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작품가격 상승을 방지한다는 이유를 들어 오프닝전 날까지도 카셀의 도큐멘타팀은 초대작가 명단을 공개하지 않아, 모든 언론들의 궁금증과 기대를 부풀게 했다. 판도라 상자 속에 숨겨졌던 113명의 작가들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미 미술사에서 잊혀졌거나 국제무대에서의 잘 알려지지 않은 비서구권 출신의 작가들이었다. 지구상에 예술무대의 중심과 스타작가는 더 이상 없음을 실천으로 강조하려 했던 총지휘자 뷔어겔과 그의 아내 노악은 그러나 국내외 언론의 찬물세례를 피할 수가 없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그들이 보여준 전시내용은 처음부터 내세운 ‘모더니즘-진정한 삶-교육’의 세가지 중심주제를 비켜갔고, 부제로 내걸은 ‘형태의 이주’는 전시 전체에서 느낄 수 있었던 보편적 현상이라기 보다는 단편적인 몇몇의 예로만 그쳤으며, 전시배경을 다루는 미학적 이론 설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를 돌이켜 봄으로 미래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면서, 전시된 500여 작품들의 33%를 옛날 작품으로 대치해 놓은 새내기 총지휘자의 대범한 시도는 과거지향의 큰 실점으로 간주되었다. 왜냐하면 이번의 전시는 모두가 기대를 걸어 온, 현재의 미술이 나아갈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센세이션을 일으킨 도큐멘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시 끝나기 열흘 전의 통계에 의하면 그때까지 모두 63만여 명이 전시를 방문했다니, 이러한 혹평도 관객은 아랑곳하지 않은 셈이다.

카셀의 도큐멘타에 반해, 저명한 카스퍼 쾨니히가 선두 지휘한 36명의 작가를 태운 배, 조각 프로젝트 뮌스터07은 순풍여론을 타고 무난한 항해를 했다. 단지 데이빗 하몬이 8월 18일에는 비가 올 것이라는, 빗나간 일기예고만을 지난 6월 16일에 발표하고는 다른 작가들과 동등하게 창작비로 1,500유로를 영수한 것에 대한 실망만 제외한다면. 그리고 야외전시가 감안 했어야 했을 반달리즘으로 인해 수잔 필립스의 스피커와 질케 바그너가 만든 파울 불프의 안경이 망가졌던 사실, 그리고 마이클 애셔의 캐러밴이 이틀 동안 사라졌던 것만 제외한다면. 또 너무 개념적이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일반인들의 평만 제외한다면…
30년 만에 평가 받은 브루스 나우만 「역 피라미드」
그런데 상상외의 일이 뮌스터에서 일어났다. 뮌스터 시로부터 거절 당해 아이디어만으로 남아있다가 30년 뒤인 올해 드디어 설치된 브루스 나우만의 ‘역 피라미드’가 올해엔, 작품 선호도 당당 1위를 차지한 것이다.

30년에 걸친 지난 세 번의 전시체험이 뮌스터 시 주민의 눈 높이를 올려 놓은 것일까? 2위로는 수잔 필립스가 직접 화음을 넣어 부른 노래작품 ‘잃어버린 그림자’이다. 4차선이 위로 지나는 아 호수 다리 양쪽 밑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간간이 흘러 나오던 이 노래는 오펜바하가 작곡한,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에 나오는 뱃노래이다. 한번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는 시간과 사랑을 아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멜로디는, 우중충하고 삭막했던 굴 다리 밑을 애수가 잔잔히 흐르는 공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카쎌에서는 프레데리치아눔에서 볼 수 있었던 트리샤 브라운의 퍼포먼스 작품과 그 건물 앞에 산야 이베코비치가 펼쳐놓은 양귀비꽃 벌판이 방문객의 관심을 끌었다. 양귀비 꽃 벌판, 개화하기까지의 진통과 작품배경 다 거두절미하고, 그 자체 만으로도 전시 관람에 피곤해진 관객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론에 시달린 전시기획자들에게 큰 위로를 안겨주었다. 한마디로 정리해서, 함몰된 피라미드 속에서 올려다 본 주위, 잔잔한 물결과 함께 흐르는 멜로디로부터 전달된 내면의 물결, 그리고 자연의 마력에 홀린 황홀함 등의 직접 체험하여 받은 이 느낌, 그 어느 설명을 통한 이해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독일 유우숙씨는 이번 김달진아트투어 가이드를 맡아 큰 수고를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