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비평〕
손봉채展 2006. 2. 8~27 갤러리 쌈지
‘그때 그곳’의 기억 더듬기
김성호(미술평론가)
“손봉채의 작업이 완전히 변했다!”
삐거덕거리며 연신 자전거 바퀴를 돌려대던 2회 광주비엔날레 출품작이나 여러 기획전에서 발표했던 키네틱 작업들을 기억하는 이라면 그렇게 말할 만하다.
그러나 한 작가의 작업 변모를 실험적 아이디어의 결과로 재단한 채 그 작가의 지속적인 작업형식의 탐구과정이나 일관된 주제의식을 간과하는 우리의 관습이 유발시킨 견해가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손봉채는 기계적 움직임을 부여하는 구식의 테크놀로지를 통한 작업의 형식을 오랫동안 지속하면서도 동시에 개념적 설치의 양상 속에서 그것의 미묘한 변주를 시도해 오거나 ‘시간과 공간’, ‘권력과 주체’, ‘미술과 사회’ 등의 일관된 주제의식에 천착해 왔기 때문이다.
손봉채, 2006
최근작 <잃어버린 시간-경계> 시리즈는 일견 형식적인 면모에서 이전 작업을 완전히 이탈한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련의 키네틱 작업의 설치시 고려되었던 조명 방식이 필연적으로 잉태시켰던 ‘그림자 이미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단지 다르다면 이전 작품에서 3차원 오브제의 배면으로 드리우던 그림자의 ‘보편적 위상’을, 이번 전시에서는 2차원 평면 이미지의 전면으로 투영시키면서 그림자의 ‘특수한 위상’으로 전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림자의 ‘특수한 위상’은 동일한 흑백 풍경 사진을 여러 장의 얇은 투명 필름에 전사시켜 아크릴박스 안에 층(layer)을 지어 배열해 놓고 그 배면에서 조명을 비추는 방식으로부터 유발된다. 마치 내부조명을 통해 드러나는 밤거리의 필름 광고판처럼 ‘그림자가 이미지화(化)’되는 이 특수한 위상은 손봉채의 작업에서 한층 강화된다. 여러 층으로 배열된 필름을 빛이 관통하면서 2차원 이미지를 3차원의 것으로 확장시키는 탓이다. 납작한 평면 이미지가 층을 이루어 입체사진(stereo-photography)을 보는듯한 일루전(illusion)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흑백 이미지로 인해 마치 수묵화의 농담과 같은 몽롱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손봉채, 2006
우리의 논의는 공판화 식의 어법을 입체사진이나 옵아트의 기술적 장치와 혼용한 손봉채의 독특한 조형실험 방식과 그 시각적 결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가 발품을 팔아 직접 찍은 풍경사진들이 임진왜란,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등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간직한 지역을 사료조사와 증언을 토대로 탐사를 떠난 ‘노동 여행’에 근거한 것이라는 주제와 관련한 문제의식은 곱씹어 볼 만하다. 빨치산의 근거지였던 지리산, 6.25당시 죽창으로 주민들이 학살당했던 담양의 대나무 숲, 광주항쟁 당시 무고한 시민들이 주검으로 쓰러져 간 광주시 소재 기독교 병원 가는 길 등, 역사적 현장을 사진으로 다시 찾는 그의 작업은 ‘그때 그곳’이라는 시공간을 ‘지금 여기’에 불러와 관객과 조우시키는 영매(靈媒)의 소임을 다한다. ‘그때 그곳의 사건’을 ‘그 때의 기록’으로 객관화하는 다큐멘터리와도 유사하게 손봉채의 작업은 ‘그때 그곳의 사건’을 ‘지금의 기억’으로 재해석한다. 증언이나 기록을 매개로 해서 찾아나서는 기억인 만큼 그는 개별 작품마다 거시적 시공간의 한 층에서 떨어진 미시적 시공간을 찾아 그 내밀한 시간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런데, 카메라의 피사체로 잡힌 특정한 물리적 공간의 풍경은 작가에게 있어 ‘그때 그곳의 사(史)적 기억’을 더듬는 훌륭한 ‘증거의 대상체’일 수 있지만 전시와 갑작스레 맞닥뜨린 관객에게 있어서는 사(私)적 추억만 떠올리는 ‘향수의 대상체’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차원을 작가는 고려해야 할 것 같다. 사진이미지의 특성상 시각적 즉발(卽發)성을 관람의 태도로 견지하고 있는 다수의 관객에게, <충장로 일가>, <사직공원 이야기> 식으로 작품명을 부기해 두고 “작품의 컨텍스트 독해를 물론 하고 계시죠?”라며 이번 전시가 다그치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해 볼 일이다. 관객에게 무한히 열려진 풍경사진 이미지의 다의성을 최소한 작가가 원하는 역사적 의미소에 매어두려면 ‘미시적 시공간의 집적’ 외에 또 다른 전략적인 조형방식이나 설치어법이 강구되어야 할 숙제가 남겨진 셈이다. ●
출전 /
김성호, "그때 그곳의 기억 더듬기",『art in culture』, 2006. 3월호, p.149. (손봉채전, 2006. 2. 8-27, 갤러리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