 음미해내는 문화적 탐색의 노력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오랫동안 부동산 시장을 휩쓸었던 광풍이 그대로 미술시장으로 옮겨온 형국이니,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최근 영화 '디 워'가 많은 화제를 뿌리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비평가 등의 전문가층과 일반 관객층의 반응이 너무나 대조적이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대부분이 외면하는 데 비해 관객은 최고 기록을 갈아치울 기세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저 재미있다는 것 한 가지 이유에서다.
물론 예술성과 재미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척도 때문에 양자의 불일치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입장료 내고 들어가는 관객이 감독의 이름 때문에 보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또한 애국심이 자극되어서도 아닐 것이다.
물론 예술가의 명성이 브랜드인 이상, 그 브랜드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도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다. 다만 지나치게 이름값에 올인하는 문화적 향유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우리 문화와 예술이 진정한 선진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이름을 묻고 밑바닥에서 열심히 예술창작에 매진하는 저변이 탄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 소비자들 역시 '의존적 경험'이 아닌 '순수 경험'의 폭을 넓혀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 유명인만 좇는 예술소비자들
국가대표 경기에는 운동장이 만원이다. 하지만 국내 리그 경기는 썰렁한 것이 우리 축구문화의 수준이듯이, 예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유럽에는 미술의 그랜드 슬럼이라 할 수 있는 뮌스터조각 프로젝트, 카셀 도쿠멘타, 베니스 비엔날레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비행기 좌석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앞 다투어 투어를 나가고 있지만, 지금도 인사동의 조그만 화랑에서 열리는 무명작가의 전시는 파리를 날리고 있지 않은가.
* 한국일보 2007.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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