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하나 던져봤다. 대선 후보들 중 한 사람과 단둘이 하루 정도 데이트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리고 데이트 장소는 전적으로 대선 후보에게 맡긴다면 누구와 데이트하고 싶으냐? 제법 오랜 시간 숙고한 끝에 나온 아내의 대답은 싱거웠다. 대선 후보가 누구든 영화관이나 공연장 찾아갈 것이 뻔해 보이니 데이트 요청을 정중히 거절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면 좋았을 것을, 나는 아내에게 좋은 영화 한 편이나 공연 관람하면 됐지 왜 그리 욕심 부리느냐 말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남양주 다산 유적지를 돌아보고 두물머리에서 가을 강변 정취를 느껴보거나, 홍대 앞 주말 벼룩시장에서 예쁜 물건도 사고 한강 선유도 공원을 거닐거나, 봉평 효석문화제에 들러 메밀꽃 흐드러진 풍경에 잠기거나. 이렇게 할 수 있는 후보자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대선 후보들이 아니라 남편인 나에 대한 간접적인 불만 표출이 분명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내의 말이 옳다. 대선 후보들의 공약은 온통 경제에 집중돼 있다. 먹고 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게 없으니 당연한 일처럼 보이지만, 너무 각박하다는 느낌은 지우기 힘들다. 대선 후보들이 유권자들과 직접 접촉하는 장소도 공장이나 시장 같은 산업 현장이나 경제 현장 일변도가 아니던가. 문화적 취향을 발산시킬 수 있는 장소에서 시민들과 함께 즐기는 모습, 일종의 문화적 스킨십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공약만 해도 구체성 있게 피부로 와 닿는 문화 공약을 찾아보기 힘들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대규모 문화 시설을 건립하는 걸 바라는 게 아니다. 문화예술계에 무작정 돈을 쏟아 붓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편하게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확충시키는 공약이면 충분하다.
구체적인 공약 수준에서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 국가의 문화 비전까지 숙고하는 후보자가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문화 비전의 헌법적 바탕도 이미 마련되어 있다. 바로 우리 헌법 제11조 1항이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이러한 헌법상의 근거에서 출발하여 문화적 기본권리 개념을 더욱 분명히 다듬고, 그 권리를 구체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방향의 정책을 개발해나가는 것이다.
행여 경제가 최우선인데 문화를 들먹이며 배부른 소리 한다고 힐난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미 FTA만 해도 그 핵심들 가운데 하나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사롭게 지나치는 것이 바로 문화산업 부문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문화 정책의 기조와 실천이 중요한 까닭들은 이것 말고도 넘쳐난다. 하나만 예를 들면, 문화예술 부문에 대한 지원의 경로와 그 수혜자들이 정권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바뀌곤 하는 현실도 바로잡아야 한다.
지난 여러 차례 대선에서 문화 공약은 없으면 곤란하니까 적당히 사탕발림하는 식의 들러리 공약, 괜한 치렛말에 가까웠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문화예술계 인사 영입이라는 것도 후보자의 문화적 이미지 포장을 위한 들러리 영입, 장식품 영입이었다고 한다면 역시 지나친 말일까? 문화는 더 이상 들러리나 장식품이 아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는 백범의 소망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대선 후보자는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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