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서문〕화묵회
수묵으로 대면하는 ‘자연과 일상’에 대한 미시적 탐구
김성호(미술평론가)
화묵회(華墨會)는 벼루에 갈리며 피어오르는 은은한 묵향과 화선지에 스며드는 먹빛에 매료된 이들이 모여 만든 수묵화 그룹이다.
“먹의 향취를 빛내자”라는 취지가 그룹명에서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화묵(華墨)’이란 단어는 주지하듯이, 상대편의 편지(便紙)를 높여 부르는 ‘귀함(貴函)’이라는 용어와 동의어이다. ‘소중한 타인들의 편지’를 차곡차곡 편지함에 넣어두고 다시금 꺼내어 읽던 우리 선조들의 삶의 태도가, E-mail이 난무하는 오늘날 더욱 소중해 보이듯이, 이들 그룹 화묵회의 전통에 대한 ‘애정’과 ‘겸허함’은 각별히 소중하다. 수묵의 전통을 오늘날 올곧이 현대인의 일상 안으로 개입시키는 이들의 창작에의 ‘애정’과 더불어 미술전문가이기를 자처하는 태도로부터 한발 물러서 있는 ‘겸허함’이 그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예술 창작을 업(業)으로 삼고 있지 않지만 예술에 대한 애정으로 살아가는 것을 무엇보다 큰 기쁨으로 삼고 있는 미술애호가들로부터 촉발된 그룹인 까닭이다.
이들의 모임은 그런 탓에 오늘날 미술의 현장에서 거창한 실험적 집단으로 스스로를 정초하거나 도약하려는 시도는 애초부터 관심 외의 영역이었다. 그저 전통에 담긴 예술의 정취를 만끽하고 이를 스스로의 ‘마음과 손’으로 다시금 구현해내고픈 열정이 전부인 ‘소박한 창작의지로 모인 그룹’인 셈이다.
하지만 2001년 창립전 이래 해마다 빠짐없이 정기전을 가져왔고 창립 당시의 12인의 회원이 오늘날 20여명을 훌쩍 넘는 구성원들로 괄목하게 성장한 이면에는 이른바 아마츄얼리즘(amateurism)의 ‘도락(道樂)’과 ‘자기 겸허’로부터 이탈하려는 노력들이 있어왔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구성원들 각자가 사회교육원이나 개인 사사의 형태로 피교육의 위치를 여전히 감당하고 아마츄얼리즘의 위상을 재생산해내면서도 자신만의 창작이란 노동의 시간을 투여하거나 여타 기획전들에 다수 참여하면서 프로페셔널의 위상을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신의 주업이 따로 있는 상태에서 그저 좋아서 하는 예술 행위는 그 창작자를 애호가의 차원으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들 애호가들이 하나의 이념을 같이 하며 군집을 형성하고 정기적인 모임을 개최하고 행동을 공모하는 순간 전문가의 위상은 늘 수면위로 부상하는 인식의 차원을 제공하게 되기 때문이다. 애호가와 전문가라는 차이의 위상은 그룹 스스로 정초하지만 공공의 장에 거하면서 그 위상은 변모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글에서는 논의의 확장을 막고 본래의 취지로 돌아가서 화묵회 창립 당시의 초심을 읽어내고 지금까지의 정기전의 의미를 파악하는 평(評)에 집중하기로 한다.
5회에 이르기까지의 정기전을 살펴보면 이들이 창작하고 있는 작업은 넓게는 한국화, 좁게는 수묵화라는 지, 필, 묵의 전통매체를 근간으로 ‘자연과 일상’이라는 주제에 천착하고 있다. 특히 3회 때는 ‘향수(鄕愁)’라는 주제를 가지고 마음의 고향을 화폭에 담기도 했지만 여전히 일상의 환경과 자연이 어우러진 소재를 모색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일견 항구, 도시, 집과 마을 등 ‘풍경’으로 해석되는 ‘현대적 산수’라는 소재주의에 집착하고 있는 이러한 태도는 수묵을 ‘자연의 재현’을 위한 매체로 활용하는 기능적 양상에 매몰되게 하기도 한다. 즉 자연과 일상을 ‘닮게 그리기’하려는 회화 초기의 목적을 수행하는 듯이 보이는 것이다.
이른바 정선 이래의 ‘실경산수’의 전통을 잇고 있는 셈이지만 사실 회원들의 그것은 서구의 풍경화라는 형식을 수묵으로 구현한 것에 다름 아니다. 화묵회가 실경산수의 전통에 근간한 채 ‘자연과 일상의 주제화하기’를 앞으로도 천착하려 한다면 그것이 문인화풍의 정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그 내면의 정신을 담아내려는 전통 계승의 현대적 노력들도 필요해 보인다.
한편 그룹 구성원들의 화풍이 모두 엇비슷하게 나타나는 까닭은 그룹을 지도하는 소수 전문가(들)의 화풍 탓이기도 하겠지만 실경산수에 대한 화풍이나 작법에 대한 심층적 탐색이 구성원들 각자의 연구와 노력에 의해서 다양한 양상으로 확산, 구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화묵회가 아직까지는 ‘배움과 도락, 자기 겸허’ 등의 창립 당시 초심을 올곧이 계승하면서 애호가 그룹의 차원을 굳이 탈피하려고 애쓰고 있지는 않지만, 향후 배움과 습관으로부터 점층적 이탈을 시도하는 탈습(脫習)을 감행하려는 탈(脫)아마츄얼리즘의 노력들도 필요해 보인다. 비대해진 그룹의 덩치만큼 내실을 기하는 자구책들이 긴요해진 까닭이다.
그럼에도 무모한 실험과 좌절된 소통이 팽만하는 작금의 현대미술의 현장 속에서 화묵회 구성원들의 ‘자연과 소소한 일상에 대한 미시적 탐구’들은 전통의 현대화와 소통의 차원에서 매우 유의미하다 할 것이다. 단지 전통의 현대화라는 그룹의 또 다른 화두가 의미를 담보하려면 ‘답보적인 계승’보다는 ‘의미 있는 실험’ 이 전제되어야만 할 것은 물론이다.
(2006. 8.16)●
출전 /
김성호, "수묵으로 대면하는 ‘자연과 일상’에 대한 미시적 탐구", (화묵회전, 2006. 8. 29-9. 4, 수원미술전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