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비평〕

세화 견문록展 2005. 12. 29-2006. 2.12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통의 현대적 변용과 그 실천적 괴리

 

 

 

김성호(미술평론가)

 

 

 

 

연말연시와 구정 설이 낀 일정으로 전통 민화 중 하나인 세화(歲畵)를 현대적 시각언어로 재해석하는 이번 전시는 기획자가 언급하듯 ‘신(新)세화’일 수 있다. 전시명 자체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시점에 대중의 자연스러운 관심을 끌 뿐만 아니라 우리 현대미술의 오랜 화두였던 ‘전통의 현대화’, ‘현대 속의 전통’, ‘로컬과 글로벌’을 다시금 되뇌는 잔잔한 이슈거리를 만들어내기에 제격인 탓이다. 게다가 최근 젊은 작가군을 중심으로 현대적 미술어법으로 한국전통의 미학을 되살려낸다던가 한국 전통미술의 형식적 양상을 빌어 현대를 풍자하는 식의 실험적 노력들이 지속되어 오고 있는 최근의 미술현장을 이번 전시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서희화,장생-목단, 150×14cm, 혼합재료, 2003

 

 

서구가 늘 ‘해피’한 소망으로 새해를 기대하는 것과 달리 아시아는 그와 같은 진경(進慶)의 의미 외에도 나쁜 액을 물리쳐야 한다는 벽사(辟邪)의 강박증을 함께 드러낸다. 우리의 전통 ‘세화’에 드러나는 용이나 호랑이, 닭과 개의 이미지는 중국의 목판 연화(年畵)나 일본의 소나무 장식 카토마츠(門松) 식으로 ‘새해에 복을 부르는’ 그림이기 이전에 ‘새해에는 부디 사악한 악귀를 물리치길 바라는’ 소망이 한데 녹아 있는 그림이 된다.

 

위와 같은 면에서 컴퓨터 부속품인 기판이나 메인보드 등의 오브제로 이루어진 홍성담의 신 문자도인 <컴 바이러스 消滅 符 >는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사악한 악귀를 쫒아내는 현대판 ‘부적’이 된다. 가히, 벽사의 소망을 담은 ‘세화’의 포스트모던적 변형이라고 할 수 있을 터이다. 또한 한국의 12 길상동물의 미니어처를 아크릴박스 안에 담아 보여주는 임영길의 조각적 설치작품은 보다 직접적인 양태로 세화의 현대적 이미지를 재현해내고 있다. 그것은 마치 호랑이와 까치가 어우러진 호작도(虎鵲圖)나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세화 십장생도(十長生圖)를 아우르는 집적(集積)적 게시물처럼 보인다. 게다가 플라스틱 오브제로 전통 문자도나 십장생도의 이미지를 되살려내는 서희화의 작품이나 닭을 소재로 길상화를 그려낸 김현지의 작은 원형 하드보드지는 정초에 지인들에게 나누어주는 세화의 전통을 현대적 어법으로 재치 있게 이어나가고 있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참여작 모두를 세화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바라보기에는 무리이다. ‘민화적 전통의 현대적 변용과 재해석’이라는 주제가 얼추 더 적절할 수 있다. 기획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번 전시는 세화를 단지 ‘과거 유산에서 오늘의 미술을 해석하는 기호이자 통로로 반전’하려는 출발점으로 정초하길 원하는데 초점이 모아져 있다. 달리 말하면 전시명은 세화로부터 출발했지만 그를 통해서 민화의 전통을 이야기해보자는 식으로 기획자가 애교 섞인 억지를 부린 것이다. 그 억지가 그래도 의미 있는 까닭은 ‘이음’, ‘비틂’, ‘즐김’이라는 3개의 카테고리로 작품들을 고찰하면서 전통에의 현대적 변용과 재해석의 문제를 민감하게 건드리고 있는 탓이다.

 

세화의 현대적 변용은 투 도어 냉장고가 그려진 박지나의 작업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당시 서민들이 가질 수 없는 물건들을 그려 그들의 기원과 욕망을 표현한 민화적 전통이 진경(進慶)적 세화와 맞물리는 지점이다. 서구의 문자 ‘알파’로부터 한글의 ‘히읗’까지 변형되어 가는 과정을 통해 서구 문명과 한국의 전통을 대비한 안상수의 현대적 문자도도 이와 같은 의미의 차원에 적절히 걸터앉아 있다.

 


박지나_고물_장지에 채색_162.2×78cm_2005

 



그러나 이번에 선정된 개념적 산수화나 추상계열 작가군의 작업은 문자도의 현대적 변용이 꾀한 무리한 확장이거나 개념적 회화, 조각 식으로 장르의 생색 맞추기에 급급했던 무모한 제스처로 읽힌다. 게다가 건축가에게 의뢰한 전시공간 디자인은 세화에 주목하기 보다는 전시가 확장시킨 민화의 전통이나 문자도에서 유래한 캘리그래피적 특성에 집중함으로써 작품과 공간디자인이 겉도는 결과를 도출한 것으로 보인다. 불투명 파이프로 공간을 휘감고 있는 전시공간 디자인은 첫 전시장에서 작품들의 설치적 배경으로 사용되면서 어느 정도 상호침투하고 있지만 두 번째 전시장에서는 아예 작품 앞에서 위용을 부린 꼴이 되지 않았는가 싶다. 기획자와 디자이너와의 전시를 위한 충분한 협의가 아쉬운 결과다. ●

출전 /

김성호, "전통의 현대적 변용과 실천의 괴리", 『art in culture』, 2006. 2월호, p.138. (세화견문록전, 2005. 12. 29-2. 12, 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

 

이미지 출전 / 한가람미술관, 네오룩닷컴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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