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서문〕이현배 개인전

비움과 지움 -역전되는 생성의 질서

 

 

 

김성호(미술평론가)

 

 

 

이현배는 나무, 철, 종이 등의 물질에 가하는 네거티브의 조각적 어법을 통해서 물질이 잉태하고 있는 고유 내러티브를 슬며시 건드리거나 배반하면서 역전되는 또 다른 생성의 가능성을 찾고 있다. 나무로부터 물(水)의 흔적을 찾으며 나무의 본성을 ‘건드리거나’ 철로부터 식물, 곤충의 이미지를 구축하며 철의 본성을 ‘배반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그것은 물질에 내재하고 있는 고유 속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거나 변조하면서 작업의 주제의식을 펼쳐나가는 조각가들의 일반화된 제작태도일 수 있지만, 그가 일관되게 네거티브의 전략으로 그것을 수행하고 있다는데 우리들의 논의는 시작된다. 이른바 ‘비움’과 ‘지움’의 전략이 그것이다.

 

이현배_물의 허물_나무_2006 

 

 



이현배_물의 허물_나무_2006 


 

 



비움-물(物)의 허물과 Secret plant

천장으로부터 매달아 설치한 작품 <물의 허물>은 소나무 3그루에서 나온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을 10여개의 토막으로 길게 이어 만든 것이다. 둥근 끌을 들어 나뭇가지의 외피를 최소한 남기면서 나무의 내부를 최대한의 깊이로 한 꺼풀씩 파 들어간 작품은, 그 비움의 공간으로 인해, 마치 꿈틀거리던 한 마리의 체절(體節) 혹은 환형(環形)동물의 주검이거나 말라비틀어진 그것의 허물처럼 보인다. 나무를 ‘물(水)이 차 있는 그릇과 같은 존재’로 보고 있는 작가의 시선으로는 그 허물이란 ‘동물의 것’이기보다는 기실 ‘물(水)의 허물’을 의미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나무라는 질료적 물성의 한계치를 실험하고 그것에 개입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물(物)의 허물’로 보기에 족하다.

 

나무의 속 층을 반대편 외피에 이르기까지 최대한 파내어 가다 급기야 구멍을 내기도 하는 ‘극한의 비움의 공간’은 근 일 년 동안의 지난한 노동을 통해 긴 나뭇가지에 무수히 병렬 배치되기를 지속하면서 급기야 ‘물(水+物+沕)의 허물’이 된다. ‘극한치로 파내기’라는 네거티브(negative) 형식이 도모하는 물성에 대한 실험과 ‘비움이 유발하는 허물’ 그리고 ‘지난한 노동’이라는 내러티브(narrative) 내용이 도모하는 시적 정서를 우리가 그의 작품에서 동시에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물질에 대한 네거티브의 형식적 전략이 촉발하는 시적 내러티브는 실상 죽은 물질을 생명력을 지닌 존재로 다시금 회복시키려는 작가의 소망과 연계되어 있다. 함석이라는 철을 다루는 <Secret garden> 시리즈에서도 그것은 여전히 드러난다. 단조와 극한의 가열처리를 통해 식물 모양의 철을 태워내고 구멍을 만들고 마는 ‘비움’의 네거티브 공간은 아픔과 상처의 공간이면서도 다시 새살을 돋게 하는 생명력을 잉태하고 있는 잠재적 포지티브 공간이 된다. 이를 통해 불로 타버린 상처의 흔적은 함석 식물에 기생했던 벌레들의 영양분으로 기능했던 ‘벌레 먹은 흔적’과도 같은 시적 정서를 환기시킨다. 차갑고 날카로운 함석으로 만들어낸 꽃과 같은 식물형상도 그러할진대 여기에 부가되는 ‘형식적 네거티브 공간 안에 담아내는 시적 내러티브’는 작가 이현배가 차가운 물질에 담아 환기시켜내는 생명력의 정서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그것은 '비밀의 정원'으로 번역되는 그의 작품, <Secret garden> 시리즈가 결국 생명력의 비밀을 지닌 식물, 즉 신비의 식물(Secret plant)로 우리들에게 해석, 인식되게 하는 지점이 되는 것이다.

 

이현배_허파꽈리_나무_2006

 



 

지움-이미지(image)의 허물과 Secret edifice

철, 나무에 대한 ‘비움’의 네거티브 전략은 또 다른 물질인 종이 작업에서는 ‘지움’의 네거티브 전략으로 나타난다. 그도 그럴 것이 전자가 주로 조각적 영역에 천착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잡지의 인쇄 이미지에 대한 실험이라는 회화적 영역으로부터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현배_Hole in_잡지_2006

 

잡지를 통해 대량 생산, 소통되는 인쇄이미지를 대면하는 작가의 즉흥적 유희 본능이 기반이 되고 있는 이 시리즈 작업 <hole in>은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기존의 인쇄 이미지(주로 사진)에 ‘숨어들어’ 그 위에 작가의 행위를 ‘삽입하고’ 나아가 기존 이미지와 전혀 다른 ‘새로운 이미지’로 변환, 창출시키는 작업이다. 잡지를 뒤적이다 흥미로운 사진 이미지를 발견한 작가는 기존 이미지의 바탕을 날카로운 서각용 칼로 긁어내어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이나 텍스트의 부분을 지워내는 방식으로 이미지의 전환을 시도한다. 이 시리즈 작업에는 자연 풍경 사진 위를 긁어 삽입시킨 탁자나 의자 드로잉을 통해 ‘자연풍경으로부터 실내풍경으로의 전환’을 시도한다거나 드넓은 바다 속에서 유영하는 돌고래 사진 중 바다 부분을 박스 모양으로 남기고 지워내서 결국은 푸른 박스 안에 돌고래를 가두어 두게 되는 이미지 전환과 같은 위트와 익살이 돋보인다.

 

이현배_Hole in_잡지_2006 

 

판각 기법과 같은 새기기와 긁어내기라는 ‘지움’의 전략은 이현배의 <hole in> 시리즈에서 기존 이미지를 소멸시키고 새 이미지를 생성시키는 출발점이 된다. 나아가 이 시리즈에서는 잡지 한 장 위에 실행되던 ‘긁어내기’가 수많은 이미지들을 중첩시키고 있는 잡지의 종이 층을 ‘파내기’하면서 네거티브의 공간 범위가 확장되기도 한다.

 

이현배_Hole in_잡지_2006

 

그러나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광활한 자연 이미지를 지우거나 긁어내기로 드로잉한 화면을 전개도 모양으로 일부 잘라내고 이를 다시 기존 바탕 위에 건물 형태로 일으켜 세우는 작가의 독특한 작업방식이라 할 것이다. 지움의 네거티브 공간을 입체의 포지티브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작가의 상상력은 자연에 세우는 가상의 건물로 나타나는 셈이며 그런 점에서 그의 다른 시리즈 작품, <비밀의 정원>(secret garden)으로부터 차용해서 말해 본다면 신비의 건물(secret edifice)이 라 할 것이다. 에디피스(edifice)가 ‘지적인 구성물, 체계’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작명은 그의 작업을 읽은 유효한 지점이 된다. 작가의 도전적인 실험, 지난한 노동에의 의지, 진지한 성찰에 덧붙여 이러한 지적인 놀이가 네거티브와 내러티브의 이중전략을 자연스럽게 조우시키고 있다 할 것이다.(2006. 11. 13) ●

 

 

출전 /

김성호, '비움과 지움 -역전되는 생성의 질서' (이현배전, 2006, 10. 17-29, 수원미술전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