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비평〕
이미경 전, 2006. 2. 15-21 갤러리 라메르, 2. 22-28 용인문예회관 전시실
반영(反影) 이미지로 찾아나서는 미시적 과거사
글 김성호(미술평론가)

전시 전경
反映 혹은 反影 : 거울의 이미지로부터 물의 그림자로
그의 이번 전시 타이틀 〈거울... 그리고 눈빛〉이 상기시키듯이 그의 전시 출품작들은 반영성(反映性)에 기초한 시각성의 차원에 골몰하고 있는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그 반영성이란 거울과도 같은 표면이 반사시키는 대상의 이미지들로 표상되지만 이번 전시에 실제적인 거울 매체를 활용한 예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녀가 작품에 투여하는 반영성의 의미망을 주요하게 고려할 뿐 재료적 차원에서 거울 매체를 적극 탐구하고 있지 않은 탓이다. 한편으로는 반영의 의미를 반영(反映) 혹은 반영(反影)으로 그 내러티브를 풍부하게 열어두고 있는 매개체로 인식하고 있는 탓이기도 하다.
실제로 작품 내부에 설치된 거울이라던가 반사체의 평면오브제들을 통해서 관람객이 자신들의 이미지들을 확인해 낼 수 있게 장치한 작품들도 있지만 그것의 수는 극히 적을 따름이다. 실제의 거울이 있어도 그것은 극히 파편적인 양상으로 반영체의 이미지를 흩뜨려 놓는다. 작가가 온전한 투영이 아닌 파편적 반영을 시도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하나의 실체적인 사건이나 배경에 대한 관심 보다는 작가에게 어렴풋이 남아있는 무수한 과거의 편린들에 대한 총체적 관심 탓이 아닐까? 한 개인 주체에게는 경우에 따라 특정한 과거의 사건보다는 과거 자체가 유의미할 수가 있다. 현재에 흔적을 남기는 과거의 이미지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렇다. 그래서 그녀의 반영은 반영(反映)이기 보다는 반영(反影)의 의미를 더욱 더 함유해낸다. 그런 차원에서 그녀의 반영체는 그림자와도 같은 것이다.
특정한 과거보다는 과거 자체에 비중을 둘 때 우리는 세세한 이미지들을 반영해내는 거울과 같은 직접 반응체와 다른 어떠한 매체를 상상하게 된다. 과거의 이미지가 담긴 풍부한 추상적 실체를 드러내는 반응체, 그것은 무엇일까? 실제적인 거울 매체보다는 거울과 같은 반영체의 이미지들이면서 풍부한 추상적 실체를 가둘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에게 있어 그것은 ‘물’의 이미지이다. 그 물은 맑고 투명한 그 무엇으로 형상화되기 보다는 시간의 깊이가 느껴질 만한 큰 덩치를 가진다. 그것은 바다나 깊은 호수의 물이다. 물감이 겹겹이 층을 이루며 점묘법 식으로 표현된 짙은 코발트 블루의 작품 표면은 관객들에게 마치 깊은 수심을 지닌 호수, 혹은 바다와 같은 물의 표면과 같은 차원을 쉬이 연상하게 만든다. 점묘식의 붓터치에 의해 만들어진 잔잔한 수면의 파장과도 같은 이미지는 거울과도 같은 얇은 오브제가 만드는 반영 이미지의 생생함과 달리 어렴풋하고 모호한 분위기를 생성해낸다. 마치 깊은 수심을 지닌 물의 표면이 추상체의 반영이미지를 만들어내듯이 말이다.

이미경_두 번째 연습_2006.
시간의 깊이 : 현재에 흔적을 남기는 푸른 과거
세월의 층들이 깊은 무게를 만들어내는 블루의 깊이는 그 색의 어두움이 강조될수록 반영체의 이미지가 강조된다. 생각해 보자. 호수의 수면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그 깊이에서 만들어내는 물의 표면이 반영성의 기제를 더욱 더 강화한다는 것을... 그러나 그 경험들은 늘 생생한 거울의 이미지를 대면하는 경험과는 다른 차원을 드러낸다. 그것은 현재의 시간에 흔적을 남기는 과거의 편린들이다. 작가 이미경은 깊은 수심의 표면이 가지게 되는 반영이미지의 모호함과 어렴풋한 불투명성 위에 자신의 과거의 흔적들과 내면심리의 차원들을 슬쩍 올려놓는다. 실체에 관한 한, 또렷한 이미지의 윤곽은 상실하지만 심리적 차원으로 접근되며 언급되는 실체의 이미지가 떠올려지는 것이다.
물의 이미지가 반영되어 일렁이는 작가 이미경의 과거에의 인식은 온통 푸른빛이다. 작가에게 반영되는 푸른 과거란, 구체적이고 세세한 흔적들은 어렴풋하고 모호하게 흩어져있지만 과거에의 인식은 더욱 더 또렷해지는 그 어떤 모습으로 남겨져 있다. 작가가 불러오는 과거가 현재의 시간성에 강하게 흔적을 남기고 있는 탓이다. 시간의 깊이가 주제로 부상하는 차원이다.


이미경전 전경

이미경전 전경
놓아두기 : 응시하기로부터 관조하기
과거를 바라보는 작가 이미경의 시각적 주체성은 응시라고 하는 가져오기의 과정이기 보다는 관조라고 하는 놓아두기 혹은 내버려두기를 수행한다. 즉 과거의 파편적 대상에 몰입하기 보다는 과거의 총체성을 담담히 관조하는 차원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막막한 수면의 물결만이 그려진 화폭을 사이에 두고 매끄러운 화면이 자리한 변형 캔버스(shaped canvas) 작업인 〈보여짐〉에서처럼 ‘보는’ 능동적 주체이기 보다는 ‘보이는’ 능동적 객체가 더욱 강조된다. 달리 말하면 바라보는 시각의 주체인 작가가 강조되기 보다는 보이는 대상인 객체가 더욱 강조되는 것이다. 막막한 수면의 물결만이 가득한 작품 〈아무 것도 없었네〉에서처럼 마음 비우기를 통해서 관조하는 대상은 단지 비어있는 허상의 존재로 공(空)의 존재로 우리들에게 돌아와 앉는다. 또 다른 작업 〈기억의 고집〉처럼 보는 시각 주체가 강조되고 몰입의 과정이 지속되면 될수록 객체의 모습은 깨어진 거울처럼 우리들에게 돌려질 뿐이다. 화면으로부터 푸른 물기를 빨아들인 광목천이 화면 밖으로 늘어뜨리어진 작품 〈Dido's lament〉은 카르타고의 여왕의 전설을 이미지화한 것으로, 사랑했던 아이네아스가 떠나자 불에 뛰어들어 자살했던 한 여인의 슬픔을 작가와 동일시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과거에 대한 집착과 몰입이 드러내는 종말인 셈이다.


이미경전 전경
불혹을 넘어선 작가의 연배 탓인지 이러한 대상에 대한 집착과 몰입의 시간은 관용이나 비워두기의 시간에 미치지 못한다. 보기의 주체를 강조하기 보다는 보여짐의 대상체를 더욱 강조하고 있는 이러한 작가의 시각적 인식은 방향성을 설정하지 않은 채 그저 몸을 싣고 물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종이배들이 그려진 작품 〈비우기〉에 잔잔히 이른다.
더 이상 집착할 것도 더 이상 몰입할 대상의 단편도 사라진 채, 단지 관조할 커다란 대상만이 남아있는 과거에 대한 작가의 시각적 인식인 것이다. 그것은 작가가 미술의 창작 과정을 과거의 시간을 대면하면서 수행하는 명상의 과정과 다를 바 없다. 그녀의 이번 전시는 놓아두기, 내버려두기, 비우기와 같은 언어들이 맴도는 명상의 차원에 우리를 인도한다.
이미경은 갤러리 라메르 2006년 신진작가 지원에 선정된 작가로 이번에 이곳에서의 전시와 함께 용인문예회관 전시를 계획하면서 경기문화재단의 지원금을 수혜 받았다. ●
출전 /
김성호, "반영(反影) 이미지로 찾아나서는 미시적 과거사", 『경기문화재단 심층모니터링』, 2006, 12. (이미경전, 2006. 2. 15-21, 갤러리라메르 / 2. 22-28, 용인문예회관전시실)
이미지 출처 / artd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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